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쿱] 피아노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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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승철/우쿱] 피아노 치는 남자
w. 안다미로
너는 피아노를 쳤다. 다 큰 성인치고 조금 작은 몸으로 팔을 뻗어 한아름 안을 수 있을까 싶은 먹색 그랜드 피아노 네모난 의자에 앉아 무겁게 피아노 건반을 눌렀다. 작은 덩치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건반을 무겁게 누르며 넓은 홀을 사로잡아 좌우로 마구 흔들었다. 잡히는 대로 흔들려 옴짝달싹 못하지만 또 너는 놀란 몸을 따사로이 안아주는 부드러운 다정함이 있다. 맛있는 음식이다. 살랑거리는 깃털이다. 따듯한 햇빛이다. 먹먹한 목탄색이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모든 감각을 앗아간다. 눈 깜빡이고 호흡을 할 시간조차 없다. 연주가 끝나야만 겨우 멈춘 숨을 뱉었고 뻑뻑한 눈을 씻었다. 너는 그렇게 너의 연주를 했다. 그럴 때면 나는 고양되어 있었다. 건반을 두들기는 긴 손가락은 내 몸을 만지고 연주에 몰입한 얼굴이 내 안에서 파정한 너의 얼굴이 된다. 페달을 밟는 너의 발은 나의 자존심을 밟아 뭉개는 지배자가 돼 나는 피아노가 된다. 너에게만 연주되어지는 하나밖에 없는 피아노다. 눈빛, 혀, 손가락, 큰 너의 성기까지 만져지고 건드려지는 대로 예쁘게 우는 피아노가 된다.
너는 원하지 않았던 너만의 피아노.
우리의 시작을 기억해본다. 영겁의 과거에서 되짚어 보려면 아득히 멀었지만 나는 어제의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를 수 있다. 네가 어떤 옷을 입었고 어떤 얼굴을 지었는지 그 때 우리사이를 스쳐 지나가던 바람과 해의 따가움까지 한 톨도 잊지 않았다. 특히 17살의 너는 또렷했다. 음악실에서 유일한 악기였던 피아노 앞에서 매일 연주를 했던 너였다. 친구가 없는 것도 아니었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아웃사이더도 아니었는데도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매일 너는 피아노 앞에 있었다. 더 성장할거라 믿은 어머니에 의해 입은 품이 넉넉한 교복 차림으로 소매를 덮은 교복셔츠를 팔꿈치까지 접어 올린 뒤 손가락을 건반 위에 올렸다.
나는 그 당시 너를 알고 있었다. 피아노계에 충격을 던진 어린 천재가 늦은 이학기에 우리 학교로 전학 왔다는 이야기를 너머너머 들었었다. 나는 네가 궁금했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작은 천재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복도를 열심히 다녔다. 조금 높은 창문에 달라붙어 괜히 기웃거리며 교복무리 사이에서 너를 찾으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그런데 너는 잘 보이지 않아서 키가 좀 작다하니 땅바닥과 붙어서 내 눈에 띄지 않는 걸까 했다. 점점이 박힌 회색 복도를 좌우로 훑어봤지만 쓰레기밖에 안보였다. 나는 실망감에 풀이 죽었다. 오늘이 아니어도 언제든 볼 수 있었는데 가장 먼저 보지 못한 안타까움이 끌리는 슬리퍼 뒤꽁무니에 질질 붙어있었다.
그런데 마음을 달래려 버릇 같은 음악실에서 낯선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발자국도 뗄 수 없었다. 너는 겨울 아이같았다. 밀어 닫힌 문, 바람도 통과하지 못하는 좁은 틈새에서 흘러나오는 연주가 하얗고 뽀얗게 내 마음에 눈처럼 쌓였다. 시렸는데도 해에 말린 이불처럼 따뜻한 포근함에 나는 좀 울었다. 최근에 말라 사라진 게 아닐까 했던 눈물이 볼을 타고 떨어져 하얀 양말을 적셨다. 양말이 눅눅하도록 울고 있는데 연주를 끝낸 네가 문을 열고 나오다 우는 나를 봤을 때, 볼이 통통한 어린 얼굴이 놀라 올려다보았을 때 나는 젖은 얼굴로 너에게 인사했다.
안녕. 나의 연주자. 드디어 너를 만났구나.
