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쿱]ah choo
[우쿱/지훈승철] ah choo
너가 버스에 탔다. 오늘도 말끔하게 교복을 입은 너는 매일같이 쓰고 다니는 흰색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로 늘 앉았던 왼쪽 창문 일인좌석에 앉았다. 너의 뒷머리가 얌전히 가라앉아있었다. 물을 묻히고 신경을 써도 자기주장하며 뻗는 내 뒷머리와 다르게 얌전한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싶어서 두 손을 꽉 잡았다. 계속 바라보면 참을 수 없을 것 같아 가지런한 머리카락에서 시선을 떨어뜨리면 솜털이 난 얇은 목선이 눈에 들어온다. 홧하고 얼굴에 열기가 몰려와 눈을 꾹 감았다 떴다. 주름져 구겨진 시야가 말끔히 펴지면 너는 네 등을 다 덮는 가방을 생각지 않는지 뒤로 푹 기대앉았다. 네 가방이 눌린 호떡처럼 찌부러졌다. 그 모습이 퍽 웃겨서 나는 피식 웃다가 누군가 봤을까 급히 고개를 숙였다. 쿵쿵 뛰는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아 입을 꾹 다물며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단속한다. 그럼에도 팔랑이며 코를 간지럽히는 네 향기에 에취, 마음을 숨길 수 없어 재채기를 했다.
ah choo, 내 맘에 꽃가루가 떠다닌다.
부제 : 첫눈에 반하다.
w.agpi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그 한마디에 난리가 났다. 뭐라고~? 최승철이 사랑에 빠졌다고~?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는 승철을 수상쩍게 바라본 정한이 승철의 팔뚝을 쿡 찌르며 무슨 일이냐 물었다. 제정신인 평소였더라면 쉽게 답하지 않았을텐데 바보같이 깜짝 사랑고백을 해버려서 정한이 팔짝팔짝 온 동네방네 뛰어다니며 소문을 냈다. 같은 과 친구들부터 오고가며 얼굴만 아는 사람들까지 지나가는 학식식당에서 승철은 정한의 그 짓궂음에 얼굴이 새빨개져 주저앉아 끙끙 앓았다. 윤정한 저 악마보다 악독한 천사 같은 새끼. 궁시렁대도 이미 여기저기서 휘파람 소리와 응원소리가 들린다. 그만하고 이리 와, 팔을 잡아끌어 건물 밖으로 나서보지만 정한의 입은 막을 수가 없다. 결국 얼마 못 가 양손에 얼굴을 묻고 시름을 토하니 정한이 다가와 툭툭 승철의 머리를 투박하게 쓰다듬었다.
그래서 누군데? 어떤 청순하고 섹시하고 예쁜 여자길래 2!0!년! 모!솔!의 길을 걷고 있는 최승철의 심장을 울리게 했는데?
사람 많은 곳에서 모솔얘기는 강조하지 말라고. 승철이 울상을 지으며 말려도 소용없다. 이미 신난 정한이를 말릴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누군데에~~ 잘생긴 겉껍데기를 배신하는 소녀감성을 가진!!!! 우리 oo학과 14학번 모!솔! 최! 승! 철! 군의 심장을 강타한 여인이 도대체 누구십니까?!!
점점 악랄해지기만 한다. 이제는 지나가는 사람들 다 듣게 손으로 확성기 모양을 만들며 계속 떠든다. 과방사람들은 이 새끼를 왜 천사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어. 과에서 천사로 통하는 정한을 승철이 (속으로)욕을 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살.
뭐? 승철아? 이 형아가 잘 안 들린다? 우리 예쁜 여인이 몇 살이라고?
..ㅂ살..
뭐라고??!
열아홉 살!! oo고 학생!!!
정한이 입이 조개마냥 딱 다물어졌다.
경찰서가자.
어제 낮에 이거 이거 위험한 새끼라고 감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양을 잡아먹으려고 그러냐고 너가 어른이 돼서 그래도 되냐고 경찰서에 가자고 잡아끌던 정한이 다시 떠오른다. 진심일 땐 진심인 정한이를 알기에 분명 경찰에 넘기고 말거야 싶어 어제 하루 종일 도망다니느냐 혹사당한 제 다리가 아직 욱신거렸다.
그래도 남자인 걸 밝히지 않아 다행이지. 그것까지 알았으면 정말 연락 다 끊고 휴학해야 했을지도 몰라.
승철이 한숨을 푹 쉬었다. 생각보다 크게 나온 한숨에 그러다 땅 꺼지겠어, 학생. 승철 옆에 앉아있던 인자하신 할머니 한 분이 허허 웃으며 농담을 친다. 승철은 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앞에 인영을 슬쩍 쳐다본다. 여전히 음악 듣고 있는 뒷모습에 눈이 마주친 것 마냥 놀라 눈동자가 방황하다 아래로 가라앉았다.
