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o, ah하네요.
[우쿱] 평행세계 짧은 썰 본문
w. 안다미로
*트위터에서 푼 썰을 조금 손봤습니다.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평행세계1
승철이가 사고로 죽고 지훈은 매일을 괴로워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얼굴을 보지 못했고 만나도 잠깐의 대화뿐. 습관처럼 몸을 섞고 기절하듯 자던 지난날들의 과거가 후회스러웠다. 외로워보였던 승철의 굽은 등과, 지훈의 어깨너머를 보며 무언가를 찾으려 했던 승철의 눈빛들. 그것이 모두 지훈을 한 줌이라도 갖고 싶어 하던 승철의 가엾은 외사랑이었다. 사랑을 했고 함께였던 연인이었지만 이제 그것은 흐릿해져 둘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그것이 제 탓이었다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지훈의 연인인 승철은 이제 이 세계에 없었다. 지우지 못한 전화번호를 누르면 당장이라도 꼬리를 흔들며 반가운 목소리로 받을 것 같은데 1칸짜리 작은 상자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맑게 웃고 있다. 나를 여기에 혼자 두고. 혼자. 그곳에.
그래서 지훈은 되돌려 보려한다. 가장 예쁘고 반짝거렸던 시절로. 서로가 서로밖에 없었던 시절로. 천재 물리학자라 칭송받았던 이 멍청한 머리로 과거로 돌아간다. 그래서 다시 만날거야. 나의 유일한 사람을. 다시 내 품에 담아 다시는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다짐했다.
그런데,
”누구세요?“
무엇이 문제였을까.
계산은 완벽했다. 실험이 불가능한 실험이었기 때문에 그 무엇보다 치밀하고 세세하게 식을 짰다. 다양한 가상을 적어내 하루를 다 쓰도록 풀었다. 오류가 나면 과감하게 처음부터 돌아갔고 그것이 맞으면 그 다음 산을 올랐다. 일주일이 하루처럼 한 달을 일주일처럼 살았다. 세상의 즐거움과 바깥세상에 흥밋거리는 지훈을 유혹하지 못했다. 답답하게 여긴 친구들이 간혹 들러 지훈의 팔을 잡고 잡아당겼지만 그 정도가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관리하지 않아 어깨까지 자란 뻗친 머리와 푸석한 피부가 형형한 안구처럼 음흉한 빛을 띠어 더 이상 지훈을 말릴 수가 없었다. 그 정도의 열정이었다. 사랑이었다. 애정이었다. 밥도 잠도 줄이며 몇 년을 여기에 쏟아 부었는데...
”날 알아요?“
나를 떼어내어 한걸음 뒤로 도망간 당신을 안다 묻는다면, 맞다. 내가 아는 당신이 맞다. 몇 년이나 시간이 흘렀고 본 것만으로도 닳았다면 백지장만큼 하얗게 질렸을 사진으로라도 당신을 매일 마주했다. 쌍까풀이 짙은 눈, 무겁지 않을까 걱정했던 긴 속눈썹, 둥근 코, 가운데가 갈라진 도톰한 입술. 즐겨 뿌리는 복숭아 향. 짧은 손가락, 근육으로 잘 다져진 허벅지까지. 내 눈 앞에 있는 당신이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당신이 맞는데 아니라고 한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경계서린 얼굴로 나를 노려본다.
"형...."
나는 입을 열수가 없었다. 눈에 익숙한 장소에서 걸어오는 당신을 참지 못하고 그리움에 덥석 안고 울었던 게 아까까지였는데. 당신의 냄새가 나는 어깨에 코를 묻으며 당신의 체취를 맘껏 맡았었는데. 나는 당신이 낯설어 눈조차 깜박거릴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망설여졌다. 달싹거리는 입술은 소리가 되지 못하고 다물어졌다. 수상한 눈빛으로 지훈을 쳐다보는 승철을 보는 것만으로도 지훈의 마음은 자꾸만 안타까움이라는 강으로 범람해 조금씩 잠기는데 손가락 하나, 숨 하나까지 어디서 어디까지 설명해야 할지 몰라 주저하게 된다.
