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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쿱] 팀장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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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쿱] 팀장님

다몬드 2016. 10. 30. 00:49

 

 

[지훈승철/우쿱] 팀장님

 

 

 

w.안다미로

 

 

 

무역회사 [플레디스] 영업 12팀의 이 팀장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완벽주의자다. 팀장이라는 직책을 맡기엔 어린 나이와 평균보다 조금 작은 덩치를 가졌지만 긴다난다한다는 우수한 사람들 틈에서 못하는 거 없이 톡톡히 존재를 드러내며 제 몫을 해냈다. 나이가 더 많고 배도 두둑한, 이 바닥에서 사회생활 좀 해 본 거친 무리들의 기에 주눅 들지 않았고 맞으면 밀고 나갔고 맞지 않으면 가차 없이 끊어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합당하지 않고 옳은 길이 아니라면 그런데 그것을 고집하며 구렁텅이에 빠지려는 멍청이가 있으면 빠른 속도로 던지는 야구공처럼 묵직한 타격을 가했다.

스트라이크! 받는 데미지는 어마어마했다. 이 팀장의 겉모습에 만만하게 생각했다가 다들 피를 봤다. 회장 믿고 뻗대는 비서부터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입사원까지. 회장님도 한 방 맞아볼 정도였으니 그에게서 맞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는 게 빠를 정도였다. 이 팀장은 윗사람이라고 눈치 보지 않았고 아랫사람이라고 우습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그런 그에게 데였던 사람들 중 일부분이 상처받은 자존심 때문에 이 팀장을 몹시도 싫어했다. 조금이라도 단점을 발견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켰다. 여태껏 받아온 수모를 모두 되갚으리라, 그가 굴욕을 느낄 수 있게. 수치심에 주먹을 말아 쥐며 울분에 차도록 짓밟고 씹어서 나만큼 아니 그보다 더하게 뭉개주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삼 년이 흐르도록 이 팀장에게선 약점 따위 발견되지 않았다(다행이도). 보고서에 오타도 없는 완벽한 이 팀장의 실수를 기다리는 건 죽은 지 오래된 사막에 오지 않은 비를 기다리는 것처럼 만연하고 무의미했지만 그러나 질긴 그들은 기다렸다. 그의 밑에서 그의 능력에 발끝도 미치지 못하는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으니까. 숨죽이며 그 날이 오도록 기다렸다.

그리고 그들의 기도를 들어 주는지,

드디어 그날이 왔다.

 

 

그날은 어제와 같았고 내일도 같은 평범한 날이었다. 일주일 전 서울 일부분이 잠길 정도로 폭우가 왔었다는 걸 모를 만큼 날씨가 맑았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 위로 칼같이 예리하고 날카로운 햇빛이 쏟아져 땅이 바싹 데워지고 있을 때였다. 최근 무역회사 플레디스에서 가장 핫한 뉴스이자 일순위로 중요하게 여기는 (중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기업과의 컨택을 성공한 영업 2팀의 사무실이 바깥과 다르게 분위기가 냉랭했다. 모든 직원들이 출근을 마치고 본인 자리에서 제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940분을 가리키는 시계와 빈 팀장 책상을 초조하게 번갈아보고 있었다. 핸드폰을 껐다 켜고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초조하게 입술을 물어뜯었다. 괜히 주변을 둘러보며 그들이 부산스러운 이유는 이 팀장이 40분째 출근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폭우로 서울이 잠기고 폭설로 교통이 마비되어도 어떻게든 회사에 출근했던, 한 번도 지각한 적도 결근한 적도 없던 사람이 40분 째 전화도 없이 깜깜무소식이었다. 무슨 일일까? 오늘 아침 교통은 다른 평일처럼 막혔고 큰 사고도 없었다. 본인 차를 끌고 다니는 이 팀장이 막힌 도로에 지각할 가능성은 없었다. 더욱이 출근 30분 전에 일찍 회사에 와 있는 아침잠 없는 부지런한 이 팀장이 아무리 도로에 서 있다 해도 출근 시간이 40분이 넘도록 나타나지 않는 건 말이 안됐다. 그럼 아파서 못 오시나? 최대리가 조용히 말했다. 잔병치레 없는 튼튼한 이 팀장님이지만 죽을 만큼 아파서 오지 못 한 걸지도 몰라. 하지만 곧 최대리 포함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재작년 전국적으로 유행했던 독감에 걸려 죽을 뻔 했으면서도 꿋꿋이 의자에 앉아있던 게 이 팀장이었고 작년엔 맹장을 참고 참다가 쓰러져 실려 간 적이 있던 이 팀장이었다. 피를 보지 않는 이상 네 발로 기어서라도 올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이것도 기각. 그럼 도대체 왜 늦는 거지?