내가 뭐 학생이라서 좋아했나, 좋아하다보니 학생이었지.
마음 한구석에 켕겨 있던 지적에 찔려 반박해보지만 애기옹알이 수준이었다. 그렇게 하얗고 귀엽고 멋있는데 안 반할 수가 있겠어. 무쌍인 눈도 귀엽고 코도 귀엽고 웃으면 쏙 들어가는 보조개도 귀여운데!! 무표정일 땐 또 얼마나 냉미남이고!!! 안 좋아하면 그게 사람이 아니지!! 머릿속에 악마 탈을 쓴 천사 미니미정한이가 퐁 나타나서 그런 승철을 한심하게 내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아니 내 말은~ 승철이 그런 정한을 애달프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뭐 내가 어떻게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날 몰아붙이면 내가 맘이 편하겠어, 어, 가뜩이나 맘이 심란해죽겠는데. 왜 난 일찍 태어나가지고 혼자 어른이냐고 억울하게. 열심히 열심히 나를 변호하는데 어째 갈수록 억울함만 터져서 속상하다. 결국 폭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감싸 안는 승철을 미니정한이가 찐따같다며 혀를 차며 퐁 사라졌다.
에취!
재채기가 또 터졌다. 봄도 아닌데 재채기가 왜 계속 나는지. 누군가 제 추한 꼴을 볼까 급하게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코 주변을 닦았다. 시선이 가는 앞 사람은 요지부동이다. 한 번 앉으면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크게 움직임이 없다. 음악을 듣고 있어 주변이 시끄러워도 쳐다보지도 않는걸 아니까 제 작은 재채기 사고에도 뒤돌아보질 않는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좀 아쉽다.
말 걸고 싶다.
목소리 듣고 싶다.
한 번도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말수가 없는 건지 아니면 무뚝뚝한 건지 같이 단 이래로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혼자니까 말 할 게 없지 싶겠지만 몇 번 친구랑 탄 적도 있었다. 그런데도 그 땐 친구만 제 떠들고 그는 웃기만 했다.
그래도 좋았지. 그 때 처음으로 그가 웃는 걸 봤다. 하얗고 애기 같은 얼굴이지만 무표정일 땐 좀 냉한 면이 있었는데 웃으니까 우유냄새가 났다. 어린 아이에게서 나는 그런 거. 방긋방긋 하얗고 맑고 예쁜. 특히나 손가락을 넣고 싶을 만큼 깊이 파인 보조개는 퐁당 빠져서 넋을 놓게 만들었다. 그래서 목소리도 그렇지 않을까 상상한다. 듣기만 해도 마음이 포근해지는 그런 따뜻한 햇빛냄새 같은.
언젠가는 그 목소리가 너무 궁금해서 승철은 괜히 그 앞으로 물건을 떨어뜨린 적도 있었다. 나중에 타고 먼저 내리기때문에 일부러 그 때는 그 다음 정거장에서 탔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두근대는 심장을 달래며 오는 버스를 기다렸었다. 그리고 그가 타는 버스에 올라타 버스카드를 찍고 가방에 카드를 넣는 척 하다 그 앞에서 카드를 뚝 떨어뜨렸다. 음악을 듣고 창밖을 보고 있던 그의 양발 가운데에 뚝 떨어져서 승철은 저 카드... 곤란해 하며 말을 걸었다. 그는 음악을 듣고 있었음에도 승철을 올려다보았고 손가락이 가리키는 바닥으로 시선을 던진 뒤 허리를 숙여 카드를 주워줬다. 감사합니다. 감사인사를 전하고 빈 뒷좌석에 앉을 때서야 승철은 이 방법이 옳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이걸로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 것도 물론이거니와 처음으로 가까이서 본 그의 얼굴에 또 반해버렸으니까.
다음 정류장은 oo은행입니다. 그 다음 정류장은 oo고등학교입니다.
아 벌써 그가 내리는 곳이다. 승철은 마음이 초조해진다. 이대로 보내기가 아쉽다. 미친 척 가서 말 걸어볼까? 아니면 같은 곳에 내려서 따라갈까? 고민해보지만 선뜻 어느 하나 용기를 낼 수가 없다. 그는 승철을 모를 수 있으니까. 물론 매일 타는 통학교길 어차피 타는 사람이 거기서 거기이니 얼굴이야 알 수 있다 쳐도 그래도 모르는 사람이 말 걸면 굉장히 수상쩍을거다. 거기다 말 건 사람은 남자고 대학생이니까. 게이라고 욕하겠지. 남자한테 반한 건 맞는데 게이는 아닌데. 아니 사실 잘 모르겠다. 승철의 20년 인생에 저 앞에 앉은 사람말고 다른 사람한테 두근거려본 적이 없어서.
