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쿱] 너, 나
w. 안다미로
사람이 사람을 알고 싶을 땐 질문을 한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가족관계, 취미, 섹스취향 등등. 사소한 것부터 개인적인 것까지. 멈추지 않는 질문은 호감을 쌓기 위한 과정이다. 궁금하니까. 당신이 너무나 궁금해서 눈으로 입으로 몸으로 질문을 한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냐고.
어떤 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몇 번 마주치고 살을 부대끼면서 알 수 있는 흔적들 말이다. 높낮이가 다른 목소리, 세월의 흔적이 묻은 말투, 얼굴의 주름과 눈동자의 깨끗함, 손바닥의 촉감, 걸음걸이, 눈에 띄지 않는 습관들까지. 고서처럼 모든 과거들이 사람의 몸에 낱낱이 기록되어있다. 심지어 다리의 휘어진 각도만으로도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병을 앓고 괴로움과 즐거움을 끌어안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유산이다.
이곳도 그렇다. 오줌지린내가 구석구석 스며든 오래된 뒷골목에서도 사람의 과거는 알음알음 퍼진다. 그것이 음침하고 불쌍할수록 인기가 더 높다. 비행청소년 이야기는 흔한 주제다. 콧방귀도 끼지 않고 귀도 기울이지 않는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칼로 부모를 죽여야 좀 인정받는다. 지하철에서 구걸했던 거지가 쓰레기통에 버려진 어린아이를 수족으로 키운다는 얘기는 껌처럼 심심풀이같은 주제다. 수위가 좀 높아야, 같은 불쌍한 것들이 봐도 혀를 차게 만들 정도로 불쌍해야 좀 동정을 얻는다. 재밌는 이야기다. 어차피 사람을 죽이고 약을 하며 더러운 짓을 서슴지 않는 것들이 동정에 기대어 자기변명을 한다. 이런 삶을 살았으니까 이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죽지 않고 이렇게 버틴 것만으로도 난 대단한 거야.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지워준다. 경찰에게 잡히면 하나같이 감옥가고 빨간 줄 그어져서 영원히 범죄자 취급받으며 사는 인생인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사후세계를 믿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죽을 때 조금이라도 벌을 덜 받고 싶어한다. 지옥도 천국도 안 믿을 것 같이 생겨서 사후세계를 제일 믿는다. 어차피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라 떨어지면 지옥일 텐데. 헛된 희망을 푸는 게 우습다. 나쁜 놈은 끝까지 나쁜 놈이다. 착한 짓 한 번 한다고 착해지면 지옥은 왜 있고 권선징악은 왜 있냐. 음습한 뒷골목 공기를 너무 많이 마셔서 다들 머리가 어떻게 됐다. 찌질한 것들. 주제 파악 좀 했으면 좋겠다. 더럽고 추악한 삶을 살고 있다면 끝까지 나쁜 놈이 좋다.
그런 의미에서 이지훈은 스스로 불쌍하다 일컫는 사람들과 다르다. 일단 흔적이 없다. 어디 출생이고 몇 년생이며 취미가 무엇인지 좋아하는 건 없는지, 흘러들어온 작은 정보조차 없다. 그냥 어느 순간 이 골목에 나타나 신세를 지고 있다는 정도. 그것도 언제 나타난 건지 가게마다 말이 달라서 확실치 않다. 유일하게 공통으로 알고 있는 건 이지훈이라는 세 글자 이름. 나이 무. 직업 무. 성격 무. 사살자 수 측정불가. 25살 정도 되지 않았을까 정도만 앳된 얼굴로 추측할 뿐이고 나머지는 공백이다. 인구수가 넘치는 중국과 인도에는 미신고된 아이들이 많다는데 이지훈도 그렇지 않나 하는 설만 있다. 그 외에 몇 개 설이 더 있는데,
1.미신고 되어 유령으로 사는 경우
2.실종·사망으로 기록에 지워진 경우
3.복덕방 아들래미
4.신
이다. 스무 가지가 넘는 뒷말 중에 제일 그럴 듯한 내용만 모아봤다. 그나마 가장 오래 지훈이를 보거나 알던 사람들의 주장이니 들어볼만 하지만 현실성은 넷 다 없다. 저 중에 답이 있을지는 이지훈이 죽을 때까지 알 수 있으려나. 귀신같은 새끼라 죽어서도 모를 것 같다는 게 유일하게 공통적인 의견이다.
