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우쿱] 말해줘

다몬드 2017. 6. 3. 13:05

 

 

 

[리퀘박스/ 우쿱] 말해줘

 

 

 

 

w. 다몬드

 

 

 

날씨가 좋다. 떼어먹고 싶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에 눈이 멀 것 같다. 눈 건강에 좋을 것 같은 푸릇푸릇한 녹음 위로 떠받쳐진 태양이 제 품 가득 넘치는 따스함을 곳곳에 뿌린다. 승철은 눈을 감았다. 나무 아래 벤치에도 온정의 손길을 더해 나무 그림자에 몸을 쉰 바람이 놀라 도망간다. 덕분에 뜨끈했던 구레나룻과 이마가 서늘하다. 하루 종일 억지로 웃느냐 경련이 일어났던 입가가 부드럽게 풀린다. 여름이 문을 두들기 직전 봄은 청년 실업률을 비켜갈 수 없는 승철에게 잠시나마 위로를 한다. 매번 입어도 뻣뻣한 새 와이셔츠 질감에 놀란 몸이 벤치 등받이에 편히 눕는다. 살얼음장이었던 공간에서 면접장들의 흙 같던 얼굴이 나타났다 바람에 날리는 꽃가루가 되었다. 코가 간지럽다. 망할 꽃가루. 망할 비염. 코를 킁 마셨다. 봄은 다 좋은데 꽃가루가 함정이다. 놀기 좋아하는 승철에게 생명이 탄생하는 찰나를 함께하지 못한다는 건 고문과 같다. 사지를 의자에 묶어 꽃이 피고 잎이 돋는 봄을 구경만 하라며 창가에 두는 것과 같다. 취업이랑 닮았네. 승철은 애꿎은 봄을 비난했다. 학점에 맞춰 들어간 학과, 물 말아먹은 수능, 뺑뺑이로 들어간 중학교, 건강만 했던 유아기 시절에서 종래엔 제 탄생까지. 보도블록을 뚫고 피어나는 잡초는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뽑혀도 꿋꿋이 포기하지 않고 견디어 꽃이라는 결과물을 내는데 이십년 이상을 산 나는 견뎠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얻은 건 눈치. 조용한 핸드폰. 취직 후 잠수 탄 동기들. 부모님의 실망. 닿는 곳 모두 반짝이는 여름을 눈앞에 두고 얇고 짧은 여름옷을 입는 세상에 승철 무릎에 개어 올린 재킷은 아직도 혼자 겨울이었다. 에취. 얼굴에 있는 모든 구멍이 열렸다. 몸을 숙였다. 코가 뜨겁다. 승철은 코 아래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축축한 콧물대신 마른 숨만 묻었다. 귀찮게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지 않아 다행이었다.

에취.

등이 떨렸다. 급하게 손으로 입을 가리다 한 게 아니라 들었다는 걸 인지하고 머리에 과부하가 일어났다. , 에취. 그 사이 또 재치기소리가 들렸다. 옆에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복슬복슬하게 머리를 볶은 꼬맹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연신 재채기를 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옆에 앉았는지. 코를 마시다 재채기하고 눈물방울 단 채로 어쩔 줄 몰라 한다. 승철은 가방주머니에서 여행용 티슈를 뽑아 건넸다. 아이는 갑자기 나타난 휴지에 놀라 눈을 크게 뜨며 승철 팔을 따라 고개를 올렸다.

닦아.”

시선이 낮아 손으로 가려도 아이 코 아래로 한 움큼 흐르는 맑은 콧물이 보였다.

닦아줘?”

받지 않아 그리 말하니 한손을 가로로 돌려 코를 가리고 다른 손으로 휴지를 받았다. 고맙습니다, 라는 말은 없었다. 아마 말하는 순간 콧물이 쭉 흐를까 그런 것 같았다. 대신 고개를 꾸벅 숙인다. 예의바른 놈이네. 코를 닦고 푸는 아이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그 사이 한 장을 다 썼다. 쓰고도 시원해하지 않는 것 같아 티슈채로 줬다.

고맙습니다.”

