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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쿱] 술기운에 하는 말이에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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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쿱] 술기운에 하는 말이에요

다몬드 2017. 1. 15. 18:02

 

 

 

 

 

 

[지훈승철/우쿱] 술기운에 하는 말이에요

 

 

 

 

w.안다미로

 

 

 

 

 

 

 

인생에서 최고는 돈이다. 0이 많이 붙은 얇고 뻣뻣한 종이나 무거운 금덩어리, 금을 입힌 액세서리 차곡차곡 쌓일수록 무거워져 값어치가 올라가는 뭐 그런 거. 꿈이라느니 뭐 그런 허무맹랑하고 당장 내 배 불려주지 않는 그런 거 말고. 그런 건 딱 질색해 솔직하게 말하면 혐오한다. 그것보다 실생활에 쉽게 보지만 쉽게 손에 쥘 수 없는 것들을 바랬다. 몇 백의 가방과 몇 십 하는 액세서리. 브랜드 따지며 걸치고 입고 쓰고 싶었다. 가져본 적 없는 인생에서 접하고 싶어 정신 차리면 지훈은 값비싼 그것을 걸치고 입고 썼다.

지훈 씨는 눈이 가게 해요. 자꾸만 나도 모르게.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할 뿐인데.”

그런 소릴 자주 들었다. 세상 제일 잘 나간 것들과 어울리던 지훈은 본인 스스로를 평가하면 길거리 돌멩이처럼 흔해 빠졌다 생각했는데 또 반대로 뒤집어보면 요즘은 돌멩이 하나 찾기 어려운 아스팔트다. 투박하고 작고 가벼운 돌멩이. 조용하고 순진하게 웃는 이지훈. 둘 다 손에 쥐면 가질 수 있어. 많은 사람 손을 탔다. 원장님. 누나. 선생님. 돈이 있다면 마음을 팔고 웃음을 팔고 몸을 팔았다. 기억도 안 나는 어릴 적 다리 벌려 돈을 받던 엄마와 다를 게 없었다. 차이라면 돈의 액수, 크기, 무게.

그래서 내 아내도 당신을 욕심냈겠죠.”

검은 사람. 검은 머리, 검은 눈썹, 검은 속눈썹, 검은 동공, 검은 슈트, 검은 의자, 검은 그릇. 눈 닿는 곳 전부 검다. 돈의 최고는 골드라 여겼던 지훈에게 그 위가 있다는 걸 오감으로 느끼게 한다. 좋아하는 색이 검정이고 역시 저도 검은 옷을 입었지만 동떨어졌다. 태초부터 귀했던 사람과 태초에 저주받은 사람, 검정과 탄 색 그 차이.

포크와 나이프를 집고 고기를 썬다. 알맞게 잘린 고기는 살짝 벌린 입안으로 들어간다. 군더더기 없이 동작이 깔끔하다. 일종의 있는 사람과 어울렸던 지훈이 보기에 잘 배운 사람이다. 엘리트. 옛날로 보면 왕족. 서양으로 가면 귀족이려나? 모두 공평하다는 현대 사회에도 보이지 않는 계급차가 있으니 틀린 표현은 아니다.

지훈 씨.”

목이 탔다. 잔을 들었다. 황송할 정도로 비싼 와인이 가난한 목구멍을 타고 부드럽게 넘어간다. 코 찌르는 알코올 냄새가 강한 소주와 맛이 다르다. 기울어진 잔에 검붉은 레드와인이 추락하며 검은 동굴로 빨려 들어간다. 아등바등 매달려 버티는 마지막 방울은 뾰족하게 선 혀에 또르르 말려 들어갔다. 탁 내려놓은 잔에 시선이 따라온다. 축축한 입술을 핥다 풋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 입천장에 부딪혀 찬란하게 흩어지는 소리에 눈썹을 구긴다.

왜 웃는지 안 물어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손으로 벌어지는 입 주위를 흔들어 통통 튀는 음표를 흩뜨렸다. 표정이 너무 웃겨. 그럼에도 남자는 입을 열지 않는다. 웃음을 흘리며 삐딱하게 턱을 괴었다. 맞은편 남자는 무릎 위에 올린 냅킨으로 입을 닦는다. 지훈은 콧방귀를 꼈다. 그걸로 가려질 거라 생각해? 가운데서 약간 밑에 이에 눌려 하얗게 질리다 혈색이 돌아오는 아랫입술이 여기서도 다 보이는데.