그나마 가능성이 높은 건 3번. 이지훈을 아는 사람 중 가장 오래 본 사람이 복덕방 아저씨였다. 지훈을 받아줬다고. 사실 여부는 아저씨가 총에 맞아 죽으면서 알 방법이 사라져서 모른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살인을 의뢰한 의뢰자가 아저씨고 킬러가 이지훈이라 했다. 아들에게 자신을 쏴죽이라는 아버지가 있나? 뒷골목에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유다. 이곳은 미친 동네니까. 덕분에 이지훈은 더더욱 알 수 없는 인간이 됐다.
그렇게 궁금하다면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면 속 시원하겠지만 이지훈은 입을 열지 않는다. 물건을 사러 들어간 편의점에서 고개만 끄덕이거나 주문할 때 손으로 메뉴를 고르기만 했다. 신음소리조차 어느 누구도 들어본 적이 없다. 가끔 의뢰자와 직접 만나야 했을 때도 듣기만 했다. 그는 지극히 말을 아꼈다. 그런 놈에게 물어본들 어떤 대답을 들을 수 있는가. 무엇보다 이지훈은 무섭다. 한가닥하는 베테랑 킬러조차 한 숨에 목을 따버리는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놈을 한낱 상인인 그들이 무얼 물어 볼 수 있을까.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도 없어진 줄 모르는 뒷골목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생각보다 자기 목숨을 아꼈다. 생명이 팔딱팔딱 뛰는 목은 붙어있을 때가 예쁘다고 술에 취한 아주머니 말은 단순한 술주정이 아니다. 쥐새끼 같은 목숨도 목숨이니까, 호기심은 호기심으로 남긴 채 입을 다물 뿐이다.
그래서 이지훈의 과거는 어디도 없다. 홀연히 나타나 잠깐 존재할 뿐이다. 눈동자에 담아 신경을 타고 뇌의 인식이 되기도 전에 사라져서 신기루처럼 환영으로 남는다. 죽었다 생각하면 얼굴을 비춘다. 살아있다 생각하면 죽었는지도 모르게 조용해서. 이지훈은 어디서나 존재했고 어디서도 존재하지 않았다. 신이라고 일컬어져도 손색없는 유일 무일한 사람. 최승철은 이지훈을 그렇게 알았다.
자 여기서 뜬금없이 튀어나온 이름 최승철.
그가 누구인가.
뒷골목에 일 년 전에 나타난 지극히 평범한 놈이다. 여기서 평범함이란 일반 평범함과 다르다는 것만 알자. 여기서 평범함은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며 적당히 나쁜 짓을 했다는 뜻이다. 부모는 처음부터 없었고 고아원에서 살다 폭력을 휘두르는 원장을 피해 중학생 때 가출하여 길거리에서 지냈다. 구걸하고 삥을 뜯고 가끔 소매치기도 하며 살았다. 몇 번 경찰서도 들락거렸고 전과 기록이 있었지만 주로 소매치기나 도둑질인 생활형 범죄였다. 그러다 여러 사람이 그랬듯 구원받지 못한 인생의 낭떠러지에서 굴려 떨어져 이 골목으로 왔다.
이 골목에서 승철은 나름 잘 살아보려 했다. 사람은 안 죽였으니 괜찮겠지 생각하고 취직했지만 그런 승철을 , 복덕방 아저씨가 죽고 나타난 새로운 중간자가 약한 놈이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너는 그냥 운반이나 하라고, 무얼 믿고 일을 맡기냐고 했다. 사람도 안 죽여 봤을 놈에게 돈 되는 살인을 의뢰할 수도 없다고 밥만 축내는 식충이란 이름도 붙여줬다. 그래서 승철은 이 골목에서 식충이가 됐다. 식충이는 식충이답게 심부름을 했다. 밤의 닌자처럼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둠에 몸을 맡겨 약을 운반했다. 기존 양아치 짓과 다름이 없었다. 승철은 성이 났다.
내가 덩치도 있고 주먹도 좀 쓰는데 이것 밖에 안 줘요?
하루는 묵직한 약을 받지도 않고 대들었더니 꼴에 폼을 잡는다고 맞았다. 볼이 터지고 입술이 찢어졌다. 목엔 훈장처럼 졸린 자국도 생겼다. 죽도록 맞어서 죽는 줄 알았는데 살았다. 살았다고 윗단계로 올려줬다. 병 주고 약주는 것도 아니고. 승철이가 새로 받은 건 시체 뒤처리였다.
