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쿱] 임출튀
[우쿱]임출취
지훈이가 3대 독자고 워낙 씨가 귀한 집안이라 지훈이 어렸을 때부터 자식을 낳는 것에 대한 압박이 심했어서 스트레스 심하게 받았음. 어렸을 땐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좀 덜했는데 성인이 되고 어엿한 직장인이 되자 그게 더 심해짐. 그러다 정략결혼식으로 너 이 사람이랑 결혼해라 선포해서 만난 게 승철이.
첫 번째 만남은 선이라는 그럴듯한 이유로 이미 얘기 끝난 사이에 얼굴 보러 간거고. 자기보다 키도 크고 잘생긴 사람이 나와서 좀 당황했지만 묘하게 차분하고 기운 없이 앉아있는 승철에 부모님은 왜 이런 사람을 선택했는지 알 수가 없음. 말 잘 들을 것 같아서 그런가? 말없는 지훈이만큼 조용해서. 그러면서도 순종적인 느낌이라 네,네 하며 따라올 것 같음. 그냥 착하고 재미없는 사람인거지. 그런 승철에 싫은 결혼 더욱 싫어짐. 그러면서도 거절할 수 없는 건 권위적인 부모님 밑에서 자라서 그래.
그래서 지훈은 두 번째로 승철을 또 만났고 만남의 장소는 결혼식. 두 번 만났는데 바로 쾌속결혼이다. 결혼식날 지훈은 불편하고 갑갑한 턱시도에 짜증이 남. 거기다 자기는 모르는 어르신들이 축하하다며 연신 인사를 하니 지훈의 스트레스 지수는 급상승. 그러면서도 그걸 억누르며 가짜미소를 지으며 축하인사를 받는다. 승철은 지훈과 색만 다른 턱시도 입고 얌전히 서있음. 부모님이 없는지 혼자 서있는데 승철이 아는 사람 별로 없고. 있어봤자 전주인집 아줌마. 직장 동료들 몇 정도. 친구 없고 친척도 없는. 승철을 보며 무어라 쑥덕거리는 사람들과 조용히 웃고 있는 승철을 번갈아보며 지훈은 자꾸만 섬뜩한 기분에 목을 빼어 몸을 추스르며 떨치려 함. 선 갔다 와서 궁금해 하며 묻는 부모님들의 시선 피하려고 부모님이 승철이를 어떻게 알고 저랑 결혼을 시키는 건지 묻지 않아서 더 모르겠음. 그냥 생각보다 너무 평범하고 존재가 옅어서 의문점과 기묘함이 섞여있을 뿐.
결혼식은 지극히 평범하게 치룸. 아무 문제없이. 섭외한 축가가수가 축가 부를 때 승철이가 눈을 장갑으로 잠깐 닦긴 했는데 눈물을 흘렸다기엔 표정변화가 없이 메마른 얼굴이었다. 결혼식 끝나고 폐백식 때 자식 많이 나으라며 던져둔 밤이나 대추에 지훈이는 굳고 승철은 감사합니다 하지. 감사가 뭐야. 살려달라고 해야 하는 거 아냐? 낳아도 문제고 낳지 않아도 문제인 집안에 결혼 온건데 웃지도 울지도 화내지도 짜증내지도 않는 승철이에게 이제 화가 나는 지훈이다. 사실 승철 잘못 없는 거 자기도 아는데 결혼식 전부터 속에 있던 짜증이 결혼식 때 급격히 상승하면서 이 결혼에 순종적으로 따라오는 승철이가 바보에 멍청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형식적인 절차로 간 신혼여행에서 출발할때부터 서로 말 없었고 도착해서도 짐 풀고 따로 놈. 지훈은 짐 풀고(짐이라봤자 세면용품정도고) 소파에 앉아 폰이나 하고 있고. 승철은 지훈보단 조금 많은 짐을 풀고는 침대에 앉아서 창문 밖을 멍하니 쳐다봄. 신행은 바닷가로 하자. 힘써서 바닷가 옆으로 예약해서 창문으로 보면 이국적인 풍경이 넓게 펼쳐져있음. 야자수와 황금빛 모래와 파란 바닷가에 그림 같다는 게 이런 거구나.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소리에 지훈은 고개를 들었고. 어느새 창문에 손을 올리며 밖을 구경하던 승철이가 창문을 열고 밖을 나감. 그대로 바다모래와 연결된 곳이라 발 대자마자 서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부드러운 모래가 발 틈으로 파고들고. 어느새 바다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가는 승철에 지훈은 홀린 듯 창문가까이 다가가다 승철이 발자국이 난대로 따라가지. 좀 덥고 해가 밝아 눈을 뜰 수가 없어 나오자마자 후회했지만 이미 맨발에 모래가 들어와 그냥 따라간다. 생각보다 거리가 좀 있어서 푹푹 패인 발자국 따라 걷다 파도가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는 끝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는 승철 뒤에서 섬. 다섯 걸음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펄럭이는 승철이의 티셔츠와 머리카락에 시선을 둠.
