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o, ah하네요.
[우쿱]피아노 본문
피아니스트 후니를 볼 때가 됐다 원래 꿈은 소방관이었다. 긴급출동 일일구 애청자였던 후니는 유치원 생일잔치에서 나는 소방관이 될 거라며 소방관모자를 썼다. 소방 체험엔 가장 앞선 꼬맹이였고. 하지만 여느 아이들이 그렇듯 꿈은 자주 바뀌었다. 어느 날은 닌자였고 어느 날은 해적이었다. 더 커서 만화작가였다가 콜라파는 슈퍼마켓 주인이었다. 그 꿈이 젤 오래 안 바뀌었다.
그러다 피아노를 만났다. 아직도 기억나. 중 2때 도시 내 음악선생들 몇이 모여 작게 여는 음악회였어. 소규모 공연장에서 관객이 적을까 우려한 음악쌤이 음악실기점수에 반영한다며 꼭 출석하라고 했다. 반이름번호이름을 적고 무료하게 폰겜을 했었다. 언제 끝나냐고 같이 앉은 친구랑 불평도 쏟고. 그러다 만났다. 피아노에서 흘러나오는 유려한 음들을. 그걸 뭐라고 표현해야할까. 마치 신년에 첫 해돋이를 만난 기분이랄까. 어제오늘내일 똑같이 뜨는 똑같은 해일뿐인데 가슴이 꽉 죄였다. 무작정 피아노학원부터 끊었다. 영어점수 90점을 받는 조건이었다. 당시 부모님은 후니를 영어학원에 보냈다. 앞으로 세상이 더 글로벌해질텐데 영어를 배워두는 게 좋다고. 친구가 다녀서 같이 다니는 기분으로 영어공부를 했던 후니는 열심히 공부했다. 좋아하는 잠대신 영어단어를 외웠다 사이사이 피아노연주를 찾아들었다. 닥치는대로 듣고 책상을 피아노삼아 손가락을 움직이기도 했다.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것만으로 가슴이 뻐근했다. 연주자가 된 것 같았다. 좋아하는 피아니스트가 한둥 생겼고 잘 때까지 듣다가 꿈에서 그들이 되어 유려하게 피아노를 쳤다 90점이 넘었다. 후니는 드디어 피아노를 만났다.
처음엔 못 쳤다.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친구는 벌써 체르니 들어갔는데 후니는 기본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뭐가 문젠지 몰라서 연습만 계속 했다. 불안하진 않았다. 내 손가락이 직사각형의 흰색건반을 누를 때 소리가 나오는 게 아직 신기해서. 까만사과를 더 이상 그릴 수 없을 때까지 계속 계속 쳤다. 학교 끝나면 가방을 벗으며 구석 피아노실에 들어가는 후니를 보고 쌤들이 연습벌레라고 불리기 시작한 건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동안의 노력에 보상받듯 후니의 피아노실력이 늘었다. 저보다 앞섰던 친구를 따라잡기 시작해 학원에서 가장 잘 치는 학생이 됐다. 콩쿠르를 나갔다. 친지 일 년만에. 아쉽게도 장려상이었다. 하지만 주변인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해서 뒤늦게 재능이 폭발한 인재라 하였다. 단순히 변심의 피아노를 치는거라 생각했던 부모님의 시선이 달라졌고 음악실에 가면 피아노를 쳐달라는 부탁이 많아졌다. 얼떨떨했다. 좋기도 했고. 그냥... 피아노를 계속 칠 수있어서 좋았다. 음악실을 써도된다는 허락을 받고 학교에서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게. 집에는 엄마가 사준 전자피아노도 있어서 어딜가든 피아노를 칠 수 있었다. 항상 피아노가 있었다.
그 이후로 승승장구했냐면 글쎄. 무얼로 성공여부를 판단하는지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사람마다 성공을 보는 기준이 다르니까. 물질로 따지면 반정도성공했나. 후니의 인생에 피아노로 탄 상은 첫 콩쿨에서 받은 장려상이 끝이어서.... 꾸준히 나갔지만 매번 빈손으로 돌아왔다. 정확한 박자에 정확하게 표현해야하는 콩쿨에서 내 삘대로 치는 후니는 문턱도 기웃거리지 못했다. 누군가가(심사위원 중 한명으로 안다) 아무리 자유곡이래도 너무 자기멋대로 아냐? 라 했다. 비웃는 소리도 좀 들은 듯.. 상을 받고 기뻐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뒤로 하고 피아노만 쳤다
상심한 마음엔 음을 채웠다. 더이상 들어갈 데 없어 숨이 꽉꽉 막혀서야 피아노 앞을 벗어났다. 한참 시간이 지나 깜깜한 밤에 창 너머 달을 보다 또 연주를 했다. 꽉꽉 채워 빛이 들어오지 않는 마음에 달빛이 스며들었다.
이지흕 학생 맞죠?
심사위원 중 한 분이었다. 하얗게 물든 머리를 하나로 묶은 푸근한 얼굴의 낯선 이.
