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o, ah하네요.
[우쿱] 하얀호랑이후니x검은곰처리 6편(18.5.20 최종수정) 본문
새 학기가 시작되고 승철은 복학과 동시에 지훈이 입학으로 반쯤 미쳐있었음. 군대 갔다 와서 까맣게 잊은 옛 전공이 생각이 날까 서적을 들춰보아도 하나도 모르겠는데 복학이라니. 아! 복학이라니! 내가 왜 복학한다고 했을까!!! 복학 전까지 하루에 몇 백번 발작을 했는데 거기에 지훈 입학까지 더해서 진짜 눈 뜨니까 하루가 시작하고 앗 하니 저녁이 오는, 시간순삭의 나날이었음. 진짜 지훈이 입학시키기 너무 힘들어! 학교보내기로 끝난 게 아니더라. 일단 지훈이가 학교 갈 때 메고 다닐 책가방을 사야했고요. 옷도 사야했고요. 가장 중요한 입학할 학교에 몇 학년으로 들어갈지가 중요했음.
정확한 지훈이 나이를 몰라서 신체검사로 10살쯤 추정하여 10살로 신고했었는데 10살이면 일학년이 아니잖아. 삼학년이다. 얘가 삼학년을 잘 다닐 수 있을까. 또래와 같이 공부할 지식이 깔려 있지 않으면 일학년으로 보내기 때문에 승철의 불안감이 커져감.
일단 기본 교육을 네가 시켜봐. 국어, 수학 말이야. 어차피 저학년들 사회과학 안 배우잖아.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 하지. 그러니까 구구단만 알려줘. 구구다만 해도 괜찮을걸?
지훈이 초등학교 입학 축하기념으로 승철이가 사주는 삼겹살을 맛있게 먹었던 지수의 조언에 승철은 밝은 빛을 보았네. 벽에 부딪혀 헤매다 새 길을 발견한 기분이었지. 오늘 고기값 제 몫 했음. 그동안에 두 친구 별별 이유 다 대면서 뜯어먹은 돈만 못해도 수입차는 샀어. 군대에 있어 단절된 사회 적응하고 일하느냐 바쁜 두 인간들 꾸준히 찾아와서 왜 자신을 괴롭히는지 이유 모르겠고. 다 귀찮고 안 왔으면 좋겠지. 하지만 다시 연락하면서 조금 신났다. 오케이. 인정. 덕분에 오늘 조언도 들었고. 돈 하나도 안 아깝네. 고맙다. 역시 친구들 밖에 없네.
밉다 싫다 지겹다 해도 세 사람 오랜 친구야. 뜸해졌다 다시 만나니 늘 두 사람만 있다가 새바람 불어 신선하고 즐겁다. 지훈이도 징하게 매일 찾아오는 사슴이랑 토끼에 익숙해져서 더 이상 승철 뒤에 숨지 않고 같이 밥 맛있게 먹음. 여전히 좀 못마땅한 기색이지만 지훈은 승철빼곤 모든 사람들 다 똑같이 대하는 아이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음. 잘 지내는 게 어디야. 우리 중에 가장 뻔뻔하지만 사실 제일 낯가리는 정한이랑 조용하고 무거운 지수라 크게 부딪힐 일은 없다 생각함.
그리고 다음날 승철은 오랜만에 서점 들러서 책 샀음. 지수 조언을 받아 일학년이 풀 수 있는 간단한 연산이 적힌 수학이랑 ABC 기본 영어책 사고 요즘 지훈이 잘 읽는 프로그램 관련 서적도 삼. 얘가 요새 나보다 더 잘 알아. 나는 하나도 모르겠는데. 아, 나 복학 어떡하지? 젠장. 딴 생각하자.
여러 권사서 지훈에게 보여줬더니 다른 책은 시큰둥하고 프로그램 관련 책부터 펼쳤음. 도대체 그걸 어떻게 보는 건지 궁금해. 나는 서너장 읽다 포기했는데 벌써 열장 넘어간 지훈에 승철은 지훈이 몸을 자기 쪽으로 돌리며 물었음.
지훈아. 이 책은 어때?
숫자가 적힌 책 들어서 보여줬음.
재미없어
이건?
싫어
부정적인 단어만 뱉는 지훈에 승철이 벌써부터 실팬가 암담함. 그래도 자기가 포기하면 지훈이 일학년부터 가야하니까, 지훈이 덩치가 작아서 자기보다 두 살 이상 차이 나는 어린애들 틈에 있으면 싫어할 수 있으니 승철은 지훈이 붙잡고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함. 오는 길에 마트에서 산 사탕봉지 뜯어서 더하기 빼기 알려주고. 에이비씨 알려주다가 잠깐만? 지훈아 너 글은 쓸 줄 알았던가? 해서 받아쓰기도 하고. 그런데 하면 할수록 승철 입에서 어머, 대박이야, 짱, 감탄사만 연발함. 지훈이가 천재야. 하나 알려주는데 셋을 알아. 승철은 다른 사람 가르치는데 젬병이라 최대한 노력해서 딱 한번만 알려줬는데 다 알아들어. 욕심에 그럼 곱셈도 배울래? 하고 알려준 구구단을 하루 만에 다 외웠음. 승철은 너무 놀라서 엄마한테 전화 걸었음.
엄마 놀라지마. 지훈이가 천재야.
갑자깆 전화해서 애가 말도 잘 못하고 흥분한 상태라 긴장했던 엄마는 천재라는 말에 긴장 풀려서 주저앉음.
야 이놈아. 나는 네 목소리가 그래서 지훈이 큰일 난줄 알았다.
그런 엄마 말도 안 들리고 승철은 지훈이 어디서 어떻게 천재성을 발휘했는지 설명하기 바쁨. 재잘재잘 떠들어서 자기자식 자랑하는 부모같이 구는 승철에 엄마는 누가 보면 네가 지훈이 낳은 줄 알겠어! 피식 웃었고 승철은 그럼! 내가 젖먹이는 거 빼고 다했는데 내가 키웠지! 내 자식이야! 하면서 엄마는 이런 자식 없지? 함. 이젠 지훈이 자체 자랑으로 넘어가서 엄마 실컷 약 올린 뒤에 전화 끊고 책에 파묻은 지훈의 굽은 등을 보며 지훈의 천재성을 내가 빛내주겠어! 다짐하는 승철이다.
