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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 ah하네요.

[우쿱] 알오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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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쿱] 알오물

다몬드 2016. 9. 4. 16:07

 

 

 

 

 

 

 

 

 

 

 

 

[지훈승철/우쿱] 알오버스

 

 

w.안다미로

 

 

 

 

 

 

 

 

 

 

 

 

 

 

 

 

병원을 갔다. 201번 버스를 타고 익숙한 흰색 시멘트 건물 앞에 내려 그 안으로 들어가면 무르익은 과일들이 매혹한 향기를 내뿜으며 유혹하는 과일가게처럼 혹은 숨 막히는 자태로 현란한 빛깔을 빛내며 인사하는 꽃가게처럼 달큰한 향이 공기마다 달라붙어있었다. 온전한 정신이 아니라면 향에 취해 쓰러질 것 같아서 승철은 손에 쥔 가죽가방 끈을 몇 번이나 고쳐 잡았다.

어디가 안 좋으신가요?”

십년 이상을 본 의사가 의아하다는 듯 승철을 쳐다보았다. 회색 동그란 안경테를 쓴 얼굴 위로 시린 형광등이 비추어 얼굴에 그림을 지게 했다. 눈가 아래로 진 반달 그림자 때문에 마른 의사의 얼굴은 어딘가 음습하게 보였다. 그래서 승철은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천천히 말하셔도 돼요.

의사는 무릎위에 올린 가방을 매만지며 주저하는 승철을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약을 받을 때가 아직 멀었는데 이렇게 온 오메가는 대부분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상처입고 쭈그려진 환자들이다. 그래서 의사는 기다린다. 승철이 입을 열 때까지.

승철을 안심시키는 의사의 친절한 한마디에 승철은 눈을 아래로 떨구었다. 진료실 아이보리 대리석 바닥을 보는 눈동자가 성난 파도에 띈 동동배처럼 흔들렸다.

말해도 되는 걸까. 출발하기 전부터 아니, 그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제 마음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잡초처럼 사나웠다. 할 것인가. 말 것인가. ox퀴즈처럼 두 가지 답 중 하나만 고르면 될 뿐인데 아직도 쉽게 답을 정하지 못하고 바보처럼 가운데에 서있다. 우물쭈물하게 구는 제 자신이 몹시 싫어져 승철은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의사는 여전히 승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퇴근길을 피해 탄 버스가 집에 도착했을 땐 해가 아래로 추락하고 달이 뜬 눅눅한 밤이었다. 들이마신 공기가 차갑게 폐를 훑었다. 이제 아침저녁으로 가벼운 겉옷을 챙겨야 하는 환절기였다. 더위에는 강하지만 추위엔 약한 승철은 회사에 나왔을 때부터 회색 가디건을 꺼내 입었다. 무늬 없이 밋밋한 회색 가디건에선 약한 우유냄새가 났다. 복숭아 향을 좋아해 그런 향만 애용하는 저에게선 맡을 일 없는 젖비린내였다. (코를 간지럽히는)그것이 무언가 떠올리게 해 돌덩이를 삼킨 것처럼 속이 더부룩해져 위장을 울렁거리게 만들었다. 금방이라도 위가 쥐어짜져 목구멍을 타고 역류할 것 같아 승철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십 원짜리 크기에 붉은 둥근 달이 승철 머리 위에서 검은 장막을 두르며 춤을 추고 있었다. 무용수처럼 그 뒤에서 은밀하게 몸을 숨기며 요염하게 손짓해 보는 이로 하여금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아름다운 무용에 정신을 빼앗긴다.

카톡.

가방 뒤 포켓에 넣은 핸드폰을 꺼냈다. 까만 화면 가운데에 뜬 카톡알림 네모박스에 이지훈이 선명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평범한 3글자 이름에 승철이 현기증이 일어 눈을 감았다.

보호자분하고 같이 오세요.’

며칠 전 만난 의사의 조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는 것 같았다.