내가 세달뒤에 독주회를 하는데 나랑 협주할 생각 없어요?
네?
너무 뜻밖이었다.
어때요?생각 있어요?
왜 저에요?
연주를 참 재밌게 하더라구요, 즤흕 학생이. 그래서 같이 해보고싶어요. 나랑 어떤 연주를 할지. 무척 궁금하거든요
후니의 첫번째 터닝포인트였다.
피아노라는 운명을 만나고 두번째로 심장이 죄는 날이었고. 수락하고 돌아와서 피아노위를 날라다녔다. 통통통 건반에 맞춰 튀는 음악들이 후니주변을 원처럼 둘러싸 콩콩 뛰고 창밖을 타고 하늘로 날라가 구름을 간지럽혔다. 인터넷으로 명함이름을 검색하고 놀라서 의자뒤로 넘어질뻔도 했다. 피아노를 처음 만날 때 자주 듣던 음악의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다. 침대를 떼구르르 구르고 잠을 못자고 학교가다 넘어지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인사를 하고 연주를 하고 얘기를 나누고 집에 들어와서 대박,, 만 외치고.
상상이상이네요. 수십년을 피아노쳤지만 즤흕학생같은 사람은 처음이에요. 매번 달라요. 비슷하면서도 세세하게 다르죠.그게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고... 다음엔 어디서 어떻게 하여 나를 놀래킬건지, 매번 궁금하게 만들어요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았고 후니도 몰랐던 장점을 가장 먼저 알아주셨다. 감탄하고 필요한 부분에선 조언도 해주어 그 분이 후니의 스승이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후니가 어떤 피아니스트가 될 건지 결심하게 만들었다. 단순히 좋아서 피아노를 시작한 후니가 훌륭한 피아니스트로 성장하는건 당연했다.
다양한 연주자들과 협주를 하고 곡을 만들고 티비에도 나왔다. 많은 곳에서 많은 연주를 했다 이번 일도 그랬다. 연주하다 알게 된 형이 아는 동생이 이번에 재밌는 일을 한다는데 해보지 않겠냐고. 해외투어가 끝나고 잠시 숨을 고르려고 쉬고 있던 터라 거절했는데 형이 끈질겼다.아니 형이 그냥 얘기했는데 듣다보니 재밌더라고. 뭐?그 사람도 한다고? 진짜?나할래! 형 나 소개시켜줘
만나서 얘기하니까 더 재밌었다. 독특한 사람들끼리 모여 장난을 도모하는 것같았다. 붜넌이라고 인사한 사람이 젤 독특했다. 드럼 연주자였고 같이 맞추다 너무 웃어서 더 연주못했다. 이런 연주를 하다니. 어떻게 이렇게 하지? 신기해서 물어보니 어깨를 으쓱한다. 그냥 삘대로 하는거에요 스승님이 날 첨 봤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너무 재밌어서 웃느냐 정신없었다. 끝날 땐 광대가 아파서 마사지를 해야만 했다. 어떻게 같이 연주하는 기념으로 술 드실래여? 노니만큼 독특한 사람중에 그나마 평범한 밍(기타)이 물었다.
술 못마셔
나도 못 마셔.하지만 나는 가. 그러니 가자
수녕이(보컬) 어깨동무를 했고 꽈니(보컬)가 연습실 문을 잠궜다
우리 형도 가도돼요?
슨쳐리형?그형은 오지말라해도 올걸~ 늘 가던데로 갈거니까 거기로 오시라 해
네
아마 그 날이 세번째로 가슴이 꽉 죄는 날이었을거다.아니 분명히 그런 날이었다. 티비에서 봤다며 팬이라 했던 사람.못 마시는 소주를 따라주며 짠 잔을 부딪히며 환하게 웃던 얼굴에 거절을 못하고 입에 대었다. 식도를 타고 위장에 들어가자마자 역한 느낌에 인상을 잔뜩 찌푸렸더니 방울토마토가 시야에 들어와, 이거 먹으세요 그러니 말을 아기새처럼 입만 벙긋거렸다. 이에 손톱이 스쳤다. 얼굴이 빨개졌다. 벌건 얼굴이 걱정되어 처진 속눈썹에 음표가 나란히나란히.
헤엑,후니 형 얼굴봐.
그 형 술 못마신다는데 술 줘써요? 나쁜사람이네
일부러 준 거 아니거든! 몰랐어! 미안해요, 즤흔씨.
