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우쿱] 사랑이 힘이 되지 않던 시절

다몬드 2016. 9. 25. 01:17

 

 

 

 

뉴스입니다.

지난 ○○일 저녁 7시경 부산지방경찰청(청장:○○○)형사과 광역수사대는 고액이자를 챙기기 위해 피해자와 가족에게 욕설과 협박을 하고 납치·인신매매를 해온 고리대금 사채업자 일당을 체포하였습니다.

광역수사대는 지난 20105월부터 2016월까지 무등록 대부업체를 차려 경제적 약자인 신용불량자, 무직자, 학생 등에 돈을 빌려주고 최고 연 1700%의 이자를 요구하였으며 높은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돈을 갚지 못하자 채무자를 유흥업소나 인신매매로 팔아넘겨 부당한 이익을 취하였던 것으로 들어났습니다.

특히 이들은 ……(중략)……경찰은 사채업자의 혈육인 18살 이 모씨의 신고에 의해 출동하였으며 불법 수술 현장을 덮쳐 증거물을 확보하였다 합니다.

 

 

 

 

 

 

[지훈승철/우쿱] 네가 너는 아직 어렵다는 얘기를 꺼냈을 때, 나는 우리가 한번이라도 어렵지 않은 적이 있냐고 되물었다.

 

 

 

 

w. 안다미로

 

 

 

 

 

 

 

 

꽃을 피우고 오는 날엔 당신은 날 찾았다. 어울리지 않는 비린 풀냄새를 잔뜩 풍기며 비에 젖은 꽃잎처럼 처량하게 내 품에 쓰러졌다. 그리곤 내 다리에 뿌리를 박고 푸릇한 잎덩굴로 허리를 안으며 물을 마시듯 내 안에서 해갈했다. 메마른 대지에서 약간의 물을 찾기 위한 갈급한 몸짓으로 잠에 취해 무방비한 몸을 동아줄마냥 오랫동안 매달리고 나면 당신은 그제서야 숨을 뱉었다. 가끔은 마른 판판한 가슴에 얼굴을 비비고 물의 근원을 찾아 입술을 대었지만 그정도가 다였다. 독으로 까맣게 변색된 입술을 안으로 말아 다물며 말없이 왔던 것처럼 말없이 나갔다.

문이 살짝 닫히고 좁은 방안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진공상태가 된다. 산소도 없는 밀폐된 공간엔 당신이 묻히고 온 풀냄새만 연하게 배여 있었다.

 

처음 당신을 본 건 낡은 철 문 앞이었다. 어쩌다 내가 그 곳에 서서 당신을 보게 된 건지는 진부하고 따분한 신파물에서도 더 이상 쓰지 않는 소재이니 이야기하진 않겠다. 다만 당신은 생각보다 똑똑했고 자신의 처치를 잘 알았다. 색이 바란 청바지와 때가 묻은 체크무늬 남방의 차림이었던 당신은 괜찮은 얼굴로 내 등장에도 놀리지 않고 찾아온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당신을 천천히 훑었다. 얼마짜리인지 주인은 알려주지 않았지만 나는 그가 퍽 비싼 값에 팔리겠다는 인식을 받았다. 그래, 그는 처음 봤을 때부터 그 정도의 사람이었다. 오자마자 강제로 옷이 벗겨지고 낡은 건물에 밀어 넣어져도 당신은 동요하지 않았다. 쏟아질 것 같은 큰 눈동자는 빗장을 쳐 감정을 숨겼고 단단한 입술은 일자로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피와 돈만 만져본 거친 손길에도 신음하나 흘리지 않았다. 야욕을 거리낌없이 드러내며 비싼 양복 소매를 정리하던 주인에게 얌전히 머리도 내렸다.

똑똑해서 좋아.’

주인의 칭찬에 당신의 고개가 안으로 말려들어갔다. 눈을 가린 앞머리가 당신의 입술까지 감추었다. 얼핏 봐도 잘 잡힌 근육을 가진 당신은 길들여진 야생마처럼 주인에게 복종했다. 당신은 알고 있었다. 당신이 이곳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주인의 복잡한 규칙을 따라야 한든 걸 본능적으로 캐치했다. 주인 말대로, 그리고 내가 느낀 그대로 당신은 매우 똑똑한 사람이었다. 세상의 이치를 이미 겪은 어른이었다.

