woo, ah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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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쿱] 피아니스트썰
세기의 천재인 피아니스트 훈이랑 만년 2등 이였던 철. 피아노 처음 친 7살 때부터 신동이란 소리를 들었던 철이. 나가는 대회마다 금상을 휩쓸고 피아노나 음악계에서 한국의 모차르트가 나타났다하면서 인터뷰를 했던 어마 무시한 실력가였음. 다들 최연소 데뷔 하냐 이런 추측성 기사를 내던 때에 철은 더 최고일 때 나간다며 매일 연습삼매경이었음. 그 모습이 더 사람들에게 호감을 일으켜 인기가 치솟고.
그러던 어느 날 철이가 유명한 담당 교수님한테 레슨 받는데 한 꼬맹이가 있는 것임. 레슨배우는 교수님 자택에선 자기보다 큰 어른들만 봤던 철은 어린 꼬맹이가 있으니 누구지? 호기심이 드는 것임. 그래서 넌 누구니? 했더니 꼬맹이가 훈이요 대답함.
너 여기 왜있어?
피아노 배우로 왔어요
너도 피아노 배워?
네
깜놀한 철. 자기도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치고 배웠지만 그때의 자기보다 더 어린애가 피아노배운다 하니 신기하고 반가운거지. 그래서 난 철이야. 나도 여기서 피아노 배워. 반갑게 인사함. 훈은 초반에 수줍어하며 대답만 했다가 철이랑 이야기하다보니 어린아이들 특유의 친화력으로 친해지고. 교수님 올 땐 이미 둘만의 세계. 그러다 교수님이 오시고 훈한테 이 형이 십년에 한번 나온다는 천재 형이라고 훈이 형처럼 잘 쳐야 한다며 얘기함. 그리고 철이 먼저 치는데 철은 훈이 눈 반짝거리면서 자기 보니까 어깨에 힘주며 더 열심히 치고. 교수님이 엑설런트~ 이러며 칭찬하고 훈도 형 머시써여 이러니까 콧대도 좀 높아진 느낌.
자 이제 훈이 쳐보자.
철이 내려가고 훈이 올라감. 의자에 앉으니까 큰 그랜드 파이노에 훈이가 푹 파 묻힌것 같음. 저런 애가 잘 칠 수 있을까 내심 의심을 했지만 첫 음이 시작되는 순간..... 연주가 끝나고 긴장하며 교수님과 저를 쳐다보는 훈. 교수님은 잘했다며 훈 등을 두들기고 철도 교수님 따라 박수를 침. 와 멋있다. 물 사이를 가로지르는 수영선수처럼 힘찬 출발일 것 같은데 유연하게 갈라지는 물처럼 부드럽게 흘러가는 멜로디가 넘 멋있는 것임.아직 손가락 힘이 부족해서 연약하긴 하지만 성장하면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될 재목임. 철은 신선한 충격을 받음. 어린나이에 스포트라이트 받아서 자신이 누구보다 잘 친다 생각했던 철에게 새로운 라이벌이 나타난 거지. 내가 앗 하면 저 아이에게 따라 잡히겠구나 본능적으로 깨달은 철은 그 이후부터 열심히 피아노를 침. 원래 피아노밖에 없던 생활이었지만 더욱더 모든 시간에 피아노를 투자 하는거. 훈이는 그이후로 만난 적 없지만 같은 피아노계에 있다면 언젠가 만날 거니까 그때지지 않게 멋있게 해야 겠다 각오하고. 하지만 철의 인생은 그 이후로 완전히 달라짐.
처음에는 역시 철이었음. 어디서든 1등이었고 금상이었고 협주하여 피아노치기도 하며 승승장구했었음. 하지만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훈이 무섭게 제 뒤까지 바짝 쫓아왔고 또 시간이 지나자 훈이 철의 자리를 서서히 차지하기 시작하는 거지. 줄어드는 인터뷰 줄어드는 관심. 이제 세상 사람들은 저보다 더 어린 훈에게 관심을 쏟는 거야. 고작 세살 어린앤데 자기가 뒤쳐지고 있다고 자각하자 철은 미칠 것 같았음. 거기다 국제 피아노 콩쿠르대회에서 훈에게 철이 이후로 한 번도 뺏긴 적 없던 1등을 빼앗겼음. 처음 봤을 때마다 조금 더 컸고 손가락 힘도 생기고 더 피아니스트다워진 옆모습에 2등상을 받으며 울분에 차는 철.
다들 어린동양인에게 몰리고 소외된 철은 사람 많은 곳에서 울지 않으려 입술을 물며 버티고. 그러다 훈이랑 눈이 마주쳤는데 훈이 저를 아는 척 하려는 거. 철은 시선을 돌려 그 자리에서 벗어남. 어른들처럼 축하해 라고 칭찬을 할 수가 없어서 구석으로 숨은 철은 아무도 없는걸 아서야 소리 내며 크게 울고. 꼭 널 이기고말거야.지지 않아. 그 자리는 원래 내거였으니까 다시 찾을 거야. 다짐하고 다짐하는 철.
그이후로 미친 듯이 피아노에만 매진하는 철. 밥 먹는 시간도 넘기고 잠자는 시간도 없애며 피아노에 몰두함. 부모님이 말려보고 교수님이 이게 네 몸을 더 망가뜨리는 거라고 해도 소용이 없음. 오직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매일같이 연습함. 그러다 몇 번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가기도하고. 눈뜨면 퇴원하자마자 와서 피아노치고. 그러다 손가락신경에 문제가 생겨서 피아노를 쉬어야 했는데 그때 불안증상과 예민성신경쇠약으로 거의 시체처럼 살기도 했음. 그리고 그 당시 일부러 훈의 소식을 듣지 않으려 했는데 그게 사람 뜻대로 안 되는 거라 어디선가 들려오는 훈의 소식(무슨 대회 나가서 싹쓸이했더라, 유명한 해외교수가 찾아갔더라)에 더 미쳐있었음.
철의 손이 다 낫고(사실 다 낫진 않았지만 철이 맘대로 피아노를 침) 훈과 만나는 국제대회. 거기는 처음으로 훈에게 1위 자리를 뺏겨야했던 그곳이었음. 철은 자신만만하게 곡을 준비했고(연주를 들은 모든 이들이 이제껏 들은 것 중 가장 훌륭하다했음) 훈이 새끼손가락을 다쳐 완전한 연주를 못 칠 수도 있다는 얘기도 들었음. 분명히 내가 이길 거라고, 확신하며 무대에 올라가 의자에 앉고 연주를 함.