"잠깐.."
그리고 그때였다. 당신이 눈이 그만큼 커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커지면서 나의 손을 잡은 건. 지훈 자신도 모르던 주먹을 꽉 쥔 손을 단단한 손으로 잡아 이름을 불렀다.
"이지훈."
오랜만에 듣는 내 이름. 이응이 들어가서 동글동글한 이름은 마치 털이 복슬복슬한 하얀 강아지를 닮아 귀엽다고, 자꾸만 부르고 싶은 이름이라며 몇 번이고 귀찮을 정도로 말 처음마다 부르던 내 이름이었다. 바보였던 시절엔 듣기 지겨웠던 이름이 지금은 감동이 되었다. 파동이 일었다. 당신이 던진 작은 돌이 겨우 잠재운 내 수면을 두들겼다.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사실 이곳에 도착한 처음부터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몸 상태로 나는 당신을 기다렸다. 당신이 보고 싶어서 내 몸을 돌볼 여유가 없었다. 긴장으로 몸이 딱딱하게 얼어 아픈지 조차 몰랐다. 하지만 당신의 다정한 말투와 따뜻한 목소리에 봄을 맞이한 내 몸은 얼음을 깬다. 금이 그어져 와르르 무너진다. 부서지는 시야엔 당신의 얼굴에 태풍이 불었다. 검은 점이 콕 박혀 블랙홀처럼 당신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또다시 당신을 잃을까 덜컥 겁이 났다. 안 돼. 또 잃을 순 없다. 땅이 모래처럼 발목을 잡아끌고 몸은 바다가운데를 내지르는 것 마냥 허우적댔지만 당신만은 잡아야했다. 그래서 나는 팔을 들어올렸다. 팔은 납처럼 무거웠다. 머리는 의지대로 똑바로 서질 못했다. 시야는 자꾸만 끊겼다. 그럼에도 이를 악물어-건조한 입술이 날카로운 이에 찢겨 비릿한 피 맛이 혀에 감돌 때 겨우 승철의 어깨를 꽉 쥐며 지훈은 눈을 감았다. 감기 전 마지막 본 승철의 얼굴은 당혹으로 젖어 있었다.
꿈을 꿨다. 한계까지 몰아 붙혀 기절하듯이 자야했던 지난날들에선 만나지 못한 머릿속 가상세계에서 나는 당신의 눈물이었다. 꿉꿉한 눈물길에서 빨간 벽을 붙잡고 나가지 않으려 버팅기지만 결국 눈을 감은 당신의 속눈썹을 적시고 추락했다. 끝을 알 수없는 높이에서 떨어지며 부서지는 검은 우주에 나는 절망하였다. 별들이 부서졌다. 가장 사랑하던 눈동자가, 조각조각이 되어 바닥에 흩뿌려진다. 딱딱한 바닥에 부딪힌 나는 충격으로 팔 하나가 떨어졌다. 저 멀리엔 다리가 기괴하게 꺾어진 내가 있었다. 갈비뼈가 밖으로 돌출된 내가 저기. 목이 잘린 내가 바로 옆에. 눈을 돌리는 곳 여기저기가 나였다. 나는 당신에게서 그렇게 부서져 나가떨어졌다.
"..헉...헉..."
눈을 떴다. 급하게 상체를 일으켰다. 오래달리기를 한 것마냥 폐가 아팠다. 심장에선 피가 콸콸 나와 온 몸을 두들겼다. 몸은 땀으로 축축이 젖었다. 급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팔다리가 잘린 끔찍한 나는 없었다. 손으로 옆구리와 팔뚝을 훑었다. 나는 멀쩡했다. 대신 승철이 있었다. 어딘가 넋이 나간 얼굴로 의자에 앉아있었다. 승철 너머엔 성인이 쓰기에 좀 작은 책상이 있었고 그 옆엔 폭이 좁은 책꽂이가 종이더미로 꽉차있었다. 그 옆은 어느새 잠이 든 해의 끝자락으로 붉고 푸른 하늘이 네모난 창문에 달려 있었다.