파도 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 소곤거리는 속삭임처럼 조용한 박수갈채에서 너는 가볍게 웃었다. 자신에게 아낌없이 던지는 찬사의 무리에 시선을 던진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1층에서 2층으로 훑는 시선이 까맣게 빛난다. 많은 사람 앞에서 매일 연주하는 너였지만 너는 어린 천재의 어리숙한 부끄러움쟁이에서 여전했다. 긴장으로 얼어 첫 연주가 끝날 때까지 딱딱하게 굳는다. 손가락은 유연하게 유영하지만 얼굴이 단단하다. 오랫동안 나만 아는 너의 비밀이었다. 하지만 첫 연주가 끝나면 네 얼굴엔 꽃이 핀다. 완벽주의자인 성격 탓에 혹독하게 자신을 몰아붙인 네가 이 순간 위로받는다. 나는 그 무리 속에서 아낌없이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쳤다. 자신을 보러 와준 관객 한명 한명에게 눈으로 감사를 전하는 네 눈엔 내가 없다는 게 조금 슬퍼진다. 오늘도 너는 나를 보지 않는다. 스쳐지나가는 짧은 순간에도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발에 채인 돌멩이보다 못하다. 나는 너에게.
지금과 달리 과거의 너와 나는 사이가 좋았다. 좀 충격적이기도 했고 특별했던 첫 만남 이후 나는 매일 너를 보러갔다. 너의 연주를 가장 가까이서 들었다. 수줍음이 많던 너는 다가가는 나를 부담스러워했지만 나중엔 나에게서 곡을 신청받기도 했다.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을 많이도 요청했다. 클래식, 가요 상관없이 곡을 부를 때마다 너는 잔잔한 미소를 띠며 손가락을 놀렸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시간이 더 흐르면서 피아노가 아니어도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복도에서 인사를 하고 같이 게임도 했다. 문자는 귀찮아서 전화도 많이 했다. 내 최근 통화목록엔 너밖에 없었다. 우리가 붙어 있는 모습이 이상하지 않았다. 1살 많은 일학년 최승철이 친하게 지내는 일학년 동생이 이지훈이라는 걸 선생님도 알았다. 너는 특별한 사람이라 너와 알고 지낸 것만으로도 나는 유명인이 되었다. 너는 나와 친하다는 걸 부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좋았다. 너의 가장 친한 사람이 나라서. 나에게 숨김없이 말하는 네가 좋았다. 그래서 네가 첫사랑에 빠졌다고, 친구도 모르는 비밀이라고 고백했을 때 가슴이 두근거렸다. 같은 반인데 예뻐요. 웃는 미소를 보면 절벽에 추락하는 돌멩이처럼 아찔해져요.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이 세상에서 저세상으로 시간여행을 해요. 시선이 비껴가서야 다시 이 세상에 돌아와요. 볼을 붉히며 더듬더듬 제 마음을 이야기한다. 첫사랑에 빠진 소년은 백설기처럼 좋은 냄새가 났다. 나는 몇 번이고 너 몰래 코를 훔쳤다. 달큼한 냄새에 코가 취해 내 마음은 하늘을 날았다. 고백 안 해? 물었을 때 어떻게 해요, 제가. 쓸쓸하게 웃는 네가 안타까워 어깨를 움츠렸다. 네가 왜 어때서, 멋있는데. 진심에도 너는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저는 작고 피아노만 치는 심심한 남자인걸요. 1살 많은 형이 기죽은 동생을 위로해준다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는 아니라고 절실히 부정했다. 너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네가 고백 못 할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에게 자신감이 없던 너였으니까. 흔한 첫사랑처럼 혼자 들끓다 재만 남기고 끝날 거라 믿었다. 그래서 놀랐다.
설마 음악실에서 고백할 줄은 몰랐다. 고백했어요. 음악과제 때문에 빈 음악실에 들어온 애를 보는 순간 마음이 북받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전혀 생각 못했는지 크게 놀래서 쪽팔려 죽을 것 같았는데 나중에 답해준대요. 거절은 아니겠죠? 창피해, 죽을 것 같아. 마른 손바닥으로 빨간 얼굴을 숨겼는데도 차분한 머리카락 사이로 툭 귀가 튀어나왔다. 빨리 뛰는 네 심장만큼 빨갰다. 나는 그 귀를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홧홧한 열이 오른 귀가 내 손가락을 타고 넘어와 심장을 때렸다.
