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의 맹시 외전
아침 6시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뜬 지훈은 승철이 깨지 않도록 탁상시계 머리를 꾹 누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잠 잘 때 손가락 하나라도 맞닿아야 잠이 온다고 잘 때까지 지훈을 괴롭히며 떨어지지 않던 승철은 이불과 혼연일체가 되어 꽈배기처럼 베베 꼬여있었다. 잠버릇을 알아 이불 2개를 덮어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밤새도록 추위에 떨었을 걸 생각하면서 지훈은 승철의 얼굴을 눈으로 훑었다.
어젯밤 미국에 왔으면 할로윈파티를 제대로 즐겨야 한다며 처녀귀신 분장을 하고 거리를 밤새 활보하느냐 지쳐 폭 곯아떨어진 얼굴에 피곤이 더덕더덕 붙어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아서 일 년에 한두 번 밖을 나갈까 하던 사람은 미국 공기를 마시고 미쳤는지 매일같이 밖을 쏘돌아다녔다. 잘 쓰지 않던 흰 지팡이를 들고 건조한 햇빛과 싸늘한 공기를 즐기며 벤치에 앉아 아무 사람과 짧은 영어로 대화도 주고받았다. 낯선 환경에서 씩씩하게 사는 것 같아 지훈은 기분이 미묘해졌다.
“그럼 이제 혼자 다닐 수 있겠네?”
맞은편에 사는 암몬 씨한테 저녁 식사를 하러 오라는 초대를 받았다며 저를 시켜 이 옷 저 옷을 꺼내 입었다 벗었다는 하는 승철에게 그리 말했다. 밖을 돌아다녀도 내가 없으면 불안하다고 손 꼭 붙잡고 다니면서 나도 모르는 새 언제 그런 걸 약속 잡은 거야? 청바지 단추를 막 잠그던 승철이 씩 웃으며 지훈의 팔을 철썩 쳤다.
“질투하는 거야?”
“...뭐가.”
“귀여운 놈. 우쭈쭈쭈.”
아 좀! 엉덩이를 툭툭 치고 개새끼 부르듯 혀를 굴리며 귀여워한다. 민망해서 확 소리를 질렀다. 승철은 에쿠! 큰 소리에 놀라면서도 장난기 어린 얼굴을 지은 채 옷 갈아입는 내내 지훈을 심적으로 괴롭혔다.
“good morning!"
"HI"
밖으로 나와 문 앞에 놓인 신문을 집은 지훈이에게 조깅을 하며 지나가던 레이첼이 활기찬 인사를 보냈다. 지훈도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 문을 닫았다.
“이 놈의 신문을 진짜 끊던지 해야지.”
승철은 볼 수 없으면서 예전 미국 영화를 봤을 때 꼭 따라하고 싶었다며 신문을 주문했다. 이민 오던 첫 날에 지훈을 시켜 신문을 끊더니 다음 날 문 앞에 놓인 신문지를 들고 어린아이들처럼 꺄아 소리를 질렀다.
아침부터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앉아! 정신없는 사람을 잡아 식탁 의자에 앉혔더니 하는 짓이 가관이다. 신문지 냄새를 맡고 시리얼과 토스트를 먹으며 신문을 보는 척 한다. 거꾸로 신문을 들었으면서 아는 영어 단어를 총 동원해 미국 경제가 어쩌고 정치가 어쩌고 코미디를 찍는다. 그것이 퍽 한심스럽고 웃겼다. 짠하기도 했고. 얼마나 하고 싶었으면 저럴까. 그래서 그냥 내버려 두었다. 내버려뒀는데 지금은 관심이 끊겨 주우러 가지도 않는다.
돈 아까운데 끊지? 펴지도 않고 쌓이다 일주일이 되면 쓰레기통에 직행하는 신문이 아까워 그리 말했지만 폼생폼사라고 죽어도 못 끊겠단다. 고작 신문이지만 이걸 들고 공원을 걸으면 얼마나 멋진지 너 모르지?
글쎄. 별로일 텐데. 지훈은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걸 꾹꾹 삼키곤 고개를 저었다. 지가 알아서 하겠지.
