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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쿱] 하얀호랑이후니x검은곰처리 9편(18.5.20 최종수정) 본문

트윗썰모음/읒랑곰철

[우쿱] 하얀호랑이후니x검은곰처리 9편(18.5.20 최종수정)

다몬드 2018. 5. 20. 20:46

 

최사원에서 최대리가 되고 중딩에서 고딩이 된 지훈이. 벌이는 조금 나아졌고 일복은 미어터져서 오늘도 못 내는 사직서를 품에 안은 채 출근하는 승철에게 지훈은 눈도 다 못 뜨고 마중함.

차 조심하고 사람조심하고.

, 내가 할 소리거든? 너나 졸지 말고 사람 조심하고 차 조심하세요.

상사가 괴롭히면 문자해

공부하는 놈한테 무슨... 내가 알아서 해. , 간다. 수업 중에 졸지 말고 알았지?

응응

승철은 손잡이를 비틀어 문을 열고 나갈 때까지 지훈이한테 잔소리함. 내용이야 수업 잘 들어라 밥 꼬박꼬박 챙겨먹어라 차조심해라 같은 시답잖은 내용뿐이지만 열손가락 가까이 다 되도록 키운 아들 이지훈을 보면 걱정이 멈추지 않아 가만있을 수가 없음. 키가 커(크흠)지고 머리도 굵어지고 몸에 털도 난 성인이 됐지만 부모 눈에는 자녀가 오십 살 먹어도 여전히 세 살이지. 지훈은 아직 민증도 안 나왔으니 올려다보는 눈높이가 달라졌다 해도 여전히 한없이 약하고 어렸던 새끼 고양이임.

문이 닫히고 엘레베이터에 올라타면서 승철은 습관처럼 폰을 들어 가장 첫 번째에 있는 메세지를 켬. 그리곤 자판을 꾹꾹 눌러 담아 쓴다. 승철을 보내고 부엌에 앉아 먹다만 밥을 마저 푸던 지훈이 띠링 울리는 폰에 조금 짜증나고 귀찮은 그러나 웃는 얼굴로 폰을 확인함. 거기엔

오늘도 아자 아자! 힘내. 사랑한다♥」

라 보낸 승철의 메시지가 화면 가득 채움. 오늘 날짜가 찍힌 풍선 위로 비슷한 내용에 전날의 메시지가 한가득이야. 지훈은 언제나처럼 불끈 힘내는 이모티콘 하나 보냄. 더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못하겠음. 매일 보고 항상 함께하니까 이런 낯간지러운 대화를 주고받기 창피하고 부끄러움. 행동으론 할 수 있겠는데 말로는 못하겠음. 지훈이 성격도 성격이지만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기가 낯설고 창피한 고딩이라서 그래. 부끄러움 많이 탈 나이지. 승철은 이해해. 안 삐지진 않지만 그럴 수 있지. 그래서 그 이모티콘 하나에 오늘도 열심히 기합을 넣음. 아자! 나도 파이팅. 우리 지훈이 먹여 살리려면 더 열심히 일해야지. 이겨 내자. 파이팅!

여기서 포인트. 돈은 지훈이가 더 많이 벎. 이미 컴퓨터 특히 프로그램으로 유명해진 지훈이라 여기저기서 받은 의뢰로 승철의 월급을 웃돎. 꼭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컴퓨터 이것저것 눌러보며 터득한 기술로 자기 용돈은 버는 애라 승철이 편하게 일해도 됨. 하지만 부모의 마음이라고. 지훈이 돈은 오롯이 지훈이를 위해 쓰여야지. 조금이라도 지훈이 돈은 건들지 않음. 나중에 성인이 되어 독립할 때 지훈이 앞날을 위해 쓰여야하니까.

그래서 승철은 열심히 저축한다. 성장중인 지훈이 먹일 음식 값 제외하고 모두 통장에 넣음. 부모의 돈은 자식의 돈이 될 수 있어도 자식의 돈은 부모의 돈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승철은 자기도 보태겠다는 지훈을 거절하고 대출로 새 집으로 이사 옴. 원룸이었던 전 자취방에서 방 2개짜리에 거실이 넓은 큰 집으로. 전 계약이 끝난 탓도 있지만 지훈이 방 만들어줄려고 그랬음. 청소년 시기에 아이들은 자기만의 공간을 찾기 시작하고 특히 고양이 과는 자기 영역을 매우 중요시 여겨. 전 집은 지훈의 단독 공간을 만들어 줄 수 없어서 이사를 결심함. 그래서 집 알아볼 때 방 2개짜리를 우선순위로 두었고 다행히 괜찮은 지금 집을 찾을 수 있었음.

오늘부터 여기가 우리집이야

혼자 방을 알아보고 두 번째로 지훈과 같이 간 날. 호기심 서린 눈으로 여기저기 집안을 둘러보는 지훈을 바라본 승철이. 조금 오래됐지만 전 주인이 깨끗하게 써서 거의 새 집이라 지훈이 좋다 함. 흘리듯 뱉은 그 한마디에 승철이 가슴이 벅차겠지. 아닌 척 해도 속으로 많이 걱정했는데 다행히 지훈 맘에 들었음. 공간을 중요시 여기는 만큼 익숙한 공간이 아니면 경계를 하고 적응을 잘 못하는 호랑이라 마음에 안 들면 어쩌지 걱정했던 게 싹 씻겨 내려감. 여기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후보 집도 안 알아봤는데 초조했던 마음 한결 편안해짐. 하지만 그 마음은 얼마 못 감. 여기가 네 방이라며 맞은편 방보다 조금 더 큰 방문을 열며 소개했을 때 지훈이 얼굴이 안 좋아짐.

