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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쿱] 어리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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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쿱] 어리다

다몬드 2016. 11. 20. 20:45

 

[지훈승철/우쿱] 어리다

 

 

w.안다미로

 

 

 

 

센티넬이라고 뭐 별 거겠어? 콧방귀 끼던 과거의 나를 매우 후려치고 싶은 날이다. 전날 8시 뉴스에서 올 겨울 들어 처음 내리는 비라며 감기조심 건강조심 하라던 기상캐스터 일기예보를 들었으면서 잘 때까지 아무 준비도 안 하고 버티던 어제의 나를 매우 때리고 싶다. 침대에 붙어서 눈도 뜨지 못하고 거친 파도 위에 침몰하기 직전의 동동 배처럼 주체 없이 흔들리고 속이 미식 거려 죽을 것 같다. 이마와 눈에 열이 홧홧 올라서 슬프지도 않는데 눈물이 자꾸만 쏟아진다. 눈꼬리 아래로 또르르 굴러가 미로 같은 귓바퀴에 떨어져 탈출구를 찾지 못한 채 모인 눈물들에 귀도 멍멍했다. 지구의 자전하는 소리인지 몸에 흐르는 혈액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끊임없이 들리는 이명에 천둥 같은 기침하는 소리까지 더해 고막을 때렸다.

아파.

흥건하게 땀으로 젖은 축축함에 온몸으로 덮는 솜이불을 발로 차고 싶지만 아프지 않은 곳을 찾는 게 빠른 최악의 몸 상태에 가슴께까지 덮은 이불을 목까지 끌어 덮었다.

어윽. 10cm 고작 그거 이불 들어 올렸다고 앓는 소리가 절로 났다. 더운 공기에 덮인 어깨가 바들바들 떨렸다. 차라리 잠이라도 자면 아파도 버틸 만하겠는데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몸은 수면도 내쫓은 채 자꾸만 승철을 괴롭혔다. 망할 센티넬. 망할 비. 망할 폭주. 어제 아침까지 아니 오후까지 잠잠했던 몸이 추운 겨울비에 무너졌다. 평범한 사람들보다 감각에 민감하다 보니 날씨에도 좌지우지 돼 밤사이 급격히 몸이 나빠진 것이다. 백기백기~ 하얀 깃발 들었어~ 졌다고~ 졌으니까 날 좀 놔줘~ 새하얀 깃발 입에 물며 눈물로 빌어본다. 하지만 뇌의 명령을 거부하는 몸은 고집을 부린 채 제멋대로다. 내가 졌다는데 내 뜻대로 지지도 못하는 이 쓸모없는 몸뚱아리.

베개 옆엔 얼마 전에 산 로즈골드 핸드폰이 놓여있었지만 화면을 켜 1번 단추를 누르거나 최신통화 목록에서 8할을 차지하는 상대에게 전화 걸 힘도 없다. 어떻게 저렇게 애를 쓰고 전화해도 수산지가 지금 이곳에 없다. 친구들하고 수능 끝난 기념으로 여행 떠나셨다.

동해바다가 보고 싶어요

어제 헤어지기 전 기대로 들떠 스케줄을 줄줄이 읊던 앳된 얼굴이 눈앞에서 안개처럼 어리다. 살아생전 여행이라곤 학교에서 보내는 수학여행이 다였던 서울 촌놈에게 가서 길 잃지 말고 잘 놀다 오라며 내 선물 사오는 것도 잊지 말라고 웃어 보내줬었는데. 할 수 있다면 어제의 나를 전부 집합시켜 정강이를 차고 싶다. 가이드 없는 센티넬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으면서 요 근래 느낀 안정감에 잠시 잊어버렸다. 아니 적어도 일기예보라도 꼬박꼬박 챙겨보며 비올 거 대비하여 준비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다음으로 미루다던가, 가지 말라 던가. 하지만 제 문제에 이미 본인 인생의 많은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고 있는 어린 가이드에게 마지막 친구들과의 추억까지 뺏고 싶지 않았다. 말 안 듣고 말썽만 일으키는 센티넬에 고3 수능준비로도 머리 빠질 것 같았던 가이드에게 더 이상 원형 탈모를 선물로 주면 안 되지 않은가? 23일이면 버틸 만하지, 자만했던 자신이 못나긴 했지만 멈추지 않는 시간은 이미 1바퀴나 흘렀고 제 가이드는 동해바다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고 신나게 가고 있을 거다. 이제 와서 오라고 전화할 수도 없고 기차는 back을 할 수 없으니 이미 떠난 이 놔주고 다른 방법이라도 찾아야 했다.