……알아서는 무슨. 외출할 때 외엔 신문에 손도 대지 않는 승철 대신 신문을 줍고 읽고 버리는 건 온전히 지훈 몫이 됐다. 매달 빠져나가는 돈이 아까워서 뭐라고 썼는지 모르는 영어들을 더듬더듬 읽으며 강제로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덕분에 매일 아침 머리가 욱씬 쑤셨다.
“으하함”
입이 찢어진다. 밤새 승철을 잃어버릴까봐 긴장한 몸이 피곤을 충분히 풀지 못해 녹진했다. 크게 하품을 하고 팔팔 끓고 있는 냄비 뚜껑을 열어 재료를 담았다. 한국에서 보내준 김치를 송송 썰고 계란과 햄을 섞어 스크램블 에그도 만들었다. 냉장고에 어제 장 본 식빵이 있었지만 꺼내진 않았다. 질려.
처음엔 미국에 왔으면 -그놈의 미국, 미국 아주 신물이 날 지경이다- 토스트 위주의 식사를 해야 하지 않겠냐며 삼시세끼 빵만 먹었다. 피자, 토스트, 햄버거 기타 등등. 한국에 태어나서 한국입맛으로 길들여진 지훈이에겐 죽을 노릇이라 적응하기가 참 힘들었다. 생활환경에 큰 불편이 없었고 적응도 잘했는데 음식 때문에 고생이었다. 난 도저히 못하겠다며 극구 반대를 했지만 형의 고집은 제 고집 못지않았고 나 몰래 토스트를 굽다가 손을 데어 다쳐서 결국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 맛이야.”
붕대를 두른 손으로 포크를 집으며 음식을 먹는데 진짜 명치 한 방 때리면 속 시원할 것 같았다.
그래도 얼마 못가 서양식 식사는 끝이 났다. 속이 더부룩하고 니글니글거리고 죽겠어. 김치 없어? 냉장고를 뒤져 미국 와서 한 번도 열지 않은 김치를 꺼내 집어 먹었다. 그럴 줄 알았어. 김치 국물로 더러워진 턱을 휴지로 닦아주며 그날 김치볶음밥을 해줬다. 승철은 두 그릇이나 깨끗이 비웠다.
“일어나.”
“으응...”
아침 식사 준비가 끝마칠 때까지 승철은 일어날 기색이 없었다. 지훈은 손을 씻고 바지에 대충 물기를 문질러 닦으며 침대에 누운 승철을 살살 흔들었다. 조금만 더. 하고 베개를 얼굴에 묻고 이리저리 피하지만 결국 눈을 비비며 기상했다. 눈 부었어. 쌍꺼풀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퉁퉁 부어서 붕어 같았다. 이리저리 뻗은 머리를 손으로 정리하며 킬킬 웃었다. 승철은 웃지 마. 입술을 부루퉁 내민다. 얼른 씻고 나와.
아침식사가 끝마치고 난 뒤 지훈과 승철은 이른 외출을 했다. 오후에 비가 온다는 소식에 얼른 가서 한 바퀴를 돌자며 형이 재촉했다. 운동 겸 이웃과 소통할 겸 감기에 걸리지 않게 옷을 챙겨 입고 나와 천천히 한 바퀴를 돌았다. 젊은 사람들은 출근해 보이지 않았고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몇 분 계셨다. 승철은 매일 보는 공원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고 담소를 나누었다. 온 지 석 달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대화가 들리기 시작한 지훈은 적당한 맞장구를 치기만 할 뿐이다.
“타일러 씨 개가 새끼를 낳았대. 관심 있으면 한 마리 분양 받으라는데 어때?”
도그가 어쩌고 하더니 승철이 눈을 빛내며 지훈을 바라본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훈이 안 돼. 단호하게 답했다. 왜에~ 지훈의 팔을 잡고 좌우로 흔들며 애교를 떤다. 지훈은 절대 안 돼. 개 키우면 백 프로 내 몫이야. 형은 예뻐하기만 할 거잖아. 승철이 대신 정중하게 타일러씨에게 거절의 의사를 표하고 가기 싫다는 승철을 질질 끌었다.
“이지훈 나빠!! 개 그거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들다고!!!”
“최승철이라는 걸 키우는 것만으로도 벅차. 형이 직접 똥오줌 치울 거 아니면 입 닫아.”