내 방이라고?

. 너도 이제 고등학교 들어가니까 개인 방이 있어야지. 언제까지고 다 늙은 형이랑 잘 수 없잖아.

그러면서 여기엔 네 침대 들어오고 책상은 어디에 컴퓨터는 사지 않아도 돼지? 이미 사양 빵빵한 노트북 갖고 있는 지훈이었기에 승철은 제 머릿속에 몇 번이고 덧칠하며 그린 가구배치도를 손으로 가리키며 신나게 떠듦. 그런 승철의 입을 다물게 한 건 찬바람 부는 지훈의 한마디였음.

방 따위 필요 없어. 언제 내가 형한테 내 방을 달라고 했어?

설원 위를 유유히 걸어가는 설호처럼 시린 음성과 날 선 태도에 승철은 당황함. 요구하지 않았지. 하지만.

너 고등학생이고 성인이 다 되가니까 필요할거야.

필요 없어. 없으니까 그렇게 알아.

다들 그랬음. 너랑 너무 오래 붙어있어서 떨어져 지내기 겁나한다고. 엄마가 그랬고 형이 그랬고 정한과 지수가 그랬음. 그 이후로 새집이나 이사는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평소처럼 대하는 지훈 때문에 승철은 고민이 깊어감. 집은 이미 계약했고 돈도 일부 선납했음. 대출도 다 알아봤고 도장 찍고 이사만 가면 되는 일이야. 하지만 지훈이 그렇게 가기 싫으면 손해 봤다 생각하고 파기할 수 있어. 그래도 승철은 그 집이 너무 맘에 들었고 무엇보다 여전히 지훈을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 생각하기 때문에 결정이 쉽게 꺾이지 않았음.

웅 씨 고집 도진다, .

고집이지. 지훈은 필요 없다 말했는데 내가 가지라고 떠미니까. 하지만 그래. 승철은 침대에 앉아 지훈의 손을 꾹 붙잡으며 말했음.

네가 정 싫다면 강요 안할게. 그렇지만 이사는 갈 거야.

많은 말을 해야 했지만 더 이상 입은 열리지 않았음. 지훈은 할 수 없이 승철 손을 잡고 지금의 집으로 이사함. 받아들이는 줄 알았어. 하지만 호 씨 고집도 만만치 않아 지훈의 방은 목적을 잃은 채 게임방이 됐고 승철 방엔 싱글 침대 두개가 붙었음. 왼쪽 어두운 색이 지훈이 침대 오른쪽 밝은 색이 승철이 침댄데 딱히 구분은 두지 않고 누우면 거기가 내 침대임. 이럴 줄 알았으면 이사를 안했어도 될 텐데. 오늘도 월급이 들어오자마자 원금과 이자로 나가는 대출과 생활비에 승철은 헛웃음을 터뜨림.

지훈이한테 도와 달라 해.

어린애한테 어떻게 돈을 달라하냐. 난 못해

지훈이가 너보다 돈 더 벌잖아?

버는 게 문제가 아니야. 나는 지훈이 보호자야. 보호자는 지켜야지

너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은 아니고. 오늘도 거하게 업무를 가득 주고 자리에서 떠나지 않는 상사를 째려보며 승철은 모니터를 보며 한숨을 푹 쉼. 제 시간에 퇴근한 게 언제던가. 대리라는 직급을 달자마자 늘어난 야근에 승철의 한숨과 피곤은 더 깊어감. 오늘도 먼저 자라고 지훈에게 메시지 보내고 굉장히 하기 싫다는 손길로 마우스 딸깍거림. 부장님은 토끼 같은 자식들이 안 보고 싶은가. 틈만 나면 수학경시에서 일등 했다는 딸 자랑과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사고뭉치 아들자랑에 일도 못하게 괴롭히면서 집은 잘 안 가심. 아이들 키우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대나 뭐래나. 돈은 필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게 부모의 애정과 관심인데. 나중에 늙어서 자식과 멀어지고 후회하느니 지금 가정에 충실한 게 좋다고 조언해드리고 싶어. 하지만 승철은 대리일 뿐이고요, 대리는 힘이 없지요. 모니터 아래쪽이 반짝거리면서 뜬 사내 메신저로 오늘도 애들 자는 얼굴만 보겠다는 다른 직원들과 상사 욕을 주고받으며 승철의 마음은 더 무거워짐.

지수야. 우리 결혼할까?

어차피 언젠가 할 결혼이면 지금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오랜만에 겪는 정시퇴근에 고민하다 알콜 콜? 하며 부른 지수에게 승철은 그리 말함.

갑자기?