맑은 목소리가 또록또록 바닥을 굴렀다. 승철은 귀를 털었다. 면접 본다고 피어싱을 뺀 귀가 낯설었다. 괜히 귀를 매만졌다. 마음이 울적했다. 피어싱 없는 구멍 뻥뻥 뚫린 귀에 잠시 잊은 취업이 다시 드리어졌다. 귀 같은 인생이다. 아니, 귀는 듣는 기능이라도 하지. 난 쓸모도 없잖아.

세상 살기 조온나 힘드네.”

멀리서 자전거 벨이 따르릉따르릉 울린다. 말하고 놀랐다. 옆에 아이가 앉아 있다는 걸 잠시 잊었다. 좋은 소리만 들어야하는 어린이 앞에서 상스러운 단어를 뱉은 게 부끄러워 승철이 입을 열려했다.

아저씨도 살기 힘들어요?”

아저씨 아닌데. 살기는 힘들지. 승철에 입술이 달싹였다. 고치고 싶은 단어랑 대답이랑 섞여 오류가 났다. 요즘 자주 그랬다. 생각이 너무 많아 엉켜서 입 밖으로 나오질 못했다. 그 사이 아이는 입을 열었다.

나는 살기 너무 힘들어요.”

아이와 안 어울리는 무거운 한숨을 토한다. 구름처럼 넓게 퍼져 흩어지는 한숨을 눈으로 인사하고 승철처럼 벤치 등받이에 등을 기대 팔짱을 낀다.

사람은 왜 살까요.”

에휴. 에휴. 공중에 뜬 작은 발아래, 땅에 닿은 구둣발 아래가 푹 꺼진다. 꺼진 아래에 물이 찬다. 차박 차박 소리를 내며 승철 구두를 적신다. 파란데 까맣다. 아득해 눈을 올렸다. 올려본 하늘은 파랗고 하얬다. 신이 물을 둘로 나뉘어 하나는 아래에, 하나는 위로 올렸다고 하던데 꼭 같았다. 바다랑 하늘이랑. 우물 안 개구리가 된 기분이었다. 주위를 둘러싼 높은 벽에 갇혀 제 세상이 다인 청개구리. 오랜 가뭄으로 물도 말라 메마른 우물에 개구리 하나. 잘못 점프해서 굴러 떨어진 새끼 개구리도 하나. 아아. 앓는 소리가 절로 난다. 숨 막히는 답답함에 승철은 외치듯 말했다.

취직하고 싶다!! 돈 벌고 싶다! 돈 벌어서 여름 정장 사 입고 싶다!! 부모님께 월급 첫날로 산 선물 드리고 싶다!! 취직했다고 연락두절하고 싶다!! 저축하고 싶다!! 돈 벌고 싶다아-!!!!!!”

오십 미터 달리기한 것처럼 심장이 뛴다. 코에선 씩씩 소리가 났다. 승철은 팔 위치를 바꿔 팔짱을 끼며 다리를 꼬았다. 마음이 뜨거웠다. 그동안 꾹꾹 눌러 남았던 속내가 펑 터져 나와 입안이 화끈했다. 안 어울리게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며 취직 준비를 한 몸은 스트레스로 쇠약해 고작 이것에도 숨이 찼다. 최승철 다 죽었네. 체력으로 어디 가서 안지는 자존심이 구겨진다. 안 되는 취직에 너덜너덜 구겨진 자존심은 이제 짤 수분도 없어 먼지만 뱉었다. 힐끔 눈을 돌렸다. 승철이 발광하는 동안 조용했던 아이는 아까 그 자세 그대로 저 너머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불씨까지 다 꺼지고 이제야 창피했던 승철이 더 민망해졌다.

, 너는...왜 살기 힘들어?”

물은 건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세상 고민을 직격으로 맞는 동지애는 약간 있었다. 아이는 천천히 승철을 올려봤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순한 눈이 슬프게 가라앉았다.

놀고 싶어요.”

놀면 되잖아. 생각 없는 어른들처럼 멍청한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 마음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승철, 본인이었으니까.

매일매일 학원 안 가고 시험공부도 안하고 친구들이랑 놀고 싶어요.”

측은했다. 요즘 어린 아이들 공부양이 성인을 뛰어넘는다는 뉴스를 어제 봐서 더 그랬다.