교수님을 사랑해요?”

따뜻한 브라운으로 염색한 머리를 높게 묶어 몸에 달라붙는 정장을 즐겨 입는 전공담당 교수를 떠올렸다. 미모가 끝내주는 만큼 성격도 화끈하고 능력도 뛰어나 학생들에게 존경받는 젊은 교수는 지훈을 유독 아꼈다. 학생으로. 남자로.

사랑해요.”

거짓말에 서툰 사람이다. 할 줄 못한다기보다 할 필요가 없는 삶을 살아서 그렇다. 할 필요가 없는 삶은 어떤 삶일까. 상상도 안 돼서 꿈도 못 꾸겠어. 지훈은 테이블 위에 올려 두 손 맞잡은 투박한 손을 내려 보았다. 짧고 뭉툭한 네 번째 손가락엔 두께가 있는 골드 링이 은은한 조명에도 제 빛을 잃지 않고 빛났다. 심플하고 어찌 보면 촌스러운 디자인이지만 꽤 하겠지. 교수는 지훈을 만날 때마다 반지를 빼 가방 뒷주머니에 넣었다. 일에 프로페셔널한 모습과 달리 사적에서 그녀는 덜렁 쟁이었다. 물건을 자주 잃었다. 지훈 폰에 저장된 그녀의 폰 번호가 이번에 4번이나 바뀐 번호라는 건 놀랍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잃은 것에 아쉬워하지 않았다. 잃어도 또 사줄 남편이 있으니까. 결혼을 잘 했다. 지훈이 그녀에게 유일하게 높이 평가하는 부분이었다. 그런 그녀가 반지만은 아꼈다. 그걸로 말 다했지. 지훈은 반지에서 시선을 뗐다.

교수님은 그쪽 아 미안해요. 너무 정 없이 불렀다. 아저씨, 괜찮죠? 12살 차이면 아저씨 맞잖아. 그렇지?”

은근슬쩍 말을 놨다. 그리고 승철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빠르게 말을 이었다.

아저씨 안 사랑한다는데?”

교수는 젊음을 흠모했다. 풋풋하고 맑고 때가 묻지 않은, 예를 들면 제자들. 아기냄새 채 벗지 못하고 올라와 교수님, 교수님 아기 새처럼 울어대지. 예뻐하면 우쭐하고 눈길을 주지 않으면 시무룩해 의미 없는 손길에도 눈을 반짝인다. 순종적인 어린 양들. 그녀는 자주 노래를 불렀다. 사랑스러워라. 이리오렴 아가야. 내가 안아줄게. 자 벗은 내 가슴에 얼굴을 묻으렴. 봉긋한 살덩이를 손에 쥐고 흐르는 우유를 핥아 마시렴. 배가 부를 때까지 젖을 빨아 아낌없이 사랑해주는 나에게 너를 주렴. 너의 젊음을 나에게 주려무나.

잔을 또 들었다. 씁쓸한 와인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다정한 콧노래가 귀에 질척하게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시끄러워.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털었다. 발 딛은 땅이 요동쳤다.

지훈 씨는 사랑해요?”

아니. 대답대신 입술을 길게 가로로 찢었다. 즐겁다는 듯 눈까지 접으며.

질문 되게 재미없다.”

재밌으라고 한 질문 아닙니다.”

불쾌한 표정으로 낮게 쏘아 뱉는다. 지훈을 만나고 처음으로 감정을 드러냈다. 회장님처럼 딱딱하고 지루하게 굴어서 화가 좀 났었는데. 큰 눈을 찌푸리며 딱딱한 얼굴이 차게 얼어가는 과정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지훈의 보조개가 푹 파였다.

알잖아, 아저씨도. 내가 뭘 사랑하는지.”

뒷조사 다 끝마쳤으면서.