 

 

 

문 앞에서 몇 번이고 표정을 만들며 각오하고 들어간 집 안에서 따끈한 밥 냄새가 났다. 입맛이 없던 승철의 위장이 자동으로 꼬르륵 소리를 냈다. 배를 쓰다듬으며 환한 거실로 들어가면 벽에 붙은 아이보리색 소파에 소매가 삐죽 나온 남색 자켓이 아무렇게나 널려져 있었다.

, 이제 왔어요.”

자켓을 가방 든 팔에 걸고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사이 방 맞은 편 문이 열리고 젖은 손을 털며 지훈이 나왔다.

언제 왔어.”

넥타이는 가슴까지 끌어 헐렁하게 목에 매여 있었고 셔츠는 소매를 걷어 올린 차림이었다. 제법 긴 머리카락을 질끈 묶은 어린 얼굴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얼마 안됐어요. 밥 먹었어요? 카톡으로 물어봤는데 답장이 안 와서.”

승철은 알림창만 보고 끈 까만 액정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바빠서 못 봤어. 밥 안 먹었고.”

그럼 옷 갈아입고 나와서 먹어요. 오늘도 밥..했으니까.”

지훈은 자신 없는 얼굴로 뒷머리를 긁었다. 승철은 웃음을 터뜨리며 지훈의 앞머리를 위에서 아래로 훑었다. 기대할게. 지훈의 귀가 확 붉어졌다. 빨리 나와요. 밥 냄새가 나는 부엌으로 지훈이 사라지고 눈을 접으며 환히 웃던 승철의 얼굴이 서서히 펴졌다. 곱게 접힌 주름이 하나씩 일어나 곧 팽팽히 매끈해진다. 승철은 표정이 없는 얼굴로 방에 들어갔다. 빈 옷걸이를 꺼내 지훈의 자켓을 걸었다. 승철의 양복이 있는 오른쪽에 자리한 자켓은 양복들 사이에서 낯선 지역에 떨어진 불청객처럼 눈에 띄었다.

 

 

편안한 차림으로 갈아입고 손까지 닦고 나온 부엌은 간소하지만 정갈한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보슬보슬하니 윤기 나는 흰 쌀밥과 시래기 회녹색 국에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났다. 냉장고쪽 의자에 앉은 지훈이 승철을 올려다보았다. 어딘가 딱딱히 굳어 긴장한 얼굴에 승철은 고생했어, 한마디를 던졌다. 맞은편에 앉아 숟가락을 들어 한 입 떠서 마신 국이 입에 딱 맞았다. 밥을 퍼고 반찬을 집고 있던 지훈에게 코를 훔치며 맛있다, 칭찬을 던졌다. 젓가락을 쥔 지훈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노력의 결과가 드디어 빛을 발하나보네.”

깨가 뿌려진 나물과 익은 갈색 건새우 볶음 등 흠 잡을 데 없는 완벽한 솜씨였다.

며칠 전까지 후라이팬 다 태워먹었던 것 같은데.”

지훈의 미간의 주름이 깊어졌다.

그 이야기 그만해요. 언제적 이야기를 언제까지 울궈 먹을 거예요.”

계란 후라이를 먹고 싶다는 승철의 지나간 말에 호기롭게 부엌에 들어서 후라이팬을 태워먹은 옛 추억은 시간이 흘러 한식 자격증을 딴 지금에서까지 두고두고 놀릴 수 있는 지훈의 몇 안되는 놀림거리였다. 다시 학교에 들어갔던 때부터 시작해서 수업이 끝나면 바로 요리 배우러 가던 힘든 시간을 보내며 그 어렵다는 한식 조리사 자격을 따고 눈물을 훔치던 어린 얼굴이 선명히 떠오른다. 결과가 나오길 올매불망 기다리며 같이 떨었던 승철은 처음으로 그 때 지훈의 우는 얼굴을 보았다. 젖살이 빠지지 않은 통통한 볼이 움찔움찔 떨며 뚝뚝 흐르는 눈물이 얼마나 가슴 아팠는지. 그동안 지훈이 겪어야했던 고생이 눈물로 다 터져 나오는 것 같아 승철도 그 옆에서 같이 눈물을 훔쳤었다.

