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쿱] 을의 연애
[우쿱/지훈승철] 을의 연애
w.agapi
승철이 심통이 났다. 서방님 오셨다고 아까까지 잘 마시던 차를 거칠게 내려놓고 버선발로 뛰쳐나갔는데 몇 분 안 되서 팔짱을 끼고 툴툴대며 걸어왔다. 짜증어린 얼굴로 씩씩대는 게 왜 그런가 싶어 같이 달려갔던 승관에게 물으니 서방님이 보지도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하였다. 평소랑 차이가 없잖아? 늘 겪어왔으면서 왜 그래. 별스럽지 않은 얘기에 승철을 힐끔 보며 물었다. 승관은 곶아새끼라며 욕하는 승철이 들리지 않게 정한이 귀 가까이 대며 작게 소근거렸다.
“오늘 그날이잖아요.”
아 맞다. 그제야 정한은 납득했다. 며칠 전부터 승철이 소란스럽게 몸 단정하고 목욕재계한 것이 기억난 것이다. 오메가 발현이 완성되고 처음 겪는다는 히트사이클. 매일 시댁 큰할아버지 댁으로 불려가 자식 강요하는 어르신 때문에 힘들어하던 승철이가 오늘 단단히 맘 잡고 준비했는데 서방님이 방으로 쏙 들어가니 저 속이 멀쩡하진 않겠지 싶었다. 정한은 주섬주섬 다시 찻잔을 들고 마시는 승철을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히트사이클 기간에 있는 오메가가 마시면 향을 더 중폭 시켜준다는 차를 승관이 구해와 끓여 주던 걸 열심히 마셨는데 효과를 보기도 전에 목적을 잃었다. 승철의 눈꼬리가 쳐져서 속눈썹이 길게 그늘드리워졌다. 담백한 취향의 서방님을 따라 단정하게 염색한 검은 머리카락도 색을 잃어 칙칙하다. 그런 승철의 눈치를 보며 더듬더듬 말을 거는 승관이가 고생이다. 승관이도 승철이 따라 며칠 계획 짜고 고생하였는데 그 결과가 신통치 않았으니 본인도 속상할텐데 티내지 않고 승철이 먼저 챙긴다. 승관의 노력에 풀이 죽어있던 승철의 얼굴이 환해지는 게 보인다. 승관도 그걸 캐치하고 아까보다 더 오바하며 승철을 웃긴다. 그러다 넘어지지. 조심성이 없어 자주 다치는 승관의 무릎에 더 이상 상처는 남기지 말아달라고 형 보러 놀러왔던 최씨 둘째 도련님께 부탁받았는데. 잘생긴 미남의 부탁은 들어주는 정한이 승관을 말리려는 순간 어이쿠, 기어코 중심을 잃고 의자랑 엉켜 넘어진다. 역시나 무릎은 깨졌고 생채기 난 상처엔 피가 맺힌다. 아이고 죽는다. 승관의 호들갑에 승철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다시 번졌다. 정한만이 최씨 둘째 도련님 볼 낯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들어가겠습니다.”
노크를 2번하고 문고리를 잡았다. 심플한 은색 디자인의 가로가 긴 문고리를 잡아내리면 부드럽게 돌아가 서서히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와 뒷걸음으로 문을 조용히 닫고 허리를 숙였다.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침묵에 3초를 세고 허리를 들어 살폈다. 천장까지 닫는 커다란 서재로 벽이 둘러지고 키 큰 성인이 누워도 충분한 크고 넓은 목재 책상이 정중앙에 놓인 흑갈색 소파 위로 배치되어있었다. 그 뒤로는 커다란 의자에 푹 기대어 눈 감고 있는 지훈이 그림처럼 앉아 있었다. 정한은 책상을 훑었다. 책상 한구석에 양복 겉옷이 아무렇게나 구겨져 놓여 있었다. 정한이 그 자켓쪽으로 걸어가 잡을 때 지훈이가 말렸다.
“그냥 냅둬요.”
“구겨져.”
“상관없으니 그냥 둬요.”
“부인이 사모님께 혼날텐데.”
“...알아서 하세요.”
체념한 지훈의 말소리에 한숨이 섞여 갈라졌다. 정한은 얼굴빛이 좋지 않은 지훈의 얼굴을 눈으로 훑고 겉옷을 서재 옆 작게 마련된 드레스룸에 들어가 옷걸이에 걸었다. 다행히 구겨진 것 없이 말끔한 모양새에 손으로 몇 번 털고 나온 정한은 지훈 옆에 다가가 책상 위에 엉덩이를 붙였다. 지훈이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미간을 구겼다.
“약 안 챙겨 먹었어?”