갑자기는 아니야. 승철이 정시퇴근하고 집 가기 좋은 날에 지훈과 있지 않고 정한과 지수를 부른 이유는 그 말하려고. 그런데 막상 마주치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술잔만 연신 비었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만 주고받고 방향이 달라 먼저 간 정한을 뒤로 하며 버스정류장으로 가다가 말했음. 땅바닥에 시선을 떨구고 걸음을 멈춰서서 한 발로 의미 없는 그림을 그리는 승철에게 다가가 숙인 승철 머리에 손을 얹으며 지수가 입을 염. 왜 겁을 먹었어.

올 거야?

가야지

바쁘잖아

갈 시간은 돼

무리해서 올 필욘 없는데....

어이 나 최 대리야. 이 사회에 길바닥 돌처럼 흔한 게 대리라지만 나 그 정도 권력은 있다? 무리하는 거 아니니까 걱정 말고 담임한테 간다고 말씀드려.

상담시즌이 다가오고 상담참여 용지 아래 적힌 참석에 동그라미를 그리며 지훈은 무리하면서 올 필요 없다 말림. 상담 그까짓 거 안 해도 괜찮은데. 몇 년 전 사회 초년생이라 적응하기 바빠서 승철 엄마가 올 때 빼곤 매해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승철은 미안해서 꼭 참여함. 상담이 지훈이 학교생활은 어떻고 공부는 이러고 늘 똑같은 내용을 반복해도 직접 들으면 마음이 놓여. 상담 끝에 우리 애 잘 부탁합니다, 흔한 인사로 끝나도 편안해지지. 지훈만 불편해. 상담이 뭐라고 승철이 월차를 내고 오니까 지훈 입장에선 기분 좋지 않아. 하지만 승철에게 한 해 가장 중요한 행사임. 별 거 아니어도 담임이 준비한 용지와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승철이가 못 보는 학교 생활하는 지훈이 모습을 간접으로 볼 수 있어서 좋음. 죄책감도 덜하고.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정말 이걸로 괜찮을까. 지훈에게 나 혼자론 부족하지 않을까. 고민들이 한 결 가벼워지거든.

사회생활이 길어지고 나이가 먹으면서 승철은 자신의 부족한 점만 자꾸 눈에 띄어. 주변사람들이 기혼자고 자식이 있으니까 관심을 주지 않아도 귀에 들림. 부모는 저렇구나. 부모는 저렇게 하는 거구나. 자꾸 비교하게 됨. 하나의 비교는 둘이 되고 셋이 되어 차곡차곡 쌓여가. 결국 반복되는 비교는 나는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훈이에겐 부족했구나 나쁜 생각으로 커져가고.

지훈이는 그렇게 생각 안 할 걸.

지수가 말한 것처럼 승철이 아는 지훈은 그런 생각 안 할 거야. 그래서 승철은 말도 못하고 티도 못내 고 혼자 끙끙 앓음. 예전에 지훈이랑 단둘이 살아도 하나도 무섭지 않았는데 지금은 무서워. 겁쟁이가 됐음. 왜냐 물어보면 뭐라 답해야할지 모르겠음. 계절을 타나. 늙어서 그러나. 이유가 뭘까.

언제까지 있을 거냐?

열두시가 되기 전엔 갈게.

순영인 제집마냥 침대에 편히 기대서 만화책을 펼쳐보는 지훈을 보며 머리를 긁음. 학교 끝나면 바로 집 가는 집돌이가 웬일로 자기 집에 놀러온다 싶더니만 침대에 누워 시위중임. 지훈만큼은 아니어도 침대 좋아하고 누워있기 좋아하는 순영인 얼른 제 포근한 잠자리에 누워 침대와 하나가 되고 싶은데 엉덩이 무거운 흰둥이는 떠날 생각을 안 하네. 게임오버가 뜬 모니터화면을 끄면서 순영은 제 조용한 핸드폰을 내려 봄. 연락을 할까 말까. 하면 죽고 안 해도 죽는데 하는 게 나한테 좀 더 이득이지 않을까 저울에다 무게를 재는 중. 그런 순영일 알고 지훈은 허튼짓 마라 으스스하게 뱉음. 초식계 동물이 들었다면 귀 뿅 나타나고 소름이 돋았겠지만 같은 호랑이한텐 심통밖에 안되네요. 에효. 저 고집불통 호랑이. 불만이 있으면 말을 하세요. 입 꾹 다물고 시위한다고 네 형이 알아봐준다니? 7살짜리 애기 호랑아.

너 지수랑 결혼한다며?

씻고 나와서 울린 폰을 받은 승철은 익숙한 음성에 고개만 끄덕임. 그런 승철을 알고 정한은 한숨만 푹.

지수는 한 대?

아니

너 진짜 할 거야?

해야지. 어차피 언젠가 결혼하잖아

그 코흘리개 시절의 청혼을 아직도 믿는 거야?

야아 토끼한텐 아무것도 아니어도 곰한텐 진심이라구.