나는 그날 너와 매일 가는 하교를 처음으로 포기하고 긴 생머리 일학년을 기다렸다. 친구들과 재잘재잘 떠들어 교문을 통과하는 여자애 앞에 서서 ○○○? 알면서 이름을 물었다. 여자애는 갑자기 나타난 나 때문에 놀라 입을 손으로 가렸다. 통통한 볼이 분홍색으로 물들었다. 너 예쁘다. 너보다 너의 친구들이 난리였다. 대박. 호들갑 속에서 입을 가린 여자애 손이 바들바들 떨었다.
선배도.. 잘, 잘 생겼어요.
응 알아.
나는 내 얼굴을 잘 알았다. 외모에 자신감이 있었다.
남자친구 있어?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오빠 만날래?
여자애를 기다린 이유를 입 밖으로 꺼냈다. 어느새 교문 앞은 교복무리로 복작거렸다. 여자애들의 환호와 남자애들의 고함 같은 야유 속에서 여자애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살포시 웃으며 여자애 어깨에 팔을 둘렀다. 환호소리는 아까보다 요란해졌다. 축제 같은 무리 속에서 천천히 빠져나왔다. 미소가 점점 짙어졌다. 네가 저 멀리서 황망하게 나를 쳐다봤다.
또다시 아까와 같은 갈채가 쏟아졌다. 나는 또 흘러버린 너의 연주곡에 아쉬움을 토했다. 매일매일 너의 피아노연주를 들었고 연주한 곡들의 첫 음만 쳐도 머릿속에 음표가 그려졌지만 한 번도 네 연주를 허투루 듣지 않았었다. 하지만 오늘은 자꾸만 정신을 놓았다. 머리가 안 아팠는데도 그랬다. 푹 파묻은 의자에서 허리를 세워 자세를 고쳐 잡았다. 얌전한 머리도 좀 정리하며 정신을 가다듬는다. 이제부터라도 놓치지 말아야지.
호흡을 고르던 네가 건반위로 손을 올린다. 눈을 감았다 뜨면 반들반들한 눈동자가 아까와 다르다.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 곡을 연주하는 거구나. 희열로 뱃속이 끓었다.
당연하게도 우리는 틀어졌다. 찾아간 음악실에서 문이 열리자마자 교복이 잡혀 벽에 부딪혔다. 악력에 목이 졸렸다. 너는 실핏줄이 터진 빨간 눈으로 노려보았다. 나는 호흡이 막힌 것보다 흐트러진 네가 걱정됐다. 늘 단정하게 교복을 입고 다녔었는데 셔츠는 아무렇게나 나오고 넥타이는 이만큼 풀어져 머리카락도 엉망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한 번도 보지 않은 네 표정에 눈썹이 아래로 기울어졌다. 안타까웠다. 나는 너의 얼굴을 손에 담으려 뻗었다. 너는 그런 내 손을 강하게 뿌리치며 왜 그랬냐며 소리쳤다. 너의 침이 얼굴에 쏟아졌다. 나는 조금 실망했다. 내가 왜 그랬는지 몰라? 너는 알거라 생각했는데. 멱살 잡힌 채로 몸을 흔들며 소리치는 너는 그러면서도 알 수 없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아니라고 말해주길 바라는 것 같았다. 내 마음은 궁금하지 않고 원하는 답을 내려주길 바라는 바보 같은 너에게 화가 나서 네가 좋아, 라고 고백했다.
뭐, 라, 고요?
제대로 듣지 못했는지 너는 되물었다.
널 좋아해.
멱살을 잡은 주먹에 힘이 빠진다. 나는 숨쉬기가 조금 편해졌다. 경악으로 뒷걸음 하는 너에게 싱긋 웃었다. 여자애가 반했던 그 미소를 얼굴에 씌웠다.
난 네 거잖아.
최 승철은 이 지훈거라고.
그 이후로 너는 나에게서 멀어지려 노력했다. 매일 도장출근 찍던 음악실에 나타나지 않았고 몸을 작게 말아 내 눈에 띄지 않으려했다. 학교 있는 내내 의식하지 않아도 매일 보던 네가 내 앞에 사라졌지만 나는 음악실 긴 의자에 앉아 너를 기다렸다. 작정하고 숨은 너를 나는 도망가는 그림자만으로도 어디 있는지 알았지만 잡진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너는 다시 이 음악실, 우리의 유일한 피아노 앞에 다시 앉을 테니까.
“연주가 좀 거칠지 않아요?”