드디어 회사를 그만두려나보지.“

이 대리의 발언은 모두 흘러듣는다. 어느 것도 정답이 되지 못한 채 시간은 흐르고 답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아직도 입니까?“

10분전에 오던 최 부장이 또 왔다. 10시에 있는 영업 1부 회의 때문이었다. 이번 중국기업과의 계약은 과장 보태서 플레디스의 미래를 좌지우지 할 정도로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성공만 한다면, 계약을 따내기만 한다면 대기업 문턱에서 발을 구르던 플레디스가 드디어 문턱을 넘어서 대기업에 합류할 수 있게 된다. 곳곳에서 러브콜을 던지던 중국 땅에 플레디스의 깃발을 꽂을 수 있다(회장의 표현이다) 특히 이번 대기업은 다른 수많은 기업들 중에서 플레디스를 선택했다. 숱한 거절에도 포기하지 않고 설득했던 이 팀장의 열정과 끈기에 감동했다며 닫힌 문을 열어준 것이다. 때문에 지금 회사는 회장부터 부장, 대리, 사원까지 모두 이 일에 매달려있다. 계약만 하면 끝나는 중요한 마지막 단계 전 완벽한 마무리를 위한 회의를 앞두고 총 책임자인 이 팀장만이 자리를 비웠다. 회의에 들어가기 전 물어볼 것이 있어서 왔는데 긴 시계바늘이 8에 다다르도록 오지 않는 이 팀장에 부장과 직원 모두 속이 말랐다.

이 팀장님 아직도 안 왔어요?“

상사들의 눈치에 이 팀장이 주차하는 실외 주차장으로 달려 나온 신입사원 김 씨가 주차관리요원에게 물었다.

. 코빼기도 안보입니다.“

이제 55분인데.. 어디 계신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발을 동동 구르다 회사 정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디서 오든 결국 이 문을 통과해야 하니까 고개를 쭉 내밀어 차가 들어오는 입구를 쳐다보았다. 개미 한 마리 없었다.

♩♬♬♪♩

그 사이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이 울린다. 사수다. 그쪽도 초조한 모양이다. 왜 제가 죄인처럼 마음이 찔리는지 김 씨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전화를 들었다.

왔어요?!!!“

과에서 가장 팀장님 다음으로 조용하고 나긋한 선배가 큰 소리로 외친다. 김 씨는 다시 침을 삼켰다.

안 왔어요.“

지금 55분이라고!!!“

김 씨는 죄송합니다, 라고 나올 뻔했다. 간절한 저쪽 외침에 제가 다 미안한 거다. 가을이 되면서 들뜬 입술을 물어뜯었다. 하얗게 뜬 각질이 이에 마구 뜯겼다. 돈가스 고기를 다지는 망치가 심장을 다졌다. 퍽퍽퍽. 연약한 심장은 각질처럼 흉악하게 뜯겨진다.

어떡하지, 어떡하니. 지금 회장님까지 내려오셨어.“

목소리가 확 작아진다. 대신 말의 속도는 아까보다 빠르다. 회장님이라는 단어에 김 씨의 심장은 라이터 불에 화르륵 탔다. 핸드폰을 든 팔이 뻐근했다. 풍채가 좋으신 회장님은 호탕하신 분이지만 호탕한 만큼 화낼 때도 불같아서 이 팀장님이 아무리 우수하고 실력 있는 인재라 해도 회의장에 나타나지 않으면 충분히 이팀장의 마른 모가지를 자를 사람이었다. 최근 서울로 집을 이사하며 대출을 받았다는(선배들 대화를 엿들었다) 이 팀장님 사정에 지금 잘리면 빚도 못 갚고 빈털터리가 될 텐데. 아직 나이도 창창한데 벌써 신용불랑자 되면 어떡해. 걱정이 들었다. 정신없이 양쪽으로 왔다갔다하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이제 시간은 3분 남았다. 전화가 또 왔다. 최 부장님이었다. 김 씨의 심장은 이제 남아있지 않았다.

여ㅂ

이 팀장 아직도 안 왔습니까?!“

귀 아파. 트인 정문에 꽉꽉 들어차도록 울리는 고함소리에 급하게 폰을 멀리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놀라 멈추다 다시 걸음을 옮겼다. 김 씨는 얼얼한 귀를 손으로 문지르며 조심히 폰을 귀에 댔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정신없이 쏟아내신다. 김 씨는 네, , 죄송합니다. 결국 이 팀장을 대신해 허리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한참을 욕을 쏟아서야 진정된 최 부장은 그래서 여전히 없습니까? 목을 가다듬으며 물었다. 김 씨는 팔을 힘없이 떨어뜨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

아ㅈ

, 이 팀장입니다.“

순식간이었다. 뒤에서 큰 손이 갑자기 나타나더니 김 씨의 핸드폰을 가져갔다. 폰을 빼앗기고 놀라 뒤를 돌다가 반가운 인물에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 팀장은 주저앉은 김 씨를 눈으로만 쫓으며 네네 대답을 하고 있었다.