중간 관리자는 고약한 새끼였다. 시체처리가 얼마나 더러운 일인지 알고 승철이를 골탕 먹이려고 쥐어준 일이었다. 눈깔이 노랬을 때부터 변태인 줄 알았지만 그냥 변태가 아니고 상변태다. 분명 그 새끼, 시체 앞에서 벌벌 떨며 울 승철이를 생각하며 자위 했다에 전 재산 건다. 변태새끼. 다음번에 만나면 고추를 잘라버려야지.
시체 처리는 생각만큼 더러웠고 생각보다 찝찝했다. 요즘 시대에 사람을 죽이면 영화나 티비에서 나오는 장면처럼 총으로 쏴 죽이고 떠나는 멍청한 짓은 안 한다. 자살로 위장하고 사고사로 만든다. 때론 의뢰자에 입맛에 맞게 시신을 손상시키기도 하고 무참히 짓밟기도 하지만 대부분 기승전결이 있는-증거가 확실한- 죽음을 맞이한다. 경찰들은 찾을 수도, 찾을 의욕도 없게 완벽한 시나리오를 짠다. 거기서 승철은 보조만 하면 된다. 우울증 약을 준비하거나 사고 목격자를 만들거나 피를 지우거나. 나머지는 킬러의 몫이다. 승철은 차려진 밥상에 수저만 올리면 됐다.
그래서,
왜 갑자기 이지훈 이야기에서 최승철 이름이 나왔는가로 돌아가면….
승철이 이지훈을 본 게 시체 처리로 일했을 때였기 때문이다. 잔인하게 죽여 달라는 의뢰자의 내용을 받고 떠난 킬러를 뒷받침하러 온 길이었다. 이미 열려진 문을 비틀어 들어가면 방 곳곳에 피가 난자하게 흩뿌려지고 배에 작은 구멍들이 뚫린 시체가 벽에 기대어 죽어있었다. 몇 번이고 봐도 익숙지 않은 끔찍한 장면에 코를 틀어막고 눈을 돌리면 그 앞에 이지훈이 있었다. 피가 튄 노란 비옷을 벗어 승철에게 건네주던 이지훈. 반 뼘이 작았던 처음 마주친 지훈의 얼굴은 승철이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얼굴이었다. 시체의 얼굴. 생기가 없는 죽은 자의 부활. 좀비도 얘보단 싱싱하겠다.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놈을 조심해야겠구나.
“망했네.”
매캐한 탄내가 섞인 회색연기가 안개처럼 시야를 가리고 코와 입에 들어와 살에 들러붙었다. 바짝 마른 건조한 입에 강체로 침을 삼키며 씻어내려 했지만 마른기침만 계속해서 터졌다. 그 때마다 더 많은 양의 유독가스가 들어와 두 손으로 입을 막고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기침을 멈추기 위해서도 있지만 숨소리도 들키면 안됐기에 빈틈없이 얼굴을 가리며 몸을 동글게 말았다.
못 들어라. 못 찾아라. 소란과 소음에 존재가 지워지길 바라고 바랬다. 하지만 세상은 내 뜻대로 안 되지. 눈물로 흐릿한 시선 끝에 둥근 그림자가 넓게 퍼진다. 서서히 천천히 승철을 향해 밀려온다. 승철은 무너진 나무벽면 일부, 뿌연 빛 사이로 바람과 함께 빨려나가는 연기 속에서 벽에 기대며 남은 기침을 토했다.
탕-
날카로운 것이 뜨겁게 뺨을 스쳤다. 눈 깜박하는 짧은 시간에 베인 뺨에 따뜻한 것이 흘렀다. 확인하지 않아도 총알이 스쳐지나가 피가 흐른다는 걸 알았다. 홧홧한 통증에 눈을 찌푸렸다.
“너도 한 물 갔나봐.”
뺨을 훔쳤다. 손등에 길게 묻은 피를 바짓단에 대충 닦아 문지르며 조롱을 섞어 말했다.
“제대로 나를 못 맞추는 거 보면.”
소리 없는 검은 발자국이 영역 안으로 코를 들이댔다. 지금이다. 몸을 움직이기도 전에 흰 점이 연기를 갈랐다.
탕.
소리가 뒤를 이었다.