"집...?"
"내 방이야."
나는 이곳이 당신의 집이라는 걸 인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우리는 십년을 같이 살았다. 집은 작았다. 화장실은 1개였고 방은 2개였다. 곳곳에 생활흔적이 묻어 있는 낡은 집이었다. 우린 같은 방에서 잤다. 다른 방은 옷장으로 썼다. 우리 집엔 당신 방이 없었고 저런 작은 책상도 책꽂이도 없었다.
"지훈아."
당신이 나를 부른다. 나는 당신을 마주보았다. 낯선 곳에서 당신이 낯선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살아돌아온 거야?“
지훈아.
너는 내 곁에 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너가 좋아하는 소파,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큰 침대, 같이 입으려 사놓고 입지 못한 커플티가 콕 박혀있는 장롱까지 너의 체취가 너의 손이 타지 않은 곳이 없는 데가 없는데 이상하게 외로워. 내 전화번호 일번은 아직 너고 너가 선물해준 내 운동화 옆엔 바닥이 약간 닳은 네 운동화가 있는데 나는 너가 보고 싶어서 매일매일 울어. 너가 없는 세상을 단 하루도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난 너가 없는 세상을 매일 살고 있어.
밥 먹었어? 뭐 먹었어? 너의 식사가 궁금해.
오늘은 누굴 만났어? 그 집적대는 이상한 새끼 또 안 왔고? 앞만 보고 길 갔지? 너가 만나고 본 사람들을 질투해.
오늘 만난 해님은 어땠어? 바람은 덥지 않았고? 하루의 너를 몇 번이고 그려.
나는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사람을 만나도 너를 늘 생각했어. 나에겐 넌 전부였으니까. 너를 빼곤 하루를 살 수가 없었어.
그런 나를 너는 질렸던 걸까. 자꾸 너를 가지려해서, 만족하지 못하고 자꾸만 너를 옭아매려 해서 그래서 떠난 거니. 그렇게 내가 싫었어? 나를 보는 게 끔찍했었니?
미안해.
널 사랑해서.
정말로 미안해.
널 만나서. 널 좋아해서. 널 알아서...
너가 그렇게 싫은 줄 알았더라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당신은 똑같은 말을 했다. 내가 아는 똑같은 얼굴로 그러나 나는 보지 못한 슬픈 얼굴로 마지막으로 내 방에 남겨둔 편지의 내용이 당신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바보같이 울었다. 당신을 만날 때 까지도 나는 눈물이 많지 않았는데 당신을 떠나보내고 못 흘렸던 눈물까지 하염없이 쏟아내었다. 심장이 아팠다. 내가 당신을 이렇게까지 아프게 했구나. 당신이 떠나고 나서 추측만 했던 당신의 아픔이, 내 앞의 당신이라는 실체가 되어 비수가 되었다. 이렇게 아팠구나. 이렇게 괴로워했구나. 나는 지금까지 당신의 아픔을 진정으로 알지 못했구나. 후회로 얼굴이 까맣게 점칠되었다. 더러운 얼굴을 몇 번이고 손등으로 훔쳤지만 손등도 손톱 끝도 온통 까매서 나는 더더욱 더러워졌다. 이런 얼굴 당신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지훈아.“
당신의 손이 내 얼굴을 잡아 올린다. 굵은 손가락으로 눈물을 닦는다. 까만 재가 당신의 손가락에 묻었다. 나는 당신의 손목을 잡았다. 당신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나는 눈을 감았다. 익숙한 체취가 입술에 앉는다. 울음으로 떠는 입술을 벌려 당신을 찾는다.
