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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 ah하네요.

[우쿱]5월의 눈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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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쿱]5월의 눈

다몬드 2016. 8. 7. 20:32

 




처음 본 아들의 첫 마디,


아빠, 돈 좀 주세요.

 








 

 

 

[우쿱/지훈승철] 5월의 눈

 

 

 

 

w.agapi

 



 

 

 

따뜻해야 하는 5월에 올라와야 할 북태평양기압이 올해는 힘이 부족한지 시베리아고기압에 밀려나 살랑한 봄바람 맞이하려 산 봄옷들은 콧바람도 못 쐬고 옷장 속에 박혀 눈물을 적시고 있었다. 이상기후에 겨울내 지겹게 입은 패딩을 입은 것도 모잘라 설사가상으로 싸리눈까지 내려 바닥에 얼룩을 만들고 있었다. 얼굴과 머리카락을 적시는 눈을 맞으며 살을 떨리게 만드느는 칼바람에서 살기 위해 패딩을 입고 퇴근하던 승철은 집 앞에 얇은 흰 패딩을 입고 쪼그려 앉아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저기요.”

나와 관련되지 않은 곳에 무심한 평범한 승철은 그를 지나치려 했었다. 하지만 안락한 집을 들어가기 위해서 통과해야 하는 집 문 앞에 그 사람이 앉아있어 밀어내지 않는 이상 들어갈 수 없었다. 기본예절을 못 배웠나. 올라오는 짜증을 누르며 어쩔 수 없이 앉아있는 사람을 불렀다. 작은 목소리가 아니었는데 사람은 미동이 없다. 찬 바람이 건조한 눈을 베고 달아났다. 하루 종일 쨍한 모니터 화면에 혹사당했던 두 눈에 눈물이 찼다. 물방울확대경을 쓴 것처럼 화면이 커졌다가 다시 돌아간다. 사람은 여전히 미동이 없다. 저기요, 어깨를 잡고 신경질적으로 흔들었다. 숙인 목이 움찔 떨더니 머리가 들렸다. 올라온 얼굴이 하얗고 뽀송한 어린 소년이라 승철은 술 취한 아저씨라 짐작했던 것을 가출청소년이라 수정했다. 여기서 뭐해. 퍽 봐도 본인보다 어린 얼굴에 뒷말을 싹둑 자른 채로 물었다. 궁금해서가 아니라 좀 비키라는 무언의 뜻이었다. 하지만 남자, 아니 소년은 발을 옮겨 길을 비키지도, 무릎을 펴 일어나지도 않고 승철을 올려다보며 이상한 소리를 했다.

최승철씨 맞죠?”

낯선 인물에게서 익숙한 이름이 나왔다. 수그렸던 몸을 뒤로하고 발도 한걸음 뒤로 했다. 뭐야, 당신. 경계를 띄며 표정이 변한 승철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소년은 눈이 내려앉은 입술을 적시며 말했다.

당신 아들이요.”

 

 

 

날리는 눈을 맞으며 나눌 수 있는 대화가 아니라서 옮긴 카페에서 승철은 소년에게 코코아를 주었다. 보기만 해도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로 달콤한 코코아향에 코를 찡긋거렸다. 마셔. 내민 잔을 두 손으로 쥐어 입에 대더니 금세 내려놓는다. 안 마셔? 단 거 안 좋아해요. 나랑 같네. 소년은 입꼬리만 올려 소리 없이 웃었다.

너가 내 아들이라고?”

쌍커풀 없는 길쭉한 눈과 젖살이 빠지지 않은 통통한 볼, 입술이 가로로 길게 벌어질 때마다 깊게 파이는 보조개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동그란 얼굴과 생각보다 넓은 어깨와 테이블에 앉아있지만 서 있을 때도 작았던 덩치와 키를 머릿속에 그렸다. 완성된 그림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 기울었다. 내 아들이라 하기엔 너무나 다른 생김새. 아무리 봐도 자신과 딴판인 남이였다.

네 엄마 누구시니.”

혹시나 물었다.

짐작 가는 분 없으세요?”

여전히 컵을 쥔 채로 소년이 물었다. 글쎄... 문란하게 지냈던 과거에 여인들을 떠올려봤다.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하룻밤여인들이 사진처럼 빠르게 넘어갔다. 사랑에 영원을 약속한 달콤한 거짓말을 속삭였던, 안개처럼 손에 잡히지 못하고 옅어져 사라지는 그 무리들 중에서 한 명일지도 모르지. 뒷머리를 긁으며 잘 모르겠다, 가벼운 어조로 넘기는 승철에게 이 소진이요, 소년은 대수롭지 않게 받았다.