허벅지에 총을 맞았다. 뺨과 대비되는, 열을 품은 금속이 살을 헤집어 뚫은 통증에 숨이 막혔다. 온몸의 피가 허벅지를 통해 밖으로 쏟아졌다. 검은 바지가 빠르게 붉어졌다. 승철은 허벅지를 양손으로 쥐어 이를 악물었다. 눈에 핏줄이 모이고 하얀 피부는 빠르게 질려갔다. 총 맞은 것처럼이라는 노래가 존나 슬픈 노래가 맞았다. 노래가사처럼 죽을 만큼 아팠다. 승철은 이 와중에 그딴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직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딱 죽기직전의 고통이었다. 승철은 할 수 있는 힘을 모아 고개를 들었다. 빨갛고 검은 연기 너머 작은 얼굴을 가린 큰 총이 저를 향해 입을 벌렸다.
씨발. 좋아하는 사람한테도 아무렇지 않게 총을 갈구지, 넌.
피가 빠져나가 다리가 저렸다. 새끼 쥐들이 허벅지나 종아리에 들러붙어 찍찍 우는 것 같았다. 고양이 없나. 고양이가 쥐 좀 잡아줬으면 싶다. 허벅지에 총을 맞았는데 머리가 이상하게 됐다. 승철은 총알이 박힌 허벅지를 꽉 쥐며 입술을 비틀었다.
“사랑도 모르는 놈.”
사람이라면, 적어도 네가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총을 눌 수 없지 않아? 총구를 노려보았다. 거리는 1m 이상이었지만 총구는 승철 얼굴 바로 앞에서 이가 다 보이도록 활짝 입을 벌리고 있었다. 원형의 금속 안으로 검은 이가 뾰족했다.
저 이가 언제 제 목을 물어뜯을까. 먹이가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기다릴지, 앞으로 뛰어와 한 번에 삼킬지는 포식자의 마음이다. 딱 이지훈이네. 오만한 육식동물 그대로다. 느리게 번지는 화면에 눈을 부릅떴다. 표정이 없는 이지훈이 눈에 걸렸다. 걸어 다니는 시체라 오인할 정도로 생기가 없는 얼굴이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얼굴을 본 사람은 산 사람이 없다지? 그런데 그 소문은 도대체 누가 낸 거야? 죽은 사람은 말이 없잖아. 산 사람이 낸 소문인데. 그럼 이지훈이 살인을 실패했었다는 얘기가 되나. 쟤도 실패를 하나? 아니지. 죽었으니까 그런 소문이 돌았겠지. 그럼 난 죽나? 저 새끼가 유일하게 사랑한 사람이 나인데 쟨 감정도 죽은 놈이니까 날 죽이겠지? 씨발. 존나 로맨틱하고 불쌍한 인생이네. 죽기 일보 직전에서도 그런 생각만 했다. 금속이 번뜩, 이를 드러냈다. 아, 나는 죽는다.
텅.
총구가 비어 요란한 소리를 냈다. 시체 같은 얼굴에 미세한 금이 갔다. 승철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앞으로 구르듯이 일어나 발에 힘을 주었다. 왼쪽다리를 중심축으로 몸을 빠르게 뒤로 회전해 뻗은 발끝으로 지훈의 총을 찼다. 발끝에 딱딱한 것이 튕겨나가고 지훈이 몸이 뒤로 밀렸다. 그대로 뻗은 다리로 서서 다시 공격을 재개하려했는데 아차, 총 맞은 다리였다.
“아윽...!”
땅에 발이 닿자마자 땅에서 굵은 창이 솟아 몸을 뚫는 것 같은 충격이 밀려왔다. 악 소리를 외치며 크게 흔들리는 몸이 지훈이 쪽으로 쓰러졌다. 그 짧은 사이에서도 승철은 지훈의 어깨를 잡아 밀었다. 쿵. 무거운 것이 쏟아지는 큰 소리와 몸에 가하는 충격에 그것이 또 허벅지를 때려 까무룩 정신을 놓을 뻔했다. 어디서 총소리가 들리지 않았더라면 분명히 기절했다.
승철은 아래서 자신을 미는 강한 힘에 이를 악물며 팔에 힘을 주었다. 어깨를 미는 팔을 팔로 누르고 다리를 다리로 눌렀다. 피가 퐁퐁 새어나오는 허벅지의 통증이 어마 무시했지만 아래에 있는 지훈을 얕볼 순 없었다. 이지훈은 총보다 칼을 잘 썼고 몸싸움에도 일가견이 있는 놈이었다. 자칫 실수하다간 목이 베여 피를 토하며 죽을 수 있었다.