옆에 앉은 노부부의 대화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피아노소리만 유일한 이 공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음량을 낮춘 속삭임이었지만 음절 하나까지 완벽히 귀 바퀴를 넘고 들어왔다.
“그러네. 원래 이 곡 이렇게 거친 곡이 아닌데.”
“이지훈 피아니스트한테 이 곡 사연 있는 거 아니에요?”
“뭐?”
“연주자들 그렇잖아요. 어떤 이유가 있으면 곡을 다르게 연주하는 거.”
나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자꾸만 올라가는 입술꼬리를 감추기 위해서였다. 빅뱅처럼 부딪혀 부서지는 별무리 속 아름다운 곡에 내 미소는 어울리지 않으니까. 그런데도 자꾸만 웃음이 났다. 연주하는 네가 지금 내 생각을 하고 있어서.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하는 나 때문에 네 손가락이 분노로 떨리고 페달을 밟는 발에 힘이 실려서 엉망이 된 이곡이 나를 위로한다. 완벽하기만 한 너의 이력에 오늘 곡은 지워지지 않는 흠이 되겠지만 나는 자꾸만 자꾸만 웃음이 터져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지훈아.
나는 지금 너에게 혼나고 있어.
너는 다시 돌아왔다. 긴 의자에 앉은 나를 무시하고 피아노 앞에 서서 휘몰아치는 감정을 쏟아 부었다. 나는 눈을 감으며 음미했다. 보에 싸여 엄마 품에 안긴 아이처럼 포근한 행복함이 밀려왔다. 나는 너에게 이런 사람이구나. 이 정도의 사람이었구나. 기쁨에 젖어 그날 너를 생각하며 자위를 했다. 상상의 네가, 건반을 누르는 네 손가락이 내 성기를 만지고 뜨거운 숨이 내 목을 간지럽혀 몇 번 손을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금세 파정했다. 손바닥에 퍼진 뿌연 액이 궁금해서 혀를 내밀어 할짝댔다. 맛은 없었다.
“이거 쳐줘.”
피아노가 있는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너를 처음으로 방해하며 부탁했다. 나는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연주하는 너를 방해하지도 말리지도 않아서 처음으로 너의 시간을 깨부수는 것에 긴장으로 다리가 떨렸다. 너는 사나운 눈빛으로 내민 악보를 쏘아보았다. 혐오스러운 벌레를 보듯 했다. 나는 급하게 말을 이었다.
“네가 이걸 연주해주면 좋겠어.”
“내가 왜요?”
오늘 처음 입을 연 네 목은 잠겨 갈라져있었다. 좀 있다 환절기 대비로 만든 유자차를 챙겨야겠다. 머리 한 구석에 메모를 했다.
“듣고 싶어.”
너는 고개를 돌렸다. 들을 가치가 없다는 거다. 허벅지 위에 올린 손이 건반위로 움직인다. 천천히 시작되는 연주에 나는 묻힐까 목소리를 높였다.
“이걸 해주면 영원히 너의 곁에서 사라질게. 진심이야. 이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굴게.”
너는 그 곡을 받았다.
귀여워.
나는 네가 너무 귀여워.
싫은 나의 부탁 따위 들어주고 싶지 않을 텐데 사라져주겠다는 말에 받아들였다. 그 말이 진실이 아닐 수 있는데 널 갖고 노는 거짓말일수도 있는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곡을 받았다. 그 정도로 내가 싫었구나. 미웠구나. 증오하는구나. 완벽히 사라져주길 원하는구나.
그래. 생각해보면 그게 당연한 반응이었다. 나는 너의 인생을 완전히 망쳤으니까. 신처럼 네 위에 군림하며 너를 내 입맛대로 다루었다. 너의 첫사랑을 망친 이후로 나는 본심을 숨기지 않고 네가 관심을 주거나 너에게 관심을 주는 것들을 밟아 죽였다. 가로로 입술을 늘리며 가면 같은 얼굴로 말 몇 마디만 하면 홀랑 넘어오는 여자애를, 거짓말에 속은 불쌍한 것들을 옆에 끼어 다니면서 너를 찾았다. 너는 분을 내고 좌절하고 아파했다. 나한테 왜 그러냐 소리치기도 하고 없는 사람 취급하며 무시하기도 했다. 울며 빌기도 했다. 네 눈물은 성수처럼 성스러웠다. 너를 찾는 걸 쉬지 않았다. 분내가득 들어와 문이란 문은 다 닫힌 음악실 피아노 앞에 앉은 너의 뒷모습을 눈에 담았다. 너의 피아노는 격렬한 토네이도였고 삼키는 늪이었고 마음까지 적신 비였다. 너의 피아노를 차곡차곡 마음에 쌓았다. 내 마음의 양식을 채웠다. 더 이상 채울 수 없을 정도로 넘쳤는데도 그랬다. 너는 나의 유일한 구원이었다.
