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쿱] 백호x백사자
10.
쭈뻣쭈뻣한 걸음걸이와 어딘가 결연에 찬 듯한 얼굴로 들어와선 사랑방에 죽 둘러앉은 어르신들에게 인사하는 우쿱 보고싶다.
그래 무슨 일로 우리들을 다 보자고 했나?
할아버님 아버님 이모님 고모님 늠름한 사자처럼 근엄하게 앉으셔서 두 사람 바라보는 시선 아무것도 안했는데도 무섭고. 평소 사자들이 그렇게 무섭다고 느껴본 젹 없던 호랑이가문 17대 직계속 즤흐니는 등 뒤로 흐르는 식은땀에 마른 목구멍을 꿀꺽 삼켰다. 옆에 같이 무릎꿇고 앉은 슨쳐리가 힐끔 즤흐니를 살폈다.
저희 결혼을 허ㄹ....
나 임신했어요
아.
큰일 났다.
경악으로 점점 물들어가는 어르신들의 표정을 실시간으로 바라보며 즤흐니의 뱉을 수 없는 한숨이 가슴을 꽉 채우고 옆에서 먼저 폭탄을 터뜨린 슨쳐리는 얼굴이 새빨갛다.
8주 됐어
뭐...무슨...
쉽게 말을 못하는 어른들. 흐트러져 혼현도 슬쩍 보이고 사자냄새도 슬금슬금 난다. 혼자 호랑이인 즤흐니는 점점 자리가 불편해진다. 이 형이 분명 사고치지 말라고 얘기했건만. 호랑이가문 사자가문 대지의 강한 육식계 동물로써 오랜 세월 경쟁했고 아직까지 서로 탐탁치 않은 부분있어. 그래서 둘이 연애할 때 아무도 모르게 연애했었고. 밤을 함께 보내면 (즤흐니는) 좋아하지 않는 향수 뿌리고 그랬는데. 어제저녁 울망울망한 얼굴로 테스터기를 보여주던 슨쳐리를 꽉 안아주며 즤흐니는 지옥불길을 걷는 심정으로 하룻밤을 꼬박 보냈지. 으리으리한 기왓집 대문앞에서 마주잡아오는 슨쳐리 손을 깍지 껴 잡으며 해보자 다짐도 했지만 그건 다 기승전결을 짰던 즤흐니 나름의 사자가문 어르신들을 설득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다짜고짜 먼저 임신했다고 폭탄을 터뜨린 형때문에 말짱도루묵. 그렇다고 마냥 형을 탓할 수도 없다. 어쨌든 나올 얘기였고 그리고 먼저 정신 차린 슨쳘의 엄마, 즤흐니의 미래 장모님이 이 못난 자슥아!! 하며 슨쳐리를 마구 때려 말려야했기 때문에.
아악 엄마!! 엄마 나 죽어!!작은아들 죽어!!
죽어라 이자식아!! 맨날 사고만 치고 그러더니! 놀고먹고하다가 이제 정신을 차리는가 싶더니 임신을 하고 와!!
어머니 잠시만 노를 푸시고..어억..
아비규환. 풍비박산 그 자체. 작은 덩치지만 힘으론 어디 가서 안 지는데 즤흐니 이리저리 휘둘렸다. 어르신들은 안 말리고 거 아닌 척 거기좀 더 때려하는 소리도 들린 것 같은 착각 속에 즤흐니 때리지 마! 집에 가겠다는 걸 내가 가지 말라고 붙잡아서 그런 거야 ㅠㅠ내가 꼬셨어ㅠㅠ쟨 잘못 없어ㅠㅠ이런 소릴 해대는 슨쳐리에 덜 맞을 거 더 맞았다. 즤흐니는 형 입 입좀 말리고싶었고. 할 수 있는 건 예비 장모님 손에서 형을 구하며 자기가 더 맞는 거다. 그것도 우리 즤흐니 어디 때릴 데가 있다며 우리 아이 애비 없는 자식 만들거냔 소리까지 해서 .... 잘못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거친바람 맞은 꼴로 석고대죄했다. 그 옆에서 더 만만치 않은 꼴로 즤흐니 머리정리하는 슨쳐리를 아무도 말리질 못했다.