밍이 말려 더 이상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게 속상했다. 미웠고. 괜히 밍을 노려보면서 아쉬움에 소주잔만 만졌다 왜 나는 술을 못 마실까 힐끔힐끔 눈길이 가는 곳엔 왁자지껄하게 웃는 얼굴이. 짙은 쌍까풀에 올라간 속눈썹엔 음표가 대롱대롱 매달려있어 만져보고 싶다. 어떤 노래일까, 궁금해서 술냄새 풀풀 풍기며 방에 있는 피아노를 쳤다. 치다가 쓰러져 잠들었다
다음날 말도 못하고 끙끙앓다 끝나고 먼저 나간 노니랑 어깨동무하며 걷는 뒷모습을 봤다. 당신이 궁금해졌다
매일 왔다. 연습이 끝나는 11시 30분, 혹은 새벽 1시에도. 연습살 밖 문앞에 서 있었고 연습실 안에 들어와 연주하는 이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때론 허겁지겁 뛰어와 가쁜 숨을 뱉기도 했고 드물게 즤흔이보다 먼저 온 적도 있었다. 매일 봤다. 궁금증은 갈수록 부피를 더했다.
하루는 평소보다 한두시간 일찍 도착해 어쩌지, 하다 연습실에 일찍 들른 적이 있었다. 아무도 없을거라 생각했던 연습실엔 그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일찍 오셨네요
아..네.. 안녕하세요
드럼 옆 간이의자에 앉아 반갑게 인사를 했다. 후니는 생각지 못한 인물의 등장에 멈칫하다 고개를 푹 숙였다
다른 사람은 안 왔고 소리는 저랑 같이 왔는데 잠깐 뭐 사러 나갔어요
쳐다보지 못하고 가방과 옷을 벗고 정리하는 후니 뒤로 말이 이어졌다.
후니 씨는 저녁 식사하셨어요? 안 하셨으면 저 햄버거 먹으려 그러는데 시켜드릴까요?
아니요. 안 배고파서요
네에...
서운한 투였다. 투였을거다. 바짝 얼어붙은 후니 귀엔 그렇게 들렸다. 너무 차갑고 무뚝뚝했어. 답은 너무 빨랐고. 낯을 많이 가려 누군가와 친해지기가 어려운 성격은 여기서도 문제였다. 후니는 폰을 두들기는 쳐리를 힐끔 보고 죄스러워 눈을 돌렸다. 너무 조용했다. 신경이 쓰였다. 아무렇지 않게 손을 털고 댐퍼 페달 위에 발을 올렸다. 어색한 침묵을 피아노 소리로 쓸었다. 열 손가락의 댄서가 되어 건반 위에서 춤을 춘다. 둘씩, 셋씩 혹은 열 손가락 모두가 콩콩 뛰고 흘러내렸다. 엄격한 음률속에서 늘어지고 바짝 당기고 데구르르 굴렀다. 엉망같아도 규칙적이었다. 갑자기 손가락이 멈췄다. 꿈에서 깬 것처럼 고개가 번쩍 들렸다. 손을 모으고 입술 가까이 붙이며 녹아내리던 쳐리가 시선 끝에 있었다.
두 번째 앨범 4번 트랙에 있던 dawn 맞죠?
푹 젖어 흐물흐물한 눈코입이 반짝였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에요, 이거.
첫 만남에 자기 팬이라던 게 떠올랐다 너무 좋다아... 중얼거린 혼잣말에 얼굴이 홧홧했다. 누군가에게 붙잡힌 것처럼 꼼짝않던 손가락이 제 멋대로 다시 움직였다. 어쩔 줄 몰라 수줍어하며 건반을 두세개씩 뛰었다. 엉망이었다. 실수투성에 귀가 뜨거웠다. 이런 형편없는 연주를 멈춰야했다. 타이밍이 좋게 문이 열리며 햄버거마크가 인쇄된 비닐봉지를 들고 소리가 들어왔다. 시킨대로 잘 주문했지? 하나도 안 빼먹었어 한쪽에 길게 자리한 테이블위에 사온 햄버거를 꺼내며 하나하나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이번엔 안 빼먹었네. 잘했어 엉덩이를 툭툭 두들기는 손길이 익숙한 듯 소리는 고개를 느낌있게 끄덕이며 후니를 불렀다 형도 드세요. 형 계신단 소리 듣고 더 사왔어요 배부르다 거절했다. 이번에 신상으로 나온 버거로 사왔는데 한 입만 드세요~ 쳐리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권했다. 진짜 괜찮다고, 한 번 더 거절했다 와아- 햄버거다!!! 문 열자마자 환호하며 들어오는 수녕에 팔이 붙들려 결국 먹었다.
한 입 베어물고 바삭한 치킨튀김에 만족한 후니는 맞은편에서 그봐요, 맛있죠? 무언으로 쳐다보는 쳐리에 몸을 조금 돌렸다.
형 오늘도 있다 가실거예요?
아니 약속있어서 갔다가 끝날 때 다시 오려고
형이 소리때문에 고생 많으시네요 괜
찮아. 별로 안 힘들어. 어, 너네 언제 끝나?