코흘리개 시절. 지수와 정한과 승철이 골목 구석구석을 뛰어다니며 놀던 때에 승철은 일찍이 제 남다른 힘을 알았음. 자기보다 나이도 많고 힘 쎈 동네 형아랑 싸워도 지지 않아. 거칠고 포악한 곰이 팔 한번 휘두르면 초원의 왕 사자도 널브러짐. 호랑이를 이기고 코뿔소를 이기니 어느새 그 동네엔 승철이 동물의 왕이 됐네. 가장 센 골목대장 반달가슴곰. 양 옆에 선 승철의 친구는 힘 센 곰과 같이 노는 토끼와 사슴이었음. 풀피리 소리가 신기해서 나도 알려줘! 했던 첫 만남에서부터 시작해 차곡차곡 쌓인 우정은 어느 누구도 깨뜨리지 못하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순수한 만큼 본성을 숨기지 못했던 어린 무리들의 괴롭힘에서 승철은 항상 자기 친구들을 힘으로 지켰음. 같이 놀 때는 힘을 조절하지 못해 친구들이 다칠까 늘 조심조심했음. 잊고 상처를 주면 미안해 우는 승철을 달래주는 역할은 정한과 지수였음. 그럴 수 있어. 괜찮아. 승철아. 하나도 안 아파. 착한 친구들.

그러니 승철에게 정한과 지수는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거야. 그나마 토끼인 정한은 자기앞가림 잘하고 자기 몫 잘 챙기는 야무진 아이인데 반해 사슴인 지수는 웃는 얼굴로 다 내주고 사람 좋기만 했음. 착한 마음씨에 쟤 저러다 어디서 당하지 싶어 더 마음이 갔던 승철이. 그게 승철의 코흘리개시절 첫사랑이었음. 지금이야 둘도 없는 친구고 토끼와 짝짜꿍 맞아서 자기 놀리고 웃는 얼굴로 살벌한 말 뱉는 무서운 사슴이지만 그때는 바람에 날아갈까 길가다 부러질까 조마조마했었음. 돌멩이에 넘어져서 바닥에 긁혀 까진 붉은 무릎을 보며 지수에게 내가 평생 지켜줄게 내 옆에 있어 라며 빨간 얼굴로 고백 아닌 고백도 했었음. 그리고 지수는 환히 웃으며 안 지켜줘도 옆에 있어줄게 받아줬고. 생각해보니 그 때도 지수는 씩씩하고 단단한 아이였구나.

그렇게 소소하게 끝났던 고백은 의외의 곳에서 터졌다. 두 사람 혼이 묶였네. 혼이 꽁꽁 묶여서 풀지 못하고 결혼을 해야만 했지. 승철과 지수 양가 뒤집어졌고. 몰랐지. 지수나 승철이나. 어린애들이 뭘 안다고 평생을 걸었겠어. 그냥 제 친구를 지켜주고 싶다라는 마음에 뱉은 게 둘을 묶어버릴 줄은. 빼도 박도 못하게 사실이 됐어. 고민에 고민을 하다 어차피 이렇게 된 일 그냥 결혼시키자는 양가에 약속으로 마무리하며 그렇게 둘은 어른이 됐음.

똑바로 말해, 최승철. 너 무슨 생각 중이야?

누가 홍지수 친구 아니랄까봐 똑같은 소리하네.

태연히 말하며 수건으로 머릴 터는 승철이 답답한지 정한의 목소리가 낮아짐.

너 결혼은 좋아하는 사람이랑 할 거라며. 지수는 좋은 친구지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잖아.

좋은 아빠는 될 거야.

지훈과 싸웠음. 아주 크게. 큰 목소리로 집안이 울리도록 싸웠음. 호랑이 울음통이 크다더니 저렇게까지 낼 수 있구나 싶을 정도로 잔뜩 화가 난 지훈을 처음 봤음. 처음 보는 모습에 놀라 승철은 밖으로 나간 지훈을 잡지 못했고 그날부터 승철은 혼자가 됐음. 승철을 두고 나간 지훈은 친구 집을 떠돌기 시작했고. 지훈이가 가출했다.

엄밀히 따지면 가출은 아님. 잠은 집에서 자. 단지 잠만 잘뿐임. 순영이, 원우, 준휘 세 집을 번갈아가며 늦게까지 민폐 끼치다 어슬렁어슬렁 집에 들어와서 자기 방에서 잠. 자기 방은 필요 없다면서. 지훈은 일부러 보란 듯이 게임방으로 쓰고 있는 작은방에 이불하고 베개만 갖고 가선 불편하게 잠듦. 지훈을 기다리다 피곤에 젖은 승철이 아침에 일어나서 지훈이를 찾으면 백에 백은 바닥에서 불편하게 잠자고 있어 승철은 화나고 답답한 마음을 꿀꺽 삼키며 문을 닫았음. 빈속이 시려 마음이 편하진 않아. 다 나 때문이고 그래. 몇 년 동안 했던 지훈의 출근마중 없이 쓸쓸히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승철은 제 폰을 괜히 껐다 켰다 화면만 괴롭힘. 지훈아 밖이니? 며칠 전 보냈던 마지막 메시지를 몇 번이고 읽다가 그냥 가방에 넣었다.

아 오늘도 존나게 일하기 싫다. 단추 꽉꽉 채워 넥타이를 맨 목을 쓸며 승철은 무거운 마음으로 머리를 쓸어 올림. 상사한테 까이고 일은 안 풀리고 엉망진창인 하루를 반 흘려보내고 내일 서울로 올라오겠다는 엄마문자에 관자놀이가 쿡쿡 쑤심.