여기까지 보면 슨쳐리와 즤흐니가 엄청나게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고 어린나이에 사고친 것 같지만 사실 얘네 나이 나란히 서른 스물아홉이다. 어른들 사이에서 슬슬 결혼을 해야하지 않겠냐며 선 소리나왔고. 심지어 슨쳐리 형도 속도위반으로 태어났다. 그 부모에 그 아들이었음. 그런데 왜 이런 반응이냐하면 슨쳐리 집안이 보수적이라서. 부모님들도 슨쳐리 형 가졌을 때 집안 난리 났었다. 결혼부터 하고 아이를 가져야지 아이가 생기고 결혼을 하냐고. 어렸을 땐 무슨 소린가 했고 커서 그 의미를 알았고 그래서 어른들 말씀 잘 지키려고 했는데 아니 그날따라 즤흐니를 보내고 싶지 않더라구... 막 밤이 무섭고 외롭고 애인이 있는데 혼자 침대에 누워있는 게 말이 돼? 이런저런 거 다하고 숱한 밤도 같이 보낸 연인이 여기 있는데 가지마라. 너 가면 나 뭐할지 몰라. 너 내가 혼자 자면 좋겠어? 막 외롭게 누워서 자면 잠이 잘 오니?? 말이 안 되는 협박으로 즤흐니를 침대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처럼 손장난 발장난하는 슨쳐리를 밀어내지 못했고. 처음엔 부끄러워하다 쾌락을 맛보기 시작하면 정신 차리지 못하게 야해지는 슨쳐리때문에 ㅋㄷ이 없어서 안 된다고 말을 못하고 뜨겁게 밤을 보냈다. 그래서 테스트기를 볼 때 그렇게 크게 충격을 받지 않았지. 기쁘기도 했지. 연애를 하며 결혼얘기를 한 적 없는 두 사람이라 얼떨떨하긴했지만....즤흐니는 갑자기 깬 새벽에 옆에 누운 슨쳐리를 보며 그 생각을 했다. 형이랑 결혼해야겠다고. 하고싶다가 아니라 하겠다는 의지. 잠에 빠져 베개에 눌린 뺨과 벌어진 입술과 구부정한 자세가 남들과 다를 게 없는데. 달랐다. 꼬리처럼 제다리로 지훈의 다리를 꼬아 감은 슨쳐리는 특별했다. 그게 무엇인지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해 설명을 못하겠지만. 사자들에게 둘러싸여서 사나운 눈빛을 받는 이 곳에 꿋꿋하게 앉아있는 이유가 답이 되지 않겠냐며.
아이가 생겨서 하는 결혼 아닙니다. 형을 사랑합니다. 결혼허락해주세요.
(개멋있어)
슨쳐리는 즤흐니에게 또 반했다. 조르고 졸라도 사랑한단 말 한마디 안해주는 즤흔이가 결혼앞에서 입에 담는다. 남발하면 의미가 퇴색된다며 아주 가끔 슨쳐리가 서운해서 말안 할 때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며 귀 빨개진 채 얘기하는 애인은 호랑이답게 위엄있다. 마음들이 말랑해진다. 말랑말랑해서 즤흐니는 자기소개를 했다. 직업과 연봉 이런 것도 그렇고 슨쳘과 뱃속의 아기와 어떻게 생활하지도. 슨쳐리는 거기서 좀 놀랐다. 밤새 못자고 까칠한 얼굴로 아침밥을 전투적으로 먹고 집에 올 때까지 아무말 안해서 걱정했는데. 거기까지 생각했구나. 슨쳐리라고 미래를 걱정안한 거 아니고 부모님께 받은 재산은 비상용으로 아끼고 월급은 허투루 쓰지 않고 저금해서 알뜰하게. 즤흔의 연봉을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높은 직급으로 예상했을 때 결코 적지 않으니 나쁘지 않겠지 싶었다. 일단 결혼허락이라는 큰 산이 버티고 있어 거기까지가 다였어. 근데 우리 멋있는 호랑이는 어쩜 이리 섬세할까. 다정한 연인. 무심한 부분도 있어서 잘 삐치게 만들지만 착하고 따뜻한 호랑이지. 아가야. 어쩜 네 호랑이아빠 이리 멋있니. 내 남편답다.