격렬한 몸싸움이 일어났다. 덩치는 승철이 컸지만 힘은 지훈이 밀리지 않았다. 오랜 세월 이 바닥에서 살아온 자였다. 작다고 무시할 수 없었다. 승철은 온몸으로 지훈을 누르고 눌렀다.
“너도 사람이면...”
숨이 자꾸만 찼다. 여기까지 진심으로 도망친 데다 총을 맞아서 몸은 빠르게 약해졌다. 거기다 죽자 살자 심정으로 몸싸움까지 하니 피가 빠져나간 폐가 자꾸만 쪼그라들었다. 이대로 가다간 지친 승철이 질게 뻔했다.
“감정은 있겠지.”
무엇이든 해야 했다. 승철은 목에 힘을 빼고 고개를 숙여 지훈의 입술에 제 입술을 거칠게 비볐다. 팔이 멈췄다. 두 눈엔 가까운 지훈의 동공이 이만큼이나 커졌다. 처음 보는 변화였다.
이제야 사람 같네.
승철은 눈을 감으며 차가운 지훈의 입술을 강하게 눌렀다. 그리곤 앞니로 지훈의 입술을 물어뜯었다. 이를 세워 입술을 물고 살을 찢었다. 짠 쇠 맛이 혀에 닿았다. 놀라 뻣뻣이 굳은 지훈의 혀를 뽑아낼 듯이 꺼내 힘껏 빨았다. 색스럽지 않은, 일방적인 키스에 피 맛이 점점 진해졌다. 승철의 손에 잡힌 지훈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방어하기도 전에 옆으로 몸이 쓰러졌다. 힘없는 몸은 그대로 무너져 시멘트 바닥에 머리를 부딪쳤다. 존나 아파, 얼굴을 찡그리기도 전에 두피가 벗겨질 것 같은 악력에 머리가 들리고 입술이 닿았다. 행한 만큼 받는 키스의 폭력에 피 위로 다른 피가 번졌다. 우리가 혈액형이 같던가. 짐승과 같은 울음을 토하며 키스를 해대는 지훈을 받아들이면서도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다.
탕탕탕!
승철의 머리 위로 총알이 쏟아졌다. 머리를 뽑아낼 것 같은 큰 손이 떨어지고 승철은 머리를 바닥에 또 찧었다. 아 씨팔 아파.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 씩씩한 목소리가 위에서 쏟아지며 승철을 흔들었다.
“어이 죽었어?”
뺨까지 두 번 맞았다.
“정한아. 나 살아있어.”
“쳇.”
체엣?
“지수. 엄호 부탁해.”
“sir.”
저기서 총이 이만큼 쏟아진다. 잘못하다간 얘나 나나 쟤나 한 번에 죽을 정도였다. 우리 살아나갈 수 있겠어? 멍청한 질문에 정한은 운 나쁘면 죽겠지. 현실적인 대답을 했다. 이런 네가 참 좋아. 승철은 웃음이 났다.
“증거는?”
겨드랑이 아래로 팔을 넣어 몸을 일으키고 질질 끌어간다. 승철은 왼쪽가슴을 툭툭 쳤다. 정한이 잘했다며 시원한 입매를 길게 벌렸다.
홍지수!! 뒤로!! 정한의 외침에 몇 번 총소리가 나고 가벼운 발소리가 옆으로 다가온다. 왜있는지 모르는 나무상자 뒤에서 차가 있는 거리까지 재며 수를 센다. 피가 너무 빠져나가 일렁이는 시야에 천장 위로 한쪽 벽이 무너진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연기를 토하는 빨간 열기가 여기까지 데웠다.
“저 새낀 뭐야.”
옆 상자 일부가 총에 맞아 부셔졌다. 뒤로 뛰어 몸을 숨긴다. 옆에서 또 하나의 총소리가 들렸다. 탁한 목소리에 헤이~ 아저씨 오랜만~ 태평하게 인사를 했다.
“오랜만은 새꺄. 살고 나서 해. 시발. 저 새끼 뭐야?”
“우지요.”
“우지가 누군데?”
탄피를 교환한 지수의 반격에 저쪽이 잠시 조용해진다. 그 사이 아저씨는 승철을 내려 보았다.
“이지훈이요.”
“이지훈? 이지훈이 우지였어?”