"바다가 예뻐요."
뒤돌지 않고 앞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지훈은 승철의 어깨너머를 봄. 어느 바닷가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에 그런가, 좀 예쁜가 싶고. 다섯 걸음 걸어 승철 옆에 나란히 선 지훈은 예쁘네 그때서야 바다가 예쁘다는 게 보임.
"바다는 처음이에요"
승철에게 고개를 돌린 지훈은 저를 보는 승철에 결혼식 이후 처음으로 서로를 마주봤다는 거 알고. 그리고 처음으로 승철이가 제 감정을 표현했다는 거 느낌. 두 번째 만남이 결혼식이었던 두 사람이라 서로 아는 점이 극히 적었고 선 때도 이름 나이 같은 거나 물어보고. 직장, 건강상태, 연봉...같은 아주 건조한 질문만 주고받다 차만 마시고 나왔었음. 그래서 지훈은 승철에 대해 잘 몰랐고 그저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그 때 처음으로 승철이라는 사람의 존재를 진하게 느꼈고. 그래서 다가오는 승철의 얼굴에 눈을 감음.
그리고 둘은 섹스를 했다.
그들의 섹스는 겨울의 바짝 마른 나뭇가지처럼 메마름. 그 잠깐의 분위기에 취해 키스를 하고 몸을 섞는다지만 서로에 대해 무지하고 일단 사랑 없이 한 결혼이라.... 애도 낳아야 하고. 근본적인 목적은 아이를 갖는 거기 때문에 최소한의 애무로 몸을 풀겠지 지훈이가 안으로 밀고 들어 갔을 때 승철은 팔로 자기 얼굴을 가리며 아픔을 참음. 소리가 새어나올까 입술을 이로 짓누르고. 눈을 팔로 가리며 견딘다. 지훈도 힘들고. 찢어질까 제가 할 수 있는 내로 풀었다지만 그걸로는 좀 모자랐던 듯. 그래서 그들의 첫 관계는 고통과 허무함만 남았음.