매일 따라붙던 시선. 걸음에 맞춰 숨죽이며 따라오던 발걸음. 빛을 피해 가린 커튼 너머 울렁이던 그림자. 지훈은 눈치가 빨랐다. 고아원에서 맞고 자라며 는 건 눈칫밥이었다. 추가로 재물욕도 있고. 아 물론 다년간 부적절한 관계로 먹고 살아서도 그랬다. 와이프의 혹은 며느리의 바람을 의심하던 자들에게 자주 감시당했다. 그러다 누나, 선생님 하며 어리고 순진한 마스크로 맑게 웃는 지훈에 다들 저 어린애에게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멍청해. 채 갈무리하지 못한 교복 바지 뒷주머니로 두둑한 현금 일부가 삐쭉 튀어나온 것도 모르고. 음식을 삼키는 입술에 채 지우지 못한 립스틱도 몰라봐. 그들은 바보처럼 부모 없이 밥도 제대로 못 먹는 불쌍한 어린이를 제 집에 초대까지 했다. 솜털로 뽀송한 지훈의 뒷목을 끈적끈적하게 만지는 여자의 손길도 못 보고. 손목에 감은 여자가 선물로 준 시계가 예쁘다 칭찬을 하지. 물론 지훈 앞에 있는 최승철이란 사람은 눈뜨고 코 베이는 장님은 아니었으나 지훈을 보는 게 처음이 아닐 텐데도 처음인 척을 한다. 나 알잖아. 아저씨. 사랑이고 뭐고 빙빙 돌려 말하는 답답한 틈을 송곳으로 찔러 깨뜨린다. 이지훈 씨죠? 강의 마치고 교수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하던 지훈 앞에 섰을 때부터 흐트러짐 없이 꼿꼿했던 그를, 최승철을 흔들었다.

이지훈 씨는 돈만 주면 다 사랑합니까?”

아니. 난 돈만 사랑하는데.”

어리고 순진한 아이를 꼬드겨 돈으로 젊음을 사면서 사랑을 속삭이는 그녀들. 왼쪽 가슴에 손 얹고 솔직히 말하면 사랑을 말한 적 없다. 지훈은 남을 속이는데 능통했으나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그게 그거 같은데 분명히 달랐다.

날 사랑해?’

책상 아래 좁은 공간에 구겨 들어가 의자에 앉은 지훈의 벗은 다리 사이를 입으로 훔치며 묻는다. 지훈은 기대에 찬 눈으로 올려다보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잡으며 말했다.

교수님이 하는 거 봐서요.’

참고로 그녀는 오랄을 더럽게 못했다.

그럼 내가 돈을 주면 나랑도 떡치겠네요?”

비아냥댄다. 오호. 지훈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감탄사를 뱉었다. 도련님도 그런 소릴 뱉나 봐? 허리를 피며 바르게 앉은 자세가 흐트러져 승철이 잔을 든다. 그리고 원 샷. 와인이라 해도 어엿한 술인데 눈 하나 깜박이지 않는다. 저 멀리 대기하던 직원이 조용히 다가와 잔을 채운다. 지훈은 제 빈 잔에도 동그랗게 차오르는 와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잔을 들어 승철에게로 기울었다. 승철이 눈썹 하나를 치켜뜨며 싫은 얼굴로 잔을 살며시 기울었다.

.

이런 거 해보고 싶었어.”

순수한 감정. 입동굴이 보일정도로 맑게 웃어. 다들 끔벅 죽지. 이것이 지은 표정이란 걸 아는 사람은 몇 없었다. 당신은 한 눈에 알아볼까. 승철은 눈을 찌푸리며 잔을 크게 기운다. 지훈도 입가에 대 가늘게 뜨는 승철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잔을 비웠다.

아저씨 교수님하고 자요?”

뭐 그런 질문을....”

아저씨도 했잖아. ? 아저씨. 아저씬 교수님하고 사랑해서 섹스해요?”

입술을 꾹 다문다. 빈 잔을 한 손으로 꽉 쥐어 잔이 흔들렸다. 무례한 질문에 분노하는 걸까. 아니면 직격탄을 맞아 흔들리는 걸까.

안 해.”

자칫 놓칠 뻔했다. 개미 기어가는 소리만큼 작아서 이 주위가 조용하지 않았더라면 못 들었을 정도였다. 와이셔츠 아래 숨은 목덜미가 붉다. 지훈은 테이블에 두 팔을 올려 앞으로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

안 자는데 사랑해요? 아저씨 고자야? 그래서 플라토닉 그런 걸 추구해?”