이 팀장님 왜 이제서 오셨어요. 어디서 오신 거예요? 차는요? 버스타고 오셨어요? 옷은 왜 그래요?“

얼핏 본 주차장에 이 팀장 차는 없었다. 그럼에도 나타난 건 버스를 타고 왔다는 거다. 여기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정류장은 주차장을 통해서 가로지르면 2분 안에 도착이다. 뛰면 1. 핸드폰을 끊고 돌려주는 이 팀장의 숨소리가 거칠고 크다. 옷도 얌전하지 않다. 와이셔츠 한쪽은 바지 안에, 한쪽은 밖으로 튀어나왔고 넥타이는 묶여서 흉골까지 죽 내려왔다. 와이셔츠 위 단추는 불량하게 2개가 풀어졌고 왁스칠은 안하지만 얌전했던 머리는 바람 때문에 볼륨이 들어간 상태였다.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야 회의요!!회의!! 뛰어요! 이 팀장님!!“

김 씨의 재촉에 이 팀장은 다시 뛴다. 회사 안 대리석 바닥에 찰지게 울리는 뜀박질 소리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위에 있는 엘리베이터대신 계단을 뛰어올라가면서 김 씨는 아픈 옆구리를 꾹 쥐며 한참 위에 있는 이 팀장에게 외쳤다.

제 폰은 꼭 주셔야합니다!!!“

김 씨의 폰이 이 팀장 오른손에 있었다.

 

 

 

회의가 끝난 1130. 사무실로 돌아온 직원들의 목소리가 시끄럽다. 정문에서 심장을 잃은 신입사원 김 씨부터 불량한 최 대리까지 속삭이며 팀장을 힐끔대는 소음이 밤바다 파도소리처럼 웅성댄다. 같은 일하고 돈 받는 직원들인데 사무실을 따로 주는 건 옳지 않다는 원칙에 부장실도 없이 팀끼리 묶여 있는 좁고 긴 책상이 테트리스처럼 얽혀있는 맨 윗자리에 어느새 단정해진 차림의 이 팀장이 힘을 뺀 채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회의장에 도착해 빠르게 옷을 정리하고 회의장으로 들어간 이 팀장은 마치 아까 온 사람처럼 여유로운 미소를 띠며 회의를 이끌었다. 목까지 차오르는 숨을 냉수로 끄며 넓은 회의장에 가득 찬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실수 없이 회의를 진행했다. 모두들 이 팀장이 지각을 했고 회의장도 겨우 들어섰다는 걸 잊을 만큼 훌륭했다. 회의가 다 끝나고 받은 질문시간에 지적하는 이 없이(도저히 반박할 것이 없었다) 박수를 받고 끝났는데.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딱딱하게 굳은 얼굴의 최 부장이 이 팀장을 불렀다. 부장실이 없다보니 사무실 구석에 있는 탕비실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블라인드를 틈 없이 치며 십 분가량을 그 안에 있었다. 소리가 들리진 않았지만 가끔 큰소리가 몇 번 나 귀를 쫑긋거리며 신경을 쏟던 직원들의 뒷목을 서늘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 팀장을 예뻐하는 최 부장이었지만 똑같이 일에서는 냉정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인지라 지각한 이 팀장을 호되게 혼낼 것이라. 여러 팀이 같이 쓰는 탕비실이라는 장소 때문에 다른 팀들도 듣고 볼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그게 최 부장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걸 아니까 다들 입을 다문다. 어디선가 꼬숩다 라는 작은 소리가 들렸지만 모두들 눈치를 주며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곧 불편한 얼굴을 숨기지 않으며 밖으로 나서는 부장과 피곤한 얼굴로 이 팀장이 나온다. 안 보는 척 힐끔대는 시선이 이 팀장의 몸 이곳저곳을 찌른다. 입사 이래 지각으로 상사에게 까인 적이 처음이라 시선들이 불편했다. 자신의 자부심 중 하나였던 무결석 무지각이라는 것이 이번 일로 사라져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누군가 고작 그런 일로 그러냐 비아냥댔지만 자신의 능력에 의문을 품는 자신에겐 유일한 자랑거리였다. 하지만 오늘 자랑거리에 생채기가 생겼다. 이걸 가리기 위해선 배로 일해야 했다. 감았던 눈을 떠 정전된 모니터를 켰다. 쨍한 바탕화면엔 밀린 쪽지와 연락이 잔뜩 쌓여있었다. 굳은 손가락을 흔들어 풀고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545. 키보드에서 내려오지 않았던 손가락 연주가 멈추고 모니터 밖으로 시선을 던진다. 길고 가는 눈이 좁고 긴 사무실을 훑는다. 그 눈길에 조용한 사무실이 요란해진다. 아무렇게나 두들기는 키보드 소리와 말을 듣지 않는 마우스를 거칠게 흔드는 소리가 동시에 들려온다. 중요한 일이 코앞에 있는데 한심하게 놀고 있는 건 아닌지 감시하는 눈동자가 무서운 모양이다. 제 직원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오늘의 이 팀장, 이지훈은 예민하다. 지각하느냐 밀린 업무를 오늘 내 처리해야했고 덕분에 점심도 거른 채(회사 앞 인기 있는 백반 집에서 오늘 특선으로 나온 불고기를 놓친 것에 지훈은 울분을 삼켰다)음울한 오오라를 뿜으며 오늘 3번이나 직원을 불렀다.