하지만 그게 역효과여서 오히려 지훈이 공부에 관심을 끊게 됨. 공부를 못하진 않은데 지훈이 머리가 너무 뛰어나니까 욕심내다가 애가 질려서 아예 시선도 안 주는 계기됨. 과학처럼 자기가 흥미 있는 과목은 점수가 높은데 그렇지 않은 과목은 점수가 낮고. 상장도 너무 한쪽으로만 몰렸음. 그래서 성적은 늘 중간. 못하지도 잘하지도 않음. 오히려 약간 못한 쪽. 그 때 너무 공부를 들이밀지 말았어야했는데 먼 미래의 승철은 후회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지. 한 번 엎지른 물은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 그래도 지훈이 천재는 맞았음. 그러니 지금 여유롭게 먹고 살 수 있지. 쨌든 그건 먼 미래의 일이고 현재 지훈은 굉장히 귀찮다는 얼굴로 승철이 하라는 공부하고 승철은 애 입학은 무사히 될 거라 희망가지며 새 학기를 맞이함.
디데이. 개학식. 승철은 첫날부터 자체휴강을 때리며 지훈이 입학식을 함께함. 다행히 삼학년 제 나이대로 가서 시름 덜었음. 교무실에서 지훈 담임 될 분과 인사하고 지훈이 일 년 동안 다닐 교실도 둘러봄. 지훈보다 한마디 정도 큰 애들로 우글우글한 교실 앞에서 선생님이랑 저랑 번갈아보며 불안해하는 지훈에게 무서우면 형이 여기 계속 복도에 있을 테니 나오라고 안심시켰음. 지훈은 그제야 고개 끄덕이고 긴장한 얼굴로 선생님 따라 교실 들어감.
문이 닫히고 승철은 뒷문 쪽 창에 붙어서 지훈이를 가만히 지켜봄. 지훈이는 선생님 옆에 가방 붙들고 서서 인사하고 선생님이 가리킨 자리로 걸어가 앉았음. 훈이가 특수한 상황에서 입학했기 때문에 그 이유로 애들한테 놀림 받을까 승철은 지훈이 담임 선생님한테 몇 번이고 부탁했음. 지훈이 전학생으로 설명 해주시라고. 지훈이 상황알고 시끄러워지면 상처받는 사람은 지훈이니까 꼭 부탁드린다고 입학 전부터 선생님께 전화해서 부탁했고 교장실도 직접 찾아갔음. 학창시절 교장실 갈 일만 만들지 말자던 자칭 타칭 사고뭉치였던 본인이 직접 교장실 찾아갈 줄 꿈에도 몰랐지만 다 지훈을 위해서 행한 일이기 때문에 교장에게 고개 숙였음.
그런 사정을 모르는 지훈은 생각보다 첫 날 잘 버텼음. 월요일은 수강신청실패로 9시부터 강의가 시작하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딱 그거 한 개라 그 이후부턴 널널함. 대신 나머지 요일이 죽지만... 그건 그 날 생각하자. 일학년도 아니고 삼학년 복도에 보호자가 있는 그림이 이상해서 애들이 지나갈 때마다 수상한 눈빛으로 승철을 쳐다봄. 승철은 뻘쭘해서 폰에만 시선 두고. 쉬는 시간에 승철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는 지훈에게 어때? 계속 물으면서 상태 확인함.
힘들면 집에 갈까?
괜찮아.
어딘가 기죽고 시무룩해서 걱정되어 물으면 괜찮다고 고개 저으면서 승철 손가락을 붙잡음. 그럼 승철은 지훈의 작은 손을 꾹 잡고 예쁘게 웃어주며 형 계속 여기있을거야. 알았지? 하면서 자기가 어디 안 가고 이 자리에 있음을 확인시켜줌. 그 덕인지 지훈이 점심시간 전까지 탈 없이 수업 잘 들었음. 종례 끝나자마자 가방 메고 나와 집 가자! 하는 얼굴이 오늘 중에 가장 밝았지만 이거면 됐지.
그리고 승철이 카페 알바는 계속함. 부모님과 형 부부가 너 복학하고 지훈이 학교가면 정신없을 텐데 몸 혹사시키지 말고 공부만 하라 말씀하셨고 돈도 넉넉히 주신다하셨지만 미안해서 그 돈 못 받고 자기가 일해서 벌겠다 말씀드렸음. 내 이기적인 판단에 지훈이만큼 형 부부도 상처받았고 엄마는 중간에 껴서 이러지 저러지도 못했음. 다 지훈을 위해서라지만 결국 내 이기심이었다는 결론만 나와서 양심 찔려서 가만 못 있겠어. 그래서 알바를 계속 이어감.
대신 날짜랑 시간만 바꿈. 주말에 바쁜 저녁타임만 잠깐 일하기로. 사장은 내심 아쉬워했음. 마감 같이하던 짝이 없어져서 외롭고 장사에 승철 외모 덕 본 게 있어 좋았는데 소같이 부지런히 일하던 승철이 딱 주말만 나오니 평일 5일치 장사가 위험하지. 그래도 늘 집에서 승철이 오길 기다리는 지훈이가 걱정됐던 사장은 잘했다며 어깨 주무른다.
그런데 그런 노력에도 승철은 지훈을 온전히 볼 순 없었음. 일단 수강신청을 실패한 대가로 5일내내 학교를 가야했고 강의들이 죄다 세 시, 네 시까지 이어져서 끝나면 퇴근하는 회사원들 틈에 껴서 갔음. 등교는 부지런히 일어나 준비하면 같이 할 수 있는데 하교는 같이 할 수 없었음. 학교 가서 지훈이 살피는 일도 첫날만이고 이틀째부턴 학교교실까지 데려다주고 바로 달려서 학교 가는 버스를 탔었음. 그러니 승철이 강의 들어도 지훈이 생각뿐이고(결코 강의가 어려워서가 아님) 지훈이 하교할 시간되면 불안 초조 예민해짐.