이 소진.

친구와 의미 없이 주고받는 농담처럼 재미로만 이 상황을 관망하던 승철의 잔잔한 마음에 파동이 일어났다. 소년이 힘껏 던진 물수제비 돌이 수면을 통통 두들기다 힘을 잃고 침수했다. 저 밝은 곳을 향해 손을 뻗으면서 자꾸만 자꾸만 가라앉은 돌덩어리는 결국 빛이 들어가지 못한 어둠에 삼키고 깊은 수면 아래 감춰진 기억 상자를 깨웠다.

 

 

 

 

이 소진.

하얗고 아담했던 여자는 승철이 13살 일 때 여름인가 가을 언제쯤에 불현 듯 나타난 여자였다. 시작은 언제쯤인지 모른다. 그녀는 그냥 어느 순간 있었다. 3년 전 가장 사랑했던 여인을 사고로 한순간 떠나보내고 흑백세계에 갇혀 지냈던 두 남자의 공간속에 스며든 여자였다. 퀘퀘한 썩은 내가 나는 집 창문을 열어 시원한 바람이 흐르게 하였다. 오랫동안 빨지 않아 먼지와 엉켜 더러워진 이불을 세탁기에 돌리고 갖은 벌레들이 서식하던 바닥을 깨끗이 쓸었다. 매일 담배와 술로 찌들어져 있던 남자의 까만 손을 잡아끌었다. 겁에 질려 숨은 소년을 찾아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달래기도 했다. 여자의 출입은 일주일에 한번이었다가 세 번이 되고 하루에 2번이 되었고 매일매일 보는 것에 익숙해졌을 무렵 죽은 엄마의 숨이 남아있는 집에 달콤한 향기로 채우며 그 여자는 마치 엄마처럼 우리 곁에 있게 되었다.

 

 

 

 

일주일이 안 되어서 소년을 또 만났다.

쓴 커피로 잠을 깨우며 야근하던 날에 회사 앞이라는 짧은 문자가 왔었다. 이 지훈이라는 낯선 이름에 눈썹을 모았다. 저장만 하고 들여 본 적 없는 낯선 번호와 이름에 사고회로가 얽혔다. 어떻게 해야하지 고민하던 찰나에 카톡처럼 읽으면 1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서 내가 읽었는지 모를텐데 어떻게 알고 올 때까지 기다릴게요 이어서 문자가 또 왔다. 눈을 들어 맞은편 벽에 붙은 시계를 봤다. 창립 13주년으로 사원들에게 나누어준 것과 똑같은 시계가 10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의자를 돌려 네모나게 난 창문 밖을 바라보니 캄캄한 실외의 풍경에 저 멀리 도로를 타는 차의 빨간 뒤꽁무니가 줄줄이 붙어있었다. 거기서 시선을 더 내려 오고가는 사람이 적은 보도 쪽으로 시선을 던지면 익숙한 흰 패딩이 회사 앞 회사이름이 적힌 넓적한 반석을 받치고 있는 돌덩어리에 앉아있었다. 바람에 날린 머리카락이 어서 오라며 손짓하는 것처럼 보였다.

승철은 지갑과 핸드폰을 들고 사무실에서 나왔다. 회사 복도를 걷고 엘리베이터에 탈 때까지 추운지 몰랐는데 두꺼운 유리문을 여는 순간 매섭게 몰아치는 찬 바람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딱딱 부딪히는 이를 꽉 물고 두 팔로 몸을 끌어안으며 소년이 있는 쪽으로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다. 빠른 발걸음 소리에 고개 돌린 소년이 승철을 보더니 허리를 꾸벅 숙인다.

무슨 일이야.”

바람을 등으로 맞으며 물었다. 소년은 패딩의 지퍼를 내리며 답했다.

머리카락이 필요해서요.”

머리카락?”

패딩의 지퍼를 완전히 내리고 한쪽 팔을 빼는 소년이 하는 걸 보며 의아하니 물었다. 유전자 검사요. 나머지 팔까지 완전히 빼서 벗은 패딩을 승철에게 둘러줬다. 온기로 훈훈하게 데워진 패딩이 포근하게 승철을 감싸 안았다. , 너는. 전 괜찮아요. 색이 탁한 갈색 니트 하나만 입은 소년에게 미안해서 다시 벗으려는 걸 소년이 말렸다. 말뿐만은 아닌지 찬바람이 옆구리고 머리카락이고 뾰족한 손톱으로 긁고 지나가는데 표정하나 바뀌지 않았다.