승철이 지훈을 노려본다. 꼴에 자존심 상한가보지.

네 머릿속엔 에로스나 섹스 그런 것만 있다 본데 사랑이란 게 그런 것만 있는 게 아니야. 나는....”

아 머리 아파. 관자놀이가 쑤신다. 틈에 끼어들어 말을 끊었다. 눈을 감고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뒤늦게 올라오는 취기에 한숨을 뱉었다. 와인이라도 취하는구나. 승철은 불만인 얼굴로 잔을 들어 자꾸만 튀어나오려는 진심을 억지로 와인과 함께 넘겼다. 뱉어도 상관없지만 참는다. 지훈 앞에선 그렇다. 한 입 거리도 안 돼 보이는데 다들 기를 못 폈다. 작은 덩치에 어디 숨을 데 있다고 무거운 납이 깊은 곳에 숨어 있다가 때가 되면 날카로운 칼로 변해 심장을 한 칼에 찔렀다. 무서워. 만만하게 보고 덤볐다 죽상이 된 그들이 말했다. 그래서 네가 끌려. 위험한 매력 같달까. 지훈의 뺨을 잡고 키스를 하던 그녀들은 종종 그런 소릴 했다.

지루해.”

네가..!”

아저씨가 이타적인 사랑을 베푸는 몸소 실천하고 있는 천사라는 건 잘 알겠으니까 그 얘긴 집어치우고 본론만 말하시죠?”

뻑뻑한 눈을 비볐다. 회오리처럼 말려들어가 색이 바래진다. 눈을 깜박이면 붉게 까맣게 하얗게 색이 입혀진다. 빨간 입술을 이로 물어 시선을 아래로 둔 얼굴이 빨갛게 타오른다. 긴 속눈썹은 눈에 그림자 만들어 잠자리 날개처럼 파르르 떤다. 얼핏 보이는 눈가 아래는 핏줄처럼 빨갛다. 울면 예쁘겠는 걸. 못된 마음이 삐죽삐죽 치솟는다.

난 사랑하지 않으면 옆에 두지 않아.”

눈만 올려 뜨며 말한다. 촉촉이 젖은 눈에 지훈은 입술을 핥았다. 결벽증. 지나치게 적은 인간관계. 몇 개의 시험에 탈락돼 떠나간 수두룩한 사람 중에 합격 받고 옆이 허락된 사람은 얼마나 될까. 돈은 넘치다 못해 수 세기를 포기했고 대한민국 유명한 명문가에 외모도 최상급인 그가 다 퍼부어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지훈은 의자 뒤로 몸을 기댔다. 뒤늦게 올라온 취기에 머리가 무거웠다. 팔짱을 끼고 목을 좌우로 돌렸다. 은은한 조명에 까만 천장이 빙글빙글 돌았다.

난 내 아내를 사랑해.”

젊은 제자와 바람이 난 그녀를, 부모에 의해 의무적인 결혼을 맺었음에도 충실하다. 사랑한다 말해 마치 그렇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군다. 그러고 보니 인터넷에선가 신문인가에서 봤던 것 같다. 00기업 둘째 아들이 사실은 혼외자라는 걸. 존경받는 명문가에 큰 흠집인 그를 내쫓지 않고 키우는 이유는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흠도 품는 위인의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짤막한 해석이 붙었다.

사랑하니까 그녀를 지킬 거야. 그러니 이제 너는 떨어져.”

그새 표정을 고친 승철이 감정 없는 눈으로 지훈을 쏘아본다.

사업가라면서 거래의 기본을 잘 모르시네요.”

지훈은 건조해 쓰린 눈을 또 비볐다. 살과 각막이 까끌하게 비벼 눈알이 쓰라렸다. 시험기간이라 책을 너무 봤더니 눈이 작은 자극에도 쉽게 예민했다. 눈을 몇 번 깜박였다. 미열과 둔한 통증에 초점이 나간 카메라처럼 보이는 곳곳이 뭉그러졌다. 지훈은 까만 덩어리 유난히 하얀 얼굴 어디쯤을 봤다. 순수한 남자. 진심을 숨기는 데 서툴러 입을 닫는다. 차가운 냉대에 어린 아이는 얌전한 모범생이 되었다. 말을 잘 들으면 미워하지 않아. 커갈수록 돈을 보고 붙은 자들을 내치지 못하고 끌어안는다. 그 안에 애정 하나 없는데도 거기에만 매달려 그래서 그는 주기만 했다. 주면 떠나지 않으니까. 외로움에 사무쳐 따뜻한 품에 기대어 울고 싶으면서도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나오는 그것, . 돈으로 묶는다. 사랑이란 탈을 씌워 속이면서.