치. 내가 갠가. 투덜거리며 지훈의 손을 앙 문다. 성질부리지 말고 그만 포기해. 물린 손을 움직여 목구멍을 찔렀다. 우엑. 구역질을 하며 물던 손가락을 빼는 승철이 등을 어지간히 패악 좀 부리라며 퍽퍽 두들겼다. 아 아파! 지지 않고 때리는 승철의 주먹은 불주먹이었다.
외출이 끝나고 승철은 침대에 누워 나 삐졌소, 시위를 했다. 지훈은 집안일을 했다. 두 사람뿐인데도 빨래는 왜 이렇게 많고 집은 왜 이렇게 더러운지. 세탁기를 돌리고 창문을 열어 청소를 하고 나니 벌써 세 시였다. 아침과 다르게 어둑어둑해진 하늘에 비오면 역시 파전과 막걸리지, 입에 침이 고였다.
“배 안고파?”
“....”
“파전 먹을래?”
“....”
“싫으면 말고.”
방문에 기대어 등을 보인 승철에게 물었지만 미동이 없다. 잠들었거나 여전히 삐졌거나. 둘 중 뭐든 지만 손해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부침가루가 없어 동네 마트에 다녀왔더니 비가 우수수 쏟아진다. 급하게 뛰어 들어가 묻은 비를 닦고 부엌에 가니 어느새 승철이 식탁 의자에 무릎을 모아 앉고 있었다.
“파전.”
“기다려.”
여전히 불퉁한 얼굴이지만 얌전하다.
“김치전도 해줘.”
“귀찮아.”
“개 포기할게. 그러니 해 줘.”
“참... 알았어.”
헤헤. 얼굴이 헤벌쭉 구겨진다. 반죽한 것을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붓자 차아악- 기름 냄새가 퍼진다. 한 면이 고루 익을 때까지 기다리다 뒤집자 뒤에서 승철이 아으윽 앓는 소리를 낸다. 빨리 먹고 싶어!! 탁자를 손바닥으로 탕탕 때리며 재촉한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봐. 어느새 일어나 지훈이 뒤에 서서 기다리는 승철을 다시 의자에 앉히며 달랬다.
“김치전 꼭 잊지 말아야 돼!”
“그래그래.”
파전이 창문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를 내며 노릇노릇 익어갔다.
파전과 김치전으로 배를 채우고 나서 둘이 꼭 껴안고 잤다. 한국에 있을 때 불면증에 시달려 제대로 자지 못한 나날에 대한 보상인지 미국에선 머리가 베개에 닿으면 자기 바빴다.
“벌써 자?”
자기 아깝다며 몸 위로 올라와 가슴을 빨며 놀아달라는 승철을 잡아당겨 입술을 핥으면서 품에 안아 3시간을 잤다. 낮잠치고 긴 시간을 자고 일어나니 형도 어느새 얌전히 잠들었다. 얼굴을 가리는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가만히 바라보았다.
거칠었던 피부가 부드러워지고 혈색도 좋아졌다. 살도 어느 정도 붙어 보기 좋은 얼굴엔 슬픔이라거나 불행 같은 우울한 감정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사고가 있기 전에 형은 이런 얼굴이었을까? 많이 웃어 생긴 눈주름과 내려오지 않는 입 꼬리가 가슴 벅차도록 기쁘다. 같이 있던 7년 동안 겪어보지 못한 감정이 샘솟아 넘쳐흘렀다.
그것은 때떄로 눈물이 되었다. 그 때마다 울보라고 승철이 형이 놀린 것 같은데. 그러는 저도 눈이 촉촉해서 지훈도 웃기만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산다는 것. 생각지 못한 이민을 하고 낯선 땅에서 서로를 의지한 채 산다는 게 이리도 행복한지.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형을 사랑하고 만지고 함께 한다는 게 두렵도록 가슴이 떨린다. 언젠가 형이 내 모든 걸 알고 떠날지 모르는데-.
아직 두 사람의 과거는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승철의 악몽은 3개월 째 잠잠하지만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 모르고 지훈의 상처는 피만 겨우 멈춘 상태다. 언제 또다시 곪아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끌어안으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그럼에도 함께 하는 건, 사랑하기에.
아는 사람이 없는 낯선 땅. 두 사람밖에 없는 공간에서 서로만 바라보며 의지하고 사랑하며,
함께 그렇게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