한문 3등급 되면 놀게 해준다 했는데...”

손을 뻗어 강아지처럼 아이 머리를 쓰다듬던 승철 손길이 멈췄다. 앙 다문 작은 입술이 안쓰러웠다. 채 끝마치지 못하고 끝난 문장 뒤를 듣지 않아도 실망했을 아이가 상상돼, 그래서 제 옆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아이에게 마음을 줬다.

형 이름은 승철이야. 최승철. 네 이름은 어떻게 돼?”

“.., 지훈이요.”

그래. 지훈아. 오늘 형이랑 놀래? 형이 오늘 네 친구가 돼줄게.”

형이랑 놀자.

 

엉덩이가 아프다. 까막눈에도 비싼 고급 방석이 깔린 의자에 앉았지만 뼈마디가 쑤셨다. 칼날 같은 찬 공기가 살을 가르고 뼈를 찌르는 것 같았다. 절로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들썩거리고 저가 놀라 주변 눈치를 봤다. 혼자 있는 방은 싸늘했다. 승철은 습관처럼 한숨을 뱉었다. 실내공기에 짓눌린 폐부가 쑤셨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어 입으로 소리 내지 않고 숨을 마셨다 뱉었다. 답답함에 넥타이를 풀었다. 가슴까지 쭉 내리다 아차 놀라 다시 올렸다. 목을 옥죄는 넥타이에 집이 고팠다. 아늑한 내 집. 포근한 침대와 빵빵한 게임이 실행되는 컴퓨터가 그리웠다. 집이 너무 가고 싶다. 울고 싶은 심정이다. 이번엔 뭘까. 점심시간 한 시간 전 승철 폰에 날라 온 문자에 배고픔도 있고 이곳에 오며 승철은 긴장감에 입술을 죄 뜯었다. 보고 싶지 않은 인물의 연락이었다. 한 달에 한 번 보는 인연이었지만 그랬다. 매번 호화찬란한 식사를 대접해줬지만 만나고 싶지 않았다.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긴장을 해서 식사가 끝나면 엄지를 땄다. 바늘이 무서워 벌벌 떨며 따는 것도 고역이었지만 싫은 건 다른 이유였다.

늦어서 미안하네.”

문이 열린다. 보고 싶지 않은 상대의 등장에 승철은 샐러리맨 미소를 장착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제발 오늘은 무사히 점심을 끝내고 싶다. 소박한 소원이었다.

 

지훈이가 내일 한국에 온다네.”

입을 급하게 막았다. 씹어 뭉개진 음식을 뱉을 뻔했다. 승철은 입을 가리고 빠르게 씹어 힘겹게 목 뒤로 넘겼다. 정제되지 않은 큰 덩어리가 식도를 긁고 위장에 턱 떨어졌다. 오늘도 실패다.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소화제를 사고 손을 따야할 것 같다.

결혼시킬 거라네.”

.”

승철은 전화기 너머 대답이 없는 저를 부르는 지훈의 목소리에 어, 응 멍청하게 대답했다.

내일 꼭 나보러 마중 와줘.”

지혜로운 답변 기다리겠네.’

머리를 흔들었다.

나 직장인이야. 못 가.”

형 올 때까지 기다릴게.”

이지훈.”

와 줘요.”

고집을 부린다. 안 그러는 애가 승철한테는 어린애처럼 고집을 부리고 떼를 쓴다. 버릇을 잘못 들였다. 애가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고쳤어야 했는데 이미 늦었다. 지금 고치려 해도 영악한 꼬맹이는 말을 안 듣는다. 새끼 개구리는 황소개구리가 됐다. 승철은 퍼렇게 멍든 엄지 손가락 끝을 매만졌다.

알겠어, 갈게.”

결국 또 졌다. 속이 아프다. 소화제를 먹고 손을 땄는데도 가라앉지 않는다. 더부룩한 배를 쓰다듬으며 승철이 입을 열었다.

지훈아.”

.”

고생했어.”

한 박자 뒤에 핸드폰으로 젖은 숨이 넘어온다.

아저씨 덕분이야.”

빨리 만나고 싶어. 한국 가면 또 나랑 놀아줘.