문 열기 전부터 은은하게 나던 향은 방문을 열 때부터 점점 향을 더하고 있었다.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하고 무거운 향에 정한이 본능적으로 움직이려던 몸을 다스리고 지훈에게 물었다. 지훈의 두 번째 한숨이 아까보다 요란하다.
“누구 때문에 요 며칠 구경도 못했어.”
“이때다 하고 어르신들이 가만 안 뒀을 텐데.”
“말도 마.”
마른세수를 하며 지훈이 짜증을 부렸다.
“승철이는..”
“미안한데 형 나 잠시만 냅둬줘요.”
지친 얼굴에 지훈이 정한의 말을 끊고 올려다보며 부탁했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편인 지훈의 낯선 얼굴에 정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동안 몇 시간 못 자고 학교가 끝나자마자 그렇게 불려갔으니 어쩔 수 없지. 지훈은 고맙다고 미소를 짓고 자세를 고쳐 의자에 푹 기대어 누웠다. 지훈을 담고도 넉넉한 의자가 기울어져 가라앉는다. 향이 아까보다 진해졌다. 악취라고 느껴질 정도로 강해져 머리가 아픈 정한은 크게 난 창 쪽으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좌우로 벌어지는 창문 사이로 나무 바람 냄새가 흘러들어와 공기를 정화시킨다. 들어갔다 나가는 공기로 제 냄새가 섞여 빠져나간다. 조심한다 했는데 강한 알파의 향에 제 몸도 동요했었던 모양이다. 단정하게 동여맨 윗 단추를 풀며 정한은 창문에 기대어 앉았다.
“어느새 16년이나 흘렀구나.”
가만히 추억을 더듬어본다. 지훈을 처음 본 게 내 나이 7살이었던가? 야생마처럼 날뛰며 사고를 일으키는 미운 7살에 정한은 아버지의 소개로 지훈을 만났다.
앞으로 너와 함께 할 이지훈 도련님이란다, 인사하렴 정한아.
하얀 얼굴에 어린아이가 봐도 멋있는 어린이양복을 입고 얌전히 의자에 앉아있던 지훈은 거짓말 보태서 인형인 줄 알았다. 말광량이 여동생이 갖고 노는 바비 인형을 크게 만들었다 생각했다. 하얗고 깨끗한 피부에 맑은 눈동자로 움직임 없이 앉아있는 게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정한은 인사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에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안녕.”
어색한 공기를 뚫고 굳게 다문 입술을 열어 인사한건 지훈이었다. 인형이 말을 하네. 정한은 인사대신 손가락을 들어 지훈의 볼을 찔렀다. 부드럽게 들어가 느껴지는 단단한 살과 따뜻함에 와 감탄사가 터졌다. 너 귀엽다. 손가락 한 번 얼굴 한 번 쳐다보며 의아애하는 눈동자에 정한이 방긋 웃었다. 어린아이를 좋아하진 않지만 귀여운 것엔 약했다. 내 이름은 정한이야, 윤정한. 7살이야. 너는 몇 살이야? 궁금해서 종알종알 물었다. 지훈은 6살이라고 수줍게 대답했다. 말할 때마다 움직이는 말랑한 볼살이 신기해서 정한은 한 번 더 손가락을 찌르려했다. 그 때 아버지가 그럼 안 돼, 하며 정한의 손을 잡아 막았다. 왜요? 못 만지게 하는 아버지의 제지에 불만을 토로했지만 아버지는 말없이 고개만 저었다. 왜요? 왜 안 되는데요? 한참 궁금한 것이 많은 나이였기에 계속 묻던 정한은 그러나 곧 낯선 향에 고개를 돌려 지훈을 바라보았다. 따뜻한 햇빛냄새가 나는 제 알파 향과 다른, 공기를 짓눌러 무겁게 내리찍는 강한 알파의 향이 제 향을 내쫓고 있었다.