딱 기다리고 있어

지수랑 결혼하겠단 제 말에 그 한마디만 뱉고 전화가 끊긴 뒤 온 문자라서 더 무서움. 어차피 상견례하려면 엄마 올라오고 지수 부모님도 만나야하긴 하는데 딱 느낌 오지. 엄마 올라오는 이유가 말 안 들은 미련한 곰탱이 때려잡으러 올라오신다고.

다 널 사랑해서 그래.

다들 날 사랑하지. 지수도 정한이도. 엄마도. 형도. 날 사랑해서 걱정해. 나도 잘 알아. 하지만 안다고 마음이 편하지 않음. 뻔히 수가 보이는 사고를 쳐놓고 제가 수습하겠다며 큰소리치는 중인데 겁먹어서 다리 떠는 곰이 나니까. 약한 모습을 다 들켰는데 안 무섭고 배기겠어.

승철아 나는 네가 솔직했으면 좋겠어.

이보다 더 솔직하라구...?

우리한테 말고. 지훈이한테.

싫어. 이미 별답지 않은 보호잔데 여기서 더 추해지면 너무 밉잖아.

전설을 낳았던 그 때 그 사건. 지훈이가 초등학교 삼학년이던 시절에 공개 수업하던 날, 삼일 전부터 아이들 데리고 예행연습 하셨던 담임은 막상 본 수업 때 긴장해서 발표시켜야할 어린이 말고 지훈이를 콕 집은 실수를 하셨음. 지훈은 여러 명이 손을 들어야 더 좋다며 손만 들라는 선생님 말 잘 들어서 손들다 본의 아니게 발표를 했음.

주제는 가족. 부모들 틈에 서있던 승철은 수업 주제에 걱정했었고 지훈이는 당황한 얼굴로 쭈뼛대며 자리에서 일어났었음. 칠판 앞에 서서 지훈이가 써내린 글을 발표하는 순간 승철의 입이 벌어졌음. 얼굴도 새빨갛게 익어서 지훈이 발표를 끝내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 의자에 앉을 때까지 다물어지지 않았네. 뜨거운 호랑이 진심에 같이 흥분한 어린호랑이들 특히 황호가 수업을 엉망진창 만들며 소란해졌고 승철은 튀어나온 곰 꼬리에 바지 뒤쪽을 가리며 교실에서 도망쳤음.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승철은 공개수업 때 지훈이가 승철을 소개하며 썼던 글처럼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음. 연애편지보다 더 낯 뜨거웠던, 지훈의 입으로 처음 들었던 고백을 승철은 지훈에게 온전히 돌려주고 싶었음. 그러기위해 노력했고 열심히 살았고 그래서 함께했고. 하지만 턱없이 부족해서. 좌절하고 탓하고 괴로워하다 결혼을 결심함. 정답처럼 보였어. 결혼하면 지훈에게 줄 수 있는 행복을 모두 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오해는 짧고 착각은 길지. 정한과 통화가 끝나고 몸을 돌리던 승철은 뒤편에서 흔들리는 동공을 감추지 못하고 결혼을 한다고? 묻는 지훈을 생각하지 못함.

지훈아.

지훈은 불안했음. 이사를 하자는 말보다 이사 와서 생긴 제 방이 무서웠음. 자기를 내쫓는 것 같았음. 다리도 팔도 길어지고 목소리도 변하고 혼현도 짙어져서 이제 어린이가 아니니까 그래서 버리는 거야. 최승철이 없으면 나는 전혀 살 수 없는데. 혼자가 된다. 공포가 밀려왔음.

감사합니다.

상담을 끝마치고 나온 승철은 저 멀리서 안녕하세요 인사하며 달려오는 원우를 만남.

집에 안가고 남아서 뭐해?

학생회 회의가 있어서요.

너 학생회였냐?

안 그렇게 보여도 꽤 모범생입니다만.

허리에 오던 꼬맹이가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커서 말대꾸도 늘었어. 안 예쁜 흑호 엉덩이를 툭 치며 승철은 다른 애들은? 행방을 물음.

준휘네 갔어요.

그러냐?

준휘가 최신 게임기 샀다고 자랑해서 구경하러 간 거니 걱정 안하셔도 돼요

누가 걱정한다니.

지훈이 걱정하고 계시잖아요.

요즘 애들은 독심술을 쓰나. 승철이 민망해하며 귀를 매만짐.

걔 요즘 어때?

잘 지내고 있어요.

밥은 잘 먹고?

세 그릇까지 거뜬하죠.

잠은 아직도 수업시간에 자냐?

allways

어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그게 지훈이의 매력이죠. 한결같은 점.

사람이 좀 변하기도 해야지. 너무 한결같으면 재미없어요.

주머니에서 막대사탕을 꺼내 포장을 뜯으며 원우는 고개를 끄덕임.

좋아하면 닮는다잖아요.

뭐가

곰처럼 구는 점이요.

얼굴이 그게 뭐니.

서울역에 도착했다는 문자에 퇴근하자마자 엄마 모시러 간 승철은 미운 소리 하는 엄마 때문에 오리 입처럼 입술을 삐죽임.

내가 뭐

폭탄을 던져놓고 왜 네가 죽을상이냐고.