아저씨 얼굴 못생겨졌다. 놀란 얼굴이 못난이 곰돌이 같아서 웃었더니 머리를 맞았다. 총 맞은 사람한테 무슨 폭력이야! 맞을 짓을 했으니 맞지! 그 사이 옆에서 승철을 잡고 있던 정한이 상자 밖으로 얼굴을 뺐다. 이 쌔꺄. 그러다 죽어. 아저씨의 타박에 괜찮아요. 정한만이 태평했다.
“그 새끼가 저기에. 시발. 어쩐지 저것들이 존나 안 잡힌다 했어.”
아저씨가 옆 상자를 발로 쾅쾅 찬다. 그 사이 총은 몇 번 날라 와 우리 발 앞에서 떨어졌다.
“근데 넌 왜 걔랑 키스하고 있었냐?”
차까지 겨우 다다라서 정한이 물었다. 조금만 참으라하곤 무지막지한 힘으로 승철을 쑤셔 넣었다. 몸이 차에 부딪혔다. 더 이상 피가 나올 것도 없는데 허벅지는 또 피를 이만큼 토했다. 주먹 쥔 손에 핏기가 하나 없어 퍼런 핏줄이 투명하게 비춰보였다. 총알을 다 쓴 지수가 의자 아래서 긴 총을 꺼내며 물었다. 야 그 총 언제 가져왔어? 그거 불법이야. 야 홍지수!! 말리는 아저씨에게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지수는 아낌없이 총을 퍼부었다.
“그 새끼 사랑해?”
시동이 걸리고 기어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 사이 지수는 운전석 옆에 앉았다.
“그 새끼가 날 사랑해.”
웩 더러운 소리 하지 마, 아저씨가 들끓는 가래를 콱 뱉었다. 앞 창문을 깨고 뒷 창문까지 깬 총알에 머리를 숙였다.
“무슨 증거로?”
차가 급하게 뒤로 빠졌다. 우지끈,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차가 크게 흔들리고 검은 연기가 차를 감싸며 같이 밖으로 빠져나간다.
“콜록. 그냥”
걔가 날 좋아한다고 티를 내거나 얘기하거나 잘해준 건 없었는데 지훈을 보고 있으면 그런 느낌을 받았다. 20년 이상을 길거리에서 지내며 는 눈치라고 해야 하나 감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느꼈다. 가끔씩 마주치는, 인사도 없고 일을 나가도 일만 하고 헤어지는 정도의 인연이었지만 귀신이라 칭해지는 이지훈이 나를 물끄러미 볼 때면 흐리멍덩한 눈동자에 내가 반짝이며 담겨져 있었다. 인간 같지도 않은 이지훈이 사람처럼 승철을 사랑했다.
특히 백발백중의 실력을 가진 지훈이 뺨을 스치고 허벅지를 쐈다는 게 명백한 증거였다. 그의 실력이라면 승철은 벌써 머리에 총알이 박힌 채로 죽어있었을 테니까. 결코 흔들릴 수 없는 거리에서 실수로 허벅지를 쏘고 총알이 비어있는 줄 모르진 않았겠지.
분명 숨어 들어간 장소에서 승철과 눈이 마주치고 지훈은 누구보다 빠르게 가장 먼저 총을 들었다. 부딪힌 건 분명한 살의. 그런데도 지훈은 승철을 잡아놓기만 했다. 사냥감을 갖고노는 짐승의 느낌이 아니라 그건 마치…….
그래서 승철은 모험을 걸었다. 죽기 일보 직전에 미친 척 지훈을 동요하게 만들자고. 지도 사람인데 흔들리지 않겠어?
그리고 그 작전은 백 프로였다. 닿은 손 발 입술, 혀까지 시리도록 차가웠는데 맞붙은 하체는 뜨거웠다. 시체가 쟤보단 따뜻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뜨거운 열기는 처음이었다. 분명 본인도 처음이겠지. 살면서 한 번도 품어본 적 없을 열기에 정신을 잃은 것처럼 지훈은 미친놈처럼 승철을 물어뜯었다. 짐승 같던 울음소리. 놓지 않으려던 악력. 탐욕스럽던 이에 물어뜯긴 입술은 아직도 얼얼했다. 짐승의 잇자국은 선명하게 승철을 할퀴었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던 차가 조용해졌다. 도로를 탄 것이리라. 그 사이 승철은 정한에게서 간단한 응급조치를 받았다. 여전히 허벅지는 더럽게 아프고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지만 쓸데없이 튼튼한 몸은 기절을 허락지 않았다. 힘들어 눈을 감으면 죽지 말라고 정한이 뺨을 때렸다. 너는 내 생명의 은인이야. 이를 악물며 빙긋 웃었다. 고마워. 정한도 천사처럼 웃었다.