세뇌란 무섭다. 무시하다가도 신경 줄에 턱 걸리면 떨쳐낼 수가 없다. 거미줄 같다. 나는 나도 모르게 하늘을 날다 보이지 않는 거미줄에 걸려 바동거린다. 제 반동에 거미줄이 흔들거리고 저기서 자고 있던 거미가 눈을 빛내며 슬금슬금 기어온다. 망했다. 죽은 목숨이다.

외국물을 먹고 돌아온 지훈은 더 느끼해졌다. 본래 제 사람에겐 다정한 아이긴 하지만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반가움에 분홍색이 된 얼굴로 올려다보는 눈이 짙다. 오백년 된 나무 같다. 도끼를 찍으면 도끼날이 날라 갈 것처럼 단단하다. 도끼를 쥘 자신마저 사라져 멀뚱히 나무를 쳐다봤다. 지훈은 부모님과 웃는 낯으로 대화를 하며 승철이 못 먹는 연근을 제 앞에 끌고 계란반찬을 승철 앞에 밀었다. 본인도 그다지 연근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주저 없이 집는다. 지훈이 하는 걸 눈으로만 좇던 두 분이 승철을 보고 웃는다.

지훈인 여전하구나.”

입을 가리며 웃는 사모님에 승철의 귓가가 홧홧하다. 외국물 먹은 지훈만 모르는 눈치다. 승철은 급하게 눈을 내리깔았다. 의자 아래 두 다리, 낡은 도끼 두 쪽이 녹슬어 힘없이 서 있었다. 승철은 제 옆에 앉은 지훈의 반짝반짝한 새 구두를 콱 밟고 싶은 충동을 발가락을 그러모으며 참았다. 날이 제대로 섰다면 발등을 제대로 찍었을 텐데 둔한 날로는 흠집조차 못 낸다. 억울하게 아무것도 못했다. 식사가 끝마칠 때까지 지훈에게 잔뜩 챙김만 받았다. 어차피 음식 맛 기억 못하는데. 쓸데없는 애정이었다. 울 것 같은 마음을 삼켰다. 그 사이 조만간 보자는 얘기가 흘러나왔고 또 거절을 못했다. 어물대던 승철 대신해 지훈이 승철 부모도 초대해 다 같이 보자며 활짝 웃으며 말했다. 무거운 시선이 승철을 뚫었다. 심장이 널뛰기를 한다. 승철은 회장님께 아직 아무 대답을 못했다. 한마디가 어려워 허리를 숙여 목구멍을 닫았다. 비싼 차가 부드럽게 골목을 빠져나간다. 차 뒤꽁무니 빨간 엉덩이를 보며 넋을 놓았던 승철은 손가락을 얽어 잡아오는 손길에 퍼뜩 깼다. 깍지 낀 손이 단단하게 묶였다.

너무 보고 싶었어.”

마중나간 공항에서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손부터 잡던 지훈이었다. 9살 때 땀이 나도록 잡고 놀던 작은 손은 이제 제 손을 감싸 쥘 만큼 컸다. 가늘고 긴 손가락이 손등을 어루만진다. 공부를 위해 해외를 갔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마다 한 뼘씩 커진 지훈에 깜짝깜짝 놀라던 승철의 심장이 쪼그라든다. 지훈의 부모님이 타고 갔던 차보다 훨씬 싼 차 핸들을 확 꺾을 것 같았다. 마른 침을 삼키며 승철은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사고로 내가 죽는 건 괜찮은데 지훈이 죽으면 안됐다. 귀한 몸이었다. 가치로는 일 조쯤 될까. 앞으로 미래를 본다면 십 조쯤? 굴지의 대기업을 물려받을 하나뿐인 후계자니 천조도 우습다. 겁쟁이라 안전 운전하는 승철의 발이 가속 페달보다 브레이크 페달에 더 많이 머문다. 대한민국 평범한 샐러리맨 월급으로 흉기차를 피한 것만으로 대단하지만 지훈이 가진 것들과 비교하면 쓰레기도 안 된다. 감히 지훈을 태우며 미안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지훈은 승철의 처진 눈썹 끝을 문질렀다.