당신은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구나.
그때서야 나는 겨우 인정했다. 나의 잘못이 아직 용서되지 않았음을. 당신을 끔찍이도 아끼던 신께서 괴롭게 만든 나를 괘씸히 여겨 당신을 숨기어 만나지 못하게 했음을. 다른 세계에 사는 다른 당신을 만나고서야 알았다.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할까.
어디로 가야만 나의 연인을,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
천재물리학자로 불리던 지훈이 연인인 승철을 떠나보내고 괴로움에 젖다 타임머신을 개발하는데 그게 잘못되어 다른 세계로 넘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연인이던 지훈을 잃은 승철을 만나게 된다. 서로가 보고 싶은 상대였지만 서로가 그리워한 상대가 아님을 알게 된 두 사람은 이제 어떻게 될까.
평행세계2.
또다시 무너지는 세상에서 나는 절망을 끌어안는다. 나밖에 위로하지 못하는 고통은 속으로 쌓아 감춘다. 꼭꼭 숨기어 그림자조차 느끼지 못하게. 그래서 어느 누구도 내가 패배자임을 몰랐으면 한다.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다. 지고 싶지 않다. 자꾸만 잠식하는 마음을 추스려 하늘을 올려다본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하늘 가운데가 뻥 뚫렸다. 세상이 무너졌다. 광활한 하늘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고 바람 빠진 공처럼 거대한 광음을 내며 빠르게 무너졌다. 하늘에 닿은 첨이 구부러지고 건물이 부러졌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앞만 보는 달리는 말처럼 그들은 주변을 제대로 둘러보지 못하고 사람과 부딪혀 바닥을 굴렀다. 때론 달려오는 차에 부딪혀 길가에 피를 뿌렸다. 세상이 어지러웠다. 제대로 땅에 설 수 없을 정도로 바닥이 울었다. 지훈은 솟아난 땅 기둥에 몸이 휘청거렸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엎어진 몸 위로 찢어진 하늘이 펄럭거렸다. 그사이로 사람과 건물과 자동차가 쓸려나가 광활한 우주에 떠다닌다. 지구에서 바라본 별들은 사라진 자들의 흔적이다. 반짝거리며 타들어가는 별들을 나는 우러러본다.
이리와. 우주를 떠도는 망령들이 손짓을 한다. 나는 움찔 떠는 손가락을 말아 쥐었다. 아직은 안돼요. 고개를 젓는다. 그 사람을 만나야 해요. 그를 만나기 위해 나는 날 버렸고 그러함으로 나는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도는 방랑자가 되었지만 뻣뻣이 선 다리에 힘을 싣는다. 앞을 보며 걷는다. 난 가야할 곳이 있다. 몇 번이고 내 품에서 죽어가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 온전히 둘이서 맞이할 죽음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곳을 찾아 여행을 떠나야만 한다.
태풍이 분다. 길가에 돌아다닌 작은 알맹이들이 바람을 타고 드러난 목과 얼굴을 때린다. 날카로운 거친 면에 살갗이 긁혔다. 머리카락에 엉켜 바스락거린다. 건조한 눈을 깜박였다. 세상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바닥이 까맣게 지워졌다. 세상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하늘이 가라앉는 순간을 숨죽여 기다린다. 때가 아니다. 땅과 하늘이 맞닿는 수평이 되는 순간을 기다려야한다. 그 순간 집중을 하여 당신을 그린다. 작은 발과 근육으로 꽉 찬 허벅지와 탄탄한 복근과 달콤한 입술을 천천히 머리에 새긴다. 그것만으로도 죽은 심장은 다시 살아난다. 붉은 피가 온몸에 돌며 희망을 속삭인다.
다음엔 성공할 수 있어. 이번에 거의 다 왔으니까 다음엔 반드시 성공할거야.