할머니 아빠 엄마 작은 할아버지들. 나 잘 살거야.
둘째라고 형만큼은 아니어도 기대많이 했던 어른들을 똑바로 마주하며 슨쳘인 자신한다.
너라서 걱정이다.
슨쳘빼고 모두다 똑같이 고개를 끄덕인다. 즤흔이조차도.
내가 왜요? 나 잘하고 있는데!!
잘하곤 있다. 요즘 들어서. 교복을 입던 시절엔...(절레절레)
사고를 안쳤지 사건은 많았다. 슨쳘이는 다 좋은데 너무 활발해서... 담당선생님들마다 똑같은 얘길했다. 얘는 착해요 똑같은 사고치고 슨쳘이를 감싸는 사건의 주동자 윤과 방관자 홍은 그리 말했다. 졸업하고 나서 술밖에 남지 않는 대학시절과 역시 술로 살았던 초년생 시절에도 슨쳐리는 얘는 착해요 소릴 들었다. 바로 퇴사하고 좀 더 먹고 놀다가 일하겠다는 아들의 등짝을 때리며 가문에서 운영하는 기업계열사에 보내고 생각보다 잘 다니고 일도 잘해서 회장이신 할머니가 슨쳘이를 좋게 보시던 참에 속도위반이라는 사건을 터뜨리니 부모님 속이 속이 아니다.
사실 맞을 정도로 얘가 잘못한 건 없어. 숨긴다고 숨겼지만 부모님이라고 모를까. 슨쳘에게서 연하게 나던 희미한 호랑이냄새. 잦은 외박과 주말 외출. 옷이 다인 1일2택배를... 딱 쟤 연애한다. 상대가 호랑이같다. 각이 안 나왔을까. 다만 임신만 예상을 못했을 뿐. 할 말이 있다고 어르신들 모이라 해서 호랑이와의 연애를 밝히나했던 부모는 슨쳘과 함께 들어온 작은 호랑이를 보고 좀 놀랐다. 있다는 집에서 그렇게 탐낸다는 사윗감이 인사를 하네. 저런 상대가 왜 우리 애를??? (엄마생각에)눈 빼고 볼 거 없는 우리아들 어디에 반해서, 일은 잘하지만 본인 직급에 비해서 아무것도 아닐 텐데. 사자보다 더 손이 귀한 호랑이가문 귀한 아드님이 왜 우리 아드님과 사귀는지 의문이다. 키가 조금 아쉽긴 하지만 호랑이다운 분위기에 부모는 슨쳘이 한번 즤흔이 한 번 번갈아봤다. 저놈이 아깝다. 그게 임신이라는 폭탄을 던지기 전까지 부모생각이었다.
호랑이랑 엮어서 좋은 일 한 번 없었는데....왜 하필...
제일 어르신 할머니가 한숨을 푹 쉰다.
왜 호랑이라서...
물렁했던 마음들이 단단해진다. 즤흔 얼굴도 굳는다.
자네 가문이 허락해줄것 같나?
허락하게 할겁니다
어떻게?? 지금 우리 허락도 못 받는데 자네 가문의 허락을 받을 수 있나 자신하지. 무엇보다 우린 호랑이랑 엮일 생각 없다. 그 말은 두 사람 결혼 허락 안 한다는거다.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돌아가게나. 어떤 얘기도 안 들을 거니.