나중에서야 정한은 대한민국에서 알파쪽에서 내노라하는 가장 역사가 깊은 이씨 기문의 정통후계자가 이지훈이었던걸 아버지한테 들었다. 오메가였었던 어머니의 목숨으로 태어났다던 지훈은 그 강한 기운으로 모든 이를 굴복시켰다. 지훈을 보는 이라면 모두들 그가 큰 인물이 될 거라며 입을 모았다. 우렁차게 울며 태어난 순간부터 극찬과 공포와 기대를 받고 자란 지훈은 어린 나이에서부터 정상적인 어른들도 소화하기 힘든 스케줄을 소화해내가며 알파로서 잘 자라주었다. 특히 예술계열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 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최연소로 음악계에 데뷔했다고 하였다. 남다른 재능과 지치지 않는 노력으로 무섭게 성장하는 지훈을 보살피기 위해 보모와 여럿 뛰어난 가정교사가 붙었다. 대부분이 어른의 알파였지만 지훈은 기죽는 거 없이 그를 대등하게, 아니 우위에서 대했다. 그것이 퍽 성인 알파들의 존심을 건드려 위험할 뻔했던 지훈을 보살피기 위해 정한이 지훈의 집에 들어가게 됐다. 지훈보다 고작 1살이 많았던 정한이 하는 일이라곤 지훈을 보살피는 것. 아버지의 소개로 친구라고 생각했던 관계가 실은 그게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가문싸움에서 져 몰락할 뻔한 걸 이씨 가문의 제안으로 정한을 넘기고 살아남았다는 그런 흔해 빠진 이야기는 입 아프니까 더 이상 하지 말자.
어쨌든 지훈의 옆에서 16년을 같이 보냈던 정한은 친구로서 집사로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관하는 지훈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
“어르신들 말씀이 틀린 거 없는데 뭐가 싫다고 반항인거야. 사춘기 때도 안한 반항을 이제야 하느냐 그래?”
지훈이 누운 의자가 짧게 흔들린다. 정한이 창문 밖 푸르게 흔들리는 잎사귀에 시선을 두며 말을 이었다.
“너 23살이야. 적은 나이 아니라고. 그런데 왜 자꾸 도망가?”
“제발 형.”
“승철이가 뭐가 되니.”
괴로움에 젖은 신음소리를 토해내며 의자가 크게 흔들렸다. 바뀐 시야엔 지훈이 의자를 빙글돌아 정한과 마주보았다. 푹 기댔던 허리를 곧게 서서 곧은 눈빛으로 정한을 바라본다.
“난 아이는 필요 없어.”
“그런 같잖은 소리 말고.”
“...”
“너 섹스가 무서운 게 아니고?”
지훈의 입이 다물어진다. 정한은 창문에서 일어나 몸을 바로 펴고 다시 물었다.
“너 아직 동정이지?”
지훈이 다리에 힘을 줘 의자를 돌린다. 시야에 들어오는 넓은 의자 등받이에 정한이 머리를 헝클이며 의자 곁으로 다가가 저를 보게 다시 돌렸다. 불쾌한 표정을 띈 지훈이 입술을 꾹 다물고 시선을 피했다.
“아무것도 안 물을게. 그런데 하나만 알아. 오늘 승철이 어르신들이 주는 마지막 기회야.”
문이 닫혔다. 흐트러짐없이 걸어나간다 싶더니 문이 닫히는 순간 발소리가 조금 빠르다. 아닌 척 해도 걱정되고 신경 쓰이는 거다. 젠장. 제 말에 짧게 욕하던 지훈의 말소리가 바람과 함께 흩어져 떠내려간다.
그 시각 승철은 저녁도 무르고 혼자 침대에 앉아있었다. 승관의 걱정어린 시선에 겨우 웃어주었는데 혼자가 되니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오늘만 기다렸는데.
임신하기 가장 좋은 날짜를 계산해 오늘로 날을 잡고 목욕재계를 한 뒤 가장 예쁘고 야한 속옷도 입었다. 승관이가 타다 준 호르몬중폭제 차도 마시고 인터넷에서 비싸게 산 첫날밤 향초도 미리 켜 만반의 준비를 다했는데 서방이 목석이다.
왔어요, 서방님. 과하게 애교를 떨며 오글거리는 인사를 하고 팔짱을 꼈는데 인사도 없이 팔을 쑥 빼고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던 지훈의 뒷모습이 아른거린다. 이러지 마요. 따라 붙던 한마디가 그대로 리플레이 되어 마음의 삼 천원이 또 적립됐다.
속에서 밀려오는 답답함에 큰 숨을 뱉으며 침대 옆에 놓인 탁자 위 약통을 보았다. 흰색의 긴타원형의 약통은 물이 담긴 물 컵과 함께 나란히 놓여있었다. 또 불려가서 혼나겠네. 주름이 자글자글하여 매서운 얼굴로 힐난하는 큰할아버지가 생각나 몸이 떨렸다. 마지막이라 했는데. 닭살이 돋은 팔을 쓸며 이번엔 무슨 변명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벌컥 문이 열렸다.
퇴근한 옷차림 그대로 겉옷만 벗은 지훈이 승철 앞으로 성큼 걸어왔다. 가까울수록 진해지는 향에 허벅지에 힘이 절로 들어갔다. 지훈아~ 갑작스런 등장에 당황했지만 반가움이 커 두 팔을 뻗어 안으려는 걸 지훈이 한 팔로 승철의 이마를 눌러 제지했다.