때문에 당신은 죽거나 어디 하나가 크게 망가지는 신고식은 치루지 않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유일한 사람이었다. 비록 바로 시정마로 불려나갔지만 신고식을 치르지 않은 것만으로 당신의 존재는 남들과 달랐다. 적어도 운이 좋았다며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시는 저들보단 내 눈엔 당신은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특별했다.

 

 

이번에도 성공이라는데.”

현금을 세고 있는 대머리 남자의 누런 이가 기분 나쁘게 꿈틀거렸다.

쌍둥이란다. 하나도 둘도 아니고 세 쌍둥이. 대박이지 않냐?”

끝이 타들어간 긴 장대를 입에 물고 매캐한 연기를 뿜으며 킬킬 웃는다. 나는 그 옆에서 백 단위로 나뉜 신사임당이 그려진 종이를 물끄러미 봤다.

역시 우리의 연꽃이야.”

연꽃은 이곳에서 불리는 당신의 이름이었다. 최승철이라는 본명은 있었지만 그 이름은 여기에 들어오자마자 죽어 관에 묻혔다. 대신 당신은 연꽃이라 불렸다. 썩은 불순물이 까맣게 잠식하는 더러운 물에 초록색 엉덩이를 들이밀어 청초하게 피는 꽃이 당신을 닮아서 내가 붙인 이름이었다.

연꽃이 뭐야.’

처음 그 이름을 듣던 주인은 코웃음을 치며 비아냥거렸다. 의사, 배달기사까지 킬킬 비웃음을 숨기지 않았다. 못 배운 티 좀 내지 말래? 주인의 비서는 내 등을 퍽퍽 내리쳤다. 첫 일을 무사히 마치고 여기저기 상처를 달고 온 당신만이 유일하게 웃지 않았다. 그저 잔향처럼 맴도는 갈무리되지 않은 열기를 툭툭 털어내며 앉아있었을 뿐이었다. 검은 물 위에 핀 연꽃처럼.

덕분에 보너스로 오백 더 받았다. . 대박이지 않아?”

주먹으로 돈을 움켜쥐어 부채처럼 부친다. 이 향긋한 돈 냄새~ 뻣뻣한 특수종이가 흔들리는 대로 허를 꺾었다. 꺽혀 접힌 곳에 잉크냄새가 물씬 났다. 대머리의 남자는 담배를 길게 빨며 코를 킁킁댔다.

그래서 총 얼만데?”

“CF”

C는 천이었고 F는 만이었다. 나는 상상하지 못한 큰 금액에 혀를 안으로 말았다. 이 일을 시작하면서 몇백을 몇 번 만지긴 했지만 CF는 처음이었다.

거기다 만약 세 쌍둥이가 모두 아들이면 천을 더준다고도 했다더라.”

비밀이야기인지 아무도 없는 텅빈 복도를 둘러보고 손으로 내 귀에 대어 속삭인다. 살짝 입술 끝이 닿았다. 역겨운 담배로 찌든 입술로 귀가 썩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급하게 틀었다. 손으로 털어 머리를 흔들었다. 기분 나쁜 나만큼이나 대머리의 남자도 깜짝 놀라며 입술을 휴지로 문댔다.

안 놀라?”

너무 문질러 벌겋게 부은 입술을 휴대폰으로 확인하며 대머리의 남자가 물었다.

놀랐어.

말은 되지 못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워 너무나 어지러웠으니까.

 

나는 당신을 생각했다. 파리한 얼굴로 내 품에서 울던 한 달 전의 당신을.