연주는 상상 그 이상으로 훌륭했음. 연습 때 애먹었던 부분이 부드럽게 넘어가고 틀린 거 없이 호흡박자분위기 모두 완벽했음. 연주가 끝나자 거대한 파도가 치는 것처럼 우레와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짐. 숨 쉬는 것도 잊고 연주에 몰두하던 철은 어안 벙벙하다가 활짝 웃으며 내려옴. 내가 1위야.
철이 뒤 뒤가 훈이었음. 철은 본인 대기실로 가지 않고 무대 옆 복도에 서서 훈이를 봄. 훈이의 오른손 맨 끝 손가락에 붕대가 없었음. 다치지 않은 건가? 했는데 손가락을 네 번째 손가락에 붙이는 거임. 아 다친 게 맞구나. 안도하는 자신이 조금 싫은 철. 훈이 의자에 앉고 숨을 고르고 손가락이 올라가고...그리고....시작되는 연주는 자신이 오늘 연주한 곡이었음. 같은 곡. 아주 드물지만 같은 곡을 갖고 치기도 하니까 이상한건 아님.
훈의 연주 내내 그 자리에 꼿꼿이 서있던 철. 훈의 연주가 끝나자 그대로 뒤돌아 어디 있었냐는 엄마를 제쳐 밖으로 나감.
얘야. 아직 대회 안 끝났어.
엄마가 철을 붙잡음 철은 그런 엄마 손을 가볍게 뿌리쳤음.
아니야. 이 대회 끝났어.
철아
엄마 나는 결코 저 아이를 이길 수 없어.
완벽했던 제 연주를 뛰어넘었던 훈의 연주. 시작하자마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켜 제게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마력. 그 작은 몸에서 그리 강한 힘이 나오는지. 철은 훈의 연주 내내 침을 삼키지 못하고 눈동자도 돌리지 못하고 오로지 훈의 연주에만, 유영하는 훈의 작은 등에 시선을 뗄 수가 없었음.
승부를 가릴 수 없는,신의 영역에 다다른 연주.
철은 어느새 눈물을 뚝뚝 흘리며 웃었음. 자신의 완벽한 패배에, 아니 자기 자신은 발 디딜 틈도 없는-... 그이후로 철의 인생에 피아노는 영영 사라지게 된다.
십여 년이 흘러 32살 00회사의 최 대리. 어제와 같은 아침에 일어나 씻고 일하고 집에 와서 좀 티비를 보다 게임을 하거나 잠드는 그런 하루를 시작하는 철. 이제는 익숙한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며 출근한 철. 어느 날처럼 일을 하다가 자기 친척동생 솔에게 연락이 옴. 첨엔 몇 번 거절했는데 카톡에서 까지 난리 나니까 볼 일 보는 척 나가 연락함.
무슨 일이야.
형 나랑 연주회 보러가자.
솔이 썸(n년)타는 친구가 바이올렛연주자인데 이번에 무슨 연주회에 피아노협주곡으로 나간다함. 뛰어난 실력에 비해 늘 성적이 좋지 않았다가 일 년 전부터 바람맞은 돛단배처럼 순항 하는 친구였음. 이번 협주가 그 친구에 첫 무대라고 자기가 꼭 가야한다고 근데 혼자가면 너무 조아하는 거 티 나니까 형도 같이 가자는 거지. 솔에 썸친과도 친한 철. 시른데 거절하지만 솔의 집요한 부탁과 끈질긴 연락에 결국 두 손 두 발 들어 가게 됨.
그리고 당일 날 외근으로 연주회 시작시간 30분 지나서 공연장에 도착한 철. 마침 잠시 쉴 때라 급하게 안으로 들어가고. 왜 이제 왔냐는 솔의 구박에 미안 바빠써 사과하는 철. 지나가써? 물으니 다음 무대라함. 다행이네. 그제야 뛰어오느냐 거칠었던 숨을 정리하고 옷 매무새도 하고 오는 길에 잊지 않고 사온 꽃다발 한손에 쥐는 철.
얼마 안되어 공연장 문이 닫히고 조명이 꺼지며 무대가 시작함. 왼쪽에서 세 명의 사람이 나옴. 그중에 하나인 솔 썸친이 긴장한 채로 나오는데 웃긴 철.
야 쟤 완전 긴장했다.
솔에게 속삭이려다 뿌 귀엽다. 벌써 광대 승천하는 솔 한심하게 보면서 고개 절레절레. 악기 세팅하고 음 맞추는동안 다른 사람들 훑어보는데 다들 뿌랑 비슷한 연령대로 보임. 아 이게 젊은 연주자이 하는 공연이랬지. 그때서야 앞에서 눈에 띄어 집은 팜플렛 생각나고. 이게 무슨 공연이었더라 펼치는데 음악이 시작됨. 느리고 조용하게 시작하는 멜로디에 저절로 눈을 감는 철. 피아노와 바이올렛의 아름다운 협주에 진짜 좋다. 감탄함. 사실 철은 연주회는 십 몇 년 만임. 피아노를 그렇게 그만둔 뒤로 의식적으로 피아노-넓게는 음악을 멀리하며 지냈음. 계속 듣고 보다보면 그 때 느꼈던 패배감에 무너질 것 같아서. 그래서 다 피했다가 몇 년 전부터 음악을 다시 듣기 시작함. 아직 피아노곡은 어렵고. 그러다 오늘 정말 오랜만에 피아노연주를 듣는 거고 생각보다 괜찮았음. 거부감도 없고. 심지어 연주가 참 아름다웠음. 이 피아노를 치는 연주자가 누구일까 궁금하기까지 함. 그래서 철은 감은 눈을 뜸. 뿌를 위해 맨 앞을 사수한 솔 덕분에 가까이 본 연주자는 남자였음. 아까 나왔을 때 그리 크지 않은 키에 평범한 인상이었는데 연주하는걸 보니 건반을 쳐다보는 눈빛과 유연하게 흐르는 손가락이 천상 피아니스트구나 라는 걸 느끼게 됨. 협주곡을 리드미컬하게 리드하면서도 튀지 않게 바이올린을 어우르는 재주가 보통이 아님. 누구일까? 궁금해지게 됨.
모든 공연이 끝나고 연주자 대기실에 갔음. 축하하는 사람들도 북적거리는 틈을 피해 가니 뿌가 부모님이랑 사진찍고 있었음. 그 곁에 가서 인사하고 뿌에게 꽃을 주니 활짝 웃으며 좋아함. 솔도 잘 들었다고 훌륭했다하며 꽃다발을 주었음. 뿌 얼굴이 아까랑 다르게 좋아죽음. 나 안 이상했어? 그러면 멋있었어 대답하고 엄지척 해주니 뿌 광대폭발직전. 같이 밥먹으러 갈래? 분위기를 타 솔이 물으니 뿌 고개 막 끄덕끄덕.
