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o, ah하네요.
[우쿱] 한그루의 사과나무 본문
사과나무를 샀다. 아침 동이 트기도 전에 집에서 나와 몸을 쑤시는 새벽칼바람을 두툼한 패딩하나로 버티며 용감무쌍하게 꽃집에서 사과나무를 찾았다. 당연하게도 꽃집엔 사과나무가 없었고 미친놈 보듯 하던 주인장은 돌연 제 두 손을 꼭 잡고 손등을 쓰다듬으며 눈꼬리에 눈물을 매달며 물었다. 사과나무가 그렇게 필요하니? 갑자기 손이 잡혀 당황했던 나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러다 곧 고개를 푹 숙였다. 꽃집엔 사과나무가 없었다. 살 수가 없어. 풀이 죽은 나를 꽃집주인은 문 앞까지 부드럽게 끌어와 문 밖을 가리켰다. 훈훈하게 데워 따뜻한 꽃집에서 유일하게 추운 문 가까이에서 나는 주인의 투박한 손가락을 따라 밖을 쳐다봤다. 아. 우리 장날엔 없는 게 없다는 거 잘 알지? 결론만 말하면 없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찾는 사과나무. 동그란 엉덩이 농염하게 끈으로 묶여 일자로 전시된 수많은 앙상한 나무들 사이에서 사과나무만 없더라. 장날에 나온 장사꾼들은 사과나무를 찾으며 알짱거리는 나를 상대도 않고 없어요! 하며 내쫓았다. 몇몇은 다듬은 긴 장대를 위협적으로 휙휙 젓기도 했다. 무서워 도망갔다. 운동으로 다져진 튼튼한 몸을 가졌지만 맞는 건 싫다. 크고 두꺼운 장대가 바람을 가르거나 바닥에 부딪혀 내는 소리가 공포였기도 했고. 그래서 에구머니나 하며 후다닥 도망갔다. 거짓말 보태서 일 분만에 오백미터 돌파하고 나는 처음인 척 사과나무를 찾았다.
사과나무 있어요?
사과나무는 없고 소나무는 있는데 소나무 사실라우?
헥. 우리 장터엔 소나무도 팔았다. 대박 신기해. 나 소나무 파는 거 처음 봐. 신기해서 소나무 구경을 했다. 소나무는 마른 나무들 사이에서 가장 초췌하고 볼품없는 나무였다. 저게 소나무라고 종이에 이름을 쓰고 붙여 팔아도 아무도 소나무라 믿지 않을 비주얼이었다. 중국산인가? 원산지가 다르면 가격이 좀 싸잖아. 이 말을 속으로 생각한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입으로 나왔는지 째림을 당했다. 안 살거면 가슈. 나는 미안해서 목 인사를 했다. 많이 파세요. 장터를 몇 바퀴를 돌아도 사과나무에 시읏도 못 본 나를 불쌍히 여긴 한 아주머니가 사과밭에 가봐라 알려줬다. 판매할진 몰라도 살 방법은 알 수 있지 않겠어? 한숨 자지 못하고 물 한모금만 마시고 나와 동이 트도록 걸어 다녀 피곤에 지쳤던 나는 한 줄기의 따뜻한 빛에 코를 훌쩍이며 몇번이나 감사하다고 허리숙여 인사했다. 아주머니는 아무것도 안했는데 넘 고마워해서 자기가 부끄럽다며 입가를 손으로 가려 홍홍 웃었다. 진짜 감사해서 그래요. 사과나무가 꼭 필요했거든요.
왜 필요한데?
내일 내가 죽는다면 사과나무를 심어야하니깐.
옆이 조용하다. 고개를 살짝 돌렸다. 제 다리 가운데 자리해 한아름 품에 안기는 화분에 심어진 앙상한 나뭇가지를 보는 훈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눈매는 예민하게 날서있고 입술은 단단하게 일자로 붙어있다. 그 누구 유명한 사람이 그랬잖아. 만약 내일 자기가 죽는다면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그거 따라한 거야. 뒷목을 긁으며 더듬더듬 덧붙인 말에 훈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거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아니에요?
...쪽팔려
진심 창피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 숨었다. 할 수있다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데 난 너무 커서 쥐구멍에 못 들어가. 흑흑. 너무너무너무너무 창피해서 발가락은 움츠렸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심장이 숨을 장소 찾는다고 뛰어다녀 온 몸이 쿵쾅거렸다. 오랜만에 피가 도는데도 기쁘지 않았다.
야 웃을 거면 대놓고 웃어. 참고 웃는 게 더 기분 나빠.
말이 끝나자마자 훈은 박장대소를 했다. 배를 움켜쥐고 아이고 배야, 웃긴 목소리를 내고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하하하하하하하 웃었다. 비웃었다. 비웃었어. 저건 명백히 놀리려고 웃는 거야.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쪽팔림이 분노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할 수 있는 만큼 훈의 팔뚝과 팔목을 물어뜯은 뒤 사과나무에 물을 줬다. 마지막이었다. 화분 밑에 돌멩이를 깔고 흙을 담아 나무를 심고 그 마지막. 물주기. 물뿌리개가 없어 컵에 담아 주었다. 좀 그래보여서 마음은 두 배로 줬다. 잇자국이 난 팔뚝이 드러나도록 소매를 올린 훈이 졸졸졸 기운 컵을 따라 흘러 흙을 적시는 물길을 눈으로 훑다 물었다.