“무슨 짓 한 거예요.”
“뭐가.”
“내 약 어디 숨긴 거야.”
“...그게 중요해?”
“내게는 중요해요.”
안고 싶어서 일어나려 할 때마다 팔에 힘을 주어 누른다. 결국 심통이 난 승철이 부루퉁하게 볼을 부풀렸다.
"고자새끼.”
“네?”
“먹으라고 눈앞에 내밀어도 못 먹는 멍청이.”
“하..저거죠? 내 약.”
지훈이 궁시렁대는 승철의 뒤로 탁자 위에 올려둔 약통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달그락 약통 문이 열리는 소리에 승철이 울컥 속에서 뭔가가 뒤틀렸다.
“오늘은 내방에서 잘 테니 형은 여기서 자요.”
“나갈거야.”
약을 입안에 털고 물컵을 들던 지훈이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렸다.
“?”
“가서 아무나 붙잡고 하룻밤 보낼거야!”
그리고 승철이 지훈이 잡을 새도 없이 문 밖을 뛰쳐나갔다.
“뭐야.”
콧노래를 부르며 복도를 걷던 승관은 무서운 속도로 밖을 뛰쳐나가는 승철이 행동에 놀라 섰다. 목욕가운만 입은 채로 뛸 때마다 요염한 허벅지가 아슬아슬하게 드러나 굉장히 위험했다. 무슨 일이야. 아찔해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상황을 인식하기도 전에 시야에서 사라진 자리엔 과즙이 터진 복숭아향이 잔향처럼 남아있었다. 설마 싶어 지훈과 승철이 쓰는 침실로 걸어가니 열린 문사이로 약을 뱉으며 지훈이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형 아버지가 진지하게 형 데리고 병원 가라고 신신당부 했을 때 농담이라 생각했는데 진짜 형 병원가야겠다.”
결혼 한다 데리고 왔으면 책임을 져야지, 지금 뭐하는 짓이야. 7첩 밥상이 휘황찬란하게 차려졌는데 밥상을 엎는 건 도대체 무슨 행위냐고. 승관이 요란하게 한숨을 쉬었다.
지훈은 승관의 말을 한귀로 흘러들으며 바닥에 눌러붙은 약을 노려보았다. 머리가 뜨겁고 욱신거려 인상이 찌푸려지는데도 승철의 향이 눅눅하게 달라붙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안가고 뭐해요. 승철이 형 히트사이클이라고. 그냥 냅두다가 아무 알파붙잡는다고!! 가서 잡아요!”
코를 막으며 들어와 지훈의 손을 잡고 거칠게 내쫓는다. 지훈은 쾅 닫힌 문 밖에 서서 바닥을 발로 헤집었다. 방에 들어갈 때부터 강하게 나던 복숭아향이 아직도 코주변에 맴돈다. 목욕가운만 입고 젖은 눈동자로 올려다보는 얼굴에 자꾸만 빠져나가려는 정신줄을 붙잡고 겨우 약을 찾아 먹으려했는데 그것이 또 승철이에게 상처를 줬다. 큰 어르신이 바라고 승철이 입에서 떠나지 않는 자식은 필요 없다. 자식에게 제 사랑을 나눠주고 싶지 않은 욕심때문이기도 했고 첫 관계를 임신이라는 목적으로 쓰고 싶지 않았다. 진심은 그것뿐인데 왜 제대로 말해주지 못하는지. 제대로 앞에 서서 제 마음을 제대로 보여주면 되는데 도저히 그 앞에 설 용기가 생기지 않아 자꾸만 주저하게 된다.
나한테 화가 나.
지훈은 참지 못하고 신경질적으로 바닥을 차며 앞머리를 쓸었다.
나쁜새끼. 고자새끼.
한참을 달리다 길 한복판에 주저앉았다. 눈을 뚫고 나오려는 눈물을 흘려보내기 존심상해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하늘이 참 푸르다. 어둑어둑한데도 깨끗한 푸른색의 구름이 유유히 흘러가는 것이 보였다. 그것이 뭐라고 이리 울적한지. 눈꼬리에 대롱 달려있는 눈물을 흔들어 털며 다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다시는 내가 너한테 가나보나. 그러면서도 자꾸 고개가 돌아간다.
안 쫓아오나. 진짜 안 잡나.
2년 만남에 4년 연애동안 숱하게 싸우면서 먼저 나가는 승철을 한 번도 잡지 않은 지훈이었지만 이번엔 선전포고까지 하고 나왔는데 진짜 안 잡으려고? 뒤늦게 발현된 탓에 향이 들쑥날쑥한 편인 승철이 오메가 향을 질질 뿌리며 위험하게 길거리를 걷는데 걱정도 안 되지. 이지훈 나쁜 놈. 그거 하나 잡는 게 뭐가 어렵다고.