3박 4일의 신행 내내 두 사람은 어색함. 첫 관계 후 아픈 몸으로 씻고 나온 승철 다음으로 씻은 지훈과 승철은 지쳐 침대가 하나라 나란히 잠들고. 일어나서 숙소에서 주는 밥 먹고. 서로 폰만 하다 다시 잠들고. 일어나서는 신행에 포함된 스케줄 따라 움직임. 신행을 여행사 추천으로 간 거라 어디 보러 가고 사러 가고 놀고. 다른 여행객들은 자기들끼리 즐기며 노는데 어색한 두 사람은 각자 구경하고 예쁘다 싶으면 배경사진 찍고. 간혹 셀카도 찍고. 절대 같이는 안 찍는다. 대화도 별로 없는데 셀카는 무슨. 밥 먹을래요? 네. 필요한 말만 주고받음. 타이트하면서도 생각보다 느슨한 투어를 끝내면 두 사람은 지쳐 잠듬. 체력이 나쁜 건 아닌데 어색한 사람과 낯선 곳을 여행한다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라서 베개에 머리가 닿으면 잠드는 거. 다음날 되면 또 투어 다니고. 그러면서 틈틈이 둘은 또 몸을 섞음. 의무적인 행위랄까. 침대에 지훈이가 헤드에 기대 앉아있으면 승철이가 그 옆으로 다가오는데 그게 시작이지. 대화도 없고 분위기도 없이 하는. 오로지 번식이라는 목적을 위해. 숙소가 바닷가 옆이라 문을 열면 짜고 더운 공기가 들어오는데 둘이 관계를 끝나면 붉게 달아올라서 숨을 뱉으며 서로를 마주봄. 승철은 아래서 위로, 지훈은 위에서 아래로. 서로의 표정 없는 얼굴을 눈에 담으며 뜨거운숨만 뱉음.
그런 지루하고 끔찍한 신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이제 본격적인 결혼생활. 결혼생활 이래봤자 3대 독자인 지훈네라 독립 못하고 시댁과 같이 삼. 집이 좀 부유하고 부지가 넓어서 건물이 각각 떨어져있지만 왕래가 수월한 곳임. 도착해서 절하는 승철과 지훈에게 수고했다하시면서 앞으로 둘이 서로 도우며 잘 살라는 덕담도 하시고. 그러면서 부부의 역할도 충분히 해줬으면 하는-애를 가지라는 무언의 압박도 살짝 넣겠지. 그 소리에 질린 지훈은 손가락 말아쥐고 .승철은 표정없이 네, 대답함. 지훈은 가족 대대로 하는 회사에 팀장으로 일하고 승철은 소회사 일반 사원으로 일함. 그런데 결혼하면서 가정에만 충실하라는 어르신들 말씀에 승철은 회사 그만 두고 지훈이 뒷바라지 함. 아침에 일어나 밥 차리고 출근하는 지훈 옷 준비하고 청소하고 요리하고 뭐그런 거. 저녁에 퇴근하면 같이 밥 먹고 씻다가 잠들고. 가끔 몸도 섞고. 지극히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지.
끔찍해.
그런 하루를 보내는 게 갑갑한 지훈. 딱 한번 신행 바닷가 때 본 승철의 생기 있고 살아있던 얼굴 본 거 말고는 그림자처럼 조용하게 제 옆에 있는 승철에 숨이 턱턱 막힘. 주말마다 온 가족이 모여 식사하는 자리에서 이제는 결혼했다고 티가 나게 자식을 강요하는 부모님만으로도 숨이 막히는데 거부하거나 반발하지 않고 수긍하면서 저랑 기계적으로 몸을 섞는 승철이가 사람 같지 않은 거임. 진짜 부모님이 아이를 갖기 위해 만든 인조인간 같고. 몸을 섞을 때조차 신음소리 뱉지 않고 안으로 삭히며 고통을 견디니까 이게 사람하고 자는 건지 (나쁘게 말하면)단백질 인형하고 자는 건지 구분이 안돼. 빨리 아이가 생겨서 이 끔찍한 행위가 끝났으면 좋겠고. 한편으로는 아이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음. 왜냐면 아이가 생기면 부모님은 또 다른 것으로 자기를 괴롭힐 테니까. 그런 상반된 마음을 가지며 죽을 것 같은 하루하루를 지냄.