내가 네 아빠라며.”

그런데 유전자 검사는 왜 해. 소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말 믿어요?”

믿고 말고를 떠나서 너가 지난번에 얘기했잖아.”

아닐 수도 있잖아요.”

그럼 아니야?”

아니요.”

그럼 맞잖아?”

증거가 없잖아요.”

우린 키도 덩치도 얼굴도 안 닮았는데.

거기서 승철은 좀 어이가 없어졌다. 평범하게 살고 있던 승철에게 다가와 아들이라고, 이 소진이라는 이름까지 들먹이며 다가왔으면서 승철이가 해야 할 소리를 본인이 한다. 보통 유전자 검사 얘기 같은 건 내가 해야 되는 거 아니냐? 너가 아니고.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고 앞에 있는 소년을 가리켰다. 소년은 바람에 얼굴에 달라붙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뒤로 넘기며 보조개가 푹 파일 정도로 웃었다.

아빠도 이상해요. 내 말을 의심 없이 믿잖아요.”

위화감 없는 아빠 소리에 승철의 입술도 따라 호선을 그렸다.

 

 

 

 

네 엄마가 이 소진이라 그래.

 

여자는 독특했다. 초등학생이지만 다 큰 남자어린아이를 어려워하지 않았다. 자고 있는 승철의 엉덩이를 두들겨 깨우고 씻고 있던 욕실 문을 벌컥벌컥 열기도 했다. 깜짝 놀라 아랫도리를 가리는 승철에게 엄만데 뭐 어때~ 능글맞게 웃으며 갠 수건을 서랍속 에 놓고 사라졌다. 머리가 굵고 짖궂은 친구들이 가방에 넣은 야한 잡지를 펼치며 그 앞에서 보기도 했다. 승철이가 가슴 큰 여자를 좋아하는구나. , 아니예요. 부끄러워 잡지를 빼앗듯이 잡아당겨 엉덩이를 들어 아래로 숨겼다. 여자는 그런 승철이 귀엽다는 듯이 꺄르르 웃었다. 괜찮아, 네 나이 때는 그런 거 보고 싶고 그런 거야.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 태연한 모습에 귀를 붉게 물든 색이 얼굴까지 붉게 태웠다. 그렇게 궁금하면 자, 직접 만져도 돼. 입술을 말아 올려 웃으며 여자의 손이 무릎에 아무렇게나 둔 승철의 손을 끌어 잡았다. 그리고 집에서 입던 원피스를 내려 봉긋하게 솟은 가슴에 올려두었다. 작은 손바닥에 꽉 차게 들어찬 몽글몽글하고 따뜻한 감촉에 승철의 눈동자가 떨렸다. 어때? 잡지로 보는 거랑 직접 만지는 거랑 다르지? 승철의 손 위로 여자의 손이 덮여 자신의 가슴을 주물렀다. 붉게 손자국이 나기 시작하는 가슴을 볼 수가 없어 승철은 고개를 숙였다. 속눈썹이 길게 그늘진 두 눈에 빨갛게 매니큐어를 칠한 여자의 발톱이 들어왔다.

 

 

 

다음날에 문자로 돈이 필요하다는 문자가 왔었다. 유전자 검사를 위해선 얼마의 돈이 필요하다고. 어젯밤 자비 없이 머리카락 세 가닥을 뽑아가더니 기어코 유전자 검사를 하려나보다. 안 해도 될 텐데. 끝까지 말렸던 승철이었지만 소년은 물러섬이 없었다. 바지주머니에서 꺼낸 작은 흰색비닐봉투에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머리카락을 담고는 꽁꽁 묶었다.

[얼마가 필요한데?]

[50만원이요]

핸드폰 위로 손가락이 서성이다 다시 화면키보드를 눌렀다. 계좌 보내. 1분도 안 되서 12개의 숫자와 은행이름이 넘어왔다. 책상 왼쪽 바닥에 세워뒀던 가방에서 지갑을 꺼냈다. 지갑 맨 뒤 타이트한 비밀공간에서 보안카드를 꺼냈다. 몇 번 화면을 두들기고 나서 승철이 다시 문자를 보냈다.

[50만원 보냈어.]

[.]

[아직 추우니까 잠바 좀 사라고 50만원 더 보냈으니까 옷도 사. 네 패딩 나한테 있잖아.]