안 먹어요?”

? , 먹어야지.”

잠시 정신을 놓았나보다. 지훈이 저를 의아하게 쳐다본다. 수저를 멈춘 승철이 걱정되는지 승철의 얼굴을 살핀다. 얼핏 병원에서 저를 보던 의사의 얼굴이 겹쳐져 승철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들어간 음식들이 활화산 마그마처럼 날뛰며 목구멍을 비집고 나올 것 같았다.

어디 아파요?”

하얗게 질린 승철이 얼굴에 지훈의 얼굴이 굳어진다. 승철은 아니야.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만들고 밥을 깊게 팠다. 숟가락에 봉긋 동산마냥 솟은 밥알을 입안으로 넣었다. 따뜻한 밥알이 입안에 흩어져 이에 뭉개진다. 지훈은 승철의 얼굴을 지켜보다 안심했는지 시선을 내렸다. 승철은 그 사이 물이 담긴 컵을 들어 넘어가지 않는 밥알을 물과 함께 삼켰다.

 

 

넘어가지 않는 밥을 위장에 쑤셔놓던 승철은 씻으라고 등을 떠미는 지훈에게 밀려 방으로 들어왔다. 침대 옆 놓인 서랍 마지막 서랍을 꺼내 소화제를 들었다. 위에 몇 개가 뜯겨 반 빈 곽을 보다가 다시 서랍에 넣었다. 근래 자주 애용하는 약이었지만 이제는 되도록 약은 피하고 싶었다. 속이 꽉 막혀 침 하나 삼키기 어려워도 승철은 끝끝내 서랍을 열지 않았다.

 

 

지훈아.”

승철이 씻고 나와 거실에 나왔을 땐 지훈이 소파에 몸을 묻고 누워있었다. 팔은 허벅지 위에 아무렇게나 두고 뒤로 고개가 꺾여 입이 살짝 벌려져 있었다. 그 입사이로 뾰족한 송곳니가 슬쩍 보였다. 승철은 그 옆으로 조심히 앉아 그런 지훈의 얼굴을 천천히 눈에 담았다. 쌍까풀 없는 긴 눈매와 끝이 뭉툭한 코, 적당한 두께의 입술. 탈색한 노란머리가 이마와 귀 옆으로 아무렇게나 뻗쳐있었다. 윗 단추를 풀어 널널한 옷깃 사이에서 가디건에서 맡았던 우유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승철은 얼굴을 숙여 지훈의 목덜미 사이로 코를 묻었다. 뜨끈한 살 냄새와 옅은 땀 냄새가 포근한 우유냄새와 섞여 명치에서 돌을 얹은 것처럼 답답하던 승철의 몸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가만히 그 냄새에 파묻혀 어린애처럼 그 따뜻함에 칭얼대고 싶어졌다. 손에 쥐려 아등바등했던 모든 걸 포기하고 흘러가는 시간 속에 몸을 의탁해 같이 흐르고 싶어졌다. 느리지만 계속해서 흘러가는 그 시간에 몸을 맡기면 울고 싶은 이 고통이 덜해지지 않을까.

뭐해요.”

승철의 머리가 감싸졌다. 단단한 팔에 안겨 지훈의 어깨에 기댄 승철의 몸이 앞으로 더 기울어진다. 넘어질 것 같아 지훈의 허벅지를 잡았다. 그 위로 제법 큰 손이 승철의 손을 감싸 쥐고 부딪힐까 든 얼굴에 입술이 다가와 입을 맞춘다. 단단한 입술이 벌어진 승철의 입술을 진득하게 맞추어 훔친다. 각도를 바꾸면서도 입술의 안쪽 부드러운 살만 탐한다. 그 부드러운 가벼운 키스에 승철이 안달이 났다. 입술을 벌려 혀로 지훈의 앞니를 두들겼다. 지훈은 고개를 들어 틈을 벌리곤 이 안 닦아다며 곤란한 얼굴로 민망히 웃었다.