모든 연주가 끝나고 밖으로 나서는 사람들 무리에 섞여 나왔다. 차가운 가을공기에 폐부가 씻겨 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먼지 냄새가 나는 홀 안에서 몽롱하게 취한 몸이 가벼워진다. 숨을 크게 마시고 뱉었다. 삼삼오오 사라지는 군중 속에 좌우를 살폈다. 오른쪽으로 가면 지하철이고 왼쪽으로 가 신호등을 건너면 버스정류장이었다. 두 대중교통 모두 같이 입대해 따로 부대를 받아 소홀한 틈에 여자를 만나 결혼하려다 들키고 파혼한 너와 함께한 집으로 가는 것이었지만 발을 옮기진 않았다. 완전히 사라져주기로 약속했다. 약속은 지키라고 들어줘야했다. 이지훈의 인생에서 최승철이 완전히 꺼져야했다.
10년 이상이었다. 열손가락 다 펼치고도 모자라서 다시 접어야할 만큼 오랜 시간 속에서 이지훈과 최승철은 항상 함께였고 하나였다. 끔찍한 나에게서 조금이라도 떨어지려고 매일같이 몇 시간이고 피아노 치던 때를 제외하고 늘 붙어있었다. 밥을 차리고 약을 챙기고 청소를 했다. 밤에는 손끝하나 움직이지 않는 너를 내가 직접 옷을 벗기고 혀로 흥분시켜 스스로 위에 올라타 몸을 흔들었다. 입술을 찾아 응답 없는 키스도 했다. 가끔 아주 가끔 만져 달라 매달리면 최소한의 애무만 했었다. 너는 한순간도 나를 찾지 않았지만 내가 너를 찾아 팔 안에 가둬 안았다. 너는 싫은 얼굴로 밀어내지 않았다. 어딜 가든 눈을 뜬 순간부터 감는 순간까지, 아니 감는 그 순간에도 최승철은 이지훈의 삶을 같이 살았다. 그런 나를 너는 견뎠다. 혐오에 젖어 몸을 떨고 증오를 담아 쳐다보면서도 참았다. 내가 스스로 떨어지길 바라며. 아니면 둘 중 하나 죽길 바라며. 그렇게 오랫동안 나를 인내했다. 그리고 정말 네 소원처럼 됐어, 지훈아. 10년 이상 너에게 기생했던 나는 오늘 네 곁에서 떨어져나간다. 잘린 곳에 피가 뿜어져 몸은 더러워지고 생살이 잘린 고통에 입술을 물어뜯지만 생각보다 견딜 만 했다. 너에게서 떨어지면 죽을 것 같았는데 살만했다. 이미 죽어서 그런 걸까.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다.
발걸음을 옮긴다. 오른쪽도 왼쪽도 아닌 다른 길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너에게 붙어 지내서 갈 데가 없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사실 딱 한군데 있는데 거기는 최대한 미루고 싶다. 아직 받아들일 여유가 없다. 그러다 깨닫는다. 지훈은, 너는 날 참 많이 봐줬구나. 참아줬구나. 난 비슷한 것만 봐도 발작을 일으키고 죽을 것 같은데 너는 그런 나를 잘 견뎠구나. 눈물이 떨어진다. 메말라 사라진 줄 안 눈물이 둑을 부시고 쏟아진다. 소리 없는 울음은 지나간 길마다 떨어져 검은 꽃이 된다. 나는 오늘 너에게서 떨어졌다.
**
오지 않으려 했다. 남이니까 신경 쓸 필요 없다 여겨서 연락이 왔을 때 간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진짜 안 올 거야? 전화기 너머 묻는 말에 폰을 끄며 대신 답을 했다.