소년은 답이 없었다.

 

 

 

 

깨어 있는 모든 것이 잠들고 어둠만이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늦은 밤 자고 있지 않은 여자가 닫힌 승철의 방을 들어오는 횟수가 늘어났다. 들리지 않는 발걸음으로 느리게 침대 쪽으로 걸어가 어둠에 동화되어 인형처럼 앉아있는 승철에게 다가간다.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인형조종사처럼 몸 여기저기를 어루만지면 승철은 그때서야 몸을 움직였다. 다 자라지 못한 소년의 몸으로 어른의 몸을 삼키고 얽혀오는 몸을 끌어안으면 살냄새가 승철을 가득 덮었다. 아빠가 선물한 향수냄새인지, 아니면 여자가 산 바디로션 냄새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자가 버리고 승철이 가져와 옷장 깊숙이 숨겨둔 엄마 옷에서 나는 냄새랑 달랐던 것만은 확실했다. 그녀의 살냄새는 머리가 아플 정도로 강하고 달콤한 향이었다. 끊을 수 없는 마약처럼.

 

 

 

이주가 안 돼서 검사가 나왔다는 소년의 문자를 받았다. 검사로 돈이 필요하다는 문자 이후로 쭉 연락이 없어서 죽었을 줄 알았는데 살아있었던 모양이다. 승철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마침 회사에서 몇 달에 걸쳐 하던 일도 잘 마무리 됐고 오랜만에 제 시간에 퇴근하던 참이라 저녁을 먹자 했다. 소년은 잠시 연락이 없었다가 회사로 가겠다고 답장을 했다.

얼마 안 되어 회사 앞에 나타난 소년을 데리고 간 건 회사 근처 고깃집이었다. 가격이 싸고 양도 많은데다 맛도 좋아서 종종 퇴근 후 직원들과 저녁을 해결하던 곳이었다. 익숙한 가게주인 아저씨께 주문을 하고 구석에 자리를 잡자마자 소년이 분홍색 잠바-그거 너가 고른 거야? 직원이 이게 잘 어울린다고 무작정 품에 안겼어요.- 오른쪽 주머니에서 돌돌 만 종이를 꺼내 불판 위에 올렸다. 마침 밑반찬이 와서 급하게 종이를 들고 가방 뒷주머니에 넣었다.

안 봐요?”

일단 먹고. 급하게 볼 거 없잖아?”

휴지와 함께 놓인 수저통에서 젓가락과 숟가락을 꺼내 쥐어주며 말하자 소년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바로 들어오는 고기에 고춧가루가 들어간 양념장에 채편으로 썬 양상추를 적시는 소년을 힐끔 보았다. 너 고기 잘 구워? 어정쩡하게 집게를 들고 묻자 소년은 말없이 승철에게서 집게를 잡아들고 고기를 불판에 올렸다. 막힘없이 불판 위로 올라간 고기가 맛있는 소리를 내며 익어갔다. 고이는 침을 삼켰다. 뜨겁게 달군 불판에 빠르게 익은 고기를 알맞게 자르며 승철 쪽으로 고기를 몰아준다. 너도 먹어. 거기서 한 점 꺼내 먹으면서 말하자 소년은 집게로 고기를 집어 먹는다. 몇 번 젓가락질에 고기가 금세 동이나 고기를 더 시키고 술도 시켰다. 너 술 마실 수 있..? 몇 살이야? 받은 소주병을 흔들며 물었다. 빨리도 물어보시네요. 비아냥섞인 대답에 승철은 멋쩍게 웃었다.

“18살이요.”

고등학생이네. 학교 어디야?”

안 다녀요.”

?”

저 출생신고를 지난 달에 했거든요.”

그리고 소년은 말이 없었다. 승철은 소년 뒤로 고기를 구우며 떠드는 무리를 눈으로 훑었다. 저와 같이 양복을 입은 무리가 가득한 곳에서 분홍색 잠바를 입은 소년의 굽은 등과 정수리가 바다 한 가운데 똑 떨어진 섬처럼 부유했다. 승철은 소주병의 뚜껑을 딴 그 채로 눈을 끔벅거렸다.

술 먹을래?”

괜찮아요.”

내 방식대로 건넨 위로에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음료수라도 시켜줄까?”

저 어린애 아니예요.”

어린애 맞잖아. 18, 미성년자.”

그냥 술 주세요.”