올리라 했던 보고서가 안 와서, 보고서 자료가 옛날 거라서, 아무것도 몰라서. 3개월 된 신입사원 김씨-김 수빈 씨는 신입 사원이라해도 봐주는 거 없이 지적하는 이 팀장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아직..모릅니다.“

기죽은 목소리에 3개월이나 지났습니다. 아직도 모릅니까? 되묻는 질문이 날카롭게 가슴을 후벼 판다. 쌍까풀 없는 긴 눈에 신입은 점점 작아져 꼬맹이가 된다. 키도 덩치도 팀장보다 컸지만 팀장 자리에 앉는 이 팀장의 카리스마는 엄마보다 무서웠다. 영업2부 김 부장님이나 인사부 문 팀장님처럼 욕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며 막말하는 타입이 차라리 좋았다. 그런 사람은 사람이 아니니까 무시하면 되지. 날선 말투로 힐난하거나 비아냥대는 거 없이 잘못한 점만 콕콕 찝어서 지적한다. 군더더기도 없이, 돌리는 거 없이 깔끔하게 던지는 직구에 변명할 말도 없다.

가서 공부하세요.“

모니터로 시선을 옮기는 팀장님께 인사를 하고 돌아온 수빈 씨에게 상사들이 동정어린 눈빛을 보낸다.

오늘따라 팀장님이 예민하시네.“

사수인 선배가 어깨를 두들긴다. 팀장눈치 보느냐 소심한 터치였지만 고마웠다.

나쁜 뜻으로 한 건 아니니까 괜찮아요.“

그래도 가슴은 좀 아프네요. 그 말은 삼켰다.

그래. 팀장님이 저래보여도 다정하시고 좋은 분이시지. 오늘 지적한 부분도 다 수빈 씨 위해서 그런 거니까 꼭 공부해.“

.“

싫은 소리지만 결국엔 다 살이 되고 피가 된다는 거 미리 겪은 선배의 충고를 받는다. 시무룩한 신입의 얼굴이 바짝 각오를 모아 얼굴을 핀다.

 

팀장님 이거 드세요.“

공부하고 있었던 신입이 이 팀장 책상에 초코렛을 올렸다. 보기만 해도 입이 단 해외 브랜드였다. 오늘 하루 종일 펴지지 않았던 지훈의 미간 주름이 깊어진다.

이걸 왜.“

팀장님 오늘 점심 못 드셨잖아요. 그래서 저 배가 고프면 일이 잘 안되니까 이거라도 드시고 힘내시라고요.“

지훈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제 할 말만 급하게 하고 본인 자리로 사라진다. 지훈은 작아지는 수빈 씨의 등에서 자기들끼리 뭉친 초코렛 더미로 시선을 돌렸다. 군것질 잘 안하고 단 거를 좋아하지 않아 평소엔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거지만 아침점심 모두 거른 빈속은 초코렛을 먹겠다며 꼬르륵- 소화할 준비를 했다. 지훈은 망설이다 하나를 집어 껍질을 깠다. 껍질에서부터 나는 달콤한 냄새가 나쁘지 않았다. 완전히 드러난 흑갈색 덩어리를 집어 입에 넣었다. 혀를 따라 굴러가는 덩어리가 괜찮았다. 맛있었다. 아침부터 펴지지 않았던 지훈의 얼굴이 부드럽게 풀어진다. 음울한 오오라도 옅어진다. 팀장 눈치 보던 직원들이 잘했다며 수빈 씨에게 엄지를 내밀었다.

♩♬♬♪♩

. 플레디스 영업 12팀장 이지훈입니다.“

어느새 다른 껍질을 까던 지훈의 얼굴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식는다. 팀장님 기분도 좋아졌겠다 퇴근시간도 얼마 안 남았겠다 퇴근하고 술 마시자며 신호를 주고 받원 최 대리의 옆구리를 여직원이 쿡 찔러 말린다. ~ 짜증을 내는 대리에게 턱으로 팀장을 가리킨다. 홱 돌린 고개엔 부셔질 듯 전화기를 꽉 쥐는 도깨비 같은 팀장이 있었다.