몸을 옆으로 돌렸다. 뇌의 명령을 전달하는 신경전달물질이 뜨거운 열에 퍼져서 말을 안 들었다. 옆으로 눕는 것조차 온 기력을 쏟아야 하는 효율적이지 못한 몸. 중력을 혼자 3배로 받는 것 같은 무거운 팔을 겨우 올려 폰을 들었다. 홈 버튼을 누르자 까만 화면이 밝아진다. . 열이 오른 동공에 직격으로 쨍한 화면이 비추자 두통이 심해졌다. 팽팽한 신경 줄 위로 두통이란 놈이 외줄 타듯 껑충껑충 신나게 뛴다. 눈이 뽑힐 것 같아. 눈알 뒤에서는 누군가 힘을 쏟으며 밀어내고 있다. 다른 이에게 전화라도 하겠다는 의지가 확 꺾인다. 전화하기도 전에 폭주로 사망이다. 베개에 아픈 눈을 가리며 몸을 바르작댔다.

이지훈 보고 싶어. 마음심 넓은 센티넬인 척, 네 생활도 중요하지 어른스러운 척 참으려 했는데 도저히 못 참겠다. 도끼에 쪼개지는 반석처럼 몸이 두 동강 날 것 같다. 차라리 죽이라고 칼을 주고 찔러달라며 부탁하고 싶을 만큼 극한의 고통에 힘이 빠진다. 과거 몇 번이고 생사를 오가며 경험했던 폭주였지만 오랜만에 느낀 만큼 이번 건 승철에게 더 무리가 간다. 이지훈이 없어서 그렇다. 센티넬이 여기서 죽을 둥 말 둥 침대위 를 구르고 있는데 지는 희희낙락 웃고 있어? 나쁜 놈. 원망이 마구 쏟아진다. 아까까지 남아있던 착한 인내심이 밝은 화면에 완전히 무너져 승철은 엄마 찾는 7살 어린아이처럼 길을 잃고 울었다. 지훈아. 지훈아. 너무 아파. 아프단 말이야. 빨리 와서 날 안아줘.

 

 

, 잠시 딴 얘기를 하자면 그 시간 지훈은 기차 안에서 창밖을 보며 제 센티넬 최승철을 생각하고 있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해가 뜨도록 목적지를 향해 힘차게 달려가고 있었다. 잠이 묻은 눈곱도 못 떼고 나타나 기차에 타자마자 다시 잠든 제 친구들처럼 좌석에 푹 기대며 잠을 청하려 했지만 어째선지 뻥 뚫린 창에는 최승철이 아지랑이처럼 어렸다. 비가 내리는 별도 잠든 검푸른 하늘이 바다의 깊은 심연이 되어 창밖은 스크린처럼 다양한 화면을 보여줬다. 일정하게 심어진 나무와 높은 건물이, 끝이 보이지 않는 논밭. 오래된 돌담까지. 눈을 떼지 않고 보기만 해도 심심할 틈이 없는데 어째선지 시선을 보내는 데마다 다 최승철이다. 어디 아픈 거 아니야? 센티넬-가이드라는 특별한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훈은 승철이가 아플 때쯤에 묘한 느낌을 늘 받았다. 서늘함과 소름끼침 그 중간쯤 되는. 그 때마다 승철에게 전화해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물어보고 될 수 있다면 직접 찾아가 상태를 확인하기도 했다. 만나면 생각보다 괜찮을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상처를 입거나 팔에 얼굴을 묻으며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왜 혼자 앓고 있어요.”

예민해진 청각에 제 발걸음, , 기척이 생생히 들렸을 텐데도 고개도 들지 않는 센티넬의 뒤통수를 지훈은 조용히 쓰다듬었다.

너가 만져주면 이상한데 좋아

만성 두통을 앓고 있는 승철이라 머리부터 만져주다 듣던 말. 그럴 때면 조랑말처럼 날뛰던 승철이 얌전히 지훈 손에 몸을 맡기 때문에 지훈은 승철이 예민해지면 버릇처럼 손을 뻗어 승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프면 전화하라 했죠.”

너 고3이잖아.”

센티넬이 무슨 고3을 걱정해. 그런 말 듣는 고3 마음이 뾰족해진다. 고개를 들고 지훈이가 만져주는 대로 얼굴을 맡기고 눈을 감고 있는 승철의 코를 확 비틀고 싶다. 열이 올라 발그레한 뺨에 땀으로 얼굴이 촉촉이 젖은 게 적어도 한 시간 이상은 혼자 참고 있었다는 건데. 본인을 담당하는 가이드를 걱정하기보다 제 몸부터 우선이지, 말 안 듣고 내키는 대로 살면서 이상한 데서 어른인 척 하려는 승철 때문에 오히려 지훈이 더 힘들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다. 저는 승철이가 일 초라도 전화를 늦게 받으면 어디서 픽 쓰러졌나 걱정돼 미치겠는데.