그런데 결국 왔다. 하루를 고민하고 이틀 째였다. 검은색 정장을 입고 검은 구두로 1층 오른쪽 맨 구석으로 걸어갔다. 그 끝엔 휑한 분향소에 나이가 좀 있는 상주가 있었다.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헌화를 했다. 두 번 절하고 반 절 후 상주를 뵈었다. 마주 본 상주가 누구냐며 물었다. 나는 입을 선뜻 열지 못했다. 말하지 않았구나. 같이 살던 사람이에요. 남자는 짧게 웃었다. 그냥 가려했는데 동창 애들이 붙잡았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은 배가 좀 나오고 주름도 생겼다. 풋풋한 남학생들이 이제는 누가 봐도 30대 아저씨여서 웃음이 났다. 너는 여전하다? 챙겨주는 육개장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뜨끈한 국물이 하루 종일 비어있던 위장을 데웠다.
“너는 알았냐?”
왁자지껄한 소음 속에 옆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던 친구가 물었다.
“뭘.”
육개장에 고기를 담아 펐다.
“승철이 형 뇌 암 말기인거.”
육개장의 고기가 결마다 살아있어 맛있었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검사했더니 말기라고 했다던데. 전혀 몰랐어?”
고개를 저었다.
“전혀? 형이랑 그렇게 친했으면서? 지금까지 계속 형이랑 연락한 사람이 너밖에 없었는데도?”
형은 나와 동거를 하는 걸 비밀로 했다. 나에 대해선 집착했으면서도 그랬다. 이유는 모르고 묻지도 않았지만 그것이 형의 일말의 양심이라 생각했다.
“전혀 몰랐어.”
형은 자기에 대한 이야기는 아꼈다. 반대로 나에 대한 관심은 많았다. 말하지 않았던 것까지 어떻게 알아서 구석으로 몰아 집요하게 괴롭혔다. 숨기지마. 나에게서 도망가지 마 억압했다. 그 숨 막히는 태도에 궁금한 적은 없다. 알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분향소에 들어오는 순간 좀 놀랐다.
“형 부모님 안 계셔?”
친구는 이상하게 저를 쳐다봤다. 그것까지 몰랐냐는 얼굴이다.
“형 어렸을 때 병으로 일찍 두 분 돌아가셔서 친형이랑 같이 살았잖아. 친척도 없어서 둘이 의지하며 어렵게 살았는데.”
형이랑 친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야. 나는 전혀 모르는 이야기다.
“엄청 가난해서 피아노도 겨우 쳤다는데.”
피아노 소리에 육개장을 휘젓던 숟가락이 멈췄다. 귀를 믿을 수 없어 되물었다.
“피아노?”
“어 형 피아노 쳤잖아. 오래 쳤을 걸. 잘 쳐서 상도 많이 받고 그랬어.”
최승철에게서 피아노는 그림자조차 느껴본 적 없다. 한 번도 피아노 앞에 선 적이 없었고 건반을 건드린 적도 없었다. 피아노의 묵직한 나무냄새도 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러다 고1때인가? 17살일 때 손가락에 신경이 망가져서 그만뒀어. 형 좋다고 쫓아다니던 미친 선배 하나 있었는데 그 놈이 망치로 형 손가락을 깨부쉈거든.”
유명하다고 했다. 유망 받던 17살 피아니스트의 끔찍한 사건은 뉴스와 지역신문에도 나올 만큼 떠들썩했다. 음악실에 낭자하던 피를 보지 않은 학생이 없었다. 미친놈의 소름끼친 웃음소리는 경찰에 잡힐 때까지 학교를 흔들었다. 거품을 물고 기절한 형은 치료를 위해 1년을 학교도 피아노도 쉬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힘든 재활치료를 받고 다시 돌아왔을 땐 모두다 그 사건을 잊었었다. 아무도 그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상처만 남은 형은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다. 좋아하던 피아노 저 멀리 서서 죽은 사람처럼 살았다.
생각해보니 형은 손을 좀 떨었다. 관심을 주지 않아 잘 몰랐지만 젓가락질을 하면 반찬을 자주 떨어뜨렸고 숟가락이 그릇에 긁혀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얼굴을 잡고 억지로 키스할 때 머리카락이 흐트러졌다. 그 땐 흥분으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몰랐던 사실에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이 얼얼했다.
“나 간다.”
일어섰다. 소주잔을 주고받던 동창들이 말린다. 더 있다 가. 나는 손사래로 잡아오는 손길을 거절하고 빠르게 병원을 벗어났다. 눈이 아플 정도로 밝은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뛰쳐나온다. 환하게 웃는 사진에게 일부러 시선을 주지 않으려 노력한다. 상주는 보이지 않았다.