괜찮다고 한 승철을 달래고 이를 닦고 세수까지 마친 지훈의 얼굴이 뽀얗다. 나보다 애어른처럼 굴 때가 많아 평소엔 모르다가 세수하고 나온 뽀얀 얼굴을 보면 승철은 그때서야 지훈이 19,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미성년자라는 걸 인식했다. 그 전까지는 승철과 동등한 성인처럼 보여 성인처럼 대하다가도 뽀얀 얼굴로 해맑게 웃으면 승철은 행거에 걸린 남색 교복 왼쪽 가슴에 박힌 지훈의 이름을 뜯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너를 위해서라며 자신이 고집을 부려 다시 지훈을 학교에 보냈음에도 그랬다.

그래서 승철은 다가오는 지훈의 얼굴을 비껴 피했다. 목을 감싼 지훈의 큰 손을 잡아 내리 끌며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지훈의 눈동자에 시선을 맞췄다.

집에 가, 지훈아.”

마음 속에서 수백 번이고 되뇌며 연습한 말을 끄집어냈다.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고 말투도 평범했다. 울음에 잠겨 막힌 목소리로 떨지 않고 평소처럼 나와 다행이라는 비겁한 안도감이 승철을 훑고 지나갔다. 손이 잡힌 지훈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간다.

무슨 소리예요.”

집가라는 말에 속뜻을 금세 알아차린다. 생각해보면 지훈은 절 만나기전까지 전교권에서 놀던 똑똑한 아이였다.

최승철.”

형은 떼지고 성이 붙었다. 단단히 화가 났을 때 지훈은 저를 그렇게 불렀다. 승철은 웃는 얼굴을 지었다.

, 지훈아.”

왜 그런 말을 하는 건데.”

잡았던 손을 풀려하는 승철의 손을 힘을 주어 잡는다. 도망가지 못하게 깍지까지 끼어 승철을 쏘아본다. 천천히 숨을 뱉으며 말을 이었다.

밑에 부모님 오셨어. 네 짐은 내가 다 챙겨 보냈으니까 그냥 너는 몸만 가면 돼.”

부모님 소리에 지훈의 눈이 커진다. 동그랗게 떠진 눈동자 가득히 가짜 미소를 만든 승철의 얼굴이 박혀있다. 불타는 속과 달리 소름끼치도록 담담한 얼굴에 승철은 한 번 더 느낀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19살 지훈과 감정을 완벽히 숨길 수 있는 29살 최승철의 결코 메울 수 없는 시간의 길이를.

부모님하고 연락했었어? 언제부터. 무슨 정신으로? 형 미쳤어? 왜 나한테 숨긴 건데!!”

이어지는 지훈의 말을 손을 들어 끊었다. 천천히 분노를 터뜨리는 지훈에게서 승철은 눈을 내리깔았다. 계속 마주볼 수가 없었다. 승철은 지훈의 팔목을 잡아 일으켰다. 끌어당기는 걸 지훈이 발에 힘을 주어 버팅겼다. 그리고 승철의 손을 내치고 승철의 팔뚝을 잡아 마주보게 했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이제 집에 가야지. 지훈아.”

내 집은 여기야.”

이지훈.”

사실대로 말해. 형 도대체 무슨 생각하는 거야.”

다시 잡아끌려는 저를 막는다. 흥분으로 올라간 목소리가 저를 뜨겁게 내리친다. 울컥 올라오는 화를 억지로 삼키며 지훈은 눈을 감았다 떴다.

제발.”