어 난 집 갈래.
철이 그러니 둘이 동시에 안 돼!! 이럼. 그러다 서로 쳐다보고 놀라다 형이 없으면 술 먹는 재미가 없어 이래. 너네 둘 나보다 술 못하잖아. 그리고 둘이 좋아죽으면서 언제까지 썸 탈거야. 막 내적분노 일어남. 어휴 머리를 털던 철. 그러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 고개를 돌림. 아까 피아노 치던 남자임. 날 보는 건가? 싶던 찰나에 뿌가 고생하셨어요. 그 남자에게 인사함. 그 남자도 인사하면서 뿌 옆으로 걸어온다. 뿌는 그 남자에게 우리를 친구랑 친한 형이라 소개해주고 이 사람은 나랑 같이 이번에 연주한 지훈이라 소개함.
지훈? 피아노? 아.
어쩐지 익숙한 연주라 했어. 어디서 많이 봤다했지. 너였구나.
나의 과거였던 지훈.
그리고 뒤풀이. 고급 바를 빌려서 한곳이라 모던한 실내엔 연주자와 공연 관게자 그들의 지인들만 있음. 뒤풀이가 있을 줄 몰랐던 뿌는(원래 없었는데 갑자기 왜 생겼지)지인찬스로 솔과 철을 초대. 공짜 술 준대 한마디에 홀라당 넘어온 철은 지금 후회중임. 같이 술마셔주겠다던 솔과 부는 눈 돌린 사이 뿅 사라져 보이질 않고 낯선 사람들 무리에서 홀로 앉아 술을 마시는 게 너무 처량한 것임. 나 여기서 아는 사람 없다고ㅠㅠ 둘에게 연락하지만 안읽씹. 그냥 집에 가야겠다 싶어 나가다 오는 사람과 부딪혀 옷에 술이 튐. 취해가지고 풀린 혀로 미안하다는 사람에게 괜찮다하고 화장실감. 다행히 무색이라 젖었을 뿐 얼룩은 안 져서 물로 씻어냄. 물이 닿아 살에 달라붙는 느낌에 으으윽 괴로워하며 휴지로 닦으려하니 오메 휴지가 모자라. 아 그냥 이대로 가야하나 싶을 때 눈 앞에 나타난 손수건. 감사합니다 받고 보니까 훈이었음. 어, 당황해하는 철에게 닦으라며 세면대에서 제 손을 닦음. 철은 주저하다 젖는 느낌이 싫어서 닦았고 다 닦고 주려하는데 오매 훈이 사라짐. 언제 사라진 거야. 당황하다가 전화가 와서 보니 뿌임.
형 한솔이 취했어. 근데 나도 취함.
아이고 두야. 두 문제아 때문에 철은 훈을 찾지 못하고 나가고 손수건은 양복주머니에 들어가게 됨.
얼마 후에 양복 맡기려고 주머니 뒤지다 손수건을 발견한 철. 그제야 손수건존재를 알게 되고. 이미 안에서 쭈글쭈글 건조된 손수건에 양심이 찔려 같이 세탁소에 맡김. 다행히 세탁소아저씨가 명인이라 손수건은 살아났지만 문제는 돌려줄 방법이 없음. 승관을 통해 줄까하는데 마침 해외공연이 잡혀 외국에 가 있는 터라 연락이 쉽지 않았음. 비싸 보이던데. 회사 책상에 손수건을 올려 앞뒤로 괜히 뒤집음. 그러다 그 때 들었던 연주곡이 자동으로 떠오르고. 무대 위에서 여전히, 아니 그때보다 더욱 빛나있는 훈을 보니 쓸쓸해짐. 괜히 궁금해 인터넷에 쳐보니 그동안 해외 순방공연을 하며 승승장구하던 훈이었음. 중간에 피아노를 그만두던 저와 달리 완벽한 보석이 되어 빛나던 그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예전처럼 숨이 막히고 죽을 것 같진 않지만 좀 싱숭생숭함.
그날 저녁 기분을 못 이기고 동기대리랑 한잔하고 집에 돌아온 철. 우편함에 꽂힌 고지서를 들고 엘레베이터를 타고 단추를 눌렀음. 띵 소리에 내리는데 어 느낌이 이상함. 고개를 들어보니 내 집과 마주보는 앞집 문에 한 남자가 쭈그려 앉아있음. 한 달 전에 이사 온 사람인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앞집사람인가 싶어 주춤거리다 다가가는 철. 저기요. 부르는데 반응이 없음. 저기요 어깨를 잡고 흔드는데도 무반응. 그냥 두고 갈까 술 마셔서 귀찮아 가고 싶어. 그런데 이렇게 문 앞에 취해서(추측) 자고 있는 사람 두고 갈 성격이 못 되서 한 번 더 남자를 세차게 흔들었음.
저기요!!
끄응.
다행히 반응이 옴.
여기 왜 이러고 계세요.
물어보지만 중얼거리는 소리만 들림. 네? 뭐라고요? 물어도 같음. 아 됐고 여기 집 맞으세요? 고개를 끄덕임. 집 비번 어떻게 돼요? 뭐라 함. 네? 귀를 바짝대고 들으니 어떤 숫자가 들림. 맞나싶어 눌렀음. 띠리릭 맞았음. 철은 문을 열어 등으로 문을 막고 남자를 자자 들어가자, 자 집이다 하고 끌어 들어감. 늘어진 남자 몸 끌어 대충 거실에 보이는 소파에 던지고 허리를 핌. 그 잠깐에 허리가 아프고 땀이 나고 아이고 힘들다 앓는 소리 절로 나옴. 그새 다시 잠든 어이없게 바라보다 신발은 벗겨줘야겠다 싶어 벗겨주려 보니 어? 훈임. 설마 싶어 거실 불 키고 보니 훈이 맞았음. 아니 얘가 여길 왜? 철이 사는 집은 그냥 원룸 빌라였음. 약간 외각이라 싸고 시설도 낡은 곳. 직장과 가까운데다 형편도 맞춰 월세로 사는 철이었는데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훈이 여기로 이사 왔다는 게 이해가 안감.
이 집주인 맞아?
거실을 둘러보는데 애인 이라던가 친구라던가 다른 사람과 사는 느낌 안 들고. 남자 집은 맞음. 신기하다. 잠자는 훈이 얼굴 내려 보다 앗 손수건 생각나서 가방 뒤지는데 없어. 회사에 두고 왔어. 다음에 줘야겠네. 그렇게 철은 훈의 집을 나가고 자신의 집에 들어감.