마치 나처럼.

무슨 말이야.”

선명해진다. 검은 머리. 검은 속눈썹. 검은 수트. 검은 의자. 검은 그릇. 음울하게 가라앉은 최승철의 얼굴도.

나에게 줘요.”
이지훈은 돈이 필요하다. 1년 적금은 아직 반년이 남았고 쓸데없이 비싼 집세는 당장 이번 주에 내야한다. 한번 먹을 때 많이 먹는 편이라 식비도 만만치 않다. 고아원 아이들과 얼마 없는 음식을 경쟁하다 작은 덩치에 밀려 먹지 못하고 주린 배를 물로 채웠던 과거가 자꾸만 입에 음식을 집어넣게 만들었다. , , 더 줘요. 더 많은 걸 가지고 싶어. 채우고 싶어. 끌어안고 싶어. 간절히 원해. 제발 나에게 줘요.

그럼 떨어질게.”

 

 

 

일주일 다 채우기 전에 최승철은 또 이지훈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문자 알림에 핸드폰 화면을 켜다 그대로 주머니에 넣었다. 당당히 앞에 섰으면서 입을 열지 않은 승철을 올려다봤다. 키스하려면 좀 힘들겠네. 시선이 어깨쯤이라 고개도 좀 들어야하고. 그런 상상을 하는 동안 승철은 손을 내밀었다. 투박한 손 위로 직사각형 플라스틱 카드가 올라있었다.

데려다줘요.”

미간을 구긴다. 지훈은 양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두 사람 주변으로 이상한 눈길을 보내며 숙덕거리는 사람들이 지나간다. 수상한 분위기에 입이 간지러우리라. 사람은 고양이 같아서 호기심을 보인다. 살금살금 다가와 툭툭 건든다. 그 호기심이 죽게 만든다는 것도 모르고. 우웅- 주머니 속 핸드폰이 운다.

승철은 지훈의 바지주머니를 내려 보더니 몸을 돌렸다. 별말 없이 무뚝뚝하게 걷는 뒤를 따랐다. 학교 안 주차장으로 쓰인 공터에 주차된 검은 세단 주변으로 멀리 떨어져 탐욕스럽게 보던 시선들이 차에 올라탄 승철과 지훈을 쫓는다. 누구야. 어디 과야. 둘 다 학교 사람인가? 누구지. , 쟤 심리학과 이지훈 아니야?

도착한 곳은 역시나 비싼 동네에 있는 비싼 아파트. 몇 억쯤 될까? 값을 따져보다 포기했다. 계산기를 두들기지 않아도 여태껏 받은 선물 중 가장 훌륭하고 비싼 선물이었다. 엘리베이터 안 가운데 선 승철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아까 엘리베이터 타기 전 내밀던 카드를 지훈은 또 받지 않았다. 대신 도착한 엘리베이터를 타 열림 버튼을 누르며 승철이를 기다렸다. - 시간 초과로 경고음이 울릴 때까지. 승철은 요지부동이었다. 지훈은 재촉하지 않았다. 문이 닫혔다. 지훈은 홀로 있는 공간에 팔짱을 꼈다. 삐딱하게 서서 운동화로 바닥을 툭툭 쳤다. 하나, ……. 문이 열렸다. 승철이 올라탔다. 몇 층이에요? 승철은 대답대신 버튼을 눌렀다.