그런데 역시 씨가 귀한 집안이라고 쉽게 아이가 생기지는 않음. 꾸준하게 의무감으로 몸을 섞지만 한 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 나름 허니문 베이비를 기대했던 부모님은 실망했지만 뭐 우리 집이 워낙 씨가 귀하니까 하면서 기다리겠지. 그런데 그것도 몇 달이라고 계속 소식이 없자 불편한 기색을 보이기 시작함. 지난 번 보낸 보약은 계속 먹고 있니? 주말에 모여 같이 하는 식사자리에 묻기도 하고. 이 날이 가장 좋다더라, 아예 날짜를 잡아 알리기도 하고.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몸이 돼야 한다며 운동-요가 같은 거 등록해버리고. 점점 간섭함. 승철 뿐만 아니라 지훈에게도 이것저것 먹이고 일에 집중하지 말고 아이를 갖는 것에 충실하라며 일하는 것도 방해하는데 지훈은 아무래도 팀장이라는 위치에 있고 돈을 벌어야 하니 자유로운 반면에 집에서 살림하는 승철은 집에만 있으니 제일 간섭이 심함. 어느 정도냐 하면 처음에 결혼했을 때 있었던 살들이 쑥 빠질 정도. 두텁고 탄탄했던 허벅지가 반쪽이 되고 볼도 움푹 패여서 얼굴이 좋지 않음. 스트레스를 받아 그런 건데 시댁은 이렇게 살이 자꾸 빠지면 어떻게 아이가 생기냐며 더 닦달을 해버려서... 지옥의 뫼비우스의 띠를 뱅뱅 돈다.
싫으면 싫다고 해요.
형식적인 부부지만 가장 가까운 옆에서 볼 때 승철이 상태가 아니어서 첨으로 오지랖을 펼침. 밥을 푸던 승철은 그런 지훈에 얼굴을 숟가락질을 멈추다 아무말 없이 다시 숟가락질을 하겠지. 그런 승철을 답답하게 보던 지훈은 컵을 들어 불타는 속을 찬물로 식히고. 그날 밤에 누운 지훈 위로 올라오는 승철에 처음으로 승철을 뿌리침. 제 거친 손길에 밀려나간 승철을 보지도 않고 방을 나가 소파에 누워 억지로 잠을 청하려 하지만 바보 같고 갑갑한 승철의 행동에 찬물에 식지 않은 불꽃이 자꾸 타올라 화가 올라옴. 자식이 그렇게 중요해? 그렇게까지 몸을 혹사시키면서 아이를 가져야 하는 거야? 아이가 뭔데. 뭐길래 왜 자꾸만..!!! 깊은 곳부터 쌓인 분노가, 이제는 그런 것에 휘둘리지 않게 잘 다스렸다 생각했는데 그게 자꾸만 올라와 쉽게 잠이 들지 못함. 그렇게 밤새 뒤척이며 괴로워하다 새벽녘 쯤 겨우 잠들고. 얼마 안있어 승철이가 깨우는 손길에 일어난 지훈은 제 몸을 덮은 이불에 부엌에서 아침 준비 중인 승철을 보며 짜증스레 머리를 털겠지. 답답한 사람이라며.
그 이후부터 의식적으로 자꾸만 밤을 피하는 지훈이. 반항 혹은 불만의 표시로 자길 무언으로 쳐다보는 승철을 무시하며 아예 이불이랑 베개 소파에 두고 소파에서 잠. 편한 잠자리는 아닌데 그게 맘은 편하니까. 승철은 그런 지훈이에 초조해하며 몇 번 지훈이 이름을 부르며 이야기를 하려 하겠지만 귀막, 입막 모드하며 무시하는 지훈에 번번이 막혀 어떻게 할 수가 없음. 이제는 집이 가까우면서도 매일 전화하면서 아이는?? 자식소식부터 묻는 어르신들에 승철이가 받는 스트레스 어마무시한데 그걸 막아주거나 차단하거나 거절해주지 않는 지훈이라서 승철은 혼자 고통이란 고통은 다 받아버리고. 집에서 24시간 운동하는 시간 빼고 갇혀 지내서 스트레스 풀 데가 없어서 점점 지치고 작아져버리지. 지훈도 그런 승철을 알면서도 너도 부모님과 같은 패라며 그냥 무시해버림.