얼굴.. 미워. 오랜만에 보는데 웃는 얼굴 보여줘. ?”

입술 꼬리를 올렸다. 못생겼어. 지훈이 팡 터졌다.

눈은 처지고 입술 꼬리만 올라가고 이게 뭐야.”

눈물을 닦아주듯 눈가를 닦고 입술 꼬리를 훑어 작은 귀를 매만진다. 고작 손가락으로 만져진 건데 핥아진 것 같다. 뛰어난 머리로 빠르게 졸업하고 무서운 속도로 성장한 지훈은 올해 스무 살이 됐다. 열아홉 살 생일에 유학을 가서 일 년 만에 돌아온 지훈은 더 이상 자신을 옆에 붙이며 같이 있자고 떼쓰는 어린애가 아니다. 부잣집 유명한 도련님인지도 모르고 놀다 납치범으로 오인 받고 경호원들에 매쳐져 땅바닥에 처박혔던 승철을 보며 놀라 울면서 경호원들을 때려 말리던 꼬맹이가 아니란 말이다. 둘 뿐인 차 안에서 신호등 빨강에 정육점 고기가 된다. 몸을 감싼 천 조각이 모두 벗겨지고 팔은 쇠갈고리에 묶여 몸을 가리지 못하고 모두 보인다. , 가슴, , 골반, 허벅지, 복숭아뼈까지. 운전해야 한다고 풀려던 손을 꽉 잡아 가만히 손등을 쓰다듬는 손가락이 목구멍 안쪽을 휘젓는 것 같다. 꽁꽁 위장에 쌓인 저녁식사가 밀려올라온다. 입을 벙긋거렸다.

빨리 끝났네.”

땅 위에 파닥대는 물고기처럼 쥐어짜진 음성에 승철은 아랫입술을 물었다.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삼십대 중반이 돼서 스무 살에게 지고 싶지 않다. 이미 많이 졌지만 구린 자존심은 인정할 수 없었다.

형이 보고 싶어서 빨리 끝냈어.”

한문 3등급을 통과하고도 약속을 지키지 않은 지훈의 엄마, 사모님은 승철을 예뻐했다. 승철만 있으면 지훈이 성실히 공부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공부뿐이랴. 형이랑 같이 오래오래 있어야 한다고 다방면으로 엄청난 성장을 보였다. 대나무도 못 따라갈 성장속도였다. 월반에 월반을 하고 이 년짜리 유학을 일 년 만에 뗐다.

너무 오래 걸렸어.”

석사박사는 씹어 드시고 왔으면서 오래 걸렸다고 투정부린다. 이미 지훈은 오 년 전에 필요한 공부를 끝마쳤다. 단순히 지훈이 너무 어려 지훈 부모님이 오년을 더 굴렸다. 지훈의 욕심도 있었지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끔찍이 아끼는 부모라 일찍 사회에 나와 상처를 받을까 외국으로 돌렸다. 형도 같이 가자는 손길에 오 년 중에 일 년은 승철도 지금 회사에서 외국 지사로 발령나가 근무했다. 승철이 우수한 사원이었지만 회장님, 지훈의 아버지가 손길이 안 닿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 뵌 그 날에 바닥에 굴려져 까진 얼굴의 승철에게 매달려서 같이 있자고 떼쓰던 어린 아들에 당황했던 부모들이었다. 근엄한 분이셨지만 아들에겐 약했다. 지훈이 삐뚤고 철 안든 애였다면 집안 거덜 났겠지. 그래서 사모님은 승철을 많이 좋아했다. 지훈이가 잘 자랄 수 있게 옆에 있어서 고맙다고... 취직준비로 바쁘고 한가한 승철이 한문과 영어 과외 받는 지훈 옆에서 같이 배운 건 그 보답이었다. 어린애 과외라 해도 부자들의 공부수준은 일반인이 받는 교육을 한참 넘어서서 회장님의 보답으로 면접을 본 승철은 무난히 합격 통보를 받았다. 면접관 질문에 막힘없는 대답이 쏟아졌다. 면접관들은 남들과 다른 시선으로 얘기하는 승철에게 흥미를 보였다. 틀에 박힌 답만 내놓는 다른 사람과 달랐다. 최종 면접까지 승철은 제 입이 이렇게 잘 떠들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대부분 서류에서 떨어지거나 면접에서 두 번 질문 받곤 없는 취급 받았던 과거와 달랐다. 합격 통지를 받고 승철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영어 캠프 간 지훈이 꼭 전화해라 떠나기 전 신신당부했는데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창피했다. 제 노력이 아닌 지훈이 가진 환경 일부를 노력 없이 얻은 결과였다. 스스로 한 게 없었다. 다 지훈이 덕이었다.