만나면 허리를 반으로 분질러줄 심산이었던 엄마는 어두운 얼굴의 승철을 보고 집이나 가자 함. 집 가는 길에 승철은 엄마 몰래 폰이 터져라 지훈에게 연락함. 가출아닌 가출로 집에 잘 안 들어오는 지훈이가 저 때문에 나가서 집이 비어있으면 잠잠한 엄마가 터질지 모름. 수십 통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를 보내며 잔뜩 쌓인 메시지에 무슨 일인가 한번 들여보지 않겠냐며 기도하면서 또 한 번 통화버튼을 누름.

그리고 신은 승철을 버리지 않았다. 딱 엘레베이터 앞에서 지훈과 마주쳤어.

이제 오니?

지훈에게 부드럽게 묻는 엄마에 승철과 지훈 등이 쭈뼛 털이 솟았음.

. 공부하느냐고.

놀다왔겠지

거짓말을 한눈에 꿰뚫어보고 뭐하니 안타고 먼저 탄 엄마 뒤를 따라 연약한 두 짐승은 천천히 발을 옮겼음.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와서 부리나케 집 정리를 하며 나가서 먹자는 승철에게 집 밥이나 차리라며 소파를 차지하는 엄마야. 승철과 지훈은 부엌에서 바쁘게 움직이며 저녁준비를 하기 시작함. 승철은 나가서 먹는 게 더 좋은데 왜 꼭 집에서 먹냐며 궁시렁대며 지훈이 눈치를 봄.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칠 때부터 승철에게 눈길하나 안주고 말도 안거는 지훈이라 선뜻 말 걸기가 그래. 내가 먼저 말걸까. 좀 화도 내고 장난치듯 말 걸면 되는데 요새 분위기가 냉랭했다고 참 그러네. 눈치 보는 승철과 달리 지훈은 저기다 두면 돼? 하며 아무렇지 않고. 김치를 그릇에 담다가 내가 왜 눈치를 봐야해?! 울컥 올라왔지만 부엌에 들어와서 눈으로 혀 찬 엄마때문에 쏙 들어감.

반찬이 하나도 안 줄었다

밖에서 먹는 날이 많으니까 그래

지훈이 잘 먹이고 있지?

그럼. 내가 굶는 한이 있어도 지훈인 꼭 먹여요

말하면 더 챙겨줄 테니까 먹고 싶은 거 있으면 할머니한테 말해. 알겠지

아들한텐 쌀쌀맞고 손주한텐 다정한 엄마에 승철은 또 억울해지네.

집엔 언제 가실 거예요?

내일 지수만나고 가야지

...지수는 왜요

네놈이 친 사고, 사과하러 간다 이놈아. 이미 다 끝난 일을 왜 끄집어내서 여러 사람을 피곤하게 하니!!

일부러 맞은편 사선으로 앉았는데. 엄마의 손은 피할 수가 없어 승철은 고대로 다 맞음. 지훈은 상체만 기울여서 멀찍이 피하곤 말리진 않음.

너 때문에 엄마가 말라죽는다!! 말라죽어!

아아악 엄마!

요리조리 피하다 안돼서 의자에서 완전히 일어남. 더 이상 손이 닿지 않으니 엄마는 크게 숨 뱉으며 차분히 말을 잇겠지.

아유 우리 지수. 그 착한 놈이 괜히 너랑 엮여서 물들고. 결혼도 못할 뻔하고 고생해.

지수 하나도 안 착해. 걔 완전 나쁜..아악! 엄마!!

너는 좀 더 맞아야해!

수저 들고 본격적으로 때리는 엄마를 피해 승철과 엄마는 식탁을 빙빙 돌며 술래잡기를 하고 지훈은 요란한 곰 싸움에 책상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며 갓 지은 밥 위에 스팸 올려 김 싸먹음. 한참 지나서 부엌이 잠잠해지네.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지만 무시하고. 씹는 소리와 그릇 긁히는 소리가 조용하게 어울리는 가운데서 엄마는 밥그릇을 다 비우고 수저를 놓은 뒤 진짜 묻고 싶었던 질문을 던짐.

옛적에 결혼 파기해놓고 왜 이제 와서 지수랑 결혼하려고 하니?

사실 그랬음. 얼떨결에 혼이 묶였던 승철은 어른들에게서 예부터 내려온 전설을 들으며 지수와 묶인 혼은 절대 풀 수 없다고 알았음. 풀려면 인간이 된 곰처럼 마늘과 쑥을 백일동안 먹어야했는데 그걸 어떻게 먹어. 이미 나는 인간인데. 생으로도 못 먹지. 그래서 순수했던 승철은 일편단심 사랑만 믿으며 안일하게 생각하며 넘겼음.

하지만 머리가 커지고 삵 선배에 첫눈에 반하며 마음고생을 심하게 함. 삵 선배에게 향한 마음이 커짐과 함께 지수에게 많이 미안했거든. 위가 벗겨지도록 고생을 하는 승철이 안타까워서 지수는 사실 이거 쉽게 풀린다고 알려줬었음. 운동화 끈처럼 묶였다 풀었다할 수 있다며 푸는 방법을 듣는데 얼마나 허탈했는지. 알면서도 안 알려줬다고 엄마에게 투덜댔음. 어른들은 이제야 알았냐며 깔깔 웃었고 정한도 승철이가 순진한 면이 있죠, 하며 놀렸음. 지수는 개구쟁이처럼 굴었음. 승철만 좀 눈물을 보였네. 정한 말대로 바보처럼 순진한 면모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보름달이 뜨는 밤 두 사람의 묶인 혼을 풀고 삵 선배에게 본격적인 호구가 됐던 승철이가 됐지. 흑역사 낳던 시절과 묶여서 강제로 묻어뒀던 기억을, 잠잠히 지내다 왜 이제 와서 결혼하겠다하니 이해안가지. 정한과 지수만 한 번에 승철의 속내를 꿰뚫어봤다.