그래서 정한이한테 부탁했음. 지훈이 길 익숙해질 때까지만 하교 도와달라고. 정한이 승철이랑 같은 대학이고 과만 다른데 복학을 안함. 일 년 동안 내 꿈을 찾을 거야라는 포부를 밝히며 짠 여행 계획을 자랑했었다. 하지만 승철이나 지수나 앎. 쟤 저거 1일도 못 간다고. 차가운 거, 따가운 거, 힘든 거 싫어하는 애가 여행은 무슨. 학교 수학여행도 힘들어하던 애였는데 네가 퍽도 놀러 다니겠다. 그리고 당연히 정한이 두 사람 기대 어긋나지 않고 개강하고 집에 서식함. 서식이라니까 약간 버섯 같네. 정한이 버섯머리던 시절도 있었는데. 승철은 자기 주위에 시간 널널한 정버섯에게 지훈 하교를 부탁했고 정버섯은 흔쾌히 수락함.
친구로서 정이 있으니 딱 최소시급만 받을게. 알았지?
승철 올 때까지만 4시간해서 삼 만원 안 되는 하루 시급 버는 정한이 쏠쏠하다고 좋아했고 승철은 야 백 원단위는 끊자 제제했음. 정한이는 우리사이에 동전까지 다 받아야겠냐며 받아쳤음. 그래 그럼 올림으로 해서 깔끔하게 천원단위로 받을게 해서 승철만 손해인 계약으로 끝남.
학교 내 일은 지수에게 부탁함. 왜냐. 지수가 지훈이 다니는 학교 행정실에서 일하기 때문. 홍지수, 행정공무원임. 지수랑 정한이 대학 간다 한참 수능에 쩔어있을 때 지수는 공무원 시험 봤음. 그 당시 정한과 승철은 미래는 멀리 봐야 돼 라며 어른들이 하는 소리 뱉는 친구가 많이 안쓰러웠음. 지수 꿈이 뭐였는지 두 사람은 알았기 때문. 부모도 지수 꿈 지지하고 밀어줬는데 고3때 갑자기 꿈을 접으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니 얼마나 속상해. 오래 함께인 친구였는데. 그래서 정한이랑 승철이 말리고 설득했음. 하지만 지수는 확고했음. 여리한 겉모습과 달리 속은 단단한 외유내강인 지수는 부서지지 않는 돌처럼 결심 굳혀 결국 설득 실패했고 그렇게 지수는 행정공무원이 됨.
그리고 셋 중에 가장먼저 군대 갔다 와서 제대하자마자 바로 일을 시작함. 사실 행정공무원 신입 땐 분교로 발령받는데 지수는 정말 운 좋게 지훈이 다니는 현 학교에 발령받았음. 그 때 행정실 잘생긴 남자 들어왔다고 좋아했다. 지수 이제 경력 꽤 돼서 자기가 신청하면 다른 학교로 옮길 수 있는데 아직 더 있다가 가겠다며 일 년 더 있기로 결정했고 그 때 마침 지훈이 그 학교에 들어가게 되면서 학교 내 지훈이 담당은 지수 몫이 됨. 다만 담당이래도 지수 행정실이 근무처라 점심시간이나 화장실 가는 이유가 아닌 이상 그 이상을 벗어나지 못해 승철이 원하는 만큼 지훈을 볼 수가 없음. 지수는 그런 한계를 승철에게 얘기했음. 승철은 어쩔 수 없다며 그래도 부탁한다 얘기함. 지훈이가 늘 저랑 있다가 갑자기 사람 많은 학교를 가는 게 걱정되고 또래 아이들보다 작고 말없는 지훈이라서 학교를 적응 못할까 애들하고 못 어울릴까 신경 믾이 쓰였음. 어두운 낯으로 지훈이 있어 술은 못 마시고 대신 탄산으로 입가심하는 승철 얼굴이 안 되어서 지수는 알겠다 받아들임.
그래도 지훈이 복덩어리다
그 앞에서 콜라 마시던 정한이 승철 옆에서 삼겹살 집어먹는 지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음.
너 술 끊게 했잖아
고기 먹으면 소주. 더울 땐 맥주. 추울 땐 와인, 가볍게 마실 땐 사케인 술고래 승철이가 지훈이랑 살면서 술 끊은 지 두 달이어라. 아까도 옆으로 직원분이 들고 가는 소주에 눈 못 떼며 입맛 다시던 승철은 아 소주! 하며 앓는 소리 뱉었음.
얼마나 됐어?
두 달 조금 넘었나.
이야 최승철 신기록이네.
두 달이나 못 먹다니, 몸 안에 알코올도 다 빠져나가서 없겠다.
승철 술친구도 겸하던 정한이 불쌍하다며 사이다 이만큼 따라주며 말함. 축하한다. 이제 지수한테 장가가면 되겠네.
집에 도착하고 승철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지훈이 저녁밥 차리기→ 청소하기→ 지훈이 씻기고 재우기. 하지만 계속 말했듯 강의신청실패로 과제 많은 강의 듣는 승철의 저녁 시간은 짧았음. 누구보다 빠르게 과제 2개를 마쳐야하는 불쌍한 복학생은 잠도 제 시간에 못 잠. 때문에 지훈도 안 잔다 버티는데 애가 잠이 많아서 30분도 안 돼 앉아서 졸아. 그거 모르고 두면 승철이 새벽에 과제 마치고 잘 때까지 불편한 자세로 자서 애 어린나이에 담 올까봐 30분쯤 되면 뒤돌아 확인한 뒤 재움.
그렇게 저녁이 바빠지다 보니 지훈이랑 얘기할 시간이 많이 사라졌음. 틈틈이 지훈에게 학교 어때?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어? 공부는 안 어려워? 학교생활 물어보지만 그냥 그래, 학교 다닌 지 이제 일주일 됐는데 애 표정은 매일 자퇴말리는 자기 얼굴이랑 똑같았음. 열 살 어린이에게 이런 얼굴 너무 낯설어서 매번 지수한테 학교에 무슨 일 없느냐 톡함.
「어제랑 똑같은 오늘이었어」
이상한 문장만 보내서 더 걱정이야.
친구는 많이 사귀었어?
일단은.
지훈이 대답이 열 살 같지 않다. 일단은 이라니. 친구를 사귀었다는 거야 사귀고 있다는 거야 사귀지 않겠다는 거야. 헉 혹시 애 맞고 다니는 거 아니야? 걱정돼서 하루는 주먹 쥐는 법 알려줬음.