처음이었다. 시정마로 일하는 1년 동안 보지 못한 당신의 약함이 내 안에서 터졌다. 매달리던 몸이 바들바들 떨어 아래 깔린 이불이 바스락 울었다. 목이 늘어난 내 셔츠도 파랗게 축축이 젖었다. 나는 어쩔 줄 몰랐다. 당신의 울음은 소리 내어 털어지는 것이 아닌 안으로 쌓이는 설움이었다. 듣기만 해도 같이 늪에 빠져 천천히 죽어갈 것 같은 잠식이었다. 숨이 턱턱 막혔다. 나는 서툰 손길로 당신의 얼굴을 끌어당겼다. 무너진 까만 눈물의 댐을 입술로 삼켰다. 짠 눈물이 일어난 입술에 스며들어 거칠게 긁었다. 당신은 고개를 살짝 들었고 차마 삼키지 못한 투명한 눈물이 내 뺨에 도로록 굴려 떨어졌다. 그을음 없는 부은 눈두덩어리가 가까워졌다. 가득 프레임에 담긴 얼굴이 포근하게 닿았다. 붉은 꽃잎을 헤쳐 연한 분홍색 술을 안았다. 얽혀 섞이며 서로의 것을 비벼 삼켰다. 꿀벌처럼 당신을 끊임없이 탐했다.

 

 

당신이 쭈뼛쭈뼛 나온다. 나는 차 문에 기댔던 몸을 뗐다. 걸음이 빠른 편인 당신이 오늘은 굼벵이처럼 느렸다. 자세가 어정쩡했다. 원숭이처럼 다리가 O자로 휘어졌고 허리는 앞으로 약간 구부려 지팡이만 있으면 영락없는 노인네였다. 색이 빠진 일부 검은 입술이 광택 없는 가죽처럼 뻣뻣했다. 나는 재촉하지 않았다. 그가 차에 다가와 문을 열고 들어갈 때까지 지켜보기만 했다. 쌀쌀한 가을바람이 땀으로 눅눅한 당신의 머리를 헤집었다. 로션만 바른 하얗게 튼 얼굴이 폭 패였다. 이 골목에 유일한 주황색 가로등 하나가 당신의 음울한 얼굴을 가감없이 비추었다. 나는 겨우 차문을 열고 쓰러지듯 안으로 무너진 당신을 대신해 문을 닫았다. 운전석에 앉아 백미러를 맞추며 안전벨트를 찼다. 기어를 넣고 천천히 페달을 밝으면 오래된 연식을 자랑하는 자동차는 쾅, 기침을 크게 토하곤 앞으로 나아갔다. 도로를 따라 달리면서 나는 백미러를 힐끗 보았다. 거울 속의 당신은 의자에 엎드려 누워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

방너머에 억눌린 신음소리가 손톱만큼 열려진 방문 아래로 새어나왔다. 상처가 많은 나무문은 이 모텔이 얼마나 오래되고 낡아 헤진 건물인지 보여주었다. 나는 당신이 들어간 방 옆에 벽에 기대어 서있었다. 이곳에 오자마자 당신은 먼지 때가 낀 문고리를 잡아 비틀어 때가 지워지지 않은 촌스러운 이불 위에 앉았었다. 의뢰인의 물건이 오기 전까지 고작 3. 당신은 인형처럼 초점 없는 눈으로 베이지색 벽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나는 그런 당신을 견딜 수 없어 밖으로 나섰다. 얼마 안 있으면 불쾌한 낯을 띈 여자가 이 쪽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나에겐 눈을 내리깔며 무시했지만 문 앞에선 겁에 질려 쉽게 문을 열지 못했다. 이 안으로 들어가면 살아나오지 못한다 생각했는지는 모른다. 그저 그녀는 몇 번이고 한숨을 쉬고 손에 땀을 닦으며 망설였었다. 보다 못한 내가 문을 열어줄까 생각했을 때 문이 열렸다.

연 건 당신이었다. 싸늘한 눈빛이 그러나 입술만큼은 다정한 호를 그리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여자의 동공이 커진다. 당신은 투박한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려 여자의 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여자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당신은 가녀린 여자의 뒷목을 감싸 부드럽게 담겼다. 얼굴이 포개지고 여자는 당신의 어깨를 가볍게 쥐며 천천히 방 안으로 사라졌다.

..! ..!”