그리고 다음날 저녁 퇴근하던 철이 회색 추리닝에 검은 봉다리 흔들고 가는 훈이랑 엘베에서 마주치는 거지. 후드모자를 푹 뒤집어써 얼굴은 알 수 없지만 덩치가 맞음. 목인사만 하고 타는 훈이 따라 타면서 주머니에서 손수건 만지는 철. 그리고 도착 후 자기 집으로 들여가라는 훈이를 부름.
저기요. 자신을 부르니까 훈이 놀라 돌아봄. 철이 어제 잘 주무셨어요? 물으니 네? 놀람.
제가 힘들어서 거실소파에 그냥 눕혔는데 몸 안 배겼어요?
예?
젊어서 술로 떡이 되가지고 집 못 들어가고 그러면 늙어서 힘들어져요. 적당히 술 드시고 집은 꼭 들어가세요.
그러는 거지. 훈은 상황파악이 안 되서 ?????이러는데 철이 주머니에서 손수건 꺼내 훈 손잡아 쥐어주며 지훈씨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술 취해 아무데서나 누우면 신문에 나요. 그러니까 곡 집에 들어가세요. 한번더 신신당부해주고 집에 들어가고. 문 닫자마자 킬킬 웃음터뜨리면서 인터폰을 킴. 거기에는 손수건이 주먹에 구겨져서 머리를(정확히는 후드모자 뒤집어쓴 부분)쥐어뜯는 훈이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외치고 있었음.
그리고 담날 출근하던 철은 운동하려고 나온 훈과 어색한 인사를 하겠지.
철과 훈은 이웃사촌이 되었음. 인사를 주고받고 이름을 알게 되고(철이라 알렸을 때 나름 긴장했던 철은 훈이 아무말도 없자 씁쓸했음. 우리가 만난 게 하루뿐이고 그 외 엔 대회에서 라이벌로 만났지만 한때 피아노계에서 승철이라 하면 다 알았는데)매일 마주침. 시간은 퇴근시간대. 본인 일만 잘하면 칼퇴에 주5일이라는 좋은 직장에 다니는 철은 퇴근시간대가 늘 일정한데 퇴근하려 엘베를 타려하면 훈이가 꼭 뒤에 나타났음. 훈이는 첨에 추리닝이었으나 나중엔 깔끔한 캐주얼이고. 어디 갔다 오는지 같은 시간대 만나니까 궁금했던 철은 한번은 훈에게 묻겠지.
요즘 어디 다니시나 봐요? 피아니스트인데 매일 같은 시간대 마주쳐서 궁금해서요
아, 좀 일 땜에.
그래요?
네.
훈은 뒷머리를 손으로 쓸며 대답함. 뭐하시냐고 물을까하다 거기까지 묻기엔 우린 그 정도사이는 아니니 더 이상 묻진 않고
쨌든 매일 마주치니까 조금씩 철 오지랖도 떨겠지. 훈이 가끔 뭘 사오면 저기보단 저쪽 위가 더 싸요. 술은 이 근처 호프집이 맛있고 치킨집은…… 그렇게 주절주절 이야기하고. 훈은 듣다가 가끔씩 맞장구 쳐주고 다음날 되면 거기 맛있었어요 후기도 들려주고. 그렇게 점점 친해지게 되는 두 사람이다.
하루는 외근이 늦어져서 늦게 집에 도착해서 엘베타려 하는데 문이 열려서 들어가려 보니 훈이 서있었음. 어? 놀라서 멈춘 철. 기척에 훈이 숙인 고개를 듬. 철을 보고 같이 놀라더니 이제 오시나 봐요. 인사하는 거지. 네. 놀란 가슴 진정시키고 엘베 들어와서 열림 버튼 누르며 안 나가세요? 물어보니까 아니요 고개를 저음. 좀 의아했지만 층수 버튼 누름. 힘들어서 좀 조용히 있었는데 훈이 오늘 좀 늦으셨네요. 물음. 철이 외근하다보니 그렇게 됐어요. 대답함. 식사하셨어요?
아니요.
저녁 뭐 드실 거예요?
철은 평소엔 듣기만 하던 훈이 갑자기 물어보니까 당황스럽고 뭐지? 의문도 들고. 그러면서도 너무 늦어서 라면이나 먹고 잘거라며 대답은 잘함. 동시에 엘베문이 열리고 안녕히 가세요. 인사하고 철이 들어가려는데 훈이 저기, 부름. 네? 작은 소리를 들은 철이 문반쯤 연 그대로 뒤돌아봤음. 훈이 철을 가만히 바라보다 아니에요, 편히 쉬세요. 하고 목 인사 하는 거지. 철 당황하며 인사하고 집에 들어가고. 오늘 무슨 바람이 들었나? 의아해하면서도 금세 잊어먹겠지.
그리고 며칠 후 일을 하던 철에게서 문자가 옴. 사랑스런 조카♥ 내용은 「집 가요」임. 응? 고작 세 글자에 의아스러운 철은 조카에게 전화를 했지만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다는 알림만 나옴. 이상해서 형한테 전화함. 일하는 중이라던 형은 조카한테서 문자가 왔다했더니 설마 하더니 확인해보겠다며 연락을 끊음. 그리고 몇 분 안 돼서
야ㅠㅠ챠니가 가출해서 너네 집 갔댄다ㅠㅠ지 책상에 너한테 간다고 쓰고 갔대ㅠㅠㅠ
문자가 옴. 그 문자를 받은 처리 기겁하며 의자에서 일어남. 순간적으로 사람들 시선이 자기에게 쏠려 민망한 철은 죄송하다하며 숙이고 의자에 앉아 문자를 다시 봄. 아무리봐도 조카인 챠니가 철이 집으로 갔다는 것임. 헐. 철이는 놀람. 챠니가 자기 집에 갔다는 것도 충격이지만 챠니 고작 8살임. 초1. 그리고 형 집은 여기서 차로 30분 거리임. 어린아이한테 먼 거리일텐데 그 거리를 걸어오는 건가 걱정되어 다시 한 번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고. 불안해서 지금이라도 집을 가고 싶은데 좀있다 중요한 일로 외근을 나가봐야해서 그것도 안 됨. 대타를 구할 수도 없는 상황. 형에게 그리고 형수님에게 문자했지만 두 분도 지금 자리를 못 비움. 경찰에 신고해야하나 어쩌나 걱정이 드는 철은 일을 코로 하는지 머리로 하는지 모르게 끝마치자마자 눈썹 날리며 집으로 달려가겠지. 그리고 딱 집 문을 여는데 깜깜한 아침그대로의 집이고. 철이 다리 풀려서 주저앉다가 챠니 찾아야겠다며 아파트주변 배회하고. 챠나챠나 부르지만 아무 소리도 안 들림. 형한테선 챠니 집에 안 왔다하고 경찰에 신고해야하나 그전에 집에 다시 가 볼까하고 탄 엘베에 훈이랑 챠니가 같이 있는 거지. 챠나 놀란 철이한테 아빠하며 달려옴. 챠니 품에 안고서 어디 있었어, 한참 찾았잖아 하면 챠니가 아빠 보고싶어서 왔지. 아빠비번 바뀌어서 못 들어가고 밖에 있었는데 이 형이 같이 놀아줬어 하며 훈 가리키고. 그때서야 훈이 눈에 들어온 철이 고맙습니다. 인사하면 훈이 아니요. 좀 굳은 얼굴로 받고.