나온 밖은 어두웠다. 시계는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날씨가 좀 풀린 봄이지만 여전히 밤공기는 시렸다. 크게 마신 숨이 심장과 폐부를 씻고 더러운 것을 몸 밖으로 토했다. 코에 돌던 향냄새가 씻겨 사라졌다. 장례식에서 쏟아지는 빛을 받으며 앞을 보았다. 왼쪽은 버스정류장이 있고 오른쪽은 신호등을 건너면 지하철이 있다. 둘 다 집으러 가지만 선뜻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갈 곳이 없었다.
‘가자, 지훈아.’
뒤에서 손목이 잡히고 옆으로 형이 나타난다. 가볍게 앞으로 끄는 힘에 몸이 움직인다. 약간 앞에 있는 형에게 잡힌 손목을 보면 멍청히 공중에 뻗은 제 손목 밖에 없는데 고개를 위로 올리면 형이 있었다.
‘차는 어디다 뒀어?’
묻는다. 나는 대답 없이 형의 뒷모습만 보았다.
‘너 보니까 육개장 남겼던데 오늘 밥도 안 먹었지? 나 없다고 굶을 줄 알았어. 피아노도 체력전이라 자꾸 굶으면 안 돼.’
잔소리가 심하다. 형은 피아노와 관련된 것에 대해선 양보가 없었다. 연주를 시작하면 가만히 두었는데 그 외엔 심하다 싶을 정도였다. 부모님보다 더했다. 그것이 귀찮아서 무시하지만 더 심해지니까 군말 없이 따랐다. 그래야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사라지니까. 빨리 형이 하라는 대로 하고 피아노 의자에 앉으면 형의 관심 속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
정류장이다. 버스는 바로 왔다. 본인 걸 찍는 형 뒤를 따랐다. 버스는 잘 타지 않아 지갑에서 현금 이 천원을 냈다. 따랑 따랑 동전이 떨어지고 거스름돈을 받아 양복 주머니에 넣었다. 형은 어느새 뒷문 뒤 2인 좌석에 앉아 손짓을 했다. 그 옆에 다가가 앉았다. 자연스레 창문으로 돌아간 얼굴 따라 밖을 보았다. 병원과 연계되어 있는 장례식장이 우뚝 선 나무들 사이에서 허옇게 질려있었다.
“저기에 형이 누워 있었어.”
새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래? 형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럼 사라질까?’
눈을 마주본다. 사라질 수 있어? 형은 그 이후로도 계속 내 옆에 있었잖아. 나에게 떠나겠다고 약속한 공연 이후로도 형은 내 옆에 남아있었다. 아침까지 있던 짐을 어떻게 다 뺐는지 몰라도 집이 텅텅 비었었는데 형은 곳곳에 살아 숨 쉬었다. 피아노를 치면 문에 기대 몇 시간이고 서서 감상하고 밥을 먹으면 앞에 앉아서 먹는 걸 지켜봤다. 가리는 건 많지 않지만 음식이 없으면 없는 대로 굶기도 해서 굶으면 화를 냈다. 밥 먹어! 무시하면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그 시선이 불편해서 먹을 수밖에 없었다. 누우면 조용히 옆에 누웠다. 잠에 빠지면 가슴을 가볍게 토닥였다. 형은 계속 계속 남아있었다.
버스가 출발한다. 가볍게 몸이 뒤로 밀리고 앞으로 나가는 버스 창문으로 장례식장이 빠르게 사라져간다. 옆에 앉은 형은 어느새 버스 앞창에 시선을 던졌다. 스쳐가는 주황 등이 형 얼굴에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 얼굴을 가만히 보다 깨닫는다.
형은 내가 아니라 피아노를 사랑했던 것을.
나는 형에게 피아노였을 뿐이라는 걸.
그저 피아노였을 뿐임을......
지훈은 오늘도 피아노를 친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승철이 죽을 때까지 사랑하던 피아노 앞으로 간다. 먹색 그랜드 피아노 뚜껑을 열고 의자에 앉아 형이 사랑하던 악보를 올린다.
‘그 곡 진짜 좋아하는데.’
형은 어느새 문가에 기댔다. 알아요. 지훈은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손가락을 털고 누를 건반 위로 손을 올린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고,
지훈은 눈을 감는 환상을 뒤로하고 승철을 연주한다.
연주는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