자 주먹은 이렇게 쥐고. 이것만 기억해. 무조건 선 빵이야.
이렇게 말했다가 정한이랑 지수한테 한마디 들었음. 야, 애한테 선 빵이 뭐니. 같이 학창시절 보내면서 선 빵, 선 빵 하던 놈들이 지적해서 억울했음. 요즘 잘못 때리면 돈 나가는 거 몰라? 때릴 땐 책을 들고 때리라 해. 책은 무기로 취급 안 돼서 법에 안 걸려 해서 혀 내두름. 역시 너희는 내 친구들이었어. 잠깐 너희를 오해해서 미안하다. 내 베스트프렌드.
그러다 다음날에 지훈이 얼굴에 상처 생겨서 승철이 난리 났음. 정한이 톡으로 오늘 연어가 땡기지 않니? 했을 때부터 기분 쎄했는데 형 왔다! 하고 들어간 집에서 손만 들고 인사하던 지훈이 오른쪽 뺨에 긁힌 흉터가 있는 거야.
무슨 일이야!
놀라서 가방을 벗는 둥 마는 둥 얼굴 붙잡고 어떤 새ㄲ 할 뻔하다 정한에게 머리 맞고 어떤 노ㅁ 하다 또 맞아서 숨 크게 마시며 진정하곤 친구랑 싸웠니? 물었음. 아니래. 그럼 넘어졌어? 그것도 아니래. 그럼 어쩌다 다친 거야? 긁힌 상처 어루만지며 물었음.
놀다가 그랬어.
어떻게 놀았길래 그래
그냥 놀다가 그랬어
상처 만지는 승철이 귀찮다는 얼굴로 손 밀치고 방안으로 쏙 들어가는 지훈에 승철 뒤로 번개 침.
정한아 방금 쟤 표정 봤어?
성가신 존재를 본 듯한 얼굴?
좀 돌려 말해주지 않을래. 상처받거든?
정한이 슬쩍 노려보곤 일어남. 그러면서 어쩌다 저랬대 물었더니 자기도 모른다함. 교문에서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고. 저 나이대 애들은 다 상처 달고 살잖아. 그런 거겠지.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승철이 얼굴이 안 좋아서 정한이 위로해줌. 그러면서 만약 무슨 일 있었으면 말했겠지. 지훈이 똑똑하잖아 그런다.
그리고 정말로 지훈 입에서 점점 낯선 이름이 나오기 시작함. 순영이니 원우니 준휘니. 같이 저녁 먹을 때, 씻길 때만 지훈이 학교생활을 들을 수밖에 없고 처음엔 정말 학교얘기 잘 안 해서 세세히 물을 수밖에 없었음. 그러나 지금은 자기가 알아서 학교 얘기함. 달리기를 했고 노래를 불렀고 애들이랑 피카츄 사먹었다고. 승철이 아침마다 지훈이 신발주머니에 하교하고 배고프면 사 먹으라고 용돈 얼마씩 넣었음. 정한이 형이 사달라 하면 절대 사주지마. 그 형 돈 많아 하고 신신당부했었는데 친구들이랑 사 먹었다니. 깜찍하고 귀엽다. 그래서 지훈한테 그럼 걔들이 지훈이 친구야? 했더니 아니라 함.
친구가 아닌데 피카츄 사먹어?
애들이 배고프다 해서 사줬어.
...우리 지훈이 삥 뜯기는 거야?
그날 정한이한테 톡으로 너 지훈이랑 같이 다니는 애들 본 적 있어? 물었음. 정한이 한 세 시간 뒤에 답장 함.
아니 없는데. 몇 애들이랑 인사한 것만 봤어. 왜?
정한아 지훈이 삥 뜯기나봐.
지훈이 담임한테 전화할까 고민 오백번하다 주책일까 말고. 그래도 나중에 무슨 일 생길 때 실행하면 너무 늦으니까 전화하기로 결정함. 강의 중간 빈 시간에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했고 담임은 그런 일이 절대 없다 못 박았음. 지훈이 숫기가 많아서 그렇지 반 애들하고 잘 어울리고 학교생활 잘 한다며 형 분이 걱정하실 일은 없다고 함. 애들한테 먹을 걸 사줬는데 친구는 아니고 배고프다 해서 사줬다는데 그럼 그건 무슨 뜻일까요? 했더니 지훈이가 좋은 맘으로 사준 거겠죠 그래.
애 얼굴에 상처 달아서 왔는데... 애가 왜 다쳤는지 말을 안 해요. 놀다 다쳤다고 둘러대기만 하고. 며칠 전에 다친 건데...
속상해 늘어놓지만 담임은 승철이 걱정할 일 없다고 얘기함. 우리 반 애들이라서 그런 게 아니고 자기가 애들한테 관심 없는 선생도 아니고 진짜 따돌림이나 괴롭힘 당하는 일 없다고 강조 또 강조함. 담임이 그 정도까지 말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음.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어도 증거도 없고 괜히 난리치다 서로 얼굴 붉힐까 말도 못하고. 승철은 폰 잡고 끙끙 고민하다 지훈 입에서 나오던 애들을 물어봄.
원우, 순영, 준휘가 누구에요?
담임 듣자마자 한숨부터 푹 쉼. 폰 너머 강풍에 흔들리는 낙엽같은 소리가 들려 승철이 긴장함.
착한 애들이에요.
착한 애들인데 왜 한숨을 쉬시죠? 묻지 못하고 더 말하길 기다리니 담임이 말을 이었음.
지훈이 그들이랑 친구가 됐다니 좀 걱정입니다.
왜요?
걔네들 못 말리는 장난꾸러기에요. 우리 반 사고는 그들이 다 칩니다!
밤에 승철은 씻고 보송한 지훈과 세탁바구니에 들어있던 흙 묻은 지훈이 오늘 입은 옷을 발견하고 신발장에 둔 지훈 신발주머니 앞을 확인함. 돈이 없음. 백 원도 안 남았어. 비상금으로 쓸 수 있게 넉넉히 넣은 돈이라 얼마 남아야 하는데 십 원 한 개도 없음. 가기 전 정한은 네가 걱정하는 그런 무리는 못 봤다고 말했음. 오늘은 떡꼬치를 들고 기다리고 있어서 웬 떡꼬치야? 물었는데 애들이 배고프다고 그래서 사줬다고 함. 애들 어딨냐 그랬더니 벌써 집에 갔다고 함. 지훈이랑 손잡고 오면서 지훈은 친구도 아닌 애들이 배고프다 하면 사줘? 물었더니 지훈 대답이 참 그랬다고.