그러다 딱 엘베가 제 층에 도착했는데 차니가 훈 보더니 밥 먹자 하는 거지. 응? 형이 맛있는 거 해준대써. 아빠 밥 먹자. 이럼. 철이 그건 좀.. 하려는데 차니가 막 눈 똘망똘망해서 쳐다보고 훈도 드시고 가세요 하니까 얼떨결에 훈이 집에 들어가 있고.
만화할 시간이야!! 거실에 내려놓자마자 티비 켜서 보는. 누가 보면 너가 주인인줄 알겠다. 눈치보다 부엌에 있는 후니한테 감. 냉장고에서 재료 꺼내는 훈이에게 처리가 정말 감사드려요. 감사 인사하니까 아니에요. 괜찮아요 말함. 얘가 없어져서 너무 당황했다고 훈이씨 아니었으면 챠니 몇 시간동안 고생했을 거라고 고마워요 하는 철이. 훈이는 어쩐지 얼굴이 안 좋음. 좀 피곤한가? 해서 그냥 챠니 데리고갈까하는데 아빠~~하고 달려오는 챠니. 전화와쪄. 형한테 온 전화임. 받는데 처리가 근데 왜 내가 아빠냐. 물으니까 이제 챠니아빠야! 하며 처리다리에 달라붙고. 계속 울리는 전화 받아서 형 챠니 이써. 응 나 앞집분이 보고 데리고 있으셨대. 응 괜찮아. 챠니? 바꿔줘? 하고 챠니 주려하니 흥칫뿡하고 거실 가는 챤. 그제야 처리는 상황알고 형 챠니랑 싸웠어? 얘가 나보고 아빠래 물으니 어제 챠니가 말 안들어서 혼냈다함.
삐져서 왔네. 내가 잘 달래고 재운 다음에 낼 보낼게. 응 걱정마. 전화 끊고, 어휴 한숨쉬고 보니 훈이 자길 빤히 쳐다보고 있음. 그 눈빛에 챠니가 조칸데 형이랑 싸우고 삐져서 왔다고 챠니가 삐지면 나보고 아빠해달라고 아빠라는 가끔 소리한다고 변명을 하게 됨. 그래요? 고개 끄덕이는 훈이 마저 요리하고. 왜인지 훈이 기분이 좋아보여서 의아해 하는 철.
손님이니 기다리시라는 말에 챠니 옆에서 어정쩡하게 앉아있다 식탁에 앉은 철과 챠니. 4인용 테이블 위 음식은 음..큰기대는 없었지만 살짝 기대했는데 역시 남자의 밥상이란. 아무렇지 않은 얼굴에 긴장이 서려있는 게 보여서 철은 괜히 웃음이 나고. 어린아이 입맛생각해서 올라온 햄이랑 계란 챠니 밥그릇에 올려주며 맛있지? 묻는 철. 잠깐 훈의 젓가락질이 멈추고 챠니 응 마이쪄 말에 다시 움직임. 그걸 캐치한 처리 또 몰래 웃다 후니랑 눈 마주쳤는데 후니 피식 웃음. 처리도 소리 내웃고.
나름 괜찮은 저녁식사 후 만화영화도 다 끝났겠다 심심해하던 챠니가 형 방 구경 해도 돼요? 물어서 허락받고 아무 문을 활짝 염. 장실 갔다 온 처리는 챠니가 그러니까 말리다 안방 한 면엔 악보랑 책으로 도배되고 가운데 피아노만 있는걸 보지. 백색 그랜드피아노자태에 잠시 말을 잃은 처리. 챠니는 익숙하게 피아노다~~ 달려가서 의자에 앉아 건반뚜껑 열고 피아노 띵똥띵똥 침. 짧은 손가락으로 나비야 침. 몇 달 전에 챠니가 피아노 배우기 시작했다는 얘길 들은 것 같았던 것 같아 좀 신기하고 장하고 좀 미묘한 기분. 그래서 챠니 옆에 앉아 치는 거봄. 삼촌(아빠라 하면 아빠한테 보낼 거야 말에 바로 삼촌)나 잘하지? 말에 응 잘한다. 머리 쓰다듬어주고. 나 이거도 배웠어 하면서 막 젓가락 행진곡치니까 처리 밑에서 반주 같이 쳐주고. 다 치고나서 같이 박수치고. 처리가 챠니 다른 건 안 배워써? 물으면 어 이거 하면서 뭐 치는데 어린아이에겐 좀 어려운 곡임. 근데 챠니가 잘 치니까 기특함. 피아노 잘 치는 것도 유전인가 좀 우울한 생각도 들고. 여기까지 밖에 몰라. 중간에 멈추고 나서 그런 말함. 언제 왔는지 후니가 옆에 와서 잘 했어. 잘 치네 칭찬함. 챠니 기분 조아서 유전이에요! 이런 얘기를 함. 응? 후니가 물으니까 아빠도 치고 삼촌도 치고 자기도 친다는 얘길함. 후니가 처리를 힐끔 쳐다봄. 처리는 못 본 척 시선을 돌리며 건반에만 시선 던지고. 삼촌 삼촌도 피아노 쳐줘! 눈치 없는 챠니가 삼촌에게 부탁함. 철은 곤란해 하며 삼촌 피아노 어렸을 때 아주 잠깐 배워서 잘 몰라. 그러면 챠니가 부루퉁해지고 후니는 조용하고. 식은땀 흘리며 어쩌지 하는 중에 후니가 형이 쳐줄까? 함. 챠니 응! 그새 고개 끄덕이고. 그럼 처리가 일어서고 챠니가 옆에 앉고. 후니가 손가락 가볍게 털고는 연주를 함. 듣자마자 처리 숨 가볍게 들이마심. 그 곡은 처리가 피아노 그만두기 전 마지막으로 나간 대화에서 치던 곡임. 후니를 이기겠다 다짐하고 말 그대로 미쳐가면서 친 곡이라 듣자마자 딱 아는 거. 여전히 아름답고 매력적이고 사람의 호흡까지 휘어잡는 카리스마에 처리는 그때 느꼈던 패배감을 다시 맛 보는것 같음. 다만 더 이상 울지 않을 뿐.