그러다 결국 승철이가 폭발해버리는데 그 때가 회식으로 술 먹고 지훈이 들어온 날. 늦은 밤까지 마시다보니 정신은 깨어있는데 말을 듣지 않는 몸을 끌며 집에 들어온 지훈은 깜깜한 집에 잠들었나 보다 하고 들어왔다가 제가 자는 소파에 앉아있는 승철을 보고 놀란다. 불도 안 키고 소파에 기대앉으며 들어오다 굳은 저를 쳐다보는 승철의 눈이 깜깜해서 보이지 않는데도 차가웠음
안자고 뭐해요.
들어오다 놀라 멈췄던 지훈이 다시 걸으며 묻는데 승철은 대답도 없이 일어서 지훈에게로 다가옴. 그리고 어찌할 새도 없이 멱살을 잡고 키스해버림. 그동안 해왔던 메마른 키스와 달리 폭력적이기까지 한 거친 키스에 입술이 이에 걸려 찢어지고 비린 피 맛이 나버리고. 혀가 아프고 얼얼하고 정신없이 몰아붙임
야, 너
입술이 떨어지고 헉헉 대는 숨 사이로 사나운 눈빛을 주고받음. 너 미쳤어? 지훈의 그 말에 승철은 픽 비웃으며 지훈의 멱살을 더 잡아끌어 얼굴을 가까이 함.
겁쟁이면 겁쟁이답게 굴어. 되도 않는 반항 같은 걸로 사람 스트레스 주지 말고.
거르지 않은 거칠고 낮은 톤으로 쏘아대는 승철이. 그 순종적이고 죽어있던 눈동자는 날카롭게 잘 다듬어진 칼날처럼 지훈을 노려봄. 그리고 동공이 흔들리며 자길 올려다보는 지훈에게고개를 숙여 다시 키스를함. 벗지 못한 옷을 벗기고 바닥에 눕혀 그 위에서 지훈의 것을 잡아 앉아버리고. 딱딱한 바닥에 누워 말 그대로 지훈을 먹어버리는 승철이다. 충분히 풀지 않고 들어가 찢어져 피가 나는데도 지훈의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위아래로 움직이고. 짐승처럼 고개를 쳐들며 신음을 뱉는 승철에 아랫배가 저릿저릿해 사정을 해버림. 승철은 제 안에 뜨끈하게 퍼지는 감각에 몸을 떨다 지훈과 눈이 마주치고. 곧 둘은 서로의 얼굴을 붙잡고 키스를 하며 조금씩 침대로 가면서 서로의 몸을 탐함 무미건조했던 그전과 달리 발끝이 떨리고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며 뇌가 점멸해가는 새로운 감각에 지쳐 잠들 때까지 날이 새도록 만지고 핥고 탐하고. 다음날 회사 다니면서 처음으로 지훈이는 오후 출근을 했고 승철은 아픈 몸을 끌고 집안일을 하고.
그 이후로 두 사람이 가까워졌냐 하면 그건 아님. 승철의 생생한 날 것의 본 모습을 본 지훈이가 잠에서 깬 승철을 봤을 때 승철의 눈동자는 탁해져있었고. 다시 얌전해지고 조용해짐. 지훈이가 혹시나 싶어 몇 번 찔러봤지만 안으로 삼키고 마는 것에 질려서, 혹시 그 때 일은 꿈이 아니었을까 싶어 지훈도 더 이상 다가가지 않음.
그리고 한 달 후에 승철은 처음으로 시댁어르신께 먼저 전화함.
저 임신했어요.