“그런데 너 괜찮겠어? 우지 아니 이지훈, 걔 위험한 인물이잖아.”
핸들을 잡은 아저씨의 목소리가 걱정으로 무거웠다. 이지훈은 맞아. 한 번이라도 의뢰를 받으면 끝까지 쫓아가서 죽이는 집요함을 가졌다. 영 상황이 안 되면 숨죽여 때를 기다리는 인내도 갖고 있었다. 죽일 필요는 없지만 분명 승철이 본인을 위태롭게 만들었으니 찾아올 가능성이 있다. 분명하다. 지훈은 승철을 찾으러 온다. 뒤를 돌아보는 지수와 정한의 얼굴이 자못 심각해졌다. 승철만 마음이 편했다.
“걱정 마요. 그 새끼 이제 나 못 죽여.”
“무슨 증거로?”
“내 감.”
네 감 옛 저녁에 문드러져 썩지 않았냐? 아저씨의 어이없다는 말투에 승철이 피식 웃었다. 총 맞더니 머리도 어떻게 됐나 봐. 정한은 머리 옆에 검지를 대며 빙빙 돌렸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그래. 지수가 승철의 손을 꼭 잡으며 기도를 했다. 야 나 아직 안 죽었어. 기분 더럽게 기도하지 마! 버럭 소리를 질렀다. 사람은 언젠가 죽어, 승철아. 저 새끼 총 들고 설칠 때부터 미친놈인 줄 알았지만 진짜 굉장히 빡 돌은 미친놈이네. 승철은 지수에게 잡힌 손을 빼며 눈을 감았다. 안 죽었으니까 때리지 마. 죽었나 확인하기 위해 손을 들던 정한이 쳇, 혀를 찼다. 쟤나 얘나 다 미쳤다.
“지는 안 미친 척 하고 있네.”
승철이 푸스스 웃었다
맞아. 나도 미친놈이지. 도망가는 틈 사이로 총을 들고 저를 쏘아보던 지훈의 얼굴이 그려졌다. 처음 본 화가 난 네 얼굴. 신기했다. 너도 그런 표정을 짓는구나. 나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설레기도 했고. 윗니로 깨물던 입술은 저와 지훈의 피로 붉었다. 그 입술을 손등으로 닦으며 붉은 피를 핥던 혀는 겁나게 섹시했다.
조만간 또 보겠지? 그림자처럼 사는 놈이니까 병원에 얌전히 입원해 있을 승철을 소리 없이 찾아오겠다. 아니면 조직 보스의 의뢰를 받고 어디에 잠입했을 저를 쫓아올 수도 있고. 묘한 기대감이 가슴에서부터 거품처럼 몽글몽글 올라온다. 그 땐 넌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안녕, 하고 인사하면 네 목소리를 처음으로 들을 수 있을까? 아니면 오늘처럼 입술에 들러붙어 키스를 하면 네 불기둥이 내 안에서 나를 반으로 갈라 죽음 같은 쾌락을 안겨줄까?
무엇이든 좋다. 존재하는 것조차 의심스러운 이지훈이 처음으로 제 존재감을 드러나는 게 최승철 나라면. 누군가의 인생에 오점이 될 수 있다면, 그래서 살아있다면 불행한 이 인생도 구원받을 테니까.
그러니 어서 나를 찾아줘.
나를 원하고 바라서,
내 앞에 나타나줘.
+굉장히 섹시한 킬러물을 쓰고 싶었을 뿐인데 망했고..orz..
+승철은 나쁜짓하다가 경찰아저씨를 만났고 과거의 삶과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가끔 경찰 도와주는 밑에 수족들 있잖아요. 그런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런데 아저씨에겐 그것보단 승철정한지수 모두 아들같아요. 세명에게도 아저씨는 아빠고. 죽어도 아무도 모르는 자기들을 아껴준 분이니까. 덕분에 세 명이 모두 착한 사람이 되었지만... 껄렁껄렁한 태도는 어쩔 수 없어요. 핫핫
+그리고 정말 죄송합니다. 이걸 글이라고 써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