곡이 끝나고 박수를 챠니따라 박수를 치는 철. 챠니에게 살짝 웃어주고 자신을 보는 훈에게 역시 피아니스트라 다르네요. 아름답고 멋있어요. 하면 후니 미소가 짙어짐. 그 이후 몇 번 챠니가 졸라 훈이가 연주를 했음. 연주는 모두 아름다웠음.
시간이 지나서 챠니가 졸려서 눈 끔뻑거리고 하품하니까 처리가 챠니 안고. 후니 건반뚜껑 닫고 처리 뒤따라가서 가방대신 들어주고. 제가 가져가도 된다는 처리 말에 요 앞이잖아요. 거절하는 훈. 결국 후니 집에서 처리 집으로 넘어감. 어느새 반쯤 조는 챠니 엉덩이 두들기며 이 닦고 자야지 화장실 보내고 후니에게서 가방 받고.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 도와주셔서 감사드려요. 인사하면 후니가 제가 하고 싶어서 했을 뿐이예요 하는 훈. 처리가 ? 이러면 후니가 그 무표정한 얼굴로 승철씨랑 한번 밥 먹고 싶었거든요. 하는 훈. 처리 아무리 들어도 수상쩍게 들려서 ??! 표정이 심상찮게 변함. 그러면 후니가 저 승철 씨랑 더 가까워지고 싶어요. 그러함. 작업..멘트 같지않나? 속으론 그러겠지만 저 연락처 좀 알려 주세요 자기 폰 내미는 후니 폰에 11개 숫자를 적겠지. 그거 받고 좋아하는 후니 얼굴에 심정 복잡해지고. 이만 갈게요 나가는 후니에게 손 인사를 하고는 지쳐서 소파에 늘어짐. 어느새 나온 챠니가 삼촌 씻고 자야지. 그냥 자면 엄마가 멍멍이래써 흔들어 제끼지만 승철은 반응이 없다.
그날 자기 전 저 훈이예요 오는 문자에 네 지훈씨. 저장했어요. 늦었는데 안주무세요? 고민하며 답장하고.
자야죠. 자기 전에 너무 늦을 것 같아 문자드렸어요. 잘 주무세요.
지훈씨도 잘 주무세요.
짧게 문자 주고받고 지쳐서 침대에 널부러지는 철. 옆에 쌔근새근 자는 챠니 얼굴 보면서 챠나 삼촌은 지훈 형이 좀 부담스럽다 어쩌지? 한숨 푹 쉬고. 단순한 이웃사촌에서 만족하고 싶은데 자꾸 자기 맘 노크하는 훈이 부담스러운 거지. 한때 자신의 모든 것이었던 피아노를 버리게 만든 남자를, 세월이 흘렀다하여도 호의의 시선으로 마주보는 게 괴롭고 힘들어서 고민인 철. 그래서 더 이상은 그만 부딪히고 싶다! 하지만 사람 인생이란게 내 뜻대로 안 가줘.
그이후로 짧지만 식사하셨어요? 좋은 아침이예요 같은 문자를 주고 받게되고. 한번 그렇게 놀러온 챠니가 훈이 맘에 든건지 시시때때로 와서 마침 둘째 막달이었던 형수님이 힘들어하던 찰나에 도련님이 좀 봐달라며 부탁해서 아예 처리집에 두 달 정도 같이 살게되고. 본래 귀여운 것엔 사족을 못 쓰는데다 조카가 태어났을 때부터 물빨핥던 철이라 조카 보는건 어렵지 않음. 다만 훈이 집에 자꾸 놀러가서 훈이랑 매일 봐야 된다는 게 곤욕일 뿐. 최 형제 닮아 챠니도 왁자지껄하고 뛰어놀기 좋아하는 애라서 후니랑 챠니랑 퇴근길에 보면 놀이터에서 공차고 있고. 어느 때엔 처리 집에서 플겜하고 있고. 또 어느 땐 피아노를 뚱땅 치고. 어제는 처리 집 오늘은 후니 집 번갈아가며 저녁도 먹고 지내다보니 앗 하는 사이 보면 후니와 처리는 아주 절친한 사이처럼 보이게 됨.
그러던 때에 후니가 한국공연을 앞두고 조금씩 바빠지게 됨. 챠니는 지훈형 못 본다고 서운해 해서 지훈 형이 언제든지 놀러오고 싶으면 놀러오라고 비번 알려줘서 처리는 주인 없는 훈이 집에가서 피아노 치는 챠니 데리고 오고 할 때가 있는 거지.
그리고 그날도 그런 날이었음. 퇴근하고 챠니가 집에 없어서 옷만 갈아입고 옆집을 감. 현관에 가지런히 놓은 챠니 신발에 픽 웃으며 들어가니 안방에서 피아노소리가 남. 그쪽으로 가니 챠니가 피아노를 치고 있음. 평소와 다르게 낑낑거리며 치길래 뭐해? 했더니 삼촌 이거 어려워하며 악보를 가리킴. 펼쳐있는 악보를 훑던 철은 깜짝 놀람. '그곡'이었음.