봐야 아는데 어제랑 비슷하게 끝날 것 같아요
그래, 그럼 그 때 도착할게. 혹시 일찍 끝나게 되면 전화줘
네에
소리 어디 못가게 꼭 꽉 잡아두고
걱정마. 어디 안 가
네가 하니까 하나도 신용이 안 간다. 됐고, 너 형 도착할 때까지 꼼짝없이 있어라 알겠냐
엉
으구, 몸만 컸지 하나도 안 컸어
뒷정리를 하고 슬슬 연습하러 의자에 앉는 소리의 볼을 꼬집는다. 익숙한지 가만 받는 태도에 조금 놀랐다. 연주 잘하고, 좀 있다 봐 엉덩이를 두들기고 형 빠잉- 수녕이와 포옹하며 허리를 두들긴다. 후니에게 반달처럼 눈을 접으며 목례를 한다. 얼떨결에 같이 목례를 하고 뒷목을 긁었다 좀 있다 봬요 아무 뜻 없는 흔한 인사가 바짝 깎은 뒷머리카락을 잡고 늘어져 후니는 중간중간 뒷목을 쓸었다. 까끌한 감촉이 손바닥만 긁었다.
이틀이 지났다. 피아노앞에 익숙한 인물 둘이 있었다. 도레미는 나도 알아 그럼 c장조 쳐봐 끙끙 거리며 피아노와 씨름을 한다. 띵- 정확했다 D는? 아까보다 조금 빠르게 세 음을 친다. E,F,G 아악 ! 재촉하지마! 정확하게 치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버럭 승을 내고 엄지를 누르고 더듬더듬 올라가 중지를 누르고 더듬더듬 올라가 소지를 누른다. 이제 E. F까지 치고 너 완전 못된 선생이야! 벌떡 일어난다. 피아노 옆 가까이 선 후니를 이제야 알아보고 으아악 괴상한 소리를 내며 얼굴을 가리고 사라진다.
뭐야..
몰라요 소
리가 어깨를 으쓱이고 뒤로 끌린 의자를 정리한다. 형 과니가 닭갈비 먹자는데 드실래요? 폰을 두들기는 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건반위에 손을 올렸다. G장조 설핏 웃음이 났다.
얼마간 그런 모습을 봤다. 하루는 수녕이, 하루는 과니. 연주하는 모습을 집요하게 쳐다보는 시선도 알았다. 너네 다 나쁜 선생이야! 하나같이 똑같은 결과만 맞이했다. 후니가 치는 모습을 보고 자기 손바닥을 내려보다 작게 한숨쉬며 실망한 얼굴이 또 얼마간 안 보였다.
저, 혹시 후니 씨 피아노, 가르치기도 하나요?
답부터 하자면 전혀 가르친 적 없었다. 누굴 가르칠만한 실력이 아니거니와 가르칠만큼 똑똑하지 않아서. 괜히 내가 잘못 알려줘서 이상해지면 너무 미안하고 못 견딜 것 같았다. 가끔 주변 사람들이 가르쳐달라 부탁하거나 돈을 내놓기도 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저 비싸요
손가락 꼼지락거리며 눈치보던 쳐리가 당황하며 눈을 데구르르 굴린다. 소 눈 같다.
얼...마..?
소심하게 묻는 낯에 피식 웃으며 손가락 5개를 폈다. 헤에엑, 쳐리의 얼굴이 새하얘지고. 풀이 죽어 안녕히 가세요오,, 시들시들 소리 옆에 앉아 등에 머리를 기댄다 오백..후니씨면 뭐..그정도하지.. 강아지처럼 낑낑대는 모습이 귀여워 보여서 집 근처 육교 위에서 한참을 밤하늘만 올려다보았다. 달토끼가 껑충껑충 뛰어 내려왔다. 뚱땅거리는 손가락 약지를 샾에 올렸더니 으악 깜짝이야! 놀라서 펄쩍 뛰었다. 무표정의 후니를 마주보고 아니,저, 저는, 어, 안녕하세요 허둥지둥 인사하고 물러서려했다. 후니는 쳐리 옷깃을 잡아 의자에 앉히고 그 옆 자투리에 앉아 눈짓했다. 아직 배운지 이틀밖에 안됐는데... 더듬더듬 변명한다. 후니가 아무말없으니 쭈굴해져서 욕하면 안돼요, 그러고 뚱땅거린다. 긴장해서 틀리고 삐긋하고 으아아악, 괴로워하며 연주를 몇 번 끊었다. 그 때마다 후니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악보에서 멈춘 구간을 콕 집어 계속 이어하길 종용했다. 쳐리는 수녕이나, 소리나, 과니한테처럼 나쁜 선생이야!!! 썽을 못 냈다. 팬을 떠나서, 후니가 쎄보였다. 기가 죽어 후니 눈치를 보며 겨우 마무리 지었을 땐 식은땀으로 등이 축축했다.
피아노 쳐본 적 있으세요?
마음의 준비를 하던 쳐리는 뜬금없는 질문에 멍청하게 되물었다.
익숙해보여서요, 손가락이.
무릎위에 얌전히 올린 손을 가리켜 등 뒤로 감췄다
아주, 잠깐, 짧게 배웠어요. 여섯살 때였나 다섯살 때였나 엄마가 알려줘서, 짧게
잘 배우셨네요, 말하려다 멈칫. 조금만 더 연습하면 괜찮아질거예요 하다 또 멈칫. 한 번 더 쳐볼래요? 제가 알려드릴게요 커진 두 눈동자에 후니는 뒷목을 벅벅 긁었다.