신음소리가 거칠어졌다. 다리가 약한 침대의 삐걱거림도 섞여 나왔다. 나는 색스러운 여자의 끊어질듯한 신음소리보다 당신의 숨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코에서 삼킨 호흡이 걸려 인중에서만 맴도는 당신의 약한 숨소리. 하체는 문란하게 여자와 얽혀있고 당신의 손은 여자의 작은 가슴이나 부드러운 허리를 감싸 안았겠지만 당신은 결코 닿지 않는다. 일을 충실히 해내는 시정마일 뿐이다. 만약 모르고 당신의 몸에 손을 댄다면 날카롭게 살을 베는 얼음이리라. 나는 제대로 공부를 한 적이 없어 제대로 설명을 못하겠지만 이 방의 당신은 가짜의 욕정을 진짜처럼 연기하는 훌륭한 배우라고 생각한다. 바짝 선 불기둥은 그녀를 뜨겁게 데우겠지만 그 안은 조용하게 식어 한 숨의 호흡도 얼리는 차가운 얼음이었다.

 

 

후나-.. ..”

차안은 금세 습해졌다. 손을 뻗어 마구 옷을 잡아당기며 쥐어뜻듯 당신의 옷을 벗겼다. 산소를 찾는 물고기마냥 서로의 입술에 매달리며 벗은 옷을 차 바닥에 떨궜다. 깜깜한 밤하늘에 빛이 들어오지 않는 다리 아래 빈 주차장에 홀로 서 있는 좁은 차안은 욕정으로 번들거리는 눈동자만 형용하게 빛났다. 나는 가늘고 긴 붉은 상흔에 맞춰 키스를 했다. 딱쟁이가 져 울퉁불퉁했다. 그 위를 검은 독으로 지웠다. 곧 당신은 어둠에 잠기웠다. 가슴 일부가, 어깨 위가, 허벅지 안쪽이 어둠에 잘려 나가 없었다. 흐릿하게 보이는 죽은 영혼처럼 당신은 희미했지만 그러면서도 그 몸으로 나에게 매달려왔다. 부어 오른 구멍을 손가락으로 대충 풀어 쑤셔 넣었다. 꽉 다물어진 아래가 힘을 주어 넣자 부드럽게 삼켰다. 가시에 긁힌 말랑한 사타구니에 맺힌 피딱지가 살이 부딪힐 때마다 벗겨졌다. 다시 붉게 흐르는 핏물이 내 허벅지와 당신의 엉덩이로 번졌다. 당신이 팔을 들어 목을 감싸 안았다. 붙은 몸 사이로 보기만 해도 빨간 생채기로 부어오른 아랫도리가 단단한 배에 닿아 문질러졌다. 당신은 비명을 질렀다. 나는 가죽에 쓸린 당신의 엉덩이를 잡아당겼다. 단단한 성기가 튀어나온 돌기를 건드렸다.

으읏..!”

등이 따끔했다. 제대로 찔린 스팟에 당신이 손톱을 세운 탓이다. 나는 허리를 들어 한 번 더 그곳을 찔렀다. 당신의 머리가 뒤로 꺾이고 입이 크게 벌어졌다. 입술 혀 안쪽 목구멍까지 당신의 입안은 까맣게 변색된 검은 동굴 같았다. 나는 급하게 손을 위로 올려 등을 찾았다. 플라스틱이 손톱에 긁히는 요란한 소리가 잠시 났다가 네모난 버튼을 눌렀다. 당신은 까맣고 파랬고 하얬다. 갑자기 켜진 불빛에 놀라  감은 두 눈두덩이는 마스카라가 번진 것처럼 검은 자국이 뺨 아래로 흘렀다. 혀를 기어 자국을 핥았다. 눈물자국이 점점 물에 번진 물감처럼 퍼져갔다. 허리를 길게 빼어 깊게 찔렀다. 당신의 검은 눈물이 떨어져 의자를 적셨다. 길어서 끝이 뾰족한 송곳에 부풀어 돌기가 꽈리를 풀었다. 당신은 몇 번이고 내 어깨를 물었다. 내 어깨는 이빨자국과 손톱으로 꽃이 피웠다. 차가 마구 흔들렸다. 움직일 때마다 물 내가 나는 꽃향기가 당신의 겨드랑이에서 났다. 당신의 손을 잡아 위로 올려 겨드랑이에 코를 묻었다. 진한 당신의 냄새가 나를 안심시켰다. 혀를 내밀어 부드러운 살을 물었다. 당신의 냄새가 입 안 가득 퍼졌다. 달아서 삼키면 금세 사라져서 아쉬워, 이를 세워 몇 번이고 냄새를 취했다.