배고픈 건 싫잖아요.
거기다 대고 사주지 말라 말하기도 그렇고 자기 권한도 아니라서 말 못했다는 정한에 승철도 지훈에게 더 묻지 못함. 그냥 씻고 뽀송해서 조는 지훈이 살살 흔들어 밥 몇 숟가락 먹여주고 이 닦아주며 재웠음. 이 닦을 때 살짝 깼다가 침대에 올라가 누운 지훈이 눈꺼풀 100t달아서 무겁게 내려앉아 잘 자라며 가슴 토닥임. 잠투정 살짝 부리다 곧 느리게 호흡하며 깊은 잠에 빠지지. 잘 자는 지훈이 얼굴에 옅어진 상처 한번 훑고 이불 위로 올라온 팔 추울까 넣어주다 승철은 지훈이 손바닥에 난 상처 발견함. 넘어져서 까졌는지 손바닥 곳곳이 일어났음. 살짝 누르니 잠결에 아프다고 눈가 찌푸림. 살살 쓰다듬으니 얼굴이 풀어지고. 지훈이 아파서 깰까 조심조심 다른 손까지 들추며 상처를 확인했음. 잠옷을 걷어 올려 드러난 팔꿈치에도 상처가 있어 승철 마음이 불편함. 지금 기분이라면 지훈을 깨워 어쩌다 다친 상처냐 캐묻고 싶지만 꾹 눌러 담았음. 지훈이 말 안 할 것 같아서. 노트북 앞에 앉아서 작성해야 할 과제 앞에 두고 승철 머리만 복잡함. 세심한 정한이가 아까 자기한테 지훈이 손 상처를 얘기 안했어. 그럼 정한이도 몰랐다는 소린데. 그럼 지훈이가 상처를 숨겼단 뜻으로 해석됨. 왤까. 지훈은 왜 자꾸 상처를 숨길까. 지훈 담임은 걱정할 일 없고 말썽꾸러기 세 명도 말 참 안 들어서 그렇지 착한 애들이라 그러는데. 그럼 반애들이 아니고 다른 애들이 그러는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결국 과제 작성 못하고 누운 잠자리 깊게 못자고 밤새 뒤척였음.
지훈아. 왜 나에게 비밀을 만드니. 왜.
그리고 사건이 터짐. 어느 때처럼 마지막 강의를 앞두고 늦은 점심을 먹던 때 전화가 왔음. 정한이라고 뜬 통화명에 갑자기 가슴이 불안하게 뛰어서 무슨 일이야!부터 나옴. 날카롭게 숨을 마시는 소리가 들리고
승철아. 흥분하지 말고 들어. 사과는 내가 좀 있다 할게. 네가 좀 와야겠어. 지훈이가 없어졌어.
어떻게 초등학교까지 왔는지 모르겠음. 전화 끊자마자 가방하나 들고 무작정 뛰었음. 제대이후 이렇게까지 달려본 적 없을 정도로 뛰고 비싸서 잘 안타는 택시잡고 발 달달 떨었어. 도착하고 교문 앞에서 죄인처럼 있는 정한이 앞에 섰지.
미안해. 내가 늦잠을 자서 평소보다 삼십분 늦었어. 시계 확인하고 부랴부랴 왔는데 지훈이가 없어졌어. 그 때까지 나는 친구들과 놀고 있는 줄 알고 천천히 운동장을 살폈는데.... 미안해. 설마 혼자 갔을까 집도 갔는데 없었어. 교실확인하고 담임한테 물었는데 담임도 모른대.
지수는?
일단 학교건물을 둘러보고 있어. 아직까지 지훈이 발견 못했대.
승철이 무릎집고 허리 굽히며 이를 악 물었음. 바닥을 노려보며 올라오는 화를 참다 정한이 즐겨 신는 워커가 눈에 들어옴. 폼생폼사라며 아무 옷에도 워커를 신는 정한이가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였음. 구겨질까 흙 묻을까 아끼며 신던 신발이 끈은 풀어져서 흙 묻어있고 주름이 잔뜩 졌음.
끈 풀렸다.
그걸 가만히 보다 입을 엶. 정한이 어, 어? 하다 승철 시선이 향한 자기 신발 보고 급하게 끈을 묶음. 그렇게 주저앉아 끈 묶는 정한이를 두고 승철은 학교 안으로 들어갔음. 백 명 이상의 학생들을 수용하는 넓은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건물 안에서 지수를 만남.
봤어?
아니.
고개를 젓는 지수에게 고생했어 등 두들기며 지훈이 교실이 있는 복도로 걸음을 옮김. 텅 빈 교실을 한 번 보고 바깥으로 나왔더니 정한이 다시 한 번 주위 둘렀는데 안 보인다함. 경찰에 신고할까? 묻는 정한에 아직까지 신고를 하지 않은 사실에 핸드폰을 찾았음. 폰이 어딨나 주머니 뒤지다 없어서 전화 받고 가방에 넣었던 기억이 떠올라 열었더니 아비규환임. 쓰레기랑 휴지랑 다 쓸려서 들어감. 놀라서 일단 쑤셔 넣었나봄. 쓰레기랑 한 몸 이룬 폰 찾아 꺼내서 112 누르려 하는데 손가락이 덜덜 떪. 한숨 푹 쉬고 천천히 눌렀어. 그런데 자꾸 11112 나 122222 이렇게 눌림. 승철 몇 번이고 수정하다 폰을 내림. 그 옆에서 보던 정한이 내가 할까? 했고 승철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임.
네 거기 경찰서죠? 다름이 아니고...