울분이 쌓이고 쌓여 심장이 아프다. 배가 쪼이고 걸음이 늘어진다. 결국 얼마 못 가 걸음을 멈춘 승철은 몸을 돌려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화가 나고 기분은 더러운데 어쩔 수 없다. 최승철은 이지훈에게 약하니까.
왜 그런 말 있지 않은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약하다고. 최승철과 이지훈의 관계에선 최승철이 그랬다. 조금 큰 교복을 입고 신입생 대표로 강당위에 서던 이지훈에게 첫눈에 반한 날부터 승철은 자연스레 을이 되었다. 평범한 집에서 첫째로 태어나 체육특성으로 알파들이 득실대는 특목고에 다니던 베타 승철은 제 인맥을 동원해 일학년 대표로 강단에 섰던 이지훈이가 누구인지를 캐고 다녔다. 일학년 몇 반인지. 성격은 어떤지. 친구는 누구인지. 활발하고 사람 좋아하는 승철이 지훈에 대해 아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일학년 6반이고. 성격은 조용하지만 할 말은 하는 스타일이고. 친구는 많지 않지만 오래된 친구들뿐이라고. 조금씩 지훈에 대해 알아나갈 때마다 한 번도 그 앞에 가까이 가지 않았음에도 다 알게 됐다고 느껴졌다. 저 멀리 강단에 섰던 3m의 거리가 10cm씩 짧아져 이제는 팔을 뻗으면 내 품에 안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실제로 지훈 앞에 설 때도 떨리지 않았다.
누구세요. 묻는 얼굴에 사귀자. 남자답게 고백했다. 의아해다가 일그러지는 얼굴에 사실 매우 심장이 떨려 죽을 뻔했다는 걸 뒤늦게야 알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가 없었다. 나는 최승철이고 너보다 한 살 위고 체육 특기생이야. 지훈은 궁금하지도 않은 본인 소개를 하며 승철은 도망가는 지훈의 뒤를 따라갔다. 차를 타고 사라지는 지훈에게 내일 또 보자, 인사하고 난 뒤엔 드디어 지훈을 봤다며 발을 구르며 좋아죽을 뻔했다. 실제로 가까이서 본 실물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비주얼쇼크라서 승철은 예전처럼 멀리서 지훈을 바라보는 걸로 만족할 수 없었다. 그 앞에서 실제의 지훈을 가까이서 보고 싶은 욕심이 자꾸만 솟았다.
그래서 승철은 열심히 지훈을 졸졸 쫓아다녔다. 집에서 태우는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안녕 지훈아. 인사하며 하루일정을 시작하고. 쉬는 시간마다 층이 다른 지훈의 반으로 달려가 빵이랑 군것질거리 하나씩 먹으라며 주고. 끝날 땐 공을 뻥뻥 차다가도 잘 가라며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처음엔 낯선 인물의 끈질긴 들이댐에 무시했던 지훈이었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지치지 않고 쫓아다니는 승철에게 지훈도 조금씩 곁을 내주었다.
그때부터 승철의 구애는 더욱 진해졌다. 사랑해. 결혼하지 말고 나에게 장가와. 농담처럼 써내려간 연애편지를 지훈에게 매일 전해주었다. 한 번씩 스킨십이 싫다는 지훈을 꼭 끌어안았다. 제대로 마주 안아주진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좋아서 자꾸만 치댔다. 그런 행동이 반복되자 알파에게서 감히 베타가 다가간다고 좋지 않은 알파들에게 무시도 당했지만 그래도 열심이었다. 그것보다 지훈이가 보여주는 작은 친절들이 승철을 구원했으니까.
그런데 그게 1달이 되고 1년이 되고 2년이 되니 체력 좋은 승철도 지쳤다. 말로만 듣던 어장관리를 내가 당하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헷갈리게 하는 지훈에게 승철은 너무나 지쳤고 힘들었다.
특히나 뒤늦게 고3, 19살에 오메가로 발현되면서 승철은 더더욱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오메가와 베타, 알파로 정해진다는 정론을 깨고 드물게 오메가로 발현된 승철은 좋아하던 운동을 더 이상 할 수가 없었고-어깨를 나란히 한 알파들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몸은 자꾸 나빠져만 갔고 향을 조절할 수 없어 혹 위험을 당할까ᆞ 학교를 제대로 나갈 수가 없었다.- 불에 데인 것처럼 뜨거운 몸과 그 열기에 뇌가 녹아내리는 것 같아 하루하루를 겨우 버텼다. 가끔씩 정신을 차릴 때면 지훈이 그리웠지만 차라리 이게 낫다 생각했다. 응답받지 못하는 짝사랑을 접을 때가 된거라고. 이게 맞지. 꼭대기층에 지훈과 중간에서 좀 아래에 있는 승철은. 그래서 주변 친구들이 드디어 지훈을 포기했냐고 물었을 때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렇게 잊혀질거라 생각했다. 지훈은 내가 가지 않으면 오는 아이가 아니니까.