결론이 뭡니까?“

한 글자씩 스타카토처럼 끊어 뱉는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

숨 섞인 대답이 저 깊은 동굴에서 올라온 바람 같았다. 메마르고 시렸다.

알겠습니다. 확인하고 전화 드리죠.“

큰소리와 함께 전화기가 꺼진다.

최 대리. 김 대리.“

마른세수를 하며 이름을 부른다. 거북이처럼 목을 숨기며 눈치를 보던 두 대리가 황급히 달려온다.

.“

책상 앞에 서서 동시에 대답하는 대리들을 올려다보며 책상에 팔꿈치를 대고 주먹을 쥐어 잡으며 물었다.

어제 제가 시킨 보고서 보냈습니까?“

, 오늘 이 대리님이 보냈습니다.“

이 대리?

수정..했습니까?“

. 어제 팀장님이 말씀하신 부분 다 수정했습니다.“

저한테 확인 받았습니까?“

”.....이 대리님한테 받았습니다.“

목소리가 작아진다.

망할 이 대리. 지훈이 주먹을 제 손바닥에 쳤다. 탁 소리에 두 대리가 흠칫 놀란다. 죄라면 이 대리가 한 팀인게 죄지 이 두 사람이 죄인가. 불쌍했다. 나이가 저랑 엇비슷한 두 사람이 제 눈치를 본다는 게.

알겠습니다. 돌아가세요.“

두 대리가 인사하며 돌아간다. 안도의 한숨을 쉬는 등을 보다가 이 대리님, 다른 사람을 불렀다. 불량한 걸음걸이로 걸어오는 이대리가 다리를 벌려 서며 앞에 선다. 몇 년 째 만년 대리인 이 대리는 시시때때로 지훈의 업무를 넘보는 무례한 짓을 저지르는 문제아였다.

이 대리가 보고서 보냈습니까?“

.“

왜죠?“
그 쪽에서 빨리 보내라는 메일을 보냈고 마침 팀장님도 자리에 안 계셔서 팀장님 대신 제가 보냈습니다.“

보고서 수정 하셨습니까?“

. 문제가 몇 군데 있어서 제가 좀 수정했습니다.“

제 허락 없이요?“

제가 이 팀장님보다 더 오래 이 회사를 다녔습니다. 팀장님 허락 없어도 저 혼자서도 잘합니다.“

그래서 일을 이렇게 망친 겁니까.“

수빈 씨가 팩스로 받은 보고서를 이 대리 앞으로 던졌다. 불쾌한 얼굴을 숨기지 않고 홱 종이를 든 대리는 성질대로 보고서를 거칠게 넘겼다. 이 대리는 회사 내 이 팀장을 아니꼽게 보는 무리 중 대놓고 불평을 쏟는 사람이었다. 하라는 대로 안하고 하지 말라는 거 하고. 머리도 좋지 않고 손도 느려서 그 나이 되도록 만년 대리였고 퇴직권고 일순위인 사람이었지만 잘리지 않은 운 좋은 사람이었다. 소문에 무딘 지훈이었지만 언젠가 들은 소문에서 회사 이사장의 밖에서 나온 자식이라 했다. 회장님과 같이 이 회사를 만들고 같이 고생한 이사장의 자식이어서 회장도 골칫덩어리를 자르지도 못하고 무능력하고 사고만치는 이 대리를 구석으로 보낸 것이라 하는데 여기서도 끊임없이 소란을 만드니 문제였다.

뭐가 문제죠?“

보고서를 책상에 던진다. 신입사원인 수빈 씨가 봐도 엉망인 보고서를 다 봐놓고도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감이 안 온다. 어디까지 멍청한지 몰라서 알 수가 없다. 지훈은 배를 보인 보고서를 저 남자 얼굴에 던지고 싶은 욕구를 참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저쪽 중국 기업에서 이 보고서를 보고 몹시 불쾌하다며 계약을 끊겠다는군요. 자기들을 어떻게 보고 어이없는 가격을 제시하고 요구 한건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계약을 더 이상 진행하지 않겠다며 회...께 직접 전화했답니다.“

노란 이대리 얼굴에 핏기가 사라진다. 노란 얼굴이 조명등처럼 노르스름해진다.

회장님이 책임자를 물어 사표를 받으라 하는군요.“

이사장님도 허락하셨구요. 뒷말을 이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대리가 복도를 달린다. 뒷굽을 구겨 신어 헐렁한 뒤가 바닥과 발바닥을 마구 치며 시끄럽게 군다. 요란한 발소리에 다른 팀들이 짜증을 부린다.