즤흔은 그렇게 쫓겨났다. 즤흔이랑 같이 가겠다 고집하던 승철은 우락부락한 덩치들(=친적형동생들)에게 잡혀 즤흔과 말도 못하고 빈방에 갇혀서 헤어지겠단 소리 할 때까진 나올 생각도 말라고 으름장을 놨다. 슨쳘은 발발 뛰었고 사자의 기운으로 창을 통해 뛰쳐나가려했으나 임신 초기엔 조심해야한다고 의사쌤이 그래서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에 가출했다. 침대에 누워 꼼짝 안하길래 시름시름 앓고 있다 생각했더니 새벽에 튀려고 체력보충한 거다. 교복시절 큰집담장을 넘던 실력으로 훌쩍 도망쳐선 골목 저쪽에 검은 세단으로 뛰어갔다. 확인도 않고 훌쩍 열어 들어가서 가장 먼저 한 말이 밟아! 였고 즤흔은 엑셀을 밟았다.
춥게 왜 얇게 입고 왔어요. 뒤에 담요있으니까 덮어요.
잠바는 소리나잖아 바스락바스락. 소리안나야 안 들켜.
담요를 목위까지 두르며 슨쳘이 히히히 웃는다. 다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야.
즤흔도 피식 웃곤 히터를 더 높였다.
배고파요? 뭐먹을래요?
카레먹고싶어
...옆에는 있어줄게요.
같이 먹어도 되는데.
사양할게요
치... 결혼하면 달마다 카레먹을거야. 잔뜩 먹을거야.
카레보다 더 맛있는 거 사줄테니까 참아요.
뭐 사줄건데?
연근절임?
야아!!
티격태격하면서 즤흔이 오피스텔로 향한다. 이 시간에 여는 카레가게 없어서 카레말고 사골국 사줬고 즤흔이가 함께 맛있게 먹어줬다.
먹고 한숨 푹 잔 다음에 두 사람 호랑이굴에 들어갔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호랑이밭에 뛰어들었다. 마른 초원냄새가 나는 사자들과 달리 습한 흙냄새가 나는 호랑이동굴은 무섭진 않았다. 같은 고양이과라고.. 계피 비슷한 좋은 냄새에 슨쳘은 킁킁 냄새를 맡다가 갸르릉 울었다. 네 냄새가 나. 좋다. 즤흔은 보조개를 만들며 귀를 긁었다. 그리고 호랑이굴은 사자밭과 다르지 않았다.
왜 하필 사자냐.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최고의 난제가 될 호랑이가 세냐 사자가 세냐를 두고 비겁하게 치열하게 유치하게 싸우는 두 집안에 두 사람은 좀 질렸다. 사랑하는 상대가 사자/호랑이가 그렇게 큰죄인가. 그리고 이번엔 즤흔이가 잡혔고 슨쳘이는 쫓겨나기보다 정중히 대문 밖으로 모셔졌다.
임산부는 조심하셔야죠.
그리고 즤흔은 초딩 때 애용하던 개구멍을 통해 오피스텔에서 입 벌리고 잔 슨쳘옆에 누웠다. 와써...
우물우물 옆으로 돌아누우며 안아오는 슨쳐리 팔을 감싸며 자요했다.
그렇게 늦은 나이에 처음 반항한 즤흔과 정신차린줄 알았더니 반항한 슨쳘은 오피스텔에서 마지막 주말을 꼼질거렸고. 주말 밤에 꺼놨다 킨 폰이 뜨겁게 울려서 늦은 밤에 상견례했다. 서로 탐탁치 않아하며 견제하는 호랑이들과 사자들. 왜 사자인가 호랑이인가로 탐탁치않다. 그렇다고 슨쳘과 즤흔이 성에 안 찬다는 소린 아니다. 서로 각 집안의 귀한 자식이고 명망있는 가문의 자제들인데 부족할 게 뭐 있나. 내 자식이 더 아쉽지. 단지 안 맞는거다. 호랑이랑 사자가. 태초에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다는 맹수들의 싸움이 지질하게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즤흔과 슨쳘은 그 싸움에 끼어들 생각 없고-물론 사귀다 호랑이는 저래서 문제라고 사자는 다 그러냐며 싸운다- 그냥 딱 잘라말했다.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부연설명 하나 없이 자신감있는 목소리로. 그리고 둘은 해외로 가출했다. 신혼여행을 빌미로.