아파.. .. 훈아..”

당신이 운다. 몇 번이고 사정한 당신의 아래는 엉덩이를 타고 흐른  불투명한 액으로 더러워졌다. 당신은 팔에 힘을 주어 버티면서도 아프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어제부터 괴롭혀 붉게 부은 구멍은 까만 독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침을 뱉어 조금 달래보지만 당신은 자꾸만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나는 아직 당신이 갈급했다. 무너지는 당신의 팔을 뒤로 잡아 세웠다. 억지로 들린 상체가 허리가 꺾여 잔뜩 주름졌다. 곧게 선 척추뼈 따라 길게 새겨진 밤새 나뭇가지에 작은 흰색 꽃이 점점이 있었다. 나밖에 보지 못하는 나의 꽃들. 허벅지를 당겨 당신의 안에 내 씨앗을 뿌렸다. 의자에 쓰러져 무너진 당신의 등에 영롱하게 핀 흰 꽃에 입을 맞춘다. 독이 있는 꽃이라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달콤한 꿀 냄새가 났다.

졸려.”

시큼한 땀 냄새와 비린 밤꽃냄새로 가득 찬 차안은 너무 울어 맹맹한 당신의 코엔 닿지 못했다. 그나마 멀쩡한 나는 환기를 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당신을 떼어 창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 가끔씩 짧게 키스를 하는 당신을 떼워 놓을 수 없었다. 온 몸을 잠식한 까만 독이 정화될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허락된 이 시간은 나의 유일한 기쁨이었다. 경계를 풀고 본연의 보여주는 당신을 놓칠 수 없었다. 아름다운 꽃들의 날카로운 가시와 치명적인 독을 신음하나 흘리지 않고 견디는 강인한 남자가 사실은 눈물이 많고 사람이 그리운 상처 많은 남자라는 건 나만이 아는 비밀이었기 때문에 그랬다.

자요. 도착하면 깨워줄게.”

손가락 까닥할 수 없는 당신대신 입힌 옷을 저미운다. 당신의 진한 눈썹을 손으로 문지르며 웃었다. 당신은 눈을 천천히 감았다 떴다. 바람에 흔들리는 얇은 꽃잎이 나비를 부르는 우아한 손짓이었다. 안티 스테먼이라는 귀한 존재가 시정마가 되어 굴려져 망가지고 더러워졌지만 당신은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세상의 1%라 주장하는, 윤기가 흐르는 종마들보단 탄탄한 몸으로 더러운 것끼리 야유하는 이곳에서 인내하는 시정마인 당신이 강인하고 고귀하며 신성했다. 눈을 마주치기만 해도 경계가 심한 자들의 벽을 허물어버리는 다정함이 있었고 말하는 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만약 당신이 건강한 과거에서 살았더라면 누구보다 빛났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을 만큼 당신은 특별했다. 당신은 나에게 끊어낼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주인보다 더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런 당신을 나는 옆에서 지켜주고 싶었다. 더러운 손과 썩은 내 나는 퀴퀴한 지하에서 아무것도 닿지 않게는 못하겠지만 치욕의 상처를 독으로 덮어줄 수 있는 애정을 나는 아낌없이 퍼붓고 싶었다.

 

지훈아. 어떡할래?”

얻어터진 입안이 피로 가득 찼다. 잘못 맞아 부은 눈은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꺾이고 흔들리는 머리 따라 여기저기 헤매었다. 묵직한 주먹이 배를 가격했다. 몇 번이고 맞은 배는 또 울컥 피를 토했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입안에 고여 있던 핏덩어리가 흘렀다. 턱을 타고 바닥에 떨어진 붉은 피는 타액과 섞여 붉은 거품을 만들었다.

우리의 돈줄이 튀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꽤 비싸보이는 정장을 입은 주인이 불쾌한 낯을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너가 할 일을 제대로 못했는데 응? 내가, 굳이, 너를, 살려야 할까?”

.. 제대로 했습니다.”

처음만.