가늘어진 빗방울에 해가 떴음에도 컴컴했던 하늘도 조금 밝아진다. 태양은 여전히 구름 뒤에 숨어있지만 이대로 가면 동해 도착했을 때쯤엔 놀기에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수능 디데이 삼십일전부터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놀러갈 계획을 잔뜩 짜놓으며 수능보다 더 기다렸던 이번 여행. 수학여행 빼고 친구들과 놀러가 본 적 없던 지훈은 부푼 기대감에 승철을 만날 때마다 여행 이야기만 했다. 카페에 들어가 라떼 2잔 시켜놓고 나란히 앉아 핸드폰을 들여 보며 여기도 좋고 저기도 좋다며 신나게 떠들 때마다 승철은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 이곳이 맛 집이래요.”

회는 부산에서도 하잖아.”

동해 회잖아요.”

어차피 같은 물고기 아냐?”

그럼 소는 어딜 키우든 똑같은 소일텐데 맛이 같아요?”

“...아니.”

자꾸 초를 쳐서 찬물을 끼얹는다. 참다가 반격하니까 파뜩 놀래며 아니 그냥 나는 다른 거, 부산에 없는 거 경험하고 먹는 게 좋지 않겠냐는 거지, 열심히 변명을 한다.

너 이 여행 가고 싶어 했잖아. 나는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거야.”

내가 여행 가는 게 싫어요?”

아니 안 그래. 내가 왜 싫어.”

누가 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인데 대인배처럼 여행가는 걸 허락해주겠다는 자비를 베풀려고 한다. 지훈은 반대쪽으로 고갤 돌리며 한숨을 푹 쉬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누가 무시한대. 눈치 보면서 은글 슬쩍 깍지를 껴오는 걸 홱 치우고 싶다가도 지훈아아~ 부르는 한 마디에 마음이 풀어진다. 처진 눈매가 반으로 접히며 통통하게 오른 애교 살이 볼록해진다. 그 위로 유난히 긴 속눈썹이 길게 그림자가 지면 어릴 정도로 아름다워 지훈은 승철의 손을 맞잡으며 웃어넘겼다.
3일만 참아요. , 걱정 마. 잘 놀다올게요. 내 선물 꼭 사오고. .

 

전화 안 받지.

자고 있는 친구들이 깰까 통로로 나와 전화를 걸었다. 눈감고도 칠 수 있을 만큼 익숙한 11개의 번호가 화면에 뜨고 힙합곡이 연결음으로 흐른다. 30초 동안 끊임없이 시원하게 갈기는 랩에 같이 흥얼거렸던 지훈은 여자의 안내멘트에 인상을 찌푸렸다. 전화를 끊고 다시 걸어도 똑같다. 3번째 통화에서도 부재중으로 넘어가자 불안한 마음이 든다. 저를 만나고 나서 폰은 늘 본인 옆에 두던 승철이라 이렇게까지 받지 않는 게 이상했다. 화장실을 가도 꼭 손에 쥐는 사람이라 끊어지기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늦게 받기는 해도 전화를 받지 않은 적은 없는데. 초조하게 폰을 두들기며 생각에 잠긴 지훈은 자리로 돌아와 짐을 챙겼다. 친구들과 나눠먹으려 산 과자를 봉지에 넣고 묶으며 위 사물칸에 던졌던 가방을 꺼낸다. 그 소리에 잠이 깬 원우가 눈을 비비며 물었다.

뭐해?”

기차는 back 못하지?”

하아아아아암~?”

, 나 집 간다.”

?”

동해 너네끼리 가라.”

 

 

이상한 꿈을 꿨다. 분홍색 솜뭉치 강아지가 제 머리를 발로 긁고 있었다. 깎아 둥근 발톱을 세워 두피까지 마구 비비며 강아지 손은 약손하며 배 아플 때 부르는 노래를 개사하며 부르는 거다. 멍멍아 난 거기가 아니라 몸이 아픈데? 머리통에 올라온 두 발을 잡고 눈을 올려 말했다. 분홍색 강아지는 그런 저를 보더니 푹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아플 때까지 뭐 했어요 혼내기까지 한다. 매서운 말투에 열이 오른 눈이 훅 뜨거워진다.