안 돼, 너 미자야. 너 주면 나랑 이 가게 아저씨랑 은팔찌 차고 경찰서 가야 돼.”

그럼 물 줘요.”

그래.”

찬 물을 가득 담아 주니 술처럼 한 잔에 원샷이다. 술 먹고 싶구나. 물었더니 술 안 주실 거잖아요. 입술을 삐쭉인다. 승철은 맞아. 하하 웃었다.

그럼 우리 집 가서 마실래?”

소주잔 가득히 소주를 담고 마셨다. 쓰게 목을 훑고 지나가 고기가 들어간 속을 데운다. 캬아~ 맛있네. 오랜만에 느끼는 소주의 달달한 맛에 또 소주잔에 소주를 부었다. 그것을 가만히 보던 소년이 대답했다.

, 갈래요.”

 

 

 

 

 

아버지가 죽었다. 새벽녘 졸음운전을 하던 트럭이 중앙선을 넘어 아버지의 차를 들이 받았다했다. 얇은 종이처럼 완전히 구겨진 차에서 압사당한 아버지의 시신은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처참해서 병원 화장실에서 오바이트를 했다.

한참이 지나 겨우 진정이 되어 화장실에서 나올 때 여자를 봤다. 부른 배를 끌어안으며 오열하고 있었다. 굵은 눈물이 화장기 없는 민낯을 더럽혔고 머리는 쥐어뜯긴 것처럼 엉켜져 있었다. 간호사가 다가와 괜찮으시냐며 다독이자 그 품에 파고들어 우리애기 어떡하냐고, 아빠 못 보고 태어날 우리 아기는 어떡하냐며 통곡했다.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안타깝다는 듯이 눈을 적시고 등을 두들기며 지나가기도 했다. 승철은 다시 화장실 첫 번째 칸 변기로 달려 들어가 더 이상 나올 것이 없어 노란 위액이 나올 때까지 속에 것을 게웠다.

 

 

 

 

맞닿은 등에 감았던 눈을 떴다. 잠깐 잠이 들었는지 침대 옆 탁자 위 시계바늘이 기울어져 있었다.

악몽 꿨어요?”

등 뒤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몸을 돌렸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에 비춘 말간 얼굴이 저를 보고 있었다.

소년과 고기를 먹고 집에 오는 길에 소주를 사고 몇 병을 마시다가 너랑 잤지. 그제서야 승철은 저와 소년이 발가벗고 있는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몸이 좀 찌뿌둥한 것 빼고 뒤쪽은 멀쩡했다. 다만 허벅지 사이가 미끌거리고 축축했다.

안 박았어?”

.”

?”

제가 처음이라서요.”

그리고 소년은 말이 없었다. 승철은 몸을 좀 뒤척였다. 소년은 내려간 이불을 어깨 위로 올려주었다. 주황색으로 물든 소년의 얼굴이 표정 없이 승철을 마주보고 있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까만 눈동자에 담긴 제 얼굴이 보였다. 승철이 손을 올려 소년의 얼굴을 훑었다. 굳게 닫힌 얇은 입술과 서늘한 눈꼬리가 말랑말랑했다.

네 엄마는 친엄마 맞아?”

소년이 웃었다.

엄마는 맞아요.”

좋은 사람이었어?”

소년은 승철의 손가락을 쥐었다. 힘을 주면 풀 수 있을 정도의 악력으로 모아 잡은 손가락에 키스를 했다.

돈도 못 벌고 음식만 축이는 거지새끼라고 죽기 직전까지 때리다 지치면 술을 마셨어요. 머리끝까지 술로 가득 채울 때까지 몇 병이고 마시다 쓰러지면 아빠 얘기를 했어요. 멍청하고 못생긴 남자랑 결혼한 이유가 반반한 애새끼때문이라고. 돈 많은 줄 알고 접근했는데 알고 보니 알거지여서 헤어지려 할 때에 중학교도 안 들어간 어린애가 색을 띠며 자기를 쳐다보는데 꼴려서 따먹었다 했어요. 엄마 죽고 아빠한테 방치된 채 키워져서 조금만 애정을 주어도 좋다고 자꾸 달라붙어서 한번만 하려던 게 계속 되서 결국 임신까지 했다고 하더라고요.”

입술에 닿은 손가락은 떨어지지 않은 채, 천천히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소년의 모습은 꼭 엄마의 젖을 무는 어린 아이 같기도 했고 십자가를 쥐며 고해성사를 하는 신도 같기도 했다.

내가 아빠 아들 아닌 거 처음부터 알았죠?”