언제부터 출근해?”

신호등 색이 바뀌었다. 승철은 머뭇거리는 제 입술만 보는 지훈에게 물었다.

한 달 뒤쯤? 일단 적응도 해야 하고.”

한 달은 너무 촉박한 거 아니야? 괜찮겠어?”

회사엔 형이 있잖아.”

내가 회사에 있는 게 왜. 승철의 입이 삐죽 나왔다.

드디어 형하고 같이 회사를 다니는데 마음 같아선 더 빨리 하고 싶은 걸 결혼 때문에 참는 거야.”

출발선에 지훈이 서있다. 일찍 출발해 멀찍이 서 있는 승철에게 웃는 얼굴로 걸어간다. 사원. 대리. 과장. 부장. 상무. 전무. 탄탄히 밟아 어느새 저를 뒤로하고 저 멀리 걸어갈 지훈의 등을 멀건이 바라본다. 제 발은 아직 걷는 중인데 지훈은 벌써 골인지점에서 승철을 기다린다. 저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과연 죽기 전에 도착은 할 수 있을까.

매일 형이 떠올라서 이제 못 참겠어.”

아직도 애기구나.”

미소가 옅어진다. 살짝 올라간 입술 그대로 지훈은 운전하는 승철의 옆얼굴을 본다. 아무 말이라도 뱉을까봐 혀를 입천장에 붙였다. 속이 꼬인다. 형 집에 가겠다는 지훈 때문에 같이 지훈의 부모님과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집에서 출발해 소화제를 챙기지 못했다. 점점 조여 오는 지훈의 악력에 잡힌 오른손이 저렸다. 핸들을 쥐는 왼손이 떨린다. 핸들을 꺾으면 안 돼. 무덤 같던 순간이었다.

오늘도 집 갈 생각 없는 지훈이 먼저 씻으러 들어가서 승철이 씻고 나왔을 땐 지훈은 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다. 시차에 적응하지 못해 부모님과 함께한 저녁식사에 몇 번 하품을 하더니 나와서 바로 잠든 모양이었다. 허리께에 있는 이불을 끌어올려 가슴 위까지 덮어줬다. 불편하게 벤 베개를 고쳐도 안 깨는 얼굴이 뽀얗다. 어린아이처럼 우유 냄새가 날 것 같이 말랑말랑해서 턱은 탄탄하다. 젖살이 덜 빠진 볼과 묘한 차이를 보이는 하관에 승철은 제 턱을 쓸었다. 그새 돋은 수염을 깎아 매끈한 턱은 세월만은 굳어 딱딱했다. 날카로운 각을 자랑하는 스무 살과 달랐다. 승철은 지훈의 매끈한 턱을 훑어보곤 눈을 내렸다. 역시 아니었다. 지훈과 나는. 답은 서서히 한 길로 흘렀다.

 

입안이 텁텁했다. 오기 전 씹어 삼킨 청심환이 혀에 달라붙어 쓴 맛이 났다. 땀이 나는 손을 바지춤에 문질러 컵을 쥐었다. 물을 마시기 위해 올린 고개 너머에 이쪽을 보는 눈빛이 날카로워 물을 뱉을 뻔했다. 겨우 넘기고 입가를 손등으로 닦았다. 위액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속이 쓰렸다. 청심환 효과는 언제 올까.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고민했다는 자체가 웃기지만...고민하고 고민했습니다.”

그래.”