지훈 형이 치는 게 멋있어서 자기도 치려했는데 어렵다고 알려달라는 챠니. 처린 고민함 이곡은.....그래서 챠나 삼촌도 이곡이 어려워. 이건 지훈 형처럼 유명한사람만 칠 수 있어 하겠지. 챠니는 이곡 꼭 치고 싶은데...챤무룩하고. 그럼 처리가 이거 말고 다른 거 좋은거 있어 그거치자 하면서 훈 책꽂이 가서 찾아보겠지. 악보사이에서 뒤지다가 어! 한 곡 발견해서 꺼냄. 그리고 피아노위 악보 놓는 곳에 펼치겠지. 챠니가 이거 뭐야? 하면 옛날에 삼촌이 이곡을 엄청 조아해서 많이 친거야 알려줌. 후니를 첨 만났을 때 쳤던, 사실 어린애가 치기엔 조금 부담이지만 성인이 치기엔 수월한 발랄한곡임. 챠니가 흥미가 생겨 쳐 달라 부탁하면 처리는 좀 머뭇거리다가 건반위에 손가락을 얹음. 십 몇 년 만에 치는 거라 떨리면서 한 건반씩 더듬어 친다, 처음엔 오랜만이라 머뭇거리다가 나중엔 손가락이 기억해서 유연하게 연주하고. 중간 중간 더듬긴 하지만 완주를 하겠지. 처리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피아노를 친다는 감각에 좀 젖을 것 같고. 곡 완성 후 챠니 박수소리에 자기생각에 빠지다 씩 웃으며 챠니 머리 쓰다듬고. 근데 그 뒤로 보이는 한 인영. 방문에 후니가 서있음. 이제 막 들어왔는지 바깥차림채로 문에 기대어 쳐리를 쳐다 보는거지. 후니 시선에 그제야 후니있던 걸 안 철은 당황하고. 챠니는 훈 발견하고 형아! 인사하고. 훈이 챠니 보고 웃으며 챠니 먹으라고 빵 사왔어 저기 부엌에 있어 하면 챠니 빵에 신나게 달려감. 처리는 악보 정리해서 원래 있던 데 꽂으려하는데 당황하서 찾지 못하고 헤맴. 그 옆으로 후니가 다가와서 알려주겠지. 얼굴 붉어져서 악보 꽂는데 후니가 피아노 잘 치시네요. 그 말에 처리 깜놀 하다 아 예전에 잠깐배우서....그런 후니가 이곡 잠깐 배운 걸로 못 치는 곡인데 처리 올려다보며 말하겠지. 처리 더 당황하다 아 형도 피아노 배웠어서 어깨너머로 좀 보고 따라했어요 변명하고. 식은땀 나는 와중에 후니가 그래요? 조용히 말하겠지. 둘 사이의 조용하게 흐르는 긴장감에 처리 침 꼴딱 삼킴. 후니는 그런 처리 가만히 보다 삐뚤게 꽂힌 악보정리하며 승철 씨는 이곡 좋아하세요? 뜬금없이 물음.
네? 예.
왜요?
어 예뻐서요.
...
곡이 예뻐서...좋아요
저도,
..
좋아해요, 이 곡.
네..
그리고 정적. 여기서 벗어나고 싶어서 안달 난 처리. 하지만 곧은 후니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발가락만 꼼지락거림. 후니는 처리 보면서 이유 안 물어봐요? 묻겠지. 그럼 처리
왜 좋아하세요?
제 첫사랑이거든요.
처리 처음 후니랑 만난 날 후니 앞에서 친 곡이 이거라, 꼭 후니 첫사랑이 자기인 것처럼 들려서 괜히 가슴이 간지럽고 심장이 홧홧했으면.
그러고 시간이 흘러 형한테서 둘째가 태어났다는 연락이 왔음. 예정일보다 이주나 빠른 거라 급하게 수술 들어갔고 다행히 산모랑 아이 모두 건강하다는 소식을 들음. 두 번째 조카탄생에 바로 챠니 픽업해서 달려가고. 형수님 바로 출산한터라 보기 부끄러워할까 형한테 살짝 인사하고 챠니랑 아기 보러가겠지. 간호사분이 창문너머로 보여주는 아기 보며 챠니랑 좋아죽고. 동생탄생에 오랜만에 엄마아빠도 보고 신나하는 챠니. 그래서 막 친구들한테 전화하면서 나 동생 생겨따!! 자랑하는데 그게 후니한테까지 전화해서 후니도 알게 되고. 시골에서 부모님이 올라왔다 해서 형수님 곁에 있는 형 대신 부모님 픽업도 한 철이가 정신없이 시간 보내다 정신 차릴 땐 꽃다발 들고 온 훈이가 어색하게 서있겠지.
여기 어떻게 왔냐며 대신 반기는 철에게 챠니가 알러줘서 왔다고 하겠지. 지금 가족들 다 있다하면 그냥 꽃만 전해주고 축하하러 온 거라고 안 되면 꽃이라도 전해달라 하겠지. 철이 대신 받아 방에 들어가면 기쁜 소리랑 웃는 소리가 들리고 곧 문 열리면서 형이 나와 고맙다며 그동안 얘기 마니 들었다고 바쁘실 텐데 우리아들 같이 놀아줘서 고맙다며 인사할거고. 지훈은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인사 후 챠니는 동생 보러가자며 후니손 잡고 콩콩 뜀. 그럼 처리랑 후니랑 챠니 또 애기 보러 가고. 작은 아이에 후니 와 입 벌리며 놀라겠지. 귀엽다 중얼거리는 소라에 처리 뿌듯해서 그쳐? 얘가 형이랑 형수님 닮아서 이목구비가 벌써 뚜렷해요 제가 다 기쁘고. 그럼 후니 처리보며 처리씨가 왜 이렇게 뿌듯해 해요? 누가 보면 처리씨 애기인줄 알겠어 픽 웃고. 처리 볼 긁으며
쟤가 아이를 많이 좋아하거든요.
아이 좋아해요?
네. 마니 좋아해요. 너무 좋아해서 엄마아빠가 빨리 결혼하서 애 낳으라하는데 난 여자가 안 돼서...
놀라 입을 다문 철. 아기에게서 시선을 못 떼겠음. 제가 다 기뻐서 떠뜰다 쓸데없는 말이 왜 튀어나왔지. 마음속에서 본인입술 때리는데 현실은 후니 눈치만 볼뿐이고. 후니는 미동이 없었음. 아씨. 나가 죽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임. 후니가 마니 편해졌다지만 이런 얘기 할 만큼은 아닌데 왜 했을까했는데 옆에서 후니의 다행이네요소리가 들림. 으에? 갑작스런 후니 목소리에 긴장하다 놀란 처리 괴이한 소리 내며 보니까 후니 헛삽질한다 생각하고 잠깐 후회했는데 그리 헛수고는 아니어서요 하면서 처리 쳐다보겠지. 후니 말에 ??!!! 놀라는 철에게 후니 주머니에서 티멧 하나를 꺼내겠지.
제 삼일 후 공연 티켓이에요. 승철 씨가 와줬으면 좋겠어요.
하고 내밈. 동그랗게 말린 티켓 한번 후니 한번 보면서 혼란 느끼고. 후니가 그런 처리 손잡아 티켓 쥐어주면서 꼭 와주세요. 한 번 더 말하고는 인사 없이 가겠지. 철은 뜨끈한 티켓을 만지작거리며 대혼란에 빠지고. 아까 말한 훈이 말했던 거랑 그동안 후니가 했던 행동들이 섞여 역시 그건 작업이었던가 싶은....