지훈이 기다렸는데.”

기다렸다고?”

.”

?”

안 오니까.”

전화하지 그랬어.”

너무 아파서 못했어.”

하 진짜. 분홍색 솜뭉치 강아지가 갑자기 커진다. 물을 먹은 솜처럼 몸집을 크게 부풀려 승철을 덮을 만큼 커진다. 그리고는 몸을 기울여 승철 위로 쓰러진다. 가슴, , 허벅지, 종아리까지 옴짝달싹 못하도록 꽉 껴안는 무게에 켁 숨이 막혔다. 숨 안 쉬어지는데. 푹신한 개털에 얼굴을 묻으며 칭얼거렸다. 말랑한 젤리 발바닥이 얼굴을 붙잡았다.

.

됐죠?

입술에 닿은 촉감에 에? 나 개랑 뽀뽀한 거야? 기겁을 했다.

내가 개예요? 너 개잖아. 야 안 돼. 멍멍아. 나한테 뽀뽀하지 마. 이 입술 지훈이 거란 말이야. 참나. 절대 뽀뽀하지 마. 예예 알겠어요. 지훈이 거야. 알았으니까 자라고. 절대 절대 안 돼..

 

 

옛날 옛날에 작열통에 칼을 든 적이 있다. 장마로 이틀 내내 폭우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기압이 낮아지고 쪄죽을 것 같은 습도에 일반인들도 작은 일에 쉽게 짜증을 내던 그런 날. 승철은 잔잔한 목소리로 수업하는 선생님을 멍하니 눈으로 쫓으며 바짝 사막 해에 말라가는 도마뱀처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손에 쥐고 있던 칼을 들어 얼굴을 긁었다.

아악!!”
얼굴에서 뿜어진 피에 옆 짝꿍이 의자와 함께 바닥을 구른다. 비명소리에 고개를 돌린 학우들이 경악하며 저에게서 멀어져갔다. 최승철!!! 선생님의 다급한 외침에도 나는 태풍의 눈처럼 고요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아. 내가 지금 숨을 쉬고 있는 건지 불이 되어 타오르고 있는 건지. 분명 칼을 들어 내 얼굴을 긁은 것 같은데 아프지 않아. 지금 이건 꿈일까? 다시 든 칼은 이번에 눈 아래를 그었다. 하복 셔츠 위로 붉은 피가 후두둑 떨어졌다. 짙은 철 냄새가 코를 찔렀다. 피 냄새가, 났다.

화장실 갈게요.”

또 자해할까 쉽게 다가오지 않는 무리를 가로질러 교실에서 나왔다. 푸른 녹음과 물 냄새가 나는 빈 복도를 걸으며 화장실로 들어가 피를 닦았다. 콸콸 쏟아지는 물 위로 빨갛게 번진 핏물이 검은 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물을 묻혀 닦아도 자꾸만 울컥울컥 붉은 것을 토해 멈추지 않는다. 여름 화장실 특유의 찌린 내와 피 냄새에 머리가 아팠다. 호두 깎기 기계에 머리를 들이밀고 으깨는 것 같은 통증. 뼈가 부서지고 그 사이로 뇌수액이 흐른다. 말랑한 뇌는 뼛조각에 찢어져 피를 뿜는다. 머리가 깨진다면 이런 고통이겠지, 멍한 머리 한쪽으로 그런 멍청한 생각을 했다.

그러다 죽어요.”

큰 손이 상처를 누른다. 핏물은 부드러운 수건을 빨갛게 적셨다. 뒤통수를 잡고 볼을 누르는 힘에 얼굴이 짜부라질 것 같았다.

아파.”

아프라고 하는 거야.”

무서운 얼굴로 올려다보는 앳된 얼굴에 승철은 베시시 웃었다.

뭘 잘했다고 웃어.”

너 반말하네.”

제발 상처 좀 내지 마요.”

반말로 해 줘.”

무서우니까.”

병원가자. 바로 덧붙인 말에 승철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퇴는 내가 이야기 할 테니까 얌전히 기다려요. 어디 가지 말고. 신신당부하며 지훈이 들어가고 승철은 교무실 앞에서 벽에 등을 기대며 섰다. 쉬는 시간인지 지나가는 학생들의 수군거림과 선생님들의 혐오감 서린 시선을 승철은 당당히 받았다. 그들은 조용히 말한다 하지만 간간히 들리는 단어들은 이제 놀랍지 않다. 다만 지훈이가 걸린다. 그들 입에 지훈이가 오르는 게 싫다. 잘못은 내가 저질렀는데 가이드라는 이유로 같이 묶여 욕을 먹는다. 자신이 문제를 일으키는 건 다 이유가 있어 그러는 건데 알지도 못하고 문제아라 찍으며 문제아 친구 혹은 애인으로 불리는 지훈까지 싸잡아 한통속을 만든다.