문 앞에서도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지훈에 떨어져있던 승철이 카드를 댔다. 띠딕- 도어락이 열렸다. 차가운 금속 고리를 비틀어 들어간 집은 외양만큼 훌륭해 별로 놀라지 않는 편인데도 오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고작 현관과 복도뿐인데도 지훈이 제일 좋아하는 색으로 꾸며진 실내에 여덟 걸음 쯤 걷다 몸을 돌렸다. 승철이 현관에서 동상처럼 얼어있었다. 승철의 오른 손에 들린 지훈의 폰이 웅웅 울었다. 차안에서 쉬지 않고 우는 폰이 귀찮아 승철에게 떠넘긴 것이다. 얼떨결에 받은 승철은 바뀐 신호등 불에 급하게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우우웅- 우웅- 끈적끈적한 엿처럼 진득하다. 거절버튼을 눌러 밀거나 폰을 끄면 그만인 것을 승철은 발신자 이름에 놀라 그 쉬운 걸 하지 못하고 황망히 폰을 내려다봤다. 지훈은 건조한 미소를 띠며 승철 앞으로 가까이 섰다. 그늘에 고개를 든 승철 눈을 바라보며 두 손을 들었다. 그리고 승철의 가슴부분에 손을 올려 더듬었다. 감촉이 좋은 소재 뒤로 단단한 몸이 느껴졌다. 승철이 몸이 움찔 떤다. 도망가려는 몸을 자켓을 잡아당겨 자켓 안으로 손을 넣었다. 닿은 얇고 부드러운 셔츠가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 승철의 귀 끝이 붉다. 의도를 찾으려는 듯 지훈의 얼굴을 훑으며 흔들리는 승철의 눈동자에 싱긋 웃으며 지갑을 꺼냈다. 승철의 얼굴이 딱딱해진다. 지훈은 지갑을 열어 한 본 본 적 있는 블랙 카드를 꺼내 제 바지주머니에 넣었다. 지갑이 없어서. 그리고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지갑은 바닥에 던졌다. 쓰레기처럼. 여러 카드와 수표 몇 장 들어간 값비싼 쓰레기인 게 일반 쓰레기와 다르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여기 내 바지 주머니에 있으니.

. 팔이 잡혔다. 비스듬히 몸을 돌렸다. 파들파들 볼썽사납게 떤다. 이제 와서 아까워? 물음은 폰을 들어 올리는 승철에 쏙 들어갔다. 000. 지치지도 않고 우는 핸드폰에 의문을 띄었다. 승철이 팔을 올려 힘껏 바닥에 던졌다. . 지갑 옆에 부딪힌 폰이 좌우로 쪼개져 내장을 토하고 또르르 바닥을 구른다. 할부가 아직 안 남았는데. 처음 든 생각은 그랬다. 하지만 울음을 터뜨려 기댄 승철의 떨림이 어깨로 타고 넘어와 지훈은 승철의 얼굴을 잡아 당겨 입을 맞췄다. 어정쩡하게 허리를 굽어 숙인 승철에 맞춰 치켜 올린 목이 아팠다. 뒷목을 감싸 고개를 비틀며 끌어당겼다. 동아줄마냥 지훈의 양 팔뚝에 매달린다. 미끄럽게 들어오는 혀에 서툴게 반응하며 울음을 토한다. 귀여워. 주름이 푹 패여 꽉 감은 두 눈에 맺힌 눈물이 예뻐. 훅훅 뱉는 콧김은 사랑스러워 지훈은 승철의 구강을 강하게 빨았다. 거칠게 얽는 지훈에 놀라 눈을 떴다. 그러다 눈을 감지 않던 지훈과 너무 가까워 붉게 눈가가 달아올랐다. 마음 깊은 곳에 숨은 못된 가학심이 울컥울컥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다. 이끌어 허물 벗듯 옷을 하나하나 벗겨 전라로 침대에 눕힌 승철 위로 올라탔다. 벌써 눈물범벅이 된 얼굴이 겁에 질려있었다.

무서워? 내가 무서워? 아니면 당신이 무서워?

어깨를 물었다. 이를 세워 굶주린 짐승처럼 게걸스럽게 당신을 먹어 치울거야.

무서우면 말해. 나에게 말해줘. 전부 다.

도망은 못 가.

놔 주지 않을 거니까.

오늘 나에게 당신을 줘.

 

교수를 만났다. 복도를 걷다 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다짜고짜 사무실 안으로 끌어당겼다. 구겨진 셔츠를 손으로 탁탁 털었다. 교수는 조용하게 분노하며 노려보았다. 지훈은 짧게 울리는 핸드폰을 들어 확인하곤 주머니에 넣었다. 따라붙던 시선에 폰을 바꿨다며 웃었다. 교수는 지훈 얼굴을 쏘아보다 손을 올렸다. 오른쪽 약지에 낀 반지를 보며 지훈은 왼뺨을 댔다.