정한이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데 먼 곳에서 외치는 소리처럼 아득함. 폰을 꽉 쥔 손은 하얗게 질려서 부들부들 떨고 있고. 머리도 아파서 마른세수를 하며 스스로 최면을 걸었음. 아무 일 없을 거야. 괜찮아. 침착해. 최승철. 그러다 승철에게 전화가 옴. 오늘따라 귀를 찢는 소음에 인상을 찌푸리며 확인하니 지훈 담임 번호임. 급하게 받아서 네 선생님! 신고 끝내고 전화 끊던 정한이도 쌤 소리에 옆으로 더 가까이 다가옴. 형 분이 예전에 말씀하셨고 혹시 하는 마음에 그 세 명 부모님께 전화 드렸는데 애들도 집에 안 왔다고. 학원 다니는 애도 있어서 학원까지 확인했는데 오지 않았다는 말이었음. 승철은 튀어나오려는 욕 겨우 침과 삼켰음. 알겠습니다. 더 말하려는 담임 전화를 끊은 승철은 가만히 정한이를 부름.
정한아.
응.
우리가 초딩 때 학교 끝나면 뭐했지?
놀았지.
뭐하고 놀았지?
흙 파고 놀았지.
학교 뒤를 우리가 갔던가?
아니.
말 끝나자마자 두 사람 학교 뒤로 걸어감. 뛰어가듯 걸어가면서 가장 구석진 곳, 사람들 눈에 안 띄고 습하고 어두운 곳을 찾음. 뒤편엔 학교 급식소가 있고 해가 들지 않아 어둡고 나무가 빽뺵하게 있었음. 해가 잘 들어오지 않아 스산한 풍경에 꼼꼼히 둘러보던 승철은 낮은 철봉이 있는 뒤를 훑다가 정한과 동시에 한 곳을 봄. 소각장 근처에 나란히 서 있는 쌍둥이 나무 사이에 하얀 게 지나갔음. 동글고 하얀 것. 가까이 다가가면 재잘재잘 떠드는 목소리가 들림. 야아 하지마- 하는 톡 튀는 목소리. 익숙해. 하지 말라고- 좀-! 외치는 소리와 함께 우당탕 구르는 소리. 그리고 톡 튀어나온 얼굴. 뽀얀 얼굴. 하얀 호랑이 귀. 빨간 턱. 승철 눈 돌아갔다.
킁.
쿨쩍.
가게 안엔 훌쩍이는 울음소리만 들려.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떡볶이와 튀김을 앞에 두고 훌쩍훌쩍 우는 네 얼굴이 지저분하고 엉망임. 그러면서 손에 든 포크로 떡볶이는 냠냠 잘 먹어서 애들 옆에 있던 정한이가 먹던가, 울던가, 둘 중에 하나만 해 타박함. 콧물 찔찔 흘리며 튀김 먹는 순영이 콧물이 자꾸 흘러서 손으로 대충 문질러서 휴지 들어 닦아줌. 갑자기 나타난 승철 손에 애 놀라서 튀김 떨어뜨림. 바닥에 툭 떨어진 튀김이랑 승철이 번갈아보며 눈치 보는 순영이한테 형 눈치 보지 말고 먹으라고 튀김을 포크로 찍어줘서 줬더니 기어가는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그럼. 그 옆에서 같이 눈치 보던 원우도 그제야 안심하고 떡볶이 찍어먹음. 준휘만 행복하게 떡볶이 국물에 튀김 찍어 먹고 있음. 지훈은 자꾸 턱을 긁어서 덧난다고 말렸음. 간지럽다며 자꾸 긁는 지훈 손등 살짝 때리며 또 긁으면 종아리 맞아 혼냄. 지훈이 시무룩 기죽어서 달랠까 하다 마침 울리는 전화에 승철은 전화부터 받음.
아, 네네. 어머니. 네 있어요. 같이 놀고 있었더라구요. 네. 지금은 떡볶이 먹고 있어요. 걱정 마세요. 다 먹이면 제가 다 집으로 보낼게요. 네네. 네 고생하세요.
전화를 내려놨더니 다들 승철을 쳐다보고 있음.
준휘는 집에 가면 엄마한테 혼났다.
준휘는 그 말 듣고 시무룩.
뭐라셔?
미안하고 고마우시대.
잘못은 애들이 해놓고 사과는 부모가 하다니. 참 그렇다. 그렇지?
애들 잘 먹다 동시에 딸꾹질. 딸꾹딸꾹 하는 게 안쓰럽고 속도 시원하고. 그래도 어린 애들 체할까 물 컵에 따라서 줌. 그거 먹고도 순영이는 딸꾹질 멈추지 않아 퇴근한 지수가 사온 콜라 먹고 겨우 가라앉음.
코끼리 아저씨다.
차례로 지훈이 뒤로 숨는다. 지수는 끝번호에서 딸꾹딸꾹 하는 순영에게 콜라를 줬음. 감사합니다, 꾸벅 허리 숙여 인사하고 뚜껑을 까서 마신다. 끄억 시원하게 트림하고 헛. 눈치 보는 게 이제 좀 안쓰러워서 아이 등을 쓸어줌. 어쩐지 애가 더 겁먹었지만 내 탓 아니야.
그렇게 나와서 학교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사는 애부터 데려다주기로 함. 정한이랑 지수한텐 오늘 고생했으니 먼저 가라해도 너 혼자선 힘들다고 같이 가준다 함. 그래서 애들 곰이랑 토끼랑 코끼리한테 둘러싸여서 집에 모셔짐.
오늘 고생했어요. 우리 아들 때문에 괜히 동생까지.
친구랑 친구 부모님께 같이 허리 숙여 인사하고 승철 뒤에 숨은 지훈이는 그 말에 승철을 올려다봄. 승철은 피곤한 미소를 지은 채 저야말로 제 동생 때문에 애들이 고생했죠 답함.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 꼼지락대다 지수랑 눈 마주쳤음. 지수랑 정한은 엘레베이터 쪽에 서있었음. 자기들까지 있으면 정신없다고 엘레베이터에서 다른 애들이랑 같이 있었음. 지수랑 지훈이랑 눈 마주쳤는데 지수가 입술 꼬리 올린 특유의 미소를 지음. 그 미소가 딱 창피하지? 여서 지훈은 승철 등에 얼굴 묻고 숨어버림.
그렇게 한 명씩 한 명씩 다 데려다주면서 죄송하다 사과하고 끝난 승철은 삼일 밤샘한 피곤함을 급격하게 느끼며 눈앞에 보인 고기 집을 가리킴.
콜?