지훈은 고개를 들면 바로 보이는 시계를 봤다. 6. 퇴근시간이었다. 지훈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저를 보는 여러 개의 눈동자가 기대를 품고 저를 보고 있었다. 옆 부서는 아직도 의자에 붙어있었다. 술 약속한 두 대리의 풀죽은 얼굴이 제일 눈에 들어왔다.

퇴근하세요.“

제각기 다른 눈이 똑같이 동그래진다. 볼 때마다 신기하군. 짜증이 치미는 와중에도 그 눈동자들이 귀여워 픽 웃었다.

그만 일하고 다들 퇴근하세요.“

저 그럼 팀장님은..“

십 셀 때까지 남아 있으면 저랑 밤새 야근입니다. 1, 2 “

우당탕. 시끄러운 소리가 한 번에 난다. 옷을 꿰어 입은 직원들이 안녕히 계세요. 허리를 숙이며 우르르 나간다. 콜록. 먼지가 일어 기침을 했다. 5가 채 되기도 전에 텅 빈 사무실에 웃음이 났다. 다들 참 빨라.

카톡

방전돼서 꺼진 핸드폰을 키자마자 알림이 시끄럽게 울린다. 지훈은 소리구멍을 손가락으로 막았다. 옆 부서도 서서히 퇴근준비로 시끄러웠다. 다른 채팅은 무시하고 가장 그립고 반가운 채팅창에 자판을 두들기는 지훈의 얼굴이 좋지 않다.

배고프다.“

네모반듯한 가방을 들고 주린 배를 손으로 쓴다. 계약을 취소한 중국 기업 술 접대를 위해 오늘 저녁을 회사에 바친 샐러리맨 이 팀장의 쓸쓸한 책상 위로 초코렛 빈 껍질이 수북이 쌓였다.

 

 

 

죽을 것 같다. 택시에서 내리고 아파트 문 앞에 서서 벽에 기댔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빈속에 들이부은 양주들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메아리 치고 있는 동굴 가운데 있는 것 같았다. 끊임없이 양쪽에서 울리는 메아리에 어지럽고 토 할거 같은 감각이었다. 이래서 중국이 싫어. 머리를 흔들었다. 중국기업하고 술자리를 가지면 끝은 늘 이랬다. 한국인 못지않게 술을 좋아해서 술 접대를 하고 나면 여러 개의 술이 섞여 속이 시끄러웠다. 초반엔 소주 2잔에 넉다운할 정도로 약했지만 이 일을 하면서 술이 늘어 지금은 정신을 붙잡은 채 집에 들어갈 정도는 됐다. 술 빼기 스킬 덕분인 것도 있다. 그래도 이렇게 술 마시고 나면 며칠을 고생한다. 쓰린 속에 해장국만 마신 채 침대에 널브러져 자기만 하는데. 그래서 되도록 술 좋아하는 최 부장님 선에서 끝냈다. 술을 좋아하고 잘 마시고 사람대하는 거 제일 어려워하는 저 대신 사람 대하는 데 능수능란하시니까. 그런데 하필 오늘 부장님도 중요한 일로 외근을 나갔고 이 계약에 총책임자는 이 팀장, 이지훈 자신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불쾌함으로 등 돌린 중국 바이어를 설득해야했다. 한 번 맘 열기가 어려워 굉장히 공들였고 조심스레 접근해 겨우 문을 열었는데 망할 이 대리 때문에 문이 또 닫혔다. 말주변이 없어서 설득에 자신 없어서 입을 다물고 내민 술잔을 받아 마시기만 했다. 입에 넣자마자 혀부터 뜨겁게 태우는 양주에 눈이 번쩍번쩍했다. 정신을 잃을까 고개를 흔들며 세잔 연속 들이부었다. 마지막 네 잔 땐 잔을 든 손이 떨렸다.

또 마실 건가?“

서툰 한국말로 묻는다.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맘 풀릴 때까지 마시겠습니다.“

다행히 잘 풀렸다. 지훈의 미련하기 짝이 없는 행동 때문인지 몰라도 또박또박 풀린 혀를 단디 잡고 다시 한 번 이 거래에 있어 자신들의 회사에 희망, 그리고 중국 기업이 받는 이익에 대해 설득·설명하는 지훈에게 역시 당신을 못 이긴다며 약속을 지키겠다 했다. 당신들과 거래하겠다는 처음 약속을. 지훈은 뛸 듯이 기뻤다. 이미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해있었지만 지훈은 몇 번이고 중국 바이어에 손을 잡으며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

눼에

혀가 꼬였다.