쳐리는 말이 많았다. 과니처럼 수다쟁이는 아니고. 어색한 걸 못참았다. 학원에서 배우긴 하는데 혼자 막 남자어른이고 선생님들은 다 여자분이시니까 말을 못 걸겠더라구요. 막 쪽, 창피해서. 요새 회사가 비수기라 엄청 한가해요. 출근해도 할 것 없어서 멍때리다 오고. 졸다 오고. 분기마다 한 번 바짝 바쁘고 말아요. 가끔 이게 맞는건가 싶은데 이미 정이 들어서 못 떠나요 노니가(아 소리 애칭이 노니인 거 아시죠?) 굉장히 엉뚱해서 자기만의 세계에 자주 빠지거든요? 불러도 못 알아듣고 엉뚱한 데 가고. 처음 한국왔을 때 학교앞에 집이 있는데도 이상한 데 빠져서 엉뚱한데로 가가지고 실종된 적도 있어요. 그 때 아빠고 저고 난리나서 그 때부터 제가 노니 하교를 도맡았어요. 그게 습관이 돼서 지금도 노니랑 같이 다니는 거예요. 또 엉뚱한 데로 빠지지 않게 지켜보는 거죠. 좀 귀찮고 피곤한데 아직도 정신 놓으면 딴데로 새니까 냅둘 수가 없어요 후니 씨를 입대하고 알았어요. 저랑 친했던 동료 하나가 피아니스트였는데 후니씨 팬이었어요. 후니 씨 첫 음악씨디를 선물로 주고 공연 갈 때 저를 데리고 갔었어요. 사실 그 때까지 저는 피아노를 별로 안 좋아했어요. 그냥 좀..... 그런데 너무 좋더라구요. 너무 아름다와서... 팬이 됐어요. 힛. 노니가 재밌는 일을 벌이겠다고 했을 때, 후니씨가 참여한다 했을 때 너무 설레서 잠을 못 잤어요. 나는 이 일과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인데 그런데도 너무 가슴이 두근거리더라구요. 그 때 저 엄청 긴장했었는데 모르셨죠?
피아노를 제외한 공통점이 없는 두 사람의 어색한 침묵은 묻지 못한 질문들의 답으로 채워졌다. 뚱땅뚱땅 나무 소리가 단단하게 채워지면서 필요한 말만 했던 후니의 입술도 열리게 만들었다.
노니 씨만 보고 참여했어요. 오랜 팬이거든요. 그의 음악을 사랑해요 첫 앨범이라 욕심을 많이 냈어요 많은 걸 했죠. 다 담으려 했고. 괴로웠지만 즐거웠어요. 앨범나오기까지 몇 달동안 두세시간밖에 자지 못했는데도 딱 앨범을 받으니까 다 풀렸어요. 나쁜 것들 다.. 다 사라졌어요. 그래서 모든 앨범 다 아끼지만 첫 앨범이 가장 애착이 가요
인사가 자연스러워졌다. 부르는 목소리의 높낮이가 달라졌고 조심스러웠던 스킨십이 익숙해졌다. 애교가 많은 형이라던 밍의 말처럼 덥석덥석 안고 다가와 부대끼는 그가 무사히 연주를 마치고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내밀며 칭찬을 바라는 얼굴로 쳐다보면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잘했어요, 많이 틀렸지만. 일부러 그렇게 말하면 입술을 삐죽였다. 더 연습하면 많이 좋아질거예요 힝.. 우는 소리를 내며 자주 틀리는 부분을 다시 알려주었다. 금세 집중하는 얼굴이 근사했다. 그래서 궁금했다. 누구를 위해 이 곡을 연주하는지.
꼭 들려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따뜻한 표정으로 부드럽게 갈라지는 입술은 사랑을 하는 이였다. 후니는 제 멋대로 아름다운 연인을 쳐리 옆에 붙였다. 예쁜 그림이었다. 엄마요. 엄마 생일이 얼마 안남았거든요 노니는 드럼 스틱을 휙휙 위로 던지며 가볍게 말했다. 형이 엄마를 많이 사랑해요 수업료 5에서 3으로 줄었던 때였다. 후니는 혼자 착각한 게 부끄러워 바깥을 나왔다.