그러고 보면 승철은 그에게 왜 반했는지 잘 모른다. 원래 이상형이 안을 수 있는 아담한 사람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게 남자포함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의문이었다.
그에게 반했을 때 승철은 낭만만 가득할거라 믿었던 대학생활이 생각보다 어렵고 힘들다는 걸 막 깨닫고 있던 참이었다. 들어도 어려운 강의들과 어마무시한 과제들, 고등학생 때와 다르게 빠르게 흐르는 시간, 평면적인 교우관계 등등. 어느 하나 쉽지 않았고 힘들었었다. 다시 고등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퐁퐁 솟았다. 교복을 입을 때는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어른이 되니 교복이 입고 싶어졌다.
그렇게 우울아닌 우울증에 잠겼을 때 타는 버스 뒤로 빠르게 지나가는 교복무리들에 자주 시선을 뺏기며 부러워했다. 투닥거리고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는 그 교복들이, 그 푸른 명찰들이 아름답다 생각하며 부러워할 때 파란 사춘기가 묻어나는 교복을 입고 버스에 타는 그를 보았다. 앉을 자리를 탐색하며 좌우로 굴러가던 눈동자를 마주쳤던 처음은 생생히도 기억이 나는데-그의 얼굴 하나하나 그림을 그린다면 완벽하게 따라 그릴 수 있을 정도였다- 반한 건 기억이 안 난다. 그냥 좋았던 것 같다. 퐁퐁 핑크빛 꽃망울이 터진 것 같고 심장이 쿵 떨어지기도 하고 숨도 좀 찼던 것 같고.
그 때부터 아침강의가 없는 날에도 승철은 매일 같은 시간에 나와 그와 함께 버스를 탔다. 이어폰을 꽂은 채로 창밖을 보는 그를 보며 말 걸고 싶어 근질거리는 목을 긁으며 부끄러워 다가가지 못하는 자기자신을 자책하며 내일은 반드시, 내일은 하며 다짐했었는데.
으아. 주저하다 그가 일어선다. 같이 일어설 뻔한 걸 승철은 인내의 끈을 끈끈하게 잡고 버틴다. 오늘도 꽝이구나. 또다시 시무룩해진다. 어디 가서 내빼지 않는 성격이었는데 승철은 그 앞에선 작아지기만 한다. 첫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수줍어진다. 결국 오늘도 그냥 보고 끝나는구나, 아쉬움을 가득 담아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려고 고개를 들었는데 헉 그가 승철 앞에 있다. 어, 자신을 보고 있다. 어, 그리고 승철의 손목이 잡혔고.
어어. 어어어. 잠깐만.
버스에서 내렸다.
학교 정문으로 가는 몇몇 사람들과 같이 걷는 그가 승철의 손목을 잡아끈다. 승철은 사람을 태우고 출발하는 버스를 한 번 그의 뒷모습을 한 번 봤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이젠 술 안 드시나봐요?”
그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 정신이 없어서 그가 처음으로 입을 열어 목소리를 냈다는 걸 인지하지도 못하고 손이 그에게 여전히 잡힌 채로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따라가며 승철은 어어 고개를 주억거렸다.
“술 취해서 저한테 꼬장 부린 건 기억하세요?”
“어? 내가?”
“네.”
“내가 언제?”
깜짝 놀라서 물어보다 앗 하고 스쳐지나가는 기억 하나. 새내기 때 동아리 모임에서 선배들이 주는 술을 거절 않고 마시다 필름 끊긴 적이 있었다. 집에 가려고 버스 탔던 기억은 나는데 가위로 자른 것마냥 기억이 없어 불안하기만 했던 그 때. 다행히 집에는 잘 들어왔으니 아무 일 없었을거라 생각했는데...
그가 멈췄다. 거리는 학교와 정류장 중간쯤. 승철은 자꾸만 주변으로 시선이 간다. 푸른 교복이 저를 다그치는 것 같다. 어디선가 정한이 은팔찌 차야지, 승철아. 목소리가 들린다. 도망가고 싶다.
“이거, 드릴게요.”
무얼 하는 건지 물으려 할 때에 그가 잡은 승철 손에 무언가 준다.
“제 이름은 이지훈이에요..”
“...”
“내일 또 봬요.”