귀한 돈줄이 도망가지 못하게 24시간을 감시했다. 먹는 거 자는 거 입는 거 심지어 싸는 것까지 내 눈이 보지 못한 당신은 없었다. 매일 꼬박꼬박 주인에게 가는 보고엔 당신의 면면이 적혀있었다. 조금씩 시간이 흘러 일을 마치고 내 품에 안겨온 당신만이 그 속에서 제외되었을 뿐이였다.

제대로 보고를 했던 걸 보면 응, 지훈아. 내 아들. 그 새끼가 어떻게 네 눈과 이 새끼들 눈을 피하고 도망을 칠까?”

.

볼을 기분 나쁘게 톡톡 밀던 손가락에 힘이 점점 들어가다 종래엔 뺨을 맞았다. 반지를 낀 굵고 큰 손가락이 살을 긁었다. 화상처럼 번지는 뜨거운 뺨이 크게 부풀었다. 침을 모아 뱉었다. 혀를 제대로 물려 빨간 새 피가 물컹 나왔다. 주인은 조직원이 건넨 수건으로 손을 꼼꼼이 닦았다. 쓸모없는 새끼. 제 씨로 태어난 모든 자식들을 돈으로 계산하고 돈으로 이용하던 주인은 태어나자마자 버려져 방치된 저주 받은 어린 아들에게조차 무자비했다. 터지고 부서진 마른 몸을 더럽다는 듯 경멸하며 길쭉한 입술을 벌렸다.

죽여.”

몸이 끌렸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로 일어서려 버티며 질질 끌려가 옆 수술대에 눕혀졌다. 십자가처럼 팔과 다리가 단단한 줄에 묶였다. 입안엔 더러운 천이 쑤셔졌다. 눈이 부신 조명 옆으로 번쩍거리는 수술기구가 서늘했다. 마취기구는 보이지 않았다. 마치 없이 장기를 꺼낼 모양이었다. 베놈의 장기는 멀쩡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독성이 강해 잘 쓰여지지 않는데도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아들을 그냥 죽이기가 아까운 모양인지(굳이 따지자면 돈을 더 벌기 위해서겠지만) 주인은 망설이는 의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자꾸 웃음이 났다. 막힌 천 때문에 억눌린 신음소리가 되었지만 실성한 사람처럼 웃음을 토했다. 천 하나가 목구멍에 들어가 기침도 했다.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고 숨은 막혀 뱅뱅 머리가 돌았다.

잘 도망갔구나. 집요한 우리가 잡지 못 할 정도로 완벽하게 꼼꼼하게 숨었구나. 할 수만 있다면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나도 모를 정도로- 어제까지 내 품에 쉬던 당신이 훌륭하게 계획을 짜고 도망쳤다는 것이 대견스러웠다. 오늘도 들어온 일을 위해 찾은 당신의 방안에 있던 짧은 작별의 인사말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보고에 점점 구멍이 늘어날 정도로 당신에게 마음을 뺏겼지만 정작 아무것도 되어주지 못한 겁많은 나를 힐난하는 편지였지만 좋았다. 그것이 사실은 사랑이었음을, 당신에게 나는 나에게 당신은 이 만큼의 사람이었다는 걸 알려주었으니까. 힘 없는 감시자, 버려진 주인의 6번째 아들, 좋은 돈벌이가 될 수 있는 후대도 만들지 못하는 저주 받은 몸이었던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주었으니까.

결심을 굳힌 의사가 들어왔다. 그 옆으로 형식적으로나마 수술복을 입은 조직원들이 붙는다. 뭐든지 낡고 더러운 이곳에서 유일하게 깨끗한 수술기구에서 블레이드를 든다. 그것이 곧 내 배를 가르고 장기를 잘라 차가운 아이스박스에 담겨져 나갈 것이다. 생생하게 살이 잘려나가고 장기가 끊기는 극한의 고통과 공포를 마주할 나는 거품을 토하고 뽑혀 비어버린 눈구멍에 피를 흘리며 차라리 죽여 달라 애원하겠지. 하지만 괜찮아. 당신이 있으니 나는 이겨낼 수 있다. 당신이 겁쟁이인 나를 용감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벗어나려 생각하지 못한 이곳에 불합리하고 잔인한 실상을 다시 보게 만들어줬기 때문에 나는 해낼 수 있다.