그런데 지훈이가 나타났다. 승철이가 억제제가 떨어져 병원에서 약을 받고 나오는 날 장미꽃 하나 들고. 왜, 여기에 너가, 있어. 놀라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승철에게 지훈은 꽃 한송이를 내밀며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지켜줄게요.
정말 멋도 없고 뜬금없는 고백이었는데 승철은 울기만 했다. 그 꽃 한송이를 받고 어쩔 줄 몰라하면서 병원앞에서 창피하게 엉엉 울었다. 처음으로 지훈이 승철을 온 몸 가득 안아주었다.
그렇게 연애를 시작했으니 핑크빛 나날들만 가득 할 줄 알았다. 물론 처음은 핑크빛 나날들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문제가 생겼다. 스킨십이 영 나아가질 못했다. 몇 달이 되어 가는데 손만 겨우 잡았다. 그것도 지훈이 내민 새끼손가락 꼭 붙 잡는거. 승철이가 먼저 잡으면 잡긴 하는데 그것뿐이었다. 손가락 깍지는 할려고 하면 손을 고쳐 잡아 못하게 했다. 부끄러움이 많은가 싶어서 기다렸는데 진도가 안 나갔다.
그래서 첫 뽀뽀를 승철이가 20살 되던 해에 했다. 그것도 너무나 답답해서 20살 된 기념으로 가져간다고 승철이가 먼저 다가가서 한 거다. 쪽, 훔쳐간 뽀뽀에 입술의 감촉과 부끄러움이 전신을 덮치는데 약간의 허탈감도 있어 좀 씁쓸하긴 했다. 그리고 젠장, 첫키스는 지훈이 스물 살 때 했다. 첫 뽀뽀에서 정확히 일 년 뒤였다. 대학 개강 기념으로 친구들이랑 부어라 마셔라 했던 날, 그날따라 술이 잘 받는지 쭉쭉 들어가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지훈이가 좀 있다 전화하라 했는데 폰은 제 바지주머니에서 나오지 못했다. 머리 한 구석엔 아까 통화하던 지훈의 목소리가 계속 울리는데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계속 울려대는 전화를 알지 못했다. 얼큰하게 취해 12시가 다 되서야 모임이 파하고 나가던 승철은 가게 밖에 서 있는 지훈을 봤다. 어떻게 알고 여기에 있는 걸까. 얼마나 추운 밖에 서 있었는지 코끝이 빨갛고 볼이 질려서 승철은 지훈의 눈길을 피했다. 지훈은 그런 승철에게 화도 내지 않고 손을 잡고 걸었다. 버스를 타고 5정거장이나 걸어야 하는 길을 걷는 동안 폐를 훑는 차가운 공기에 눈이 시려 눈물이 핑 돌았다. 일그러지는 시야에 무슨 기운인지 지훈을 불렀다.
“지훈아.”
“네.”
“키스해주면 안 돼?”
지훈의 걸음이 멈췄다. 승철은 그 뒤로 바로 붙어서 입술을 물었다 뗐다.
“그럼 내가 해. 너한테.”
말이 끝나자마자 승철이 지훈의 어깨를 잡아 돌리며 목을 감쌌다. 고개를 숙이며 닿았던 입술은 건조하고 차가운 바람에 일어 거칠었다. 그 새로 들어가 안을 훑으며 주고받던 첫 키스는 소주처럼 쓰고 겨울처럼 시렸다. 짧은 키스 후에 말없이 서있던 승철을 지훈이 손을 들어 입술을 닦아준 뒤 아무말 없이 승철의 손을 잡아 걸었다.
그 이후로 관계가 나아졌냐하면 글쎄.. 책임지지 못할 나이에 관계는 맺고 싶지 않다 해서 지훈이 성인이 되기까지 기다렸는데 대학 합격하자마자 휴학하고 군대 가는 바람에 스킨십은 물론 연애도 못했다. 승철이 부랴부랴 뒤늦게 따라갔지만 1달 차이도 선임이라고 공사 구분하며 대하던 선임 이지훈 때문에 울기도 많이 울었고. 휴가 맞춰 나가기 위해 애를 써도 교모하게 바꿔놔서 같이 쉬기도 어려웠다. 어쩌다 간신히 휴가를 맞추고 단 둘이 있게 되면 입술이 퉁퉁 불어오를 때까지 키스만 했다. 손이 옷 속으로 파고들려 하면 지훈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 했기 때문에 그 뒤는 상상도 못했다.