신발도 제대로 못 신고 달려온 부모님께 병원에서 찍은 사진 보여줌. 부모님은 잘했다며 승철 손을 잡고 팔을 쓸며 울먹이시고. 살짝 웃고 마는 승철을 안으시려다 아 아이를 가졌으니 조심해야 한다며 마시곤 아가야, 얼른 보자하며 승철의 배를 보며 말 거심. 지훈은 일하다 부모님 전화에 폰을 떨굼. 떨어지며 끊긴 폰을 줍지도 못하고 아이가 생겼다는 말에 진짜로...? 믿을 수가 없어 충격 받은 지훈은 일을 하는지 마는지 오후를 망치다 퇴근하고 집으로 달려오고. 승철은 지훈이 오자마자 사진을 기다렸다는 듯 인사도 없이 건네줌. 지훈은 아무리 봐도 모르겠는 사진에 몇 주라고요? 떨리는 목소리로 물음. 5주요. 꿈같던 그 때가 5주 전이었으니까 그 때였겠지. 지훈은 넋이 나간 듯 사진을 승철에게 돌려주곤 방에 들어가 옷도 벗지 않고 침대에 앉아버림. 아이가 생겼는데. 드디어 아이가 생겼는데 기쁘지 않고 이 미묘하고 더러운 감정은 뭘까. 마냥 즐겁지 않은 이 감정이 옳은 것인가. 안방 문 밖 거실에 있는 승철이는 무얼 하는지 조용해서 지훈은 지독한 침묵에 눌린 채 혼란스러워 주저앉아버리지.
임신이 되고 좀 자유로워질 줄 알았던 열 달은 더 좆같아질 것임. 왜냐면 건강하고 튼튼한 사내를 낳아야 하기 때문에 사내를 낳게 한다는 속설을 가진 것들 다 끌어 모아 승철에게 행할 테니까. 음식은 뭉그러진 거 먹으면 못난 아이 낳는다고 정갈하고 반듯한 것만 먹게 하고. 이상한 것들로 집안 곳곳에 두면서 이걸 자꾸 봐야 사내를 낳을 수 있다며 강요하고. 승철이가 다행히 입덧이 없으니 좋았지 안그랬으면 스트레스로 말라 죽었을지도 모를 정도였음. 그 옆에서 지훈이가 승철이를 지켜주고 보살피면 좋겠지만 둘은 별 사이가 아니라서. 정말 쇼윈도 부부, 서류에서만 부부라서. 더욱이 그 때 지훈이 회사에 큰일을 맡게 되서 매일 야근에 외근에 바빠서 승철의 상태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고. 승철도 지훈에게 도와달라거나 부탁을 하지 않으니 잘 몰랐음. 가끔 제대로 보면 임신으로 부어서 얼굴이 안 좋아 쉬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승철이가 가족이 없어서... 처가로 가라는 말도 못하고. 알고 보니 고아였던 승철이어서. 친구도 없다 그러고. 그래서 더욱 집에 있었던 거고. 쨌든 지훈이가 대충 봐도 승철이는 점점 안좋아짐. 그래서 지훈도 승철을 건들지는 않을 거다. 임신하면서 목표하던 아이를 가졌으니 더이상 관계를 맺진 않았는데 임신 때 남자들이 성욕을 풀지 못해 바람을 피니 안사람으로서 네가 잘 해야 한다는 ...빻은 시댁 말씀에....... 지훈은 됐다 그러고 거절하지만 잠잘 때나 지훈이 회식으로 술 마시고 들어온 날에 승철이 지훈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음. 초반엔 삽입은 안 되니 입과 손으로 하는데 중반엔 직접 올라오기도 하고. 지훈은 살짝 나온 배를 가리려는지 옷만 입고 아래는 허한채 움직이는 승철에 손으로 눈을 가려버리지.