왜 겁을 먹었어.

너 무슨 생각중이야?

왜 이제 와서 결혼하려고 하니?

...지훈이에게 가족을 선물하고 싶었어.

승철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홀 엄마 밑에서 자랐음. 그게 외로웠다는 뜻은 아니야. 나에겐 엄마가 있고 형이 있었으니까 아빠의 빈자리는 느낄 수가 없었음. 하지만 지훈인 나, 승철 자신밖에 없음. 서류상 가족 말고. 진짜 가족은 엄마고 아빠이며 형제인 승철 오로지 하나. 젊었을 땐 괜찮았지. 지훈에게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취직하고 회사 다니면서 대리가 되니까 일이 바빠지고 관심을 덜 주게 되면서 비상등이 켜짐. 커가는 지훈이한테 자신만으론 턱없이 부족하단 생각이 싹을 텄어. 더 많이 사랑을 줘야하는데 자신은 점점 늙어가고 시간도 없고 돈도 없음. 가진 건 만성피로에 젖은 몸뚱아리와 대출 낀 이 집뿐. 만약에 무슨 일이 있다면, 혹시 내가 죽는다면 지훈을 지켜줄 방어막이 없음.

승철은 그 부분이 무서웠음. 지훈이 데리고 온 날부터 어렴풋이 가지고 있던 마음이 직원 동료들에 대화에서 가족의 부재를 느끼고 더욱 커지면서 단단해져갔고 덩치를 부풀렸음. 땅에 붙어 자라지 않던 두려움이 죽순처럼 급격하게 자라 승철을 억눌렀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면 하는 약간의 투정에 지수가 얽혔음. 솔직히 막상 던지고 놀랐지만 이왕 이리 됐으니 진짜 결혼이나 하자며 좀 밀고 갔었고. 엄마가 올라오면서 게임 끝났지만 승철에겐 생명줄 이었다, 결혼은.

그 날 밤 어머니에게 작은 방을 내어드리고 게임방으로 쓰는 큰 방에서 이불하나 깔고 나란히 누운 승철과 지훈이. 서로 등을 보인 채 옆으로 누우며 오지 않는 잠에 눈만 말똥말똥. 숨소리로 서로가 자고 있지 않다 알았지만 누가 먼저 입 벌려 말하기가 그래. 끊어질 듯 신경이 날카로워서 건드릴 수가 없어. 움직이지 않고 숨죽이며 어두운 방을 눈으로 훑었지.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승철이가 먼저 지훈쪽으로 몸을 돌림.

지훈아.

반응이 없음. 승철은 가만히 지훈의 굽은 등을 바라보다 입을 염.

애들한테 부모님 얘기를 했다며.

지훈이 몸을 돌림. 깜깜한 어둠에도 놀란 표정이 그려져 승철은 웃었음.

누구한테 들었어.

형한텐 왜 말 안했어?

너가 봐도 형 부모자격 없니?

처음 들었을 땐 속상했고 다음엔 서운했고 그 다음엔 마음이 미었음. 같이 살면서 한 번도 지훈에게 과거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음. 승철은 지훈에게 상처가 될까 묻지 못했고 지훈은... 지훈은 말하기가 싫었음. 기억이 드문드문 잘렸고 말하면 승철이 계속 자길 불쌍히 여길 테니.

사실 지훈은 잘 알고 있어요. 자신이 승철과 이렇게 살 수 있는 이유는 승철이가 버림받고 죽어가던 저를 동정해서 데리고 왔다는 걸. 당장 숨이 끊어질 어린 호랑이를 데리고 와 먹이고 재우고 입히며 사랑으로 보살핀 마음이 티 하나 없이 깨끗한 동정이었음을 너무 잘 알았고 그래서 입을 열 수 없었음.

준휘, 원우, 순영에게 말한 이유는 믿으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끊어질 관계가 아니니까. 그 말은 돌려 말하면 승철과 지훈은 비바람에 흔들리는 거미줄과 같다는 의미지. 튼튼해 보여도 쉽게 끊어질 수 있는 인연.

승철이 지훈의 방이라며 소개했던 날 지훈은 계속 모른 척 했던 공포를 마주했음. 언제든 나는 버림받을 수 있다고. 혼자가 된다는 공포보다 제 세상에 승철이 사라진다는 게 지훈을 자꾸 도망가게 만들었음. 도망간다고 해결되지 않은데. 도망치는 방법 밖에 없었음.

하지만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속도가 붙은 자동차처럼 매섭게 끝을 향해 달려가는데 보지 않는다고 문제가 사라지진 않아. 승철 입에서 결혼이 나온 순간 지훈은 절망했고 피를 토하며 나뒹구는 심장위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단단한 겉껍데기를 뚫고 변태함.