반지는 빼고 때려줘요.”

 

 

뺨이 화끈했다. 술을 들이킬 때마다 꿈틀대는 얼굴근육에 날카로운 통증이 위에서 아래로 길게 그어졌다. 반지는 빼라니까. 두 번이나 내리쳐 기어코 살을 뜯은 교수는 눈물을 비췄다. 꼴에 사랑을 느꼈나보지. 돈으로 사고파는 허무한 감정에 무슨 사랑이 있으라고. 지훈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하고 미련 없이 방을 나섰다.

뺨 왜 그래.”

맞은편에 검은 덩어리가 앉으며 묻는다. 잔을 한 번에 털던 지훈은 눈을 가늘게 떠 초점을 맞추려 애썼다. 고작 소주 3잔에 취해 시야가 분명치 않았다.

반지.”

보일 듯 말 듯 나갔다 맞춰졌다 카메라 가리개처럼 눈을 깜박여도 잘 보이지 않아. 결국 지훈은 포기하고 병을 들었다.

내 반지 어딨어?”

팔았어.”

킬킬 웃었다. 쪼르르 딴 병도 낄낄대며 쿨럭쿨럭 술을 뱉었다. 잔 너머로 술이 넘쳐흘렀다. 나는 교수가 애지중지 하길래 꽤 나갈 줄 알았어. 산 가격과 판 가격이 조금 달라도 기준이 있잖아. 기준이. 그런데 술사고 알바생에게 두둑이 용돈도 주고 보니까 얼마 없네? 반지 싸구려로 맞췄어? 승철은 빈 손가락을 훑기만 했다. 지훈은 술이 아직 남은 검은 봉지를 집어 테이블 위에 올렸다. 몸을 가눌 수 없어 아무렇게나 올라간 봉지가 와르르 무너져 요란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괴기하게 벌어진 주둥이로 현금 더미가 술병과 함께 엉켜있었다.

당신 반지야. 만약 와이프가 반지 어디 있냐고 물으면 그거 보여주면 돼.”

등 뒤 소파에 눕듯 기댔다. 시린 백색 등에 눈을 감았다. 몸 안쪽에 파도가 찰싹찰싹 몸을 때렸다. 둥둥. 귀에선 북소리가 났다.

난 이혼 안 할 거야.”

고개를 바로 해 눈을 비볐다. 하품이 밀려와 크게 기지개를 폈다. 승철은 그런 지훈을 가만히 바라봤다. 강아지 같아. 잘못을 저질러 주인 눈치를 보는 것처럼. 잘못을 아는 거야? 무슨 잘못? 나에게? 그녀에게? 지훈은 한숨을 뱉으며 잔에 술을 따랐다.

그래요.”

그리고 침묵했다. 잔을 들었다. 한 번에 털려다 술기운이 올려와 꺾어마셨다. 식도가 불을 삼킨 것처럼 뜨거웠다. 아찔하게 흔들리는 시야에 고개를 털었다. 승철이 두 명이 됐다가 세 명이 됐다. 그의 눈꼬리가 땅바닥에 붙을 정도로 축 처져서 당장이라도 울음을 쏟을 것 같았다. 세 명이 울면 이 넓은 집도 잠기려나. 엉뚱한 생각에 픽 실소가 터졌다. 불쌍한 피해자. 나 혹은 너.

날 사랑해?”

셋에서 넷으로 자가 복제하던 승철이 갑자기 하나가 됐다. 또렷한 형체에 놀란 지훈은 베시시 웃었다.

사랑해. 무지무지 사랑해.”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또박또박 대답했다.

...술 취했어.”

, 맞아. 취했어.”

병을 집었다. 가벼운 무게에 가만 보니 흔든 소주병 안엔 약간의 술이 찰랑거렸다. 잔에 따르기엔 민망한 양이라 그대로 입에 털었다. 미지근한 소주는 더럽게 썼다.

주정뱅이 말은 믿지 않아.”