한층 잠잠해진 목소리로 저를 애타게 바라본다. 저와 살면서 큰소리로 화를 내본 적 없는 지훈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자기보다 작은 어린 애인의 머리를 쓰다듬을까 손을 쥐었다 피며 참는다. 온몸에 흐르는 피가 거꾸로 도는지 저릿하게 아팠다.

“5년이면 충분하잖아. 이제 너 애 아니야, 지훈아.”

어린 감정으로 시작한 불장난 이제 멈춰야지.

 

 

 

5. 5년이었다. 지금보다 더 작고 어렸던 지훈을 처음만나고 지금까지 한 번도 떨어진 적 없던 우리의 만남이 벌써 이만큼이나 쌓여 다섯 손가락을 다 펼칠 정도가 되었다. 그 긴 시간을 되짚어 볼 때면 승철은 끝이 보이지 않는 아득함에 몇 번이고 정신을 놓을 뻔 했다.

15살 제자와 25살 과외 선생으로 처음 만난 날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저 낯을 가리는 어린 아이가 수줍은 얼굴로 그러나 별이 총총 박힌 눈동자로 저를 보며 웃었던 것만 어렴풋이 났다. 가르치는 재능이 부족했지만 돈이 급해 시작한 과외는 머리가 좋은 지훈이 때문에 종종 굳이 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컨디션에 따라 들쭉날쭉한 지훈의 성적을 볼 때면 더 잘 가르쳐야겠다는 책임감과 미안함이 들었다. 저는 괜찮아요, 그 한마디에 부족한 내가 부끄러워 과외 이후에도 연락하며 맛있는 거 사주고 같이 놀러가기도 하며 알뜰히 챙겼었는데 나중에 그것이 지훈의 계략이었다는 걸 알았을 땐 배신당한 기분이었다.

첫 눈에 반했으니까 형을 꼭 갖고 싶었어요.’

발가벗은 몸을 숨기지 않고 퉁퉁 부은 승철의 눈에 키스를 하며 지훈은 고백을 했었다. 알잖아요. 알파가 얼마나 소유욕이 강한지. 욱씬거리는 허리에 머리는 쉬어야 한다며 명령을 내렸지만 힛싸로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성욕은 몸을 자꾸 달게 만들어 지훈의 손을 몇 번이고 강하게 잡았다. 나는 형만 있으면 돼요. 아무도 모르는 승철의 자취방 비밀번호를 누르고 힛싸로 땀을 흘리며 괴로워하던 승철을 품에 안았던 지훈에게 지금도 그 계획 중에 하나야? 물으면 지훈은 승철의 하얀 허벅지를 벌려 잡고 불기둥을 승철의 깊은 곳에 쑤시며 희미하게 웃었다.

당연한 거 묻는 거 아니에요, .’

 

 

본래의 실력대로 치른 성적이 전교 1등이라는 타이틀을 쥘 때도 과외는 계속되었다. 형이 가르쳐주니까 공부가 잘 되는 것 같아요. 지훈의 한마디에 부모님이 허락하신 거였다. 그리고 계속 함께였다. 지훈의 어깨가 더 넓어지고 키가 좀 자라고 알파로서 완성되는 걸 옆에서 지켜보았다. 중학교 졸업을 같이 보냈고 고등학교 입학을 멀리서 지켜봤다. 점점 완성되어가는 멋있는 알파에게 동갑의 오메가들이 고백하는 걸 몇 번 보기도 했고 알파 무리에서 떠받드는 존재가 되는 것도 봤다. 머리가 좋고 성격이 확실해서 알파들의 선망을 받는다는 걸 알았을 땐 이 작은 알파가 자신에게 얼마나 헌신적이고 귀여운지 소문내고 싶어 입이 간지러운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심장에 꽃가루가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간지러워 몇 번이고 재채기를 했다. 에취. 벌어진 입술 사이로 분홍색 하트가 재채기와 함께 둥둥 떠다녔다.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난다는 게 이런 거구나. 태어나면서 처음 느껴본 감정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였다. 재채기가, 자꾸만 터져서 숨길 수 없을 때쯤엔- 숨기는 것도 잊어먹었을 때 승철은 벌겋게 얼굴이 익은 중년 부부 앞에 고개를 숙이며 마주 앉아있었다. 늘 고생한다며 친절하게 대해주시던 지훈의 부모님이었다. 25살 이제 사회에 뛰어든 사회 초년생인 승철이가 안쓰럽다며 반찬도 해주시고 과외비도 두둑이 주신 고마운 분들에게 저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겨주었다. 주민등록증도 안 나온 어린 아이를 데리고 너는... 말을 잇지 못하는 어머니에게 죄송합니다. 앵무새처럼 그 말만 했다.