날이 추워지면서 짧아진 밤하늘에 달토끼가 껑충껑충. 치킨 사왔어요!! 건물 아래 치킨봉지를 높이 들며 흔든다. 반반무마니에요!! 히히 웃으며 껑충껑충 뛰어 올라온다 입맛 없다고 또 빼는 거 아니죠? 수업료가 밥값이라는 걸 알고 경악한 게 엊그전데. 요며칠 3번밖에 안 먹었다고 후니를 흘긴다. 후니는 제멋대로 그린 쳐리의 옆 연인을 지우며 쳐리손에서 치킨봉지를 하나 뺏었다. 빨리 안 오면 쳐리 씨 껀 없어요 후다닥 올라가 문을 닫았다. 제 나름의 사과였다 쳐리의 피아노실력은 조금씩 나아졌다. 조금씩, 천천히. 어머니의 생일이 언제인지 몰라서 언제까지 연습을 하는지 모르지만 제 실력에 머리를 쥐어감싸다가도 할 수 있다며 스스로 다독이는 뒷모습에 재촉을 안했다. 프로처럼 완벽하지 않아도 건반 하나하나를 꾹꾹 누르는 마음이 음마다 담겨져 있으니까. 따뜻한 마음은 그것만으로 충분히 전해진다 생각했다.
그 마음이 전염됐는지. 후니는 펜을 들었다. 높은음자리표를 그리고 연필 끝을 이로 물다 음표를 하나 그렸다. 검은 콩나물이 하나둘, 하나둘. 쉰 적 없는 피아노는 밤에도 소리를 내며 악보를 까맣게 채웠다. 막상 씨디에 담고 고민했다. 제 멋대로 만든 곡이었다. 들어주길 바래 만든 곡이 아니라, 생각하며 만든 곡. 주었을 때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지, 소심한 마음이 자꾸 발을 걸었다. 실제로 처리는 아무렇지 않아하겠지만 아직도 그를 보면 조이는 마음은 작고 작아서 제 감정을 감당하기도 벅찼다
공연이 다가오고 연습의 무게가 달라지면서 쳐리를 만나기 어려워졌다. 쳐리도 바빴다. 분기별로 바빠진다더니 헛말이 아니었는지 소리는 택시를 타고 집에 갔다. 차라리 안전하게 택시타고 오라고- 동생이 너무 걱정되는 형의 부탁을 동생은 착실히 들어줬다. 그를 볼 수 없으니 씨디를 줄 수 없었다 주지 못하니 마음이 초조해졌다. 씨디가 담긴 가방이 어깨를 눌러 몸이 자꾸 기울어졌다. 무거워 가방을 뒤적이는 시간이 늘었다. 줘야지 마음먹고 소리를 불렀다.
왜요.
아니, 그 아까 거기 다시 맞춰보자고...
소리는 의심없이 드럼을 쳤다. 그게 더 후니를 창피하게 만들었다
축하해요!! 완전 최고였어요!!
꽃다발을 건네는 얼굴이 그리웠다. 그리웠다? 감정의 이름을 되짚어보기전에 쳐리한테 꽃다발을 받은 채로 안겼다. 가슴사이에 눌린 꽃잎이 바르르 떨었다.
형 봤어? 너무 좋아서 형 맨앞에서 입 틀어막고 울고 있었잖아!
봤어요! 보고 웃겨서 죽는 줄 알았어! 나 무대 망칠 뻔 했잖아!
나도 봤어ㅋㅋㅋㅋ 형 진짜 그 표정은 안 지으면 안돼요? 매번 봐도 적응이 안 돼
투닥투닥대는 최형제와 꽈니의 대화가 활기찼다.
술! 술!! 술!!! 오늘은 술을 마셔야한다!! 술 먹자!!!
아직도 무대위처럼 팔짝팔짝 뛰는 수녕이가 쳐리의 팔뚝을 잡고 난리쳤다
오늘 술은 즤흔 형이 쏜다!!!!
오오옥!!!
여기저기서 환호소리가 들렸다. 밍을 째려봤다. 밍은 모른척 콧노래를 부르며 쳐리 뒤로 숨었다 아싸! 후니씨 땡큐!! 찡긋. 쳐리의 윙크에 후니의 뒷목이 시뻘개졌다. 꼼짝없이 술사게 됐다.
어어, 오늘 최고 멋있었던 후니다- 고기와 술냄새를 피해 나온 골목에서 벽에 기댄 쳐리가 손을 흔들었다. 안뇨옹- 술에 취했는지 말이 짧고 애교가 많아졌다. 후니는 뒷목을 긁으며 쳐리 옆에 앉았다. 돌계단의 냉기에 엉덩이가 시려 몸이 부르르 떨렸다.
오늘 어땠어요?
완전 최고-
엄지를 높이 들며 짱짱짱 흐흐 웃음을 흘렸다. 후니는 부끄럽고 기분이 좋아 마주 웃었다. 술에 취해 벌건 얼굴이 달덩이처럼 봉긋했다.
연주는 들려드렸어요?
궁금했던 걸 물었다.
네에
좋아하셨어요? 쳐리는 으음, 눈을 위로 도로록 굴리며 생각하더니 무릎을 모아 입술을 묻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니..좋아하셨어요
소리가 막혀 웅웅 울렸다. 용케 알아듣고 다행이라 답했다. 쳐리는 무릎에 두 팔을 올리고 얼굴을 묻었다. 가라앉은 뒷머리가 동그랬다. 결이 좋아보여. 손이 제 멋대로 나갔다. 아 닿기 전에 쳐리의 고개가 들렸다. 가까운 후니 손에 놀란 두 눈에 후니는 급하게 가져온 씨디를 내밀었다.