그리고 3일 동안 피가 바짝 말리는 철. 정신 차리고서 티켓 돌려주려고 했지만 공연 앞두고 바빠진 훈이랑 마주 칠일 없고. 연락은 교묘히 피함. 챠니도 없는데 남의 집 들어가기도 뭐해서 티켓 줄수도 없고. 3일내내 훈과 티켓에 머리가 다 아프겠지. 그냥 안가고 말까싶지만 언제든 마주칠 수 있는 이웃사촌이고 또 그동안 지낸 정 같은 것도 있고. 고민하겠지. 그래서 당일까지 수없이 고민할거고.
당일 공연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던 훈은 집 앞문에 앉은 철을 보겠지. 환하게 켜지던 주황불이 암전될 때까지 둘 사이의 대화는 없었음. 그러다 철이 말함.
오늘 공연장 갔었어요.
자리엔 없었는데.
들어가지 않고 그 밖에서 모니터를 통해 봤어요.
...왜 안 들어왔어요?
......내가 철이인 거 언제부터 알았어요?
....
..
.....처음 만난 날부터요.
철은 훈 공연장을 갔음. 결국 감. 가기 전에도 고민하고 가서도 고민하다 결국 못 들어감. 그리고 그 바깥에 서서 후니의 첫 연주부터 끝 연주를 다 들음. 그리고 끝나자마자 집에 와 들어가지도 않고 문 앞에 주저앉아 훈이를 기다린 거지.
왜?
훈이가 오늘 연주한건 예전 처리가 천재였던 시절 쳤던 곡들이었음. 피아노를 버렸다지만 어렸을 때 기억은 버릴 수 없음. 자신이 처음 피아노 만난 날부터 마지막까지 쳤던 곡들을 다 기억하는데 그걸 한개도 틀림없이 훈이 연주함. 훈이 치기엔 우스운 어린애곡도 자신만의 색으로 연주하는 훈 때문에 철은 본능적으로 안거지. 아 얘가 날 아는구나. 그래서 더더욱 공연장으로 못 들어간 거고. 여기에서 이렇게 기다리는 거고.
왜 말 안했어요?
처리 물음.
알기 원하지 않는 것 같아서요. 그리고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당신을.
훈이 계속 말을 이음.
나 어디 안다녀요. 그냥 공연준비연습만 하면 되는데 당신이 앞집 산다는 거 알고 퇴근시간에 맞춰 나갔다들어왔어요. 그것도 처음에 몰라서 바깥에서 몇 시간이고 기다렸어요. 승철씨를요. 저 요리 안 좋아해요. 시켜먹어요. 그런데 승철씨랑 말 한 번 더하고 싶어서 요리 배웠어요. 같이 저넉 먹으려고요. 애도 안 좋아해요. 그런데 챠니한텐 일부로 말 걸었어요. 철씨 집 앞에 있으니까 혹시나 싶어서 말 건거예요 아빠라는 소리에 좌절하다가 여자기척은 못 느꼈으니까 혹 미혼남인가 기대했었어요. 다행히 조카라 해서 맘 놓았어요. 챠니한텐 더 잘했어요. 그럼 승철 씨를 더 자주 보니까. 그렇게 한 이유는, 당신이니깐요. 내 첫사랑이니까.
훈은 어렸을 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남. 부모사이는 좋았지만 가난해서 늘 집에 안계셨고 훈은 늘 혼자였음. 가난해서 유치원도 못가 혼자였던 훈은 우연히 가난한 이들을 위한 문화행사에서 피아노를 접하게 되고 훈의 잠재력을 한눈에 알아본 교수(철의 레슨선생이었던)의 제자로 들어가 피아노를 본격적으로 치게 되지. 사실 처음 훈이 피아노 친 건 돈을 벌수 있어서임. 어린애가 피아노를 잘 친다고 소문나서 여기저기 부르니까 돈이 들어온 거지. 그러다 교수방에서 그 당시 10살이었던 철을 만났고 그의 연주에 마음을 빼앗겼음. 새하얗고 예쁜 사람이 예쁜 곡을 치니까 꼭 천사 같아서 한눈에 반함. 그리고 그가 잘했다며 연주하던 자신을 칭찬하니까 열심히 하게 된 동기가 됨. 멋진 사람이 되자 이런 거.
그때부터 훈은 악착같이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그의 뛰어난 실력이 노력을 만나 빛나면서 최고가 된 거지. 하지만 그게 불행이었음. 내가 잘할수록 철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음. 졌다는 패배감에 분노를 터뜨리는 그에게 다가갈 수 없었음. 미워할까봐, 싫어할까봐 더욱이 아직 어렸던 훈이었기에 철에게 다가가는 법 몰랐고. 더 잘하면 완벽히 잘하면 예전처럼 봐주지 않을까했지만 갑자기 철이 사라졌고 그게 자신 때문이란 걸 알고 나서는 어린나이에 상처도 받고 그랬음. 그래서 잊어버리자, 그냥 잊자 했고. 실제로 잊었다 생각했는데 몇 년이 흘러 철을 다시 본 순간 다시 심장이 뛰는걸 보고 나는 이 사람을 못 잊었구나 알았고. 의외로 가까이 있다는 것도, 그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걸 아니까 욕심이 나면서 철에게 다가간 거지.
여전히 암전의 복도. 가만히 서있던 훈이 발걸음을 옮김. 주황불빛이 들어오고 철 앞으로 다가가 철의 시선에 맞춘 훈이 철을 봄. 어딘가 피곤해보이고 지친 얼굴의 철이 훈을 마주봄.
나 훈씨 싫어해요.
네.
당신은 내 트라우마 라서 보기가 싫어.
네.
근데 당신을 자꾸 보면...피아노가 치고 싶어져.
....
내가 얼마나 피아노를 사랑했고 좋아했는지 자꾸 느껴져.
...
너 때문인가 봐.
책임질게요.
좋다는 말 아니에요.
싫다는 말도 아니잖아요.
싫어.
..
피아노 안치면 만나줄게.
그건 곤란한데.
싫음 말고.
..뭐 어차피 이번공연하고 일 년은 쉬려했으니 일 년 만납시다.
뭐..?
그러고 우역곡절 끝에 사귀는 우쿱이다.
철에게 피아노치고 싶다는 말은 철은 아직 피아노를 완전히 떼내지 못했다는말. 그러니까 철에 인생에 지훈이가 깊이 박혀있단 뜻임. 철에 인생에 피아노는 다였고 그걸 접게 한 건 그 대단한 훈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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