먹고 자고 놀았다. 둘 다 크게 사고 친 거지. 없으면 회사 안 돌아가고 특히나 즤흔은 맡은 직급이 높아서 하루만 비어도 서류가 하늘높은 줄 모르고 쌓여있는데 쉰다 어쩐다말없이 사라졌으니 양쪽집안 난리났다. 사자/호랑이를 만나서 저 모양 저 꼴됐다고 눈이 세모나졌다. 그 틈에서 두 사람은 하루 놀고 다섯 끼 먹고 삼일을 집안에서 놀았다. 다행히 입덧이 강하지 않고 본래 체력이 좋아서 탈 없이 여유를 보냈다. 때때로 불안함이 들긴 했지만 이미 친 사고 어쩌겠어 될 대로 돼라라서.... 그래도 꼬박꼬박 어르신들께 연락했다.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뻔뻔한 안부인사에 부모님들 뒷목도 많이 잡았다. 거기다 같이 찍은 커플사진을 보냈는데 슩쳘이가 젤 좋아했다. 연애 땐 지훈이 사진 잘 안 찍으려했거든. 민망하다고. 그런데 이번엔 어른들께 우리가 얼마나 행복하게 잘 지내는지 보여줘야 한다는 슩쳘의 설득에 고개를 끄덕여서 못해도 하루에 한 장 찍었고 뜬금 없이 뭘 먹고 싶다 하면 즤흔이가 사러가는 혼자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에 그 사진들을 차례로 훑어봤다. 얼마 안된 것 같은데 이리도 많이 찍었네 하면서. 귀여워. 멋있어.
조금씩 배가 부르면서 배를 드러내며 찍은 사진들도 보냈다. 하나같이 유쾌하고 따뜻한 그림들이었다. 종이컵전화기를 하나는 승철이 배에 하나는 지훈이 입에. 부모는 사진이 뜬 폰 화면을 쓸었다.
결혼은 한국에서 해야 하지 않겠니.
결국 어른들이 졌다.
들어와서 두 사람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혼인신고서 작성이었다. 그다음에 밀린 업무 틈에 결혼식을 올리고 정신차려보니 출산임박. 중기 들어가면서 냉장고냄새를 못견뎌해 새로 한 음식만 먹어야했던 승철의 얼굴은 신선한 음식을 섭취한 효과로 빤딱뽀딱해졌다.
형 얼굴이....
새삼 형 얼굴보고 빨개진 지훈에 살쪘다는 소린 줄 알고 오해할 뻔한 승철이 방긋 웃으며 꽃받침을 했다.
예쁘지?
소름은 돋았지만 아니라고 말 못해서 한참 놀림 받았다.
말기엔 지훈이가 대신 승철의 발톱을 깎아줬다. 둥근 정수리에 자꾸 뽀뽀를 해서 진도는 느리게 나갔다.
출산은 두번은 못할 짓이라고 결론내렸다. 승철은 힘 닿는데까지 낳고 싶었고 지훈도 둘에서 셋은 원했는데 출산을 겪고 보니 미안하고 아파서 못할 짓이다. 듣는 것과 보는 게 달라서 실제로 통증으로 땀을 흘리며 지친 형을 제가 어떻게 해줄 수 없다는 게 너무 분했다. 사랑해서 만나고 결혼까지 했는데 제가 도와줄 수 없는 영역이 이렇게 뚜렷해서 지훈은 참 많이 울었다. 옹알이하는 한솔이에게 이유식을 먹이며 승철은 너보다 네 작은 아빠가 더 울었다고 자주 얘기할 만큼.
하지만 진정한 지옥은 지금부터라- 자주 놀러오는 작은 아버지 사촌들 석민과 찬이가 한솔을 천사라 부르고 지혜롭게 호랑이사자 반반 닮은 타이건 한솔에 태초아래 제일 평화로운 호랑이와 사자 속에서 한솔은 어제도 울고 오늘도 울고 내일도 울 예정이다. 다른 아가들보다 순한 편이지만 아빠가 처음인 두 사람은 오늘도 허둥댔다. 아침에 겨우 한솔을 재우고 힘차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며 말하지.
오늘 하루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