오늘은 내가 쏠게.
죄 많은 정한이 그리 말했고 승철은 말리지 않음. 오늘 나는 얻어먹어도 돼. 충분히 자격 있어.
그날 밤에 씻고 나와서 승철은 침대 위에 앉아 아빠다리하고 지훈이한테 상세한 사정을 듣게 됨. 자동으로 무릎 꿇는 지훈을 편히 앉으라며 다리 펴주고 말하라했지. 지훈이 눈치 보며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지훈은 처음에 혼자 다녔다함. 애들 몇몇이 다가왔는데 어려워서 피했다고. 며칠 피하니까 더 이상 다가오는 아이들이 없어졌지. 좀 심심했지만 괜찮았어. 혼자는 익숙하니까.
그러던 어느 날 화장실 갔다 오고 교실 문 열고 들어갔는데 뭐가 얼굴에 훅 날라 왔음. 피하긴 피했는데 뺨을 맞았고 옆으로 주저앉은 지훈에게. 헉- 괜찮아? 미안해하고 달려온 게 지금의 순영이었음. 쉬는 시간에 원우랑 준휘랑 놀다가 잘못 던져서 지훈이가 맞았다고. 지훈은 괜찮았다함. 상처도 없었고 아픔도 그 때뿐이어서 괜찮다 했는데 순영이는 많이 미안했는지 그 다음부터 계속 지훈을 쫓아다녔다함. 지훈아, 우리랑 같이 밥 먹을래? 같이 놀래? 축구하자! 지훈아! 지훈은 햄토리같은 애가 졸졸졸 쫓아다니는 게 너무 귀찮아서 여러 번 거절했는데 결국 나중엔 같이 어울렸다함. 재밌었어. 어울려서 축구하다 넘어져서 뺨을 긁혔지만 아프지 않았지. 말 안 한 이유가 저거였음. 진짜 놀다 다쳤고 아프지 않았으니까. 승철은 혼자 삭힌 속앓이가 분해서 자기 가슴 주먹으로 내리쳤음. 지훈이 깜짝 놀라 눈치를 봄. 승철은 계속 말해, 턱짓함.
간식은 하루 종일 놀고 배고파서 꼬르륵 거리는 배 부여잡은 원우가 준휘야. 피카츄 사주면 안 돼?해서 사줬다함. 애들도 다 용돈 받긴 함. 그런데 그날 아침에 준비물 산다고 다 써서 돈 없으니까 그나마 셋 중에 제일 부자인 준휘에게 사달라 했음. 그러데 그날은 준휘도 돈이 없었다함. 세 명 다 배고파서 배 부여잡고 있다가 지훈을 물끄럼 쳐다봤음. 강아지처럼 그 눈이 너무 불쌍해서 사줬다고. 그게 그렇게 좋았는지 애들이 지훈한테 더 다가가고 들이대고 같이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친구가 됐다고. 친구 아니라며? 예전에 물었을 때 그냥 애들이라 했던 지훈 생각나서 말했더니 지훈 왈.
그 땐 안 친했어.
아아. 그랬구나. 그땐 안 친했구나. 지금은 친해서 친구구나. 형이 몰랐네. 내가 바보였어.
말썽쟁이 장난꾸러기들이랑 친구다보니 지훈 학교생활은 늘 다사다난했다함. 지훈이 입에 다사다난이라는 어려운 사자성어가 나와 잠깐 놀라다 승철이 흥분을 가라앉히고 입을 열었음.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애들이랑 간식 사먹는 가게 앞에 게임기가 있는데 그게 인기가 많다함. 학교 끝나면 그 앞에 사람 벽이 서있다고. 자리 잡기도 매우 힘들어. 사람 바글바글하고 게임하기 되게 어려운데 원우는 그 어려운 틈을 뚫고 게임을 한다함. 흥분해서 게임하는 원우 옆에 앉아서 순영이는 침튀기며 같이 흥분하고 준휘는 신나하고 옆에서 지훈이는 손 까딱하며 상상 게임하고 훈수 둔다. 그러다 키 크고 덩치 있는 고학년 육식계들이 와서 애들을 밀쳤다함. 진짜 말도 안하고 이렇게. 지훈이 승철 어깨 힘껏 밀어서 승철이 기울어짐. 그렇게 밀려서 손 까지고 애들도 다 다쳤는데 고학년들이 원우 플레이를 뺏어서 게임을 했다고 나쁜 사람이라 그랬음. 애들이랑 지훈이 화나서 왜 남 게임하는데 자리 뺐냐고 따졌는데 그 사람들이 확 겁주면서 꺼지라고 욕했다함. 지훈이 입에서 처음 들어본 욕을 막 뱉는데 승철은 지훈이 입 급하게 막음.
지훈아. 하지 마. 입에 담지도 말고. 나쁜 말이야. 나쁜 말 들었다고 너도 하면 나쁜 사람 되니까 앞으로 하지 마. 알겠지?
아무리 애들이랑 지훈이가 육식계 동물이라 해도 덩치 크고 무서운 육학년 분위기에 눌려서 쫓겨났다함. 다만 화가 안 풀려서 씩씩댔는데 큰소리로 궁시렁댔던 순영의 말 듣고 그들이 야, 부르고 순영이 머리를 딱 때렸다함. 맞은 순영이 얼고 애들 숨 쉬는 것도 잊은 상태서 그 사람이 나머지 애들도 딱딱 때렸다고. 승철이 화나서 그 새끼 어떻게 생겼냐고 공책 갖고 와서 그리게 함. 이름 알아? 학번 알아? 다 적어. 아는 거. 씩씩대는 승철에게 그림 그리면서 이xx라고 내가 분명히 들었어 하지 말라는 욕 담으며 다 적는 지훈이. 꼭 때려줘야 돼. 나 이렇게 맞았어. 맞은 장면 보여주면서 아주 열심임. 우리 고양이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 승철은 지훈이 작은 머리통 끌어안으며 뽀뽀를 퍼부음.