그런데도 헤어질 수 없다며 부모님과 연을 끊고 자신에게 온 지훈을 돌려보낼 수 없었다. 키도 덩치도 내가 더 컸지만 자신을 안은 지훈의 가슴이 끄고 따뜻해서 그 품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부모 없이 홀로 자랐던 승철에게 지훈은 유일한 쉼터였으니까.

 

그런데 그게 3달이 되고 6달이 되고 1년이 되니 승철의 심장에 검은 자국이 조금씩 생겨났다. 명문고로 알려진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한다며 책상에 앉은 지훈의 뒷모습을 지켜볼 때면 작은 돌을 삼킨 것처럼 속이 답답했다. 익숙한 번호가 핸드폰에 떴을 때 끊길 때까지 화면만 멍하니 바라보기도 했다. 거기까지는 그래 별거 아니라고, 그냥 지나갈 일이라 생각하며 이기려 애썼는데 나 몰래 편의점에서 알바 하던 지훈의 민망한 얼굴을 볼 때 승철은 두려움을 느꼈다. 내가 너를 책임질 수 있을까. 미래가 창창한 아이를 내가 밟아 더럽힌 게 아닐까. 내가 너를 망치고 있는 게 아닐까.

그 뒤부터 승철은 잠을 잘 수 없었다. 지훈의 옆에 누워 천장을 바로보고 누울 때면 옆에서 나는 우유냄새에, 몸을 뒤척이다 승철이 쪽으로 누운 지훈의 느린 호흡이 볼을 건드리면 승철은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무던히 애썼다. 입술을 안으로 말아 물고 눈에 힘을 주어 버텼다. 그럼에도 고인 눈물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면 그것을 멈출 방법이 없어 소리 없이 울었다. 본래의 최승철은 큰 소리를 내며 엉엉 우는 스타일이었으나 그 때부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는 방법을 터득했다. 눈물이 옆으로 흘러 귓바퀴에 차고 그것이 또 떨구어져 베갯잇을 흠뻑 적셨다. 그렇게 몇 시간이고 울면 다음 날 일어난 지훈에게 운 걸 들킬까봐서 냉동고엔 은색숟가락 2개가 구석에 늘 놓여있었다.

 

 

그렇게 천천히 검은 자국이 마음에 쌓여 서서히 잠식되어 갈 때 승철은 느꼈다. 몸의 변화를. 음식냄새가 하수구장 냄새처럼 역했고 골반은 움직일 때마다 삐그덕 대며 고통을 안겼다. 자꾸만 잠이 쏟아지고 몸이 늘어져갔다. 정신이 피폐해져 몸이 약해졌다하기엔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 승철은 지훈이 학교를 가는 오전에 반가를 냈다. 다시 학교에 가라고 승철이 억지로 등 떠밀어 근처 학교에 나가기 시작한 지훈의 남은 향기가 울렁거리는 승철의 심장을 옥죄었다.

그리고 10. 짧은 시간. 약국에서 산 테스트기를 기다리는 10분이 얼마나 괴로웠는지는 겪은 사람만이 알리라. 설마 설마하며 아니길 빌었던 마음은 선명히 그어져 있는 두 줄에 우수수 무너졌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테스트기를 또 샀고 그래도 믿을 수 없어-잘못 나온 거겠지 빌며 간 산부인과에서 4주라고 하였다.