그리고 미련 없이 그가 돌아선다. 작은 애가 걸음은 왜 그렇게 빠른지 채 잡기도 전에 벌써 저만큼이다. 승철은 볼을 긁으면서 몸을 돌렸다. 저기서 버스가 달려온다. 앗!! 기사아저씨!! 놓칠까 싶어 열심히 달린다. 다행히 거리가 멀지 않아 승철은 아슬아슬하게 버스를 올라탔다. 삐빅- 추가요금이 붙은 금액을 눈으로 확인하고 다행히 빈 좌석 하나에 앉는다. 얼마 달렸다고 심장이 제멋대로 뛴다. 운동 부족인가. 심장을 툭툭 두들겨도 시끄럽게 운다. 승철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뱉었다. 에취. 재채기가 또다시 난다. 승철은 핑 도는 눈물을 매단 채 제 손에 쥔 손자국이 잔뜩 난 휴지 몇 장을 내려다보았다.
에취.
*그때의 그 버스 정류장. 한 달 전.
“야 잘생겼다.”
지훈은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야자를 끝마치고 집을 가려고 했는데 그만 담임에게 잡혔다. 쓸데 없는 일을 마치고 학교를 나서니 이미 학생들은 다 빠졌고 저만 버스 정류장에 혼자 있었다. 사람 많을 땐 복작대던 정류장은 아무도 없으니 뭐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으슥했다. 어두운 분위기에 팔을 한번 쓸고 게임에 한참 집중하고 있었는데 언제 사람이 왔었는지 의자 끝자리에 앉아있는 남자가 게스츠름하게 저를 쳐다보고 있었다.
“씨발.. 진짜 자아알생겨따.”
저승사자라 생각했는데 다행히 사람인 그는 계속 저를 쳐다보며 이상한 소릴 해댄다. 등이 굽어져 몸을 못 가누고 눈이 풀려있는 꼴이 딱 술주정뱅이다. 새학기 시즌에 술취한 대학생이 바닥과 진한 키스를 하는 장면을 종종 봐왔기에 지훈은 그를 무시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계속 저를 쳐다보며 뭐라뭐라한다.
뭘 먹고 저러케.. 유전자가 조은가...
거기서 픽 웃음이 났다. 단단히 취했나보네. 날 제대로 봤으면 그런 소리 안 했을텐데. 그런데도 그는 한참을 뭐라 한다. 그러다 저랑 눈이 마주쳤단 걸 인식했는지 눈 마주쳐써 어머, 양 손을 뺨에 대며 놀란다.
“저기요 진짜 잘생기셨어요. 훈남이다. 인기 많죠?”
남자가 말을 걸었다. 지훈은 어이가 없어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아니예요. 그쪽이 잘생기셨어요.”
“에엥. 그쪽이 더 잘생기셨어요! 님 잘생긴거 타고 난거죠~?”
“ㅋㅋㅋㅋㅋ네 타고났어욬ㅋㅋㅋ님도 잘생긴 거 타고 난거죠?”
“저도 타고났죠. 근데 진짜 님은 훈남이네요. 대애박”
“아니에요. 술 많이 먹었나 봐요?”
“그쵸. 부럽다. 잘생겨서..”
미치겠다. 웃겨서 호응했더니 갈수록 가관이다. 붉게 달아오른 술주정뱅이지만 긴 속눈썹이라던가 진한 이목구비가 누가 봐도 본인이 훨 잘생겼는데 왜 나한테 저러는지 모르겠다. 술 취하면 모든 게 다 괜찮게 보이는 건지.
“어 버스 온다.”
저 멀리서 신호등에 선 버스가 보인다. 지훈이 타야할 버스다. 남자도 타는 버스인지 비틀비틀 일어나 앞에 선다. 넘어질까 같이 일어선 지훈이 곧 남자가 앞으로 기울어지면서 고꾸라질 것 같아 옆으로 가 잡아끌었다. 아구구 앓는 소리를 내며 남자가 기대온다. 술 취한 남자가 제법 커서 지훈이 비틀거리며 몸의 중심을 잡았다.
“아이고 죽는다.”
“괜찮으세요?”
남자는 대답 없이 지훈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얼굴을 묻으며 죽는 소리만 낸다. 훅하고 끼치는 알코올 냄새에 미간을 찌푸리며 지훈이 다시 한 번 남자 몸을 흔들며 괜찮냐 물었다.
응, 괜찮아. 어깨에 기댄 얼굴을 옆으로 돌려 마주보며 남자가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술 탓인지 젖은 눈동자가 내려다보는 저를 비추며 반짝였다. 더워서 열었는지 벌린 셔츠 사이로 보이는 남자의 속살이 괜히 눈에 들어와 에취. 재채기를 했다.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지훈의 얼굴이 붉게 타오른다.
에취.
봄도 아닌데 심장이 간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