처리 씨 어머니 선물이에요
받지 못하고 당황한 얼굴에 술에 절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 다른 게 아니고, 그냥 드리고 싶어서, 아니 그냥은 아니고요.. 드리고 싶었어요. 처리 씨처럼.. 그냥...
감사해요
제가 손재주가 없어서 포장을 못했어요. 죄송해요..
포장을 깜박했다. 줄 생각을 못해서 못했다. 문을 열고 나가는 모습을 보고 충동적으로 씨디를 챙겼다. 주고나서 민망함에 변명을 하니 쳐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떨떨하고 고마워하는 듯 묘했다. 흰 면과 반사면을 번갈아보기만 했다. 기묘해 쳐리를 바라보았다. 고깃집에서 내뿜는 기름냄새가 가득한 골목에 저멀리 가로등이 길게 비추어 쳐리의 얼굴을 반으로 찢었다. 까만 눈동자에 긴 그림자가 길게 내려앉았다. 속눈썹이 진짜 길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엄마를 참 미워했어요
두툼한 입술 사이로 하얀 숨이 토해 엉클어지고 흩어졌다
나를 버리고 저 멀리 닿을 수 없는 해외로 도망 간 엄마가 너무너무 싫었어요.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던 엄마한테서 배운 피아노가 싫어서 피아노학원근처는 가지도 않았죠. 엄마가 전화하라고 알려준 번호를 잘게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릴 정도였어요. 나 빼고 소리만 데리고 간 엄마가 미워서 엄마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죽었어요 엄마가.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저 하늘 위로. 후니 씨가 생각하는만큼 난 착한 사람이 아니에요. 좋은 형도 아니고. 나는... 죗값을 치르는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는 소리에게서 엄마를 빼앗은 죄, 엄마의 꿈을 응원하지 못한 죄... 엄마 꿈이 피아니스트였어요. 아빠를 만나기 전에 유학을 준비중이셨죠. 아빠를 만나고 나를 가지면서 유학을 포기했지만 꿈은 잃지 않으셨어요. 집에 아주 큰 그랜드피아노가 있었는데 어린 저를 앉히고 매일 피아노를 치셨어요. 클래식부터 동요까지. 무엇이든 연주하셨죠. 정말 아름다웠어요 꽃보다 별보다 엄마가 제일 예뻤어요. 우리 엄마가 세상최고였어요. 아빠는 엄마가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될 거라 말씀하셨어요. 그러기 위해서 아빠가 열심히 일하는 거라고.... ....두 분은 이혼하고나서도 사이가 좋으셨어요. 서로 꿈을 응원했어요. 나는 몰랐죠 나는 버림받았다 생각했으니까. 아빠는 나를 많이 사랑하셨지만 아빠의 꿈을 이루느냐 바빠서 나를 신경쓰지 못하셨어요. 뒤늦게 알았을 땐 ... 돌이킬 수가 없었죠. 노니는 아무 것도 몰라요. 너무 어렸을 때 헤어져서 기억이 없대요. 형이 있었다는 것만 들었다구... 엄마가 돌아가시고 갈 데 없는 소리를 부른 건 아빠였고.. 그 때 군에 있던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소리를 무척 싫어했어요. 갑자기 죽어버린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 소리탓이다 생각하고 미워하고 미워했죠. 사실은 무척 그리웠으면서... 많이 미안하고..보고싶고.. 사랑하면서.....
공기가 눅눅해진다. 떨리는 어깨 위로 밤하늘이 내려앉는다. 툭 케이스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충격을 견디지 못한 케이스에 금이 갔다. 반사판에 구름에 가린 달이 비췄다. 씨디를 주워 털고 제 옆에 두었다. 소리와 쳐리 두 사람을 보고 유별나다 생각했다. 브라콤이라고, 다 큰 동생 어디가 걱정되어 저렇게까지 하냐는 소리도 주변에서 나왔다. 체한설은 자신의 세계에 빠지면 주변 소리를 듣지 않는 사람이지만 자기 몫은 확실히 하는 어른이었다. 사람조심, 차조심 하라며 신신당부하고 나가는 쳐리에 피곤하지 않아? 누군가 물었다. 드럼 스틱을 가방에서 꺼낸 소리는 어깨를 으쓱였다. 저러다 너 장가갈 때 같이 가겠다 하겠어- 막 결혼식에서 우는 거 아니야? 우스개 소리에 주변이 시끄러워지고 소리는, 뭐라 했던가. 차라리 속시원하게 울었으면 좋겠어요. 울면 위로해줄 수 있을텐데...