아 그리고 승철이 쌍둥이 임신함. 한 번에 두 명이 임신되었다고 시댁이 더 승철에게 까탈스럽게 구는 거. 두명 모두 건강하게 태어나야 한다고. 막달 되서 쌍둥이라고 배도 확 부르고 무게도 엄청 나가서 거의 침대에 누워있어서 집안일은 그대로 지훈 몫이 됨. 부모님이 도와주시고 사람 불러서 지훈이가 할 일 별로 없긴 한데 그래도 조금씩 하려하고. 거기다 자다가 다리 쥐가 나서 승철이가 깨면 잠귀가 밝아 같이 깨는 지훈. 지훈이 깰까봐 조심조심 일어나 다리 주무르는데 배 때문에 이게 잘 안 되서... 그렇다고 지훈에게 도와달라는 안 하고 혼자 끙끙 앓고 있으니까 지훈이 옆으로 누워서 깨가지고 눈만 끔벅거리다 일어나서 승철이 다리 대신 주물러줌. 승철이 지훈이 갑자기 일어나 깜짝 놀라고 주물러 주려고 하니까 됐다고 하려다 말없이 적당히 힘주며 해주니까 딱 좋아서 그냥 받고. 좀 이제 됐나 싶으면 어느새 침대에 누워서 자고 있는 승철에 어이가 없어 헛웃음 짓다가 이불 덮어주고 옆에서 잠듬. 그리고 임신 동안 뭐 먹고 싶다고 말을 안했던 승철이라 땡기는 게 별로 없나 보다, 넘겼었는데 못 움직이니까 배고파도 뭐 먹으러 갈 수가 없어서 꼬르륵 거리는 배 끌어안고 참아버려. 그 다음날 밤에 아예 승철 침대 옆에 과일이랑 주전부리 간단한 거랑 혹시나 싶어 배달전단지까지 둬서 승철이 첨으로 빵 터짐. 눈 다 젖으며 크게 웃는 미소에 지훈 어리벙벙하다가 자기도 같이 웃음 터져서 웃는다. 한참 웃고 나서 둘이 뻘쭘해서 각자 노는데 그날 밤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깬 지훈이 껍질 까서 냠냠 하는 승철 뒷모습에 소리 죽이며 웃음.
여전히 시댁 스트레스 장난 아니고 일도 힘들지만 소소한 에피소드에 둘 사이가 좀 가까워진게 아닐까 싶을 때 자다가 승철이 진통에 깨서 그대로 병원으로 가게됨. 자다 깨서 머리 다 뻗친 채로 윗옷 대충 꿰어 입고 폭풍 드라이브해가고. 어르신들 뒤에서 급하게 달려왔을 때쯤엔 이미 안에 들어가서 비명 지르고 있는 승철이. 초산에 쌍둥이라 남들 배 이상으로 죽을려고 하는 승철에 지훈이 승철 손 꽉 잡으며 괜찮다고, 조금만 힘내자고 막 다독이고. 조금 진통이 덜해져서 널브러지는 승철이 멍한 눈빛에 제가 다 무서워서 애를 갖는 게 이렇게 고통스러우면 필요 없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게 힘들게 정말 고통스럽게 쌍둥이 태어나고. 8개월 때쯤 파란색 옷 준비하셔야겠어요 말에 남자인거 알았지만 건강하게 태어난 두 남 쌍둥이 탯줄 자르고 나온 지훈은 앉아있던 부모님들 일어서서 아기는 잘 태어났어? 그 말에 눈 감고 관자놀이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네 대답함.
나중에 개인 병실로 옮겨진 승철이 지쳐서 누워있고. 부모님은 애기 보러간다고 밑에 내려가고 지훈만이 승철 옆에 앉아서 착잡하게 승철을 봄. 그쪽 안부는 안 묻더라. 부모님이 정한 사람과 결혼했고 그 귀하다는 두 아들을 낳기까지 했는데도 부모님은 아이만 챙기니까 지훈은 정말 부모님이 원했던 건 아이구나, 자식이구나, 씨를 보존할 수 있는 남자아이구나 싶어서 착잡하고 복잡하고 암담하고 뭐 그런거. 승철은 여전히 멍한 눈으로 벽 너머를 바라봄.