검사를 받고 밖으로 나오면서 승철은 결정해야 했다. 학교를 늦게 가 아직 고등학교 2학년인 어린 지훈이를 다시 돌려보내야 한다는 걸. 아직 꽃도 피지 않은 어린 애인에게 아이라는 책임감을 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더 많은 것을 겪고 봐야할 의무가 있는 아이에게 자신과 아니는 짐일 뿐이니까.

그 날, 승철음 처음으로 지훈의 부모님께 연락을 했다. 숨죽은 숨소리만 오가는 조용한 너머에 승철은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지훈이 본래 자리로 돌려보내겠습니다.

 

 

 

그 이후부터 지훈의 짐을 챙겼다. 집에 나와 살면서 생긴 것들 말고 집에 나올 때 가져왔던 것들만 넣어났다. 5년의 시간을 모두 지워야했다. 추억 하나 들어갈 수 없게 신중해야했기 때문에 일은 천천히 진행되었다. 눈치 빠른 지훈이가 모르게 해야 해서 더 그랬다. 그 사이 뱃 속의 아이는 더 자랐다. 아직 납작한 배를 손으로 쓸었다. 심장에 검은자국은 이제 자리가 없을 정도로 온통 까맸다. 승철은 옥죄이는 넥타이를 몇 번이나 고쳐 매며 마음을 추스렸다. 다 지훈을 위해서야. 이건 너를 위한거야. 나는 괜찮으니까 너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원래의 이지훈으로 살아. 미련해 보이겠지만 이게 내 사랑법이야.

 

 

 

차가웠던 공기는 매섭게 살을 가르고 반도를 꽁꽁 얼게 만들더니 따뜻한 공기에 밀려 훌쩍 산으로 달아났다. 이제는 발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배가 나왔다. 승철은 무거운 다리를 끌며 밖을 나섰다. 완연한 봄이었다. 강한 햇살에 가디건을 걸친 승철의 몸에서 옅은 땀이 났다. 찌르는 햇빛에 눈을 찌푸리며 가디건을 여미었다. 옆으로 노랗고 빨간 영롱한 꽃들이 초록잎사귀와 같이 반짝였다.

그렇게 지훈을 보내고 집도 전화번호도 싹 바꾼 뒤 홀로 이곳에 지낸지 어연 8개월이 되었다. 다음 주 출산을 앞두고 마지막 검사를 위해 들린 병원에선 수술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남성형 오메가는 아이가 나올 때가 없어 제왕절개를 해야만 했다. 보호자는 없으신가요? 주의사항을 끝으로 의사에 물음에 승철은 고개를 저었다. 십여년 째 승철을 담당하던 의사는 여전히 승철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안타까운 눈으로만 승철의 손을 잡아주었다.

수술 날짜를 잡고 병원에서 나와 천천히 집으로 걸어갔다. 몸이 뿔면서 체중이 늘어나 활동하기가 어려워 집 밖을 나온 지는 오랜만이었다. 벌써 다리는 아프고 배는 무겁고 아래가 땡겼지만 오랜만에 걷는 즐거움을 놓고 싶지 않았다. 꽃에 앉는 나비의 날갯짓처럼 살랑살랑 봄 손님이 올 것 같은 기분 좋은 행복감에 아파트 단지를 따라 한 발씩 내걷는 걸음에 경쾌한 멜로디가 퍼졌다.

승철이 형.”

한순간이었다. 꺾어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마지막 길. 천천히 돈 방향엔 한순간도 그리워 잊지 못하던 임이 있었다.

너무 놀라 발을 멈추고 둥근 배를 끌어안았다. 밝은 갈색머리의 지훈이 시선이 배에 머문다.

..”

내 애죠?”

지훈이 말을 잘라 성큼 다가온다. 승철은 본능처럼 부른 배를 꾹 손에 쥐었다.