.”

안 닮아서요?”

아니.”

거짓말한 게 티가 나서?”

그것도 아니.”

그럼 내 아빠가 누군지는 알아요?”

그건 몰라.”

소년의 입술이 가느다래진다.

사실 저도 몰라요.”

엄마 몸에 씨를 뿌린 남자가 한둘이 아니어서요.

 

 

 

 

아빠에게 들켰다. 어느 날처럼 승철의 방을 두들겨 들어오던 여자와 뒹굴고 있을 때 예고 없이 열리던 문, 씩씩거리며 들어오던 아버지. 겁에 질려 침대 구석으로 도망간 아들을 핏발 서린 눈으로 노려보더니 그대로 밖으로 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아빠가 죽자 여자는 아이를 유산했다. 여자를 아는 사람들 모두 여자가 젊은 나이에 남편을 보내고 아이까지 잃었다며 안쓰럽다고 동정을 주었으나 사실은 여자가 더 이상 필요 없다며 아이를 지웠다는 걸 알지를 못했다.

아이가 사라져 홀쭉해진 배를 만족해하며 웃던 여자는 더 이상 승철이 알았었던 다정한 여자가 아니었다. 상냥했던 눈웃음은 날이 선 칼날처럼 변해 승철의 몸과 마음을 상처 입혔다.

너가 네 아빠를 죽게 한 거야. 그리고 내 애도 죽였지.

여자의 입은 달콤한 독사과였다. 입을 열 때마다 달콤한 과즙으로 사람을 홀려 그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승철의 뿌리였던 부모라는 뿌리채 뽑혀 나무는 힘없이 휘두르는 대로 흔들렸다. 붉은 생채기와 푸른 멍이 얼룩지고 음식을 먹지 못해 몸은 점점 말라갔다. 점점 생명이 꺼져가는 승철에게 여자는 귀찮으니 얼른 죽으라며 창고에 가뒀다.

하루는 그냥 그랬다. 먹지 못하고 제대로 누워 자지도 못하는 나날 속에서 정화되지 않은 습한 공기와 바닥에 쌓인 먼지에 누워 지내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더 흐르자 정말 이대로 죽을 것 같았다. 물을 마시지 못해 마른 목은 침도 나오지 않아 퍼석하게 메말라갔고 문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빛이 다인 캄캄한 창고를 훑어보는 눈은 영양실조로 뿌옇게 흐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빛 사이로 파도치는 그림자와 험악한 소리가 손짓하는 저승사자의 노랫가락처럼 들렸다.

승철아.

아득히 먼 곳에서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메세지가 왔다. 그 일 이후로 홀연히 자취를 감추어 문자와 전화를 다 씹더니 한 달 만에 오는 메세지였다. 울컥한 마음에 빠르게 사무실 밖으로 나가며 전화 버튼을 눌렀지만 전원이 꺼져있다는 안내원 소리만 반겨왔다. 벽에 손을 대고 한숨을 푹 쉬었다. 아빠 소리를 계속 들었더니 진짜 아빠가 된 것처럼 걱정이 드는데 그 걱정을 사는 소년은 제 꼬리를 숨긴다. 숨을 천천히 뱉으며 핸드폰을 눌러 메세지를 켰다.

[미안해요. 돈은 나중에 갚을게요.]

첫날부터 잘 때가 없다며 몇 십만원씩 돈을 뜯어가더니, 마지막에 지갑에 있던 지폐와 간이 서랍장에 숨겨둔 통장까지 다 훔쳐놓고 갚는단다. , 실소가 터졌다. 정작 필요한 도장은 내 집에 두고 통장만 가져가서 뭐할건데. 일부러인지 멍청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조만간 또 제 앞에 나타날 아들에게 이번엔 무얼해줄까 고민해본다. 어두워지는 화면에 메시지를 손가락으로 두들기며 다시 한번 읽고는 피식피식 웃다가 결국 폰을 끄고 뒷주머니에 넣었다.  

 




찬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며 싸리눈을 흩날리던 그 긴 밤에 소년- 지훈이 알코올로 젖은 입이 부딪혀왔다. 온기를 찾아 들어오는 혀를 얽으며 왜 나에게 찾아온거야. 물었었다. 한참을 말없이 승철을 취하기만 했던 지훈은 더운 숨을 삼키고 살에 닿는 기다랗고 가느다란 손가락에 열을 토하는 저를 내려다보며 지훈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에겐 이제 당신 밖에 남아있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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