사과...이거는 어디서 구했어요?
사과밭 주인이 줬어. 아주머니 조언을 듣고 찾아간 밭에서 운 좋게 사과나무를 구했다. 내 얘기를 듣고 푸하하 웃은 주인은 조금만 기다려달라 하곤 밭에 들어가 한참을 안보이더니 낄낄 웃으며 손에 뭔갈 쥐곤 돌아왔다.
자 사과나무임다-
선뜻 손이 나가지 않았다. 겨울이라 그렇다 치기엔 나무가 유난히 마르고 앙상했다. 끝은 꺾이고 밟힌 것 마냥 짓물렸다.
안 받을겨?
사과나무 맞죠? 맞아맞아- 자 봐봐. 사과나무는 가지가 이렇게 생겼고 줄기가-
사과나무 맞죠?
내가 주인에게 묻던 질문을 훈이가 나에게 했다. 나는 주인이 열심히 설명했던 걸 그대로 읊을까 하다 말았다. 기억이 안 났다. 주인이 맞다했으니 맞겠지 대신 그렇게 답했다. 사과나무면 되니까. 내일 또 사과나무를 심을거야. 훈의 얼굴이 구겨진다. 미쳤어요? 눈으로 묻는 것 같기도 해. 나는 얼른 말을 덧붙였다. 씨앗 뿌릴 거야. 나무는 넘 힘든 것 같아서 씨 뿌리려고. 씨는 어디서 구하려고요? 사과에 있잖아, 씨앗. 손으로 위아래가 눌린 사과를 만들며 훈을 올려봤다. 주저앉아 서 있는 훈을 보려니 목이 아팠다.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났다. 일어서려했다. 훈이가 정수리를 손바닥으로 감싸 눌러 일어서질 못했다. 그대로 주저앉아 고개까지 숙였다.
형은 살거에요.
목소리가 축축하다.
그러니 하지마요.
나는 입술을 부루퉁 내밀었다.
나 이미 사과샀어. 120개 십만원 안되게 특으로 샀..아으으윽 야아!
훈이 손바닥으로 머리를 마구 쓸었다. 위아래로 옆으로 원을 그리며 머리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머리카락끼리 꼬여 두피가 아팠다. 손을 피해 몸을 뒤로하다 털썩 주저앉았다. 엉덩이가 찌르르했다. 짜증이 났다. 엉망인 머리를 두 손으로 누르며 성을 냈다.
죽어도 내가 죽으니까 내 맘대로 할 거야! 사과 다 먹어서 다 씨뿌릴 거라고!
120일을 넘기면? 그땐 어쩔 건데요? 죽을 때까지 사과 사먹고 남은 씨 뿌릴 거에요?
어. 그럴 거야.
요란한 한숨이 위에서 쏟아진다. 파도에 젖은 쓸려가는 모래가 내지르는 비명 같다. 사과 값 장난아니겠네. 훈이 일부러 웃는다.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삼킨다. 시선은 창 너머 저 어딘가. 빛을 받은 동공이 신기루처럼 허무했다. 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제 옆에 있는 사과나무 심은 화분에 흙을 손으로 매만졌다. 사과나무잖아. 지훈아. 내가 심는 건 사과나무야. 잘못 알았긴 했지만 결국 내가 심는 건 사과나무. 소나무도 밤나무도 아닌 사과나무.
돈 많이 벌어라. 형은 특에이급 아니면 취급 안한다.
삼 일만에 지겹다고 나에게 떠넘기지만 말아요.
야 내가 못하면 네가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형이 힘들다는데. 어? 안해줄거야?
네. 저 사과 안 좋아해요.
저거 맛있ㅇ
넘기기만 해요. 가만 안둬
투닥거린다. 원래의 우리가 됐다. 가볍기 말씨름을 하고 유치하게 장난을 치고 몸으로 부딪히다 키스를 한다. 목에 팔을 두르고 허리에 다리를 감아 아래를 비빈다. 구강을 헤집는 훈의 혀가 농염하다. 훈아 낮부터 발기 차다. 단단한 아래에 씩 웃었다. 형은 아침부터 야하고요. 윗옷을 올려 얼굴을 넣는다. 소름이 돋는다. 훈의 혀가 마른 갈비뼈를 집요하게 핥는다. 철은 훈의 머리통을 안았다. 옷 아래 동그란 뒤통수가 사각사각 천에 쓸린 소리를 내며 꼭1지를 입에 담았다. 하흠. 숨이 파르르 떨렸다. 시야가 야해 돌린 시선엔 사과나무가 있었다. 사면서도 헷갈린 사과나무였지만 결국 구했어. 너랑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맘에 자지 못하는 밤 내내 울다 부은 눈으로 새벽 일찍부터 사과나무를 구했다. 그리고 찾았어. 설령 저게 진짜 사과나무가 아니라 해도 구했다는 것만으로 이미 희망이 됐어. 그래서 아니어도 상관없어. 나에겐 120개의 씨앗을 품은 사과가 있고 사과가 다 떨어지면 사과사줄 네가 있으니까. 그거면 됐지. 그래. 그거면 됐어. 진짜 내일 죽는다해도 나에겐 사과나무가 있으니까-
시한부 철, 그의 애인 훈, 우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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