어떻게...알았어.”

나에게서 숨으면 내가 모를 거라 생각해요? 5년동안 날 만났으면서 그렇게 내가 쉬워요?”

승철은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한 번도 승철에게 싫다, 라고 말한 적 없던 순한 아이여서 잠시 잊었다. 너는 원하면 꼭 가져야 하는 끈질긴 남자였지. 바보같이 순순히 너가 떠날 거라 생각했을까? 나를 잊고 새로운 인생을 살 거라 믿었을까?

너는 나를 찾기 위해 무던히도 애써 지금 이 자리에 서있는데 왜 나는 바보처럼 굴었을까.

태명 뭐예요?”

어느새 지훈이 훌쩍 다가왔다. 잠깐 못 봤는데 그때보다 더 큰 너는 제법 어른냄새가 났다. 특유의 부드러운 페로몬은 여전했지만 완벽한 성인이 되었다. 부모의 가장 큰 축복이자 선물이였던 알파가 눈앞에 있다. 지훈은 큰손을 들어 부른 승철의 배에 조심히 손을 올렸다. 얌전했던 뱃속 아이가 힘차게 발길질을 한다. 그 태동에 지훈의 손이 떨렸다.

우지.. 우리 지훈이라는 뜻이야.”

그걸 붙여줬어요?”

지난날 너를 부르던 나의 애칭이었다. 지훈은 피식 미소를 흘렸다.

너 닮아서인지 평소에는 조용하고 얌전한데 널 만나서 좋은 건지 마구 발을 차네.”

여기저기 차는 발길질에 지훈의 미소가 짙어진다. 푹 파인 보조개에 뭉클 눈물이 났다.

너가 그리웠어.”

홀몸에다 아이를 가진 몸으로 하루하루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를 거야. 양말을 신으려 다리를 들면 나온 배 때문에 발이 안보여서 신을 수가 없고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려하면 배에 물이 다 튀어서 설거지 하면 옷을 매번 갈아입어야했어. 그것뿐이야? 등에 손이 안 닿아서 간지러울 때마다 방문에 대고 등을 긁어야했다고. 먹고 자고 씻고 숨 쉬는 게 다 고통이었어. 너가 없어서.

배 위로 떨어지는 눈물 따라 승철의 마음이 흘러나왔다. 지훈은 승철의 눈물을 손으로 닦았다. 닦아도닦아도 계속해서 눈물은 넘쳤지만 다정한 시과 따뜻한 손은 승철을 포근히 안아주었다.

우리 집으로 가요.”

형과 나와 앞으로 함께 할 아이가 있을 우리 집으로 셋이 같이 돌아가요.

 

 

 

 

 

 

 

 

 

 

 

 

 

 

 

 

 

 

 

 

 

 

 

 

 

 

 

 

 

 

 

 

 

 

 

 

+지훈이 요리를 배운 건 승철이랑 잘 먹고 잘 살려고 시작했습니다. 완벽주의자라 자격증까지 가게 됐지만... 요리는 승철에게만 해요.

+다시 만난 지훈은 20살이지만 고3이기도 하지요. 힘내라 고3!

+부모님들이 반대한 건 둘의 나이차이도 있지만 지훈이가 아직 미자이기 때문이죠. 저 세상은 알오라고 해도 미자는 건들지 말자, 주의입니다. 그리고 지훈이가 워낙 똑똑해서 부모님의 기대가 컸던 아이인데 고아였고 지극히 평범한 (오메가)승철에게 빠져있으니 부모님 실망이 이만저만 컸던 게 아니죠.

+그래도 지훈의 지독한 사랑때문에 결국 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또 우쿱에겐 예쁜 아이가 곧 나올 예정이니까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겠죠?

+알오물이 보고싶었을 뿐인데 우울한 글이 되었고.... 재미없게 쓴 것 같아 우울할뿐이고.... 그래도 읽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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