고개를 돌려 교무실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 봤다. 뒤통수가 보이는 지훈이 쉴 새 없이 떠드는 선생님께 고개를 숙이고 있다. 공부를 썩 잘하지 못해도 얌전한 아이라 크게 혼날 일 없는 지훈이었지만 저를 만나면서 매일 교무실 행이다. 듣기 좋은 말도 삼세번이라는데 듣기 싫은 말을 매일 몇 달째 듣고 있다. 저 때문에. 저는 지훈이가 걱정된다. 폭주한다면 가이드인 지훈이가 폭주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걱정한다. 얌전한 아이여도 속은 불을 품고 있는 놈이라서. 그리고 원래 조용한 사람이 화내면 제일 무섭지 않은가.

가야겠다.”

벽에서 몸을 뗐다. 얌전히 있으라는 말을 일 분전에 들었지만 기억나지 않은 척 지워버린다. 아직 대고 있는 수건을 살짝 떼다 볼을 타고 흐르는 핏물에 다시 꾹 눌렀다. 별로 깊게 긋지도 않았는데 피가 너무 난다. 핏줄을 건드렸나. 한 달 용돈이라고 받은 돈은 받자마자 또 병원비로 나간다. 요즘 맛 들린 신상과자를 매일 먹을 예정이었는데 2주만 간식 끊어야겠네, 우울한 마음이 오른다. 자업자득이지 알면서도 속상한 건 속상한 거다. 치료 안 받으면 되긴 하는데 도망쳐놓고 상처 치료도 안하면 지훈이 진짜 화낼 테니까, 울지도 모르고. 저는 지훈이가 저 때문에 안 아팠으면 좋겠다. 그 마음만은 진심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죽어요?”

눈이 팍 떠졌다. 뜨자마자 보인 지훈 얼굴에 소리 없이 놀랐다. 왜 지훈이가? 꿈에서 바로 깨 상황이 아직 이해가 가지 않는다. 큰 눈을 깜빡이며 눈동자를 굴렀다. 지훈의 품에 승철이 안겨있었다. 분홍색 니트를 입은 지훈의 어깨 위로는 제가 덮은 이불이 같이 덮여 있었다.

왜 네가 있어?”

형 아프잖아요.”

꿈은 아닌가 보다. 지훈이가 너무 생생하다.

괜찮은데.”

입에 침이나 바르고 말해요.”

입술에 침을 발랐다. 지훈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내가 애를 키우는 건지 센티넬을 맡은 건지 모르겠어.”

말 더럽게 안 들어요. 승철은 지훈의 볼에 손을 올렸다. 진짜다. 승철의 눈동자가 반ᄍᆞᆨ인다. 열이 내리긴 했지만 아직 뜨끈한 손바닥이 찬기가 남은 지훈의 볼을 따뜻하게 데웠다.

동해는 나랑 가자.”

당연하죠.”

돈은 내가 다 낼게.”

짐도 형이 들어요.”

.”

내 여행 형이 다 책임져요.”

.”

더 자요. 얼굴을 당기는 힘이 부드럽다. 아직 욱신거리는 머리가 울릴까, 그래서 아파할까봐 신경을 쓴다. 그 다정함에 승철은 지훈을 끌어안았다. 스웨터에서 나는 지훈의 냄새에 깊게 숨을 마쉰다.

너 언제 어른 되지.”

“2달만 참아요.”

너무 길다. 얼른 너 먹고 싶은데.”

스웨터 위로 이를 세워 가슴을 물었다. 지훈은 하지 말라며 승철의 머리를 가볍게 잡아당겼다.

지금 먹으면 안 돼?”

아직 미자라 형 은팔찌 차요.”

요즘 은팔찌 갖고 싶어지긴 했는데.”

개소리 하지 마요.”

꿈에서 나타난 분홍색 솜뭉치 개가 갑자기 떠오른다.

그런데 네가 위야?”

.”

그래?”

그럼 안 아프게 해줘. 등을 두들긴다. 큰 손에 몸이 힘이 쭉 빠진다. 잔잔한 파동에 거친 파도는 잔잔한 수면이 됐다. 동동 배는 용케 가라앉지 않고 순항중이다. 몸의 힘이 쭉 빠진다. 기절한 몸은 점차 평안해진다. 오직 너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평온함. 승철은 지훈의 어깨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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