몇 번이고 실패해 무너진 세상은 성공을 위한 과정이라 생각하자. 그 속에서 나는 몇 번이고 죽음을 맞이한 당신을 떠나보내야 했다. 겨우 마음을 열어 고백도 했다. 당신이 기쁜 얼굴로 받아들였을 땐 눈 깜박이는 것조차 아까운 짧은 행복을 얻었다. 부끄러워 입에 담지 못하던 달콤한 말을 속삭이고 뜨거운 열을 주고받으며 구석구석까지 당신을 향해 뛰는 심장을 보여주고 싶어 자꾸 안달이 났었다. 서툰 손길과 부족한 애정을 정신없이 쏟고 나면 더 잘하지 못한 후회에 수십 번의 첫날밤을 안타깝게 지새웠었다. 함께할 시간이 이렇게나 많은데 뭐가 조급했을까. 하지만 당신은 그런 나를 안아주었다. 굽은 등에 팔을 둘렀다. 지훈아. 내가 좋아하는 얼굴로 너라서 좋았다는 기쁜 말을 내 귀에 속삭였다. 나는 늘 당신에게서 구원받았다. 썩어 문드러진 마음을 끌어안고 겨우겨우 살아야 했던 나를 양지의 기름진 땅으로 안내한 건 늘 당신이었다.
그런 당신을 위해 무엇이라도 하겠다, 결심하고 행동하면 당신은 늘 내 곁에서 죽었다. 차에 치여 죽고 깔려 죽고 병에 걸려 죽었다. 당신의 마지막은 늘 죽음이었다. 항상 같은 마지막. 수십 개의 세계를 떠돌아 다녀도 결말은 하나. 나는 오늘도 절망한다. 감은 얼굴은 평화롭다. 미련만 많은 나만 당신에게서 손을 놓지 못한다. 이로써 몇 번째인가. 열 몇 번째부터 세기를 포기했으니 지금이 오십 번 짼지 백 번 짼지 굳은 머리로 생각하기가 어렵다. 아니 생각하는 것 자체가 싫어. 오늘도 떠나보낸 연인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속이 뒤틀렸다. 위가 쥐어짜져 크게 가슴이 들썩거렸다. 고개를 급하게 돌렸다. 묽은 노란 위액이 바닥에 쏟아졌다. 시큼한 냄새에 울렁거려 몇 번 더 구역질을 했다. 토해낼 게 없는데도 마지막 물기까지 꾹꾹 짜며 위는 제 모든 걸 비웠다.
하지만 이번엔 성공할 수 있어. 실체가 없는 희망이 자꾸만 속삭인다. 당신의 푹 꺼진 안광에 푸른빛이 돌았다. 내 품에서 오늘도 죽어간 당신을 내 마음속에 삼켜 담으며 수평의 시간을 기다린다. 이번엔 성공할 수 있어. 속삭이는 희망을 내 것으로 만든다. 그때처럼 바보같이 당신을 놓치지 않을 거야. 세상을 떠돌게 만든 처음을 기억하며나는 눈을 감았다.
”지훈아.“
나를 부르는 다정한 연인이 입을 맞춘다. 포근한 입술을 따뜻하게 안는다. 고개를 기울고 안겨오는 허리를 끌어당겨 몸을 밀착시켰다. 허벅지 위로 올라 앉은 몸을 가슴이 닿도록, 조금이라도 닿지 않으면 애가 타서 자꾸만 손이 먼저 나갔다. 연인은 목을 감싸 안으며 입꼬리를 푸스스 풀었다. 좋은 기분이 들었다.
이번엔 처음이 좋았다. 천천히 눈을 떠 본 세상의 처음은 햇살이 부드러운 봄이었다. 벚꽃이 지고 푸른 잎사귀가 얼굴을 내밀며 인사를 하던 늦은 봄이었다. 지훈은 몸이 이끄는 대로 걸었다. 본능처럼 습관처럼 낯선 거리를 걸어 낯선 사람을 보며 간 길 끝은 언제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연인의 집. 도어락을 열어 잠시 고민한다. 하지만 나는 모르니까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내버려뒀다. 내 몸이지만 내 손가락은 내 의지 없이 5개의 숫자를 눌렀다. 띠딕- 문은 그렇게 열렸다.