 

이건 당신의 대한 나의 보답이다.

 

흰 조명에 반짝거리는 칼날에 푸르고 붉은 빛이 비춘다. 당황하는 조직원들 사이에서 고함소리와 검은 제복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간다. 거기서 부른 배를 안은 당신이 보였다 사라졌다. 나는 손을 뻗어 당신을 잡고 싶었지만 손이 묶여 있는 탓에 멍청하게 당신이 사라진 자리만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몇 번이고 당신을 그렸다.

 

 

 

 

 

 

 

 

혐오라는 말을 붙여줄까.

늘 죽을 궁리만 하던 여름날

머리를 감겨주고 등 때도 밀어주며

장화를 신고 함께 걷던 애인조차 떠났을 때

나는 사라지기 위해 살았다

 

발 아픈 나의 애견이 피 묻은 붕대를 물어뜯으며 운다

그리고 몸의 상처를 확인하고 있는 내게 저벅저벅 다가와

간신히 쓰러지고는,

그런 이야기를 사람의 입을 빌려 말할 것만 같았다.

세상의 어떤 발소리도 너는 닮지 못할 것이다

 

네가 너는 아직도 어렵다는 얘기를 꺼냈을 때

나는 우리가 한 번이라도 어렵지 않은 적이 있냐고 되물었다

사랑이 힘이 되지 않던 시절

 

길고 어두운 복도

우리를 찢고 나온 슬픔 광대들이

난간에서 떨어지고, 떨어져 살점으로 흩어지는 동안

그러나 너는 이상하게

내가 손을 넣고 살며기 기댄 사람이었다.

 

주하림, 작별

 

 

 

 

 

 

 

 

 

 

 

 

 

+피스틸 버스 세계관이지만 조금 내용을 수정하였습니다.

+피스틸은 1.5%, 스테먼은 1%만 있습니다. 상류층일수록 피스틸이나 스테먼 분포도가 높아요. 그들은 그들이 가진 탄생화처럼 아름다운 향기를 뿜고 매력적인 타입이기 때문에 돈과 사람이 잘 모여 성공하기가 쉽죠. 가끔 일반인 중에 있긴 하지만 매우 드물어요.

+그리고 피스틸과 스테먼은 임신이 가능합니다. 피스틸의 암술이 스테먼의 수술에 닿아 수정을 맺는거죠.

+승철은 안티 스테먼입니다. 독을 제거하는 스테먼이지만 여기선 시정마처럼 쓰여지죠.

+시정마는 교미시키기 위해 종마를 데리고 오는데 암말이 거칠다 보니 자칫하다간 종마가 다치거나 죽을 수 있다하여 그런 암말을 견디고 순하게 만들어 종마랑 원할하게 교미할 수 있도록 하는 말이지요. 승철은 그런 역할입니다. 여기서 피스틸은 처음을 맞이 할 때 가시를 세우고 독을 뿜어 스테먼을 위험하게 만들지요. 그런 스테먼을 위해 시정마, 안티 스테먼(독과 가시에 강하고 몸이 튼튼함)이 쓰여지지요.

+승철은 가난한 사람이었고 가난한 사랑을 했어요. 똑똑하고 강인했지만 사랑에 약했기 때문에 팔려온 거지요.

+지훈은 베놈 스테먼입니다. 주인(=아버지)의 아들이지만 베놈이어서 쓸모 없다 하여 방치된 채로 자랍니다. 사랑을 모른 채 사람이 그리운 불쌍한 아이였죠.

+지훈은 닿기만 해도 독이 퍼지기 때문에 다들 무서워해요. 대머리의 남자가 입술을 휴지로 문댔다, 주인이 손으로 꼼꼼이 닦았다 모두 지훈이 베놈이었기 때문이죠.

+승철은 안티 스테먼이었기 때문에 지훈의 독을 견딜 수 있었어요.

+스테먼끼리 관계를 맺으면 받아들이는 스테먼 등에 꽃이 피어요. 드물게 임신이 가능하기도 합니다.

+승철의 편지는 아래 시입니다.

+제목 전 짧은 기사와 마지막 지훈의 보답이다는 연결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