이 팀장 많이 취했구만.“

귀에 댄 폰을 들어 화면을 봤다. 김 부장, 세 글자에 지훈은 다시 귀를 댔다. 얼굴을 때리며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일은 잘 됐나?“

. 약속 지키겠답니다.“

다행이군.“

지훈은 벽에서 몸을 떼고 비밀번호를 눌렀다. 문이 열리고 깜깜한 아파트 복도에 주황불이 들어온다. 잠잠했던 속이 좌우로 흔들거리며 다시 울렁인다.

오늘 왜 지각했는가?“

지훈은 입을 다물었다.

말하지 않는 걸 보면 내 동생 때문이군. 뭐야. 이번엔 무슨 사고를 쳤어?“

사고 없었습니다.“

매제. 지금은 난 부장이 아니고 형님이니 솔직하게 말해줘.“

그럼 더 말 못합니다.“

하하하. 전화기 너머로 유쾌한 웃음소리가 흘렀다. 운 좋게 1층에 있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으며 567을 한꺼번에 누른 지훈도 따라 웃는다. 제 집에 있는 이가 나이를 먹는다면 이러지 않을까 싶은 낮고 깊은 목소리가 오늘 하루 예민하고 피곤했던 지훈을 안심시켰다.

오늘 점심 못 먹은 것 같은데 속은 괜찮은가? 보아하니 아침도 못 먹은 것 같은데.“

죽을 것 같습니다.“

차는 안 가져왔던데?“

형이 쓴다고 해서요.“

하하하. 오늘 고생한 게 다 동생때문이었구만. 오늘 고생 좀 했으니 가서 동생에게 해장국 좀 해달라고 하게나.“

그렇지 않아도 그럴려구요.“

오늘 하루 고생했으니 위로도 좀 해 달라 하고. ? 어제처럼은 말고.“

형님이 생각하는 어제가 뭔지 몰라도 그런 거 아닙니다.“

그걸 왜 변명하실까. 오해하게.“

띵동- 엘리베이터가 멈춘다. 문이 열린다. 지훈은 벽에 몸을 맡기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오늘 지각한 이유를 알 것 같으니 더 이상 자네를 괴롭히지 않겠네. 오늘 하루 고생했고 중국 기업 맘 돌리게 해줘서 고맙고. 대신 다음부터 주의하게. 지각하지 말고. 아버님 아시면 자네도 힘들지 않은가.“

.“

다시 딱딱한 부장모드로 돌아간 형님에 지훈의 목소리도 바뀐다. 비틀비틀 문에 기대 도어락 뚜껑을 연다. 멜로디 소리와 함께 숫자가 퍼렇게 빛난다.

그럼 이만 끊으마. 내일은 오후 출근해도 되네.“

. ?“

달칵. 문이 열리는 동시에 전화가 끊겼다. 술로 떡이 된 머리가 이해하지 못하고 느리게 움직였다. 뭐라고 했지? 오후..출근이라고? 형님도 참. 문을 열고 들어가며 지훈이 웃었다. 평소라면 괜찮다며 거절했겠지만 오늘은 감사히 받기로 한다. 이 몸 이 정신으로 제 시간에 출근하기에 그 대단한 이지훈도 못할 것 같았다.

쌀쌀한 바깥과 달리 따뜻한 실내에 잠잠했던 술기운이 다시 올라온다. 문에 들어서고 왼쪽으로 꺾어 그대로 직진하면 있는 안방까지 천천히 걸으며 가방을 던지고 넥타이를 풀고 양복을 벗는다. 휘청거리는 불안한 발걸음 뒤로 뱀 허물같이 옷들이 널브러져 있다. 뜨거운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며 안방 문고리를 돌렸다. 열린 문사이로 좋은 냄새가 지훈을 안았다. 지훈의 얼굴이 오늘 처음으로 활짝 펴졌다.

.“

좋아. 좋은 냄새. 좋은 사람. 좋은... 침대로 걸어가 그대로 쓰러졌다. 단단한 몸이 들썩인다. 힘없는 발과 손에 힘을 주어 이불 위에 솟은 몸 위로 올라탄다.

, 뭐야. 아윽. , , 이지훈..!“

잠에 취한 어눌한 발음으로 올라간 지훈의 어깨를 민다. 미는 손을 밀치고 걸리적거리는 이불을 발로 차고 얇은 티셔츠를 입은 몸을 꼭 끌어안았다. 따뜻한 살 냄새가 났다. 따뜻한 몸이 바람맞은 몸을 데웠다. 따뜻한 최승철이 힘든 이지훈을 위로한다.

 

내가 형 때문에 살아.

 

숨을 깊게 들이마시다 천천히 뱉었다. 행복이 여기에 있었다.

이지훈. , 지훈아. 어휴. 술냄새.“

잠에 덜 깬 채로 무거운 지훈을 깨우다 술냄새에 코를 막는다.