연인인 승철은 지훈의 등장에 놀라지 않았다. 그저 왔어? 하며 인사를 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연인일까. 가는 세계마다 우리는 매번 달라서 조심스럽다. 헤어진 연인이었던 적도 있고 서로가 만나면 안 되는 로미오와 줄리엣인 적도 있다. 지극히 평범한 세월을 보내며 노년을 대비하기도 했고 세기의 로맨스를 찍기도 했다. 가장 놀라운 건 어린 자식들을 둔 세상도 있다는 것. 이번 세상은 모른다. 처음이 좋았지만 중간에서부터 어그러진 게 많았기 때문에 지훈은 입술을 물었다. 여기서 잘못 말하면 시도하기도 전에 세상이 꺼지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다. 나는 또 다시 당신을 잃고 싶지 않다. 수백개의 세계에 존재하는 당신이라도.
"지훈아."
추락하던 몸을 강한 손이 잡아 일으킨다. 부유한 몸은 제 뜻대로 되지 않아 자꾸만 바람에 휩쓸렸다.
"지훈아."
당신의 목소리만이 뚜렷하게 들렸다. 나는 갈급하며 당신을 잡았다.
"지훈아!!"
어깨가 잡혀 상체가 들려지고 나는 숨을 크게 뱉으며 눈을 떴다. 당신이 눈앞에 있었다.
“무슨 일이야. 괜찮아? 악몽 꿨어?”
이리저리 훑는 시선에 서서히 정신이 돌아온다. 절망으로 죽은 세상에서 이렇게까지 생생한 당신은 없었는데. 나는 떨리는 손으로 당신을 만졌다. 손에 감기는 기분 좋은 살결에 소름이 돋았다. 진짜구나. 인중에 앉은 당신의 숨이 나에게 생명이 되었다. 시체처럼 늘어진 몸에 힘이 들어간다. 나는 걱정하는 당신의 얼굴을 잡아 입을 맞춘다.
싸한 치약맛. 일주일도 안 되어 동나는 그 치약이다. 촉촉이 붙는 입술은 한 번씩 몰래 훔쳐 만지던 그 느낌 그대로라서 자꾸만 맘이 쌓였다.
지훈아.
밀치는 팔에 몸이 물러갔다. 놀라 커진 두 눈에 나는 풀어지는 마음을 꺼내었다.
“형 좋아해요.”
남자라서 같은 멤버라서 꼭꼭 숨겨야 했던 진실들을 당신의 앞에 꺼낸다.
“오래전부터 좋아했어요.”
날 향해 쏟던 특별한 애정이 다른 멤버들에게 가던 순간에서야 깨닫던 마음을 뒤늦게야 터뜨린다. 매달리던 시선과 은밀했던 애정이 어느 순간 나만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알던 때에도, 우리를 위해서라도 참아야 한다며 마음을 죽여야 했던 그 순간에 미처 말하지 못한 순애보를 나는 34번째의 당신을 떠나보내서야 고백한다. 이젠 더 이상 싫어요. 세상이 무너져 갈 곳을 잃은 우주에 떠돈 망령들의 한을 끌어안으며 계속 당신을 그리던 저 수많은 세상에서 나는 겨우 진실을 마주했다. 당신을 가지고 싶다는 순수한 욕망을. 매일 보고 둘이 같이 함께하는 안전한 지금에 만족하지 못한 채 나는 당신을 내 것으로 갖고 싶다는 끓는 애욕을 드러낸다.