하루는 너무 짜증이 나서 왜 자꾸 날 밀어내냐고 울면서 화를 냈는데 지훈은 형은 뒤늦게 오메가로 발현되었기 때문에 몸에 무리가 생길 수 있다고 안 된다 했다. 그러면서 지켜줘야지. 오글거리는 멘트가 뒤에 붙었는데 화가 나고 속상했떤 마음이 녹고 꽃이 피어서 바보같이 그렇게 넘어갔다.
그런데 그것도 반 년 전까지다. 제대하고 얼마 안 되어 안정기에 접어들어 승철은 이제 완벽한 오메가였다. 아직 페로몬을 컨트롤하는데 능숙하진 않지만 완벽하다 했다. 비슷하던 때에 지훈이를 만나고 있는 승철의 존재를 알게 된 이씨 가문에서 승철을 불러 상견례를 했고 정신차리고 보니 동거까지 하고 있는데 아직 우린 6년째 노섹스다.
어디서 부터 잘못된 걸까? 승철은 자꾸 생각이 많아진다. 사실 지훈은 날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닐까? 좋다고 쫓아다니던 스토커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동정심에 고백한 게 아닐까? 그리고 지금은 그 고백을 후회하는 게 아닐까?
큰어르신께 불려가서 어른들의 결혼강요와 자식강요를 들을 때마다 힘들었지만 그것보단 승철은 지훈이를 원했다. 언제나 내가 먼저 행했던 사랑을 지훈이 먼저 보여주길 바랐다. 그래서 기다렸는데, 혹 부끄러워 다가오지 못하는 걸까싶어 승철이 길 따라 걸어오라며 레드카펫까지 깔았는데 매섭게 무시한다. 뒤도 돌지 않는다.
아팠다. 아프니까 나 좀 봐달라고, 먼저 다가와 달라고 말하고 싶은데 승철은 을이라서 말도 못했다. 갑의 친절한 거절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억울하면 본인이 그만 두던가 포기해야 했다. 이게 다 사랑이라며 4년을 견디며 지훈을 따랐던 승철이었지만 역시 지친다. 그럼에도 그만두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자신은 여전히 바보라서 어쩔 수 없이 자기는 영원히 을이었다.
“승철이 형.”
미성의 부름에 땅을 보고 걷던 승철의 얼굴이 올라갔다. 지훈이 한 발자국 앞에 서 있었다. 말없이 주고받는 시선에 승철이 입을 열었다.
“날 사랑하긴 했니.”
지훈은 질문이 과거형이라는 것을 캐치했다. 심장이 따갑다. 토할 것 같이 속이 울렁거려 입을 쉽게 열 수가 없다. 승철은 조용한 지훈의 눈치를 보다 고개를 숙였다. 그 숙인 정수리가 처음 보던 고2때 승철을 떠오르게 했다.
요즘 저 선배 자꾸 너 묻고 다닌다더라, 1학년 교실을 지나가는 키 큰 인영을 손짓으로 알려주던 짝꿍의 손길을 따라 향하던 곳엔 평생 보지 못한 아름다운 사람이 서있었다. 순하게 내려간 눈꼬리와 긴 속눈썹이 나비의 날갯짓처럼 팔랑일 때마다 심장이 바다에 뜬 동동배처럼 올랐다 내렸다 울렁거렸다. 정의 내릴 수 없는 그 마음이 무서워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갑자기 다가와 사귀자고 고백하던 승철을 똑바로 마주볼 수가 없었다. 입을 열 때마다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아서 도망다니기만 했다. 그런데도 자꾸만 승철은 다가왔다. 아는 척을 했고 친근하게 다가왔다. 땅땅한 돌벽을 허물어 어느새 지훈의 바운더리 안에 들어와 지훈을 주물렀다. 지훈아~ 부르며 땀에 젖은 몸으로 부딪혀 안을 때마다 젖은 땀이 뺨에 묻어 지훈의 귀끝은 항상 붉었다. 피기도 전에 줄기에 음흉한 검붉은 봉아리가 달렸다. 그걸 들킬까봐 제 마음 제대로 고백 하나 못했다.