상처받은 목소리. 지훈은 테이블 위로 팔을 늘어뜨리며 쓰러졌다. 훅훅 숨이 뜨겁다. 머리도 아파. 지난번 승철과 마신 와인은 취해도 맛이라도 있었지 소주는 맛도 없다. 가난해서 그렇다. 궁핍하고 굶주려 평생 살 일 없을 비싼 집안에서 마셔도 더럽게 맛없었다. 거짓을 뱉는 검은 동굴을 축축하게 적셔도 그 때뿐. 얼마 없는 수분과 함께 사라져 바짝 마른다. 작은 자극에도 쉽게 터져 피를 토한다.

아파.진실 같은 거짓은 무거워 자꾸만 지훈을 좀 먹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억눌러 위를 바라보는 고개를 아래로 처박는다. 막힌 시선엔 황량하게 메말라 죽은 땅만 끝없이 펼쳐진다. 한발자국 떼기 어려워 질질 끄는 발에 땅이 바삭하게 갈라져 모래바람을 만든다. 아지랑이처럼 혹은 태풍처럼 올라와 지훈이 걷던 길을 따라 흔적을 지운다.

당신을 알아. 달라붙던 시선. 맞춰 따라온 발걸음. 지훈은 눈치가 빠르다. 그가 승철이 지훈에게 어떤 관심을 보였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확신했다. 처음엔 바란난 아내의 내연남이 궁금했을 단순한 궁금증은 질척한 애정이 되어 지훈에게서 떨어지질 못했다. 점처럼 멀리 떨어진 지점에서 출발해 이제는 코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진심을 쏟는다. 짠 눈물은 황량한 대지를 적셔 정신 차리면 턱 밑까지 차올랐다. 숨이 턱턱 막히고 피부는 쓰라린데 충족감에 자꾸만 웃음이 터졌다. 보잘 것 없는 가난한 거렁뱅이에게 곧게 던져오는 시선은 텅텅 비어 아무도 찾지 않는 곳간에 열매가 차고 넘치게 만들었다.

 

아저씨 그거 알아요?”

더운 몸을 끌어안고 땀 냄새나는 뒷목에 코를 박으며 지훈이 중얼거렸다. 정사 후 아직 들썩이는 가슴에 깍지 껴 안은 지훈의 손 위로 승철이 제 손을 겹쳤다.

난 아저씨가 날 사랑한다는 걸 처음부터 알았어.”

티가 났거든. 꿈꾸듯 몽롱하던 눈빛. 나이프를 쥐던 손의 떨림. 말 한마디마다 요동치던 눈의 수면까지. 최승철은 거짓말을 못했다. 태생적으로 거짓말에 약한 사람이었다.

너 취했어.”

. 알아.”

몸을 더 끌어안는다. 어깨 가슴 배 허벅지 다리 전부 틈 없이 꽉 밀착하며 크게 숨을 마셨다. 살 냄새가 좋았다. 사람냄새가 좋은 적 없었는데 신기해. 최승철은 싫은 게 없었다. 단단한 몸.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 애타게 부르던 목소리. 허리를 감던 다리까지.

아저씨.”

목에 이마를 부볐다. 자꾸만 잠이 쏟아진다. 자면 안 돼. 아쉬워서, 꿈처럼 깨면 사라질까 겁이 나 승철의 어깨를 물고 돋은 척추를 핥았다. 그때마다 지쳐 큰 눈을 끔벅이던 승철이 작게 신음을 뱉으며 몸을 뒤척였다. 떨어지지 마. 빠져나가려는 몸을 팔에 힘주어 끌어안으며 지훈은 승철 등에 얼굴을 묻었다. 뱉고 마시는 숨이 간지러워 승철은 옅은 숨을 뱉었다.

술주정뱅이 말을 믿지 마.”

손가락에 손가락을 얽는다. 지훈은 힘을 주어 짧고 뭉툭한 승철 손을 꽉 쥐었다. 지금도 이게 맞는 건지 난 뭘 하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헷갈려. 심지어 난 술에 취했어. 다 술기운에 하는 말이야. 그러니 흘러들어. 줘본 적 없는 내가 받아본 적 없는 당신에게 놀라지 않도록, 체하지 않도록, 도망가지 않도록

내가 고아원에 들어간 7살 때 말이지...”

밤 하늘 별이 잠들 때까지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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