당신은 말이 없다. 어벙하게 입술을 벌리며 나의 얼굴을 훑는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의중을 찾으려 솜털 하나하나까지 찾아 묻는다. 아니라고 해주길 바라는 거 알아요. 당신의 초조한 표정의 뜻을 안다. 그동안 그것은 우리의 암묵적인 계약이었다. 숨겨야 한다는. 들키면 안 되는. 절대 한 톨의 티끌이라도 보여선 안 된다는 무언의 계약. 약속. 하지만 나는 오늘 그것을 보지 못한 척 구겨 던진다.
“좋아해요”.
당신의 얼굴이 무너진다. 숙인 얼굴을 앞머리가 그림자로 가린다. 숨으면 안 돼. 나는 당신을 더 이상 놓치고 싶지 않다. 턱을 잡고 올려 입술을 부딪혔다. 굳은 입술을 갈라 숨은 혀를 찾아 잡아끌었다. 일부러 질척하게 혀를 섞으며 뜬 눈으로 가까운 당신의 얼굴을 봤다. 빨갛게 얼굴이 달아오른다. 당신의 눈동자가 떨린다. 내가 던진 돌멩이가 당신에게 파동을 일으켰다.수면 한가운데 잠잠한 파동은 점점 크게 벌어져 당신을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그 가운데서 당신은 몸부림을 쳤다. 살려달라 외쳤다. 나는 당신을 지켜보기만 했다. 결국 당신은 몸을 맡긴다. 파동에 밀려 수면 아래로 잠긴다. 결국 당신은 마지막 숨을 뱉으며 눈을 감았다.
“아.”
힘을 주어 당신을 밀었다. 폭신한 침대에 누운 당신 위로 올라가 온 몸으로 당신을 누른다. 눈가를 떨며 당신의 손은 어깨를 끌어안는다. 느리게 움직이는 당신의 혀가 나는 몹시도 기쁘다. 지금 밖은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멤버들로 그득하다. 그들은 언제든지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는 위험인물이다. 당장이라도 부대낀 몸을 떼야 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가 않다. 돌고 돌아 내가 누구인지도 잊은 수십 개의 세상에서 나는 진짜세상에서 진짜인 당신을 만났으니까.
당신이 가장 중요하다. 당신만 있으면 된다. 그 외에 것들은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불행해도 좋아. 손가락질 받아도 좋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상관없다. 나는 당신만 있으면 된다. 그것만이 나의 구원이다.
리얼물로 승철을 향한 마음을 숨기던 지훈이 자꾸만 커져가는 애정을 숨기려하다 결국 탈이 되어 평행세계를 떠돈다.(지훈은 꿈이라 생각하고 있다.)진짜 대신 다른 세상에서 승철을 사랑하려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사랑하는 순간이 되면 철은 여러 가지 이유로 죽고 그때마다 세상이 무너졌다. 절망에 차 울분을 토하며 무너진 지훈. 하지만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다른 세계가 펼쳐져 또 다시 승철을 만날 수 있었다. 지훈은 포기할 수 없었다. 승철이 눈앞에 있었다. 나이도 직업도 다양한 여러 세계의 승철이 지훈을 따뜻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후회는 잠시다. 지훈은 헛된 희망을 끌어안으며 매일을 살았다.
하지만 이제 됐다. 그것을 수십 번 반복하고 수십 번 마음이 깨져서야 세계가 바뀌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리 진심을 다해 쏟아도 늘 같은 결말. 지훈은 마음을 고쳐잡았다. 진실을 마주하기로 했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알아도 이젠 더 이상 참고 싶지 않다. 눈을 떴다. 지훈은 진짜 세계에 존재하는 승철에게 마음을 고백한다. 사실은 같은 마음이었지만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은은하게 비추던 지훈의 진실한 애정에 불안하게 쌓였었던 승철의 둑이 무너졌다. 이제는 서로를 사랑하기로 결심한 두 사람. 진짜인 단 하나의 세상에서 이젠 두 사람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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