뭐라도 위로가 될 수 있는 말을 찾았다. 얼마 안 가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단 걸 알았다. 그래도 혼자 두고 싶지 않았다. 정답인지 모르겠지만 쳐리의 손을 감쌌다. 밤바람에 찬 손이 손바닥에 꽉 찼다. 흠칫 놀라다 손을 마주 잡았다. 힘껏 잡아오는 손이 거칠었다. 건반을 두들겼을 손가락 하나하나를 얽었다. 술버릇이에요, 잔뜩 젖어 부르튼 얼굴을 벅벅 닦으며 그리 말했던 쳐리의 얼굴을 붙잡고 무작정 입술을 부딪힐 때까지 후니는 계속 처리의 울음을 받아주었다.
술약속이 많아졌다. 죄다 처리가 잡은 것들이었다. 후니 씨에서 씨를 버리고 후나후나 부르면서 낮이고 밤이고 불렀다.
안 바빠요?
응, 엄청 한가해
맥주에 오징어를 뜯어먹으며 히 웃는다. 대낮 편의점 앞 파라솔아래서 술을 마신다는 게 영 꺼끄림칙 해 깨작꺠작 거리면 술맛없다며 씅을 냈다
나 일해야하는 거 몰라요?
나는 네가 군말없이 나오길래 안 바쁜 줄 알았지. 바쁘면 나오지 말지 그랬어-
실제로 그러면 삐질거면서. 사랑이 식었다느니 변했다드니 투덜되며 괴롭힐 게 뻔한데 무슨. 맥주 한 캔을 비우고 하나 더 사러 가는 처리를 말렸다
그만 헤어져요. 나 곡 만들어야해요
나 두고가면 여기서 울어버릴거야!
끔찍한 협박에 집에 데리고왔다. 익숙하게 소파에 자리해 사온 맥주를 꺼낸다.
진짜 작업할거니까 방해하지마요
알았어. 조용히 있을게
안주를 뜯으며 설렁설렁 답하는 처리가 못미덥다. 하지만 일을 버릴 수 없어 방에 들어간다. 컴퓨터를 키고 전자피아노를 두들기면서 문 너머 바깥을 살핀다. 두시간쯔음, 생각하고 작업하면 두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뻐근한 어깨를 펴고 나가면 어둠이 가라앉은 거실 소파엔 길게 누운 처리가 잠들어있다. 세개, 네개. 빈 맥주캔과 조금 남은 안주거리. 많이도 마셨네.
어둠을 더듬어 가까이 다가가 앉았다. 손을 들어 얼굴을 매만졌다. 뺨을 쓰는 손이 젖어든다. 술을 마시면 처리는 울었다. 후니는 우는 처리를 가만히 보거나 안아주거나 안겨주었다. 눈물콧물 쏙 빼어 실컷 울면 술버릇이라고 꼬박꼬박 말했다. 나쁜 버릇이에요. 후니는 그 말만 했다.나도 알아... 벅벅 얼굴을 닦는 손길을 치우고 조심히 얼굴을 닦아주었다. 그러면 처리는 눈을 감고 가만히 받았다.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것처럼... 그럼 후니는 이마부터 턱까지 꼼꼼이 매만지고 느리게 호흡하는 입술을 엄지로 훑었다. 그러면 키스를 했다. 처리의 키스는 항상 짰다 짠 맛의 키스는 자꾸만 생각나게 만들어 후니는 밤새 피아노를 쳤다. 처음 처리를 만난 날, 검은 처마에 대롱대롱 매달렸던 음표까지 쳐서야 뜨는 해를 보며 잠들었다.
연애해?
매니저인 어누가 물었다. 후니는 음량만 높였다.
어지간한 사람인가보지. 연주가 제멋대로야
피아노는 거짓말을 못했다
내일 우리 엄마 보러 갈래?
키스하기 위해 다가가던 후니를 눈을 뜨지 않은 채 처리가 물었다. 후니는 감은 처리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처리 어머니에게 선물로 드렸던 곡은 납골당 어머니 사진 옆에 고이 모셔두었다고 처리가 말했었다. 엄마 선물이니까 엄마만 들어야한다고 처리도 못 들었다 들어도 상관없지만 처리는 완고했다.
둘이서?
소리도 같이.
걔는 왜?
가족이니까 같이 가야지
대답을 못하니 처리가 눈을 떴다. 순한 눈매에 반듯하게 내려다보는 후니가 가득 찼다.
모를까 말하는건데 이거 프로포즈야
이 곡도 싣자
안돼 재깍
답했다
왜?
어누의 눈썹이 올라갔다
주인 있어
기분나쁘게 어누는 바로 알아들었다. 능글맞게 변하는 얼굴에 기분나빠 몸을 돌렸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두 분류인데 하나는 요리하는 사람이고 하나는 건반치는 사람이에요. 후니 씨는, 제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사람이에요 첫 만남, 알코올 냄새를 풍기며 벌건 얼굴로 수줍게 고백하던 당신때문에 가슴이 아팠다. 피아노를 처음 만난 날보다, 나를 알아봐준 스승님보다 숨도 못 쉬게 아팠던 통증. 그 통증을 잊으려 피아노를 연주하고 연주하다 피아노 위에서 잠들었던 그 밤에 나는 당신에게 반했다. 당신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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