쨌든 처음으로 남에게 맞았던 지훈은 너무 놀라서 꼬리랑 귀가 툭 튀어나왔음. 놀라 혼현이 샜지. 갑자기 나온 귀랑 꼬리에 지훈은 형이 절대 밖에서 귀랑 꼬리가 튀어나오면 안 된다. 만약 나왔다면 바로 가려야한다며 신신당부한 게 생각나 후다닥 도망갔고 달려보니 승철이 애들을 발견한 학교 뒤편이었다고. 지훈이 갑자기 달려가니 영문도 모르고 애들도 뒤쫓고. 무슨 일이야 헥헥대서 달려왔던 애들은 지훈이 나온 꼬리랑 귀 보고 우와! 너도 호랑이었어! 하며 뿅뿅 자기 혼현도 드러냈다함.
그래서 걔네들이 그런 모습이었구나. 지훈이 발견하고 맞는 줄 알고 달려들었을 때 귀랑 꼬리를 달던 애들을 떠올리며 그제야 이해한 승철은 고개를 끄덕임. 그렇게 드러내놓고 보니 아직 새끼인 호랑이들 신나서 맞았던 것도 잊고 서로 꼬리랑 귀 잡기놀이하면서 놀다가 시간이 흘렀다함.
정한이 형이 정문에서 기다렸는데 잊었어?
응. 까먹었어.
다 말하고 지훈은 눈치 봄. 자기 잘못을 아나봄. 한숨 나온다. 턱이 빨간 지훈보고 맞고 있다고 오해한 승철은 진짜 곰이 돼서 달려듦. 누군지 몰라도 눈에 띄면 척추를 반으로 부러뜨리겠다고 갔더니 호랑이 새끼 세 명이 저를 보고 있잖아. 곰 포효하는 소리에 꼬리 다리 사이로 끼고 덜덜덜 떨어. 그 중에 황호, 순영을 잡았더니 애가 발작을 일으키며 벗어나선 으아악하고 도망감. 왜인지 지훈도 같이 도망가려해서 승철은 지훈이 잡고 그 사이 저기서 코끼리 포효하는 소리 들리고 놀라 엉덩방아 찧은 애들을 정한이가 잡음.
지수야 수고했다.
코끼리 혼현을 감추며 씩 웃는 지수 덕에 나머지 셋 잡고 무지하게 혼낸 승철이. 그 뒤에 정한이랑 지수가 도망가지 못하게 막아서니 애들 도망도 못 가고 커다란 곰에게 잔뜩 혼나고 울며 떡볶이 먹은 일이 아까 낮의 이야기였음.
코끼리 진짜 오랜만에 본다.
고기를 물처럼 마시고 어느 정도 배 채운 승철이가 처음 뱉은 한마디. 코끼리 지수는 어깨를 으쓱임. 안 힘들어? 정한이 물음에 지수 조금? 그럼. 거기서 코끼리가 나올지 몰라서 나도 놀랐잖아. 지수 사슴이 맞지만 위장으로 코끼리 혼현을 보일 수 있음. 초식계 반류의 방어수단의 일종인데 코끼리처럼 육식계도 함부로 못 덤비는 초식 동물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임. 그런데 왜 코끼리냐하면 딴 이유 없음. 어린 시절 지수 집 가는 길에 예쁜 꽃길이 있었는데 앞니 빠졌던 당시 n살의 승철이가 야 여기 예쁜 코끼리다 해서 그거 듣고 코끼리로 결정됨. 막상 해놓고 보니 괜찮아서 가끔 쓰고. 성인돼선 쓸 일 없었다가 오랜만에 펼치고 어깨 턺.
지각한 정한이 형은 형이 충분히 혼낼 테니까 너는 앞으로 정한이 형 올 때까지 어디 가지 말고 거기 꼼짝 말고 있어. 늦거나 일이 있으면..... 연락할 방법이 없어, 잠시 말 잃다가 형한테 연락해. 전화번호 알지? 학교에 그 공중전화 있지? 그걸로 해. 앞으로 또 이런 일 있으면 형 가만두지 않을 거야. 알겠어?
제법 엄한 목소리로 다그쳤음. 지훈은 고개 푹 숙이고 네에 작게 대답함. 손가락 잠옷 안에 숨겨서 기죽은 게 안쓰러워. 안쓰럽지만 혼나야지. 나랑 정한이랑 지수랑 마음 고생했고 경찰의 고생까지 다 합하면 아직 더 혼나야한다. 지훈이 말없이 사라져서 고생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음. 대신 바로 지훈이 끌어안아서 네가 미워서 그런 거 아니야 하며 달래줌. 혼나느느 동안 울지 않던 지훈이 거기서 눈물보임. 눈에 눈물 조금 고이더니 훌쩍임. 승철은 말없이 지훈이 눈물 꾹꾹 닦아주고 꼭꼭 끌어안아줌.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존댓말까지 쓰며 사과하고 아까 무서웠어 하며 승철 머리윗부분 만지작댐. 곰 귀가 튀어나온 곳이야. 승철이 곰 귀를 드러냄. 귀 드러내니까 좀 겁먹고 피하다 만져도 돼 소리에 용기내서 만짐. 거친 흙냄새가 나고 짧은 털이 부드러워서 지훈 그때쯤 눈물 그치고 승철 귀에 정신 팔렸고 잘 때까지 승철 귀에서 손 안 뗌. 승철은 죽을 맛이지. 지난번에도 못한 과제 오늘 꼭 완성 해야하는데 애가 귀를 안 놔줘. 그만 하자 말할까 하다 집중하는 표정이 귀여워서 포기함. 그래. 과제는 당일날 해야 제 맛이지 하며 곰 귀를 쭉쭉 빨며 자는 지훈에 새우처럼 구부리면서 눈물의 밤 지새웠고 그렇게 승철은 다음날 죽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등교한 호랑이들의 대화
너 형이랑 안 닮았더라
형제 아니니까
?
??
친 형 아니야?
아니야
그럼 누구야
같이 사는 형
같이 산다구?
왜?
내가 형을 선택했어
어? 응???
너 그 곰 형이랑 무슨 사이야
같이 오래 살 사이
그래서 지훈이 2n살에 청첩장 줄 때 너 이미 형하고 결혼하지 않았어? 세 호랑이들 놀라서 한참 시끄러웠던 건 비밀. 결혼식 날 축가는 세 호랑이의 재치로 재밌던 건 안 비밀. 호랑이 장가간 날 노래 부르는 호랑이 세 명에 결혼식 아주 뒤집었다는 먼 훗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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