다음날 아픈 몸으로 쌍둥이들 초유 먹이고 잠든 승철이 지켜보다 짐 챙기러 집에 갔다 온 지훈은 주인이 없는 텅텅 빈 병실을 맞이한다. 여기 환자 어디 갔어요? 딸려있는 화장실에 없어서 지나가는 간호사 붙잡고 묻지만 아무도 모르고 이상함에 영아실이랑 병원 곳곳 돌아다니는데 승철 그림자조차 없고. 병원에서도 수상하게 느껴 씨씨티비를 돌렸는데 거기엔 새벽에 편치 않은 몸으로 기어가다싶이 하며 도망가는 승철이 마지막 모습이 담겨있었고. 뒤늦게 달려온 부모님이 아이가 있는데 산부가 어디 갔냐며 난리치며 꼭 찾아야 한다고 112에 신고하고 그럼. 지훈은 지훈대로 이상황이 이해안가고 걱정되고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데 자기가 할 게 없어. 승철이 가족 없지, 친구도 없다지 찾을 방법 없는데 부모님은 우리가 알아서 찾을테니 넌 회사만 신경 쓰라며 두 쌍둥이 돌봐줄 사람까지 구하면서 지훈에게 걱정말라 함. 지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까 기다리긴 하는데 미치긴 할거야. 좀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승철이가 홀연히 자취를 감춘게, 그것도 아이를 낳고 하루도 안 되서 사라진 게 이해 안가고. 씨씨티비에서 도망가는 범죄자처럼 몸을 잔뜩 말며 사라진 뒷모습이 자꾸만 아른거려서 할 수만 있다면 승철을 붙잡고 무슨 일이냐 묻고싶음. 우리가 아무리 형식적인 부부였어도 그렇게 도망가야 할 정도로 내가 끔찍했냐고. 아니면 무슨 이유가 있는거냐고. 그렇게.
하지만 그것도 잠시지. 쌍둥이 돌보느냐 지훈은 매우 바빠짐. 일하는 동안엔 돌봐주는 사람이 있으니 편하긴 한데 그분도 밤엔 집에 가야하고. 그래서 밤엔 지훈이가 쌍둥이를 돌보는데 하 아기 개 힘들어. 얼마나 시도 때도 없이 울고 보채고 그러는지. 부모님이 도와주셔도 늙으신 분들이라 체력이 받쳐주질 않으니 오롯이 지훈몫이라 낮에는 일에 시달리고 밤에는 아기에 시달려 수척해져감. 잠을 못자니 머리가 안돌아 회사에서 넋 놓는 시간 늘어나고 집에선 아기 분유먹이다 졸아서 아기 떨어뜨릴 뻔 하고. 그렇게 고생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던 어느 날에, 지훈은 내려놓기만 하면 우는 첫째 등에 업고 둘째 앞으로 안으며 마당을 돌아다니고 있었음. 적당히 덥고 서늘한 날씨에 깜깜한 마당 돌다가 목이 좀 말라서 마침 부모님 집이라 들어가서 물 마시려 베란다 쪽으로 가는데 거기서 다 해결됐어요? 하는 소리를 들음. 회사 이야기인가싶었는데
아마도.
확실하지 않잖아요.
다신 안 나타날 거야. 애 태어나자마자 바로 도망간 놈인데 무슨 낯짝으로 다시 나타나겠어. 이상한 대화에 몸이 굳음.
그래도 모르죠. 직접 배 아파 낳은 아이인데 눈앞에 아른거려서 오지 않겠어요? 부성애 그거 무시 못할 일이잖아요.
이미 다 계약했고 말 끝났어. 아이만 낳으면 완전히 사라져주겠다고 도장 찍었다고. 그렇게 빨리 사라져줄줄은 몰랐지만... 부자는 못되도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 보상은 했으니 양심 있는 놈이면 다시 안나타날거야.
믿어요?
믿고말고 내가 사람 하나는 제대로 보잖아. 그 놈, 최승철 평생 우리 앞에 나타날 일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