그런데 승철이가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았다. 어디가 아픈 건지 궁금해 고개를 주욱 내밀고 둘러보면 힘없이 걸으며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승철이가 보였다. 좋아하며 매번 날뛰던 운동장을 그냥 지나치는 게 의아했을 때 승철이 뒤늦게 오메가로 발현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000만명의 1명꼴로 희귀하게 나타난다는 후천척 발현. 원인은 모른다했다. 가족 중에는 알파도 오메가도 없다 했다. 그런데 뒤늦게 오메가로 발현됐다 하였다. 뒤늦었던 만큼 후유증이 커서 하던 운동도 못하고 제대로 생활을 지내지 못한다고. 질 나쁜 알파무리 입에서 성적으로 유린당한다는 이야기까지 들을 때 지훈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믿고 있는 정한을 통해 승철의 행방을 찾고 찾아가는 길에 눈에 띄었던 꽃 한 송이 들고 가 멋없는 고백을 했다.
지켜줄게요.
뱉으면서도 후회했다. 그래도 진심이었다. 모든 것에서 형을 지켜주겠다는 제 의지, 내 것을 줄 수 없다는 소유욕 그 진심을 전부 다 모아서 그렇게 고백했다.
“미안해요. 내가 겁쟁이라서.”
그런데도 지훈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 둘이 어울리게 되고 연애하고 동거하고 결혼얘기까지 오고가고 있는데. 그 일련의 과정엔 내 노력은 없다. 모두 다 승철의 노력이라는 걸 안다. 최승철 이름 세 글자만 떠올라도 펑 터지는 심장에 무엇 하나 먼저 하지 못하는 지훈을 승철이가 다 이해하고 잘 끌어와 줬기 때문에 지금까지 둘은 이어질 수 있었다. 고백했을 때 다짐했던 마음-승철을 아껴주리라 사랑해주리라 것들-은 어디로 간 걸까. 모두 자신의 잘못이었다. 지금도 제대로 행동하지 못한 저 때문에 승철만 큰 어르신들께 불려가 꾸지람을 듣는다. 그게 싫어서 반발심에 승철을 피한 게 상처를 줬다. 사실은 그게 아닌데. 좀 더 지혜롭게 행동했어야 했는데.
“나는 이 사랑에 있어 을이예요.”
“...”
“나는 아직도 형을 보는 것만으로도 떨려서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형이 이끌어주지 않으면 난 아무것도 못해요.”
“...”
“미안해요. 이기적이게 굴어서.”
한 발자국 다가온 지훈이 승철을 숙인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았다. 잡은 볼이 축축했다.
“날 사랑해?”
“진심으로 사랑해요.”
“그럼 오늘 아기 만들 거야?”
승철의 천진한 물음에 지훈이 풋 웃었다.
“형 모르나본데 알파는 자기 것에 대한 소유욕이 굉장하거든요.”
“..”
“난 형만 있으면 돼요.”
커다란 눈망울에 뚝뚝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을 엄지손가락으로 닦으며 지훈이 입술을 맞췄다.
주말에는 지훈이도 승철도 승관도 이 집 사람 모두 느즈막히 하루를 시작한다. 바쁘게 보낸 평일에 대한 보상이다. 덕분에 점심때까지 느긋하게 낮잠을 잔 정한은 천천히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하고 방을 나섰다. 점점 짙어지는 녹색의 찬란함에 눈을 살포시 뜨며 복도를 걸으면 낯선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무슨 냄새지. 이런 향 이 집엔 없는데. 활짝 피며 고혹한 자태를 뽐내는 장미향에 고개가 갸웃 기울어진다. 향을 따라 코를 킁킁대며 따라간 곳은 승철과 지훈의 사랑방. 그 앞에 있는 건 문에 귀를 대고 있는 승관이.
“쉬잇-”
발걸음 소리에 소리를 쫓던 승관이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댄다. 눈치 빠른 정한의 입술이 개구지게 올라간다. 드디어 이루어졌구만. 뒤꿈치를 들고 살곰살곰 걸어온 정한이 옆으로 승관이 문이 잠겨있다며 속삭였다. 그런데 이건 무슨 향이야? 정한이 묻자 알파와 오메가가 서로 관계를 맺을 때 둘의 페로몬이 섞이면서 다른 향을 내뿜다는 걸 승관이 소곤소곤 알려줬다. 둘이 얼레리꼴레리~ 킬킬 대며 웃는 승관이 따라 이거이거 그냥 넘길 수 없겠는걸~ 황홀한 밤을 지새어 지쳐 잠들었을 두 사람을 잔뜩 놀려줄 생각을 하며 정한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일단 나가자. 이 두 사람 더 잘 것 같은데 일단 철수할까요? 승관이 발을 들어 걷는 길 따라 총총 걸으며 사라진다. 자꾸 웃음이 터지는 승관과 정한의 걸음 따라 장미향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