살 것 같다.“

승철의 가슴에 얼굴을 비비며 중얼거린다. 그 작은 소리를 승철이 용케 듣는다. 시끄럽게 지훈을 깨우던 행동을 멈추고 한숨을 푹 쉬며 손과 발로 이불을 끌어당겨 지훈의 몸 위로 덮는다.

고생했어.“

등을 두들겼다. 힘이 들어갔던 지훈의 몸에 힘이 빠진다.

오늘 진짜 힘들었어요.“

힘든 소리 잘 안하는 지훈이라서 승철은 마음이 아팠다. 그래, 고생했네. 고개를 든 지훈의 얼굴이 어둠에 익숙한 승철의 눈에 들어왔다. 어제 밤새 승철을 괴롭히고 조금 좋아진 얼굴이 엉망이었다. 아버지가 이 집에 사위가 데려면, 하면서 떠넘긴 일을 군말 없이 해내는 지훈이가 얼마나 신경을 쓰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아니까 그러면서도 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 웃는 지훈에게 말도 못하고 뒤에서 지켜만 봤던 터라 가슴이 메었다. 망할 아버지. 망할 회장님. 승철은 지훈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잡았다. 목에 힘을 주어 고개를 들어 올리고 얼굴을 당겨 뽀뽀를 했다. . 닿았던 입술이 떨어지고 지훈이 떨어진 입술을 따라와 키스가 됐다. 입안으로 밀고 들어와 축축한 혀를 얽힌다. 지훈의 타액이 넘어와 승철과 섞여 목구멍 뒤로 넘어갔다. 쌉싸름한 술맛에 인상을 찡그렸다. 어깨를 밀었지만 지훈은 꼼ᄍᆞᆨ하지 않았다.

안 돼.“

가슴을 더듬는 지훈의 손을 잡았다. 고개를 돌려 키스를 떼자 형 애끓는 소리를 낸다.

너 취했고 나 아직 아파. 그러니까 자자. ? 자자, 지훈아.“

조금만..“

안 돼.“

섹스에 담백한 편이면서 스트레스가 심하게 쌓일 땐 욕정이 폭발하는지 승철이 지쳐 잠들 때까지 욕구를 푼다. 최근 큰일을 맡았다면서 힘들어하길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어제 느닷없이 씻고 있던 샤워실에 들어와 시작한 섹스는 날이 새도록 승철을 울리고 괴롭혔다. 목이 새고 손가락도 까딱할 힘이 없을 정도로 쥐어짜져서야 끝난 행위는 늦게 잠든 지훈의 지각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아직 체력이 회복되지 않는 상태에서 또 무리하기 싫었다. 지훈을 이틀 지각 시킬 순 없고. 그러니 자자.

형님이 내일 오후 출근..“

그럼 푹 잘 수 있겠네. 자 자자.“

지훈의 한 팔을 잡아 당겨 바닥에 눕혔다. 그리고 품에 팔다리로 몸을 감싸 안았다. 바스락 거리며 벗어나려던 몸은 술기운에 얼마 못 가 힘을 잃고 잠잠해졌다. 팔에 힘을 풀고 아래를 보자 지훈이 눈을 감고 있었다.

일 다 끝나면 재밌게 놀아줄게. 널 위한 이벤트도 준비했으니까..“

약속이에요.“

. 약속.“

승철이 지훈의 정수리에 짧은 키스를 했다. 지훈이 고개를 들어 승철의 입술에 입술을 붙인다.

잘 자요.“

 

 

 

어제처럼 똑같은 날씨다. 출근한 직원들은 이 팀장의 책상부터 훑는다. 오늘도 텅 빈 책상에 설마, 걱정되는 마음은 최 부장님이 나타나 이 팀장은 오후 출근하라 했어요. 어제 중국 바이어 술 접대 하느냐 무리해서 제가 쉬라 했습니다. 그 말에 안심했다. 한 명씩 채워진 사무실은 어제처럼 흐른다. 팀장이 없어도 사무실은 무리 없다. 말썽꾸러기가 조용해서겠지. 운 좋게 잘리지 않았지만 눈이 퉁퉁 부은 말썽꾸러기는 제 몫의 일을 하고 있다. 좋은 변화다. 다들 눈짓으로 대화를 하며 픽 웃는다. 넓은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온다. 날카로운 칼날이 창문에 부딪혀 깨져 노란 가루가 되어 날린다. 나풀나풀 나는 가루는 신입 사원 머리와 이 대리 코 끝을 지나쳐 텅 빈 이 팀장님 책상에 가라앉는다. 노란 가루 아래로 까진 초코렛 껍질이 동그랗게 모여 있었다.

 

 

 

 

 

 

 

 

 

 

 

 

 

 

 

 

 

 

 

 

 

 

+팀장님 단어에 꽂혀 썼는데 정작 우쿱은 분량이 매우 적었다는........

노잼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