할 수 있다면 열 살 때로 돌아가고 싶어.

지훈의 쉬어 갈라진 목소리에 승철은 얼음물을 끼얹은 것처럼 뒷골이 바짝 서겠지. 지훈의 그 한마디가 무얼 뜻하는지 자신이 무얼 놓치고 있었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난 부모 필요 없어. 형제도 남매도 다. 외롭다 생각한 적 없고 남들과 똑같은 가족을 바란 적도 없어. 나에겐 형이 있으니까.

승철이 전부였고 다였던 열 살의 지훈의 세상은 승철을 통해 구원받았고 승철로 행복해. 그래서 필요하지 않다. 아무 것도. 승철만 몰랐다. 지훈의 세상의 유일한 하나인데. 모르고 승철은 어린애처럼 떼를 썼다. 다 컸는데 하나도 안 컸다.

호랑이가 돼서 곰처럼 미련곰탱이 짓을 해요.

...곰이 뭐 어때서

한결 같이 한 사람만 보는 거. 이제 이년만 더 있으면 딱 십년 째다, .

지훈이 던진 만화책에 몸을 피하며 원우는 바닥에 떨어진 만화책을 지훈에게 던졌음. 던진 만화책을 나이스캐치하고 책을 펼치며 지훈은 침대에 몸을 편히 기댔고 원우만 다시 입을 꾹 다문 지훈을 보며 혀만 찼음.

결혼 하지 마

지수랑은 결혼 안할 거야

아니. 아무하고도 결혼하지 마. 나랑 살아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너만 보고 독수공방하라고?

내가 있는데 뭐가 외로워.

너 결혼 안 할 거야?

할 거야

하면 나 혼자잖아. 너는 결혼하고 나는 결혼하지 말라고? 너만 보면서 네 손주 업어 키우라는 소리야?

형이랑 할 거야

야아 무슨...

나랑 결혼해. 나랑만 해. 나랑 살아.

너는..

좋아해. 진심으로.

팔도 다리도 길어지고 목소리도 낮아지고 머리도 굵어졌어. 다 컸는데도 여전히 지훈의 세상은 승철을 중심으로 돌아가. 아마도 죽을 때까지 중심은 바뀌지 않을 거야. 아니다. 확실히 그럴 거야. 지훈에겐 승철은 그런 사람이니까.

할 수 있다면 더 멋있어질 때 말하고 싶었어. 돈도 많고 직업도 번듯하고 나이도 좀 있어서 승철이 언제든 기댈 수 있는 나무가 되면 좋아했노라고 시처럼 아름답지 못해도 진심을 다해 말하려했음. 나는 아직 너무 어리니까 돈을 벌어서 승철에게 보탬이 되고 싶어도 네 미래를 위해서라는 이유로 거절당하고, 제 도움을 필요 없다는 듯 거절하는승철에 어른이 되길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고 있었지.

하지만 기다림이 정답이 아니었어. 결혼소동이 일어나 할머니가 올라오면서 들은 승철의 속마음에, 승철이 아직도 자신을 공사장 모래더미 위 다 죽어가는 고양이로 기억함을 뼈저리게 깨달았음. 변하지 않는 내 마음처럼 형의 마음도 변함이 없었던 거야. 이것이 깨어지지 않는다면 승철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공포가 십년 동안 쌓았던 단단한 껍질을 벗을 수 있게 만들었음. 비록 어둠에 용기를 냈어야했지만. 알아줬으면 해. 정말로 지훈이 원하는 건 최승철 오로지 형 하나라고.

다음 날 승철은 엄마와 함께 지수에게 사과를 함. 나 때문에 곤란한 일에 끼어들어서 미안하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며 싹싹 비는 승철에게 지수는 웃는 얼굴로 괜찮다고 등을 두들겨줌. 그런 착한 마음에 승철은 더 미안해서 착한 척 하지 말라 마음에도 없는 소리 뱉었다 엄마한테 등짝 맞았음. 지수 부모님한테도 오랜만에 전화해선 기어가는 목소리로 제가 또 그랬어요 죄를 고했음. 셋이 오랜 친구만큼 각 부모님하고 부모자식처럼 지내서 지수 부모님은 승철한테 애정의 잔소리 몇 마디 하시곤 웃으심.

누군지 몰라도 너 데려갈 놈은 정말 힘들겠다.

그 소리에 왜 어젯밤 일이 떠오르는지. 갑자기 얼굴 확 붉히며 저, 저는 독신으로 살 거예요! 하는 승철에 어머니는 고개를 저으시고. 지수는 묘한 미소만 지었네. 그리고 터미널까지 엄마를 배웅한 승철은 또 사고치지 말고. 밥 잘 먹고. 지훈이 잘 챙기고. 너 지훈이한테 진짜 잘해줘. 너랑 같이 살아주는 기특한 아이잖니. 할 수 있다면 엄마는 너랑 지훈이랑 결혼했으면 좋겠다. 소릴 엄마가 해서 승철의 얼굴은 또다시 토마토가 됐음. 그리고 일찍 장모님께 허락받은 줄 모르고 고딩 이지훈은 할머니에게 결혼허락을 받기위한 프로젝트를 세웠다는 이야기 아닌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