짓눌릴 것 같다. 대기업 회장의 카리스마는 갈수록 적응인 안 돼, 오히려 승철을 벌레처럼 밟았다. 무심하지만 따뜻한 성정의 회장님은 아무것도 안했다. 승철이 혼자 바닥을 구르고 밭은 숨을 내쉬며 바르작댔다. 보잘 것 없고 가진 게 없는 내가 지훈을 만나서, 그 때 꽃가루로 고생하며 콧물을 흘리던 어린애에게 티슈를 건네지 말걸 수 천 번 했던 후회를 또 한다. 이 일의 원인은 결국 거기서 부터였다. 공원에서 비관하며 앉아서 너를 만났다.

.”

회장님과 약속한 장소 문 앞에 지훈이 있었다. 집에 한 번은 들어오라는 어머니 전화에 일주일 만에 본가에 들어간 지훈이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서서 승철을 마주봤다. 넥타이를 고쳐 메던 승철이 입안에 있는 청심환을 꿀꺽 삼켰다.

네가 왜 여기 있어.”

형은 왜 여기 있는데.”

대답을 못했다. 벽에 기대던 등을 떼고 지훈이 앞으로 다가왔다. 얼굴과 어깨와 두 손을 찬찬히 훑는다. 견딜 수 없다. 침묵하는 이지훈은. 말이 아닌 눈으로 묻는 지훈은. 회장님과 닮았다. 승철은 가방 손잡이에서 지퍼를 열었다. 바로 보이는 물건을 잡고 테이블 위에 올렸다. 한쪽 눈썹을 위로 치켜뜨며 물건을 살핀다. 승철은 문 너머 있을 지훈을 머릿속에서 밀었다. 네 대답이 아닌 내 대답을 할 거다.

결혼...”

 

발이 닿는 대로 걸었다. 징검다리처럼 땅에 심은 돌에 걸려 몇 번 몸이 휘청거렸다. 무릎에 힘을 주어 버텼다. 무릎이 시큰했다. 늙은 몸은 벌써 고장이 많다. 속상해서 계속 걸었다. 몽유병 환자처럼 눈 뒤로 많은 게 지나갔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애써 눈에 담으려 노력하지 않았다. 걷고 싶었다. 아니 생각 없이 굴고 싶었다. 그래서 걸었다. 그러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정신줄 놨어?”

넘어졌다 생각한 몸은 밑에 깔린 사람 때문에 다치지 않았다. 등을 잡는 두 팔과 익숙한 음성에 고개를 들었다.

괜찮아?”

“...지훈아.”

도대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다녀.”

이지훈.”

.”

너는 왜 나랑 결혼하고 싶어?”

세뇌란 무섭다. 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귀 딱지가 앉도록 들은 결혼 얘기에 승철은 제 옆에 지훈을 자연스레 그렸다. 연애를 하고 상견례를 하고 결혼식을 치르고 신혼여행도 떠나고. 아이는 못 낳으니 그냥 살거나 입양아를 들일지도 모르고. 이십대에 푸릇푸릇한 지훈이 삼십이 되고 사십이 되면 나는 삼십에서 사십 오십이 된다. 나이차가 보이던 두 얼굴은 세월에 나이를 지우고 노년엔 비슷한 얼굴로 함께할 것이다. 가는 건 순서 없지만 내가 먼저 갈지 모르니 가기 전 나를 잊으라는 말도 할지 모른다.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살다와. 지훈이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아마 자신은 그 말을 하며 먼저 가는 죄책감을 덜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 지훈이 오길 기다리겠지.

늘 생각했다. 지훈이 학업으로 외국에 나갈 때. 외국지사로 파견될 때. 지훈이 부모님과 식사할 때. 국제 전화를 끝마치고. 지훈이 형이랑 결혼할거라고 수줍게 웃을 때마다 늘 생각했다. 우리의 결혼을. 그래서 묻는다. 늘 묻고 싶었지만 입술에 걸려 묻지 못했던 질문을.

나는 모르겠어. 네가 왜 나랑 결혼하자는 건지. 더 이상 너는 어린애가 아니잖아?”

어린애 투정을 받기엔 승철은 늙은 겁쟁이가 됐다. 취준생 때 얻은 눈치는 사회에 써먹느냐 다 까먹었다. 잘 알던 지훈은 모르는 지훈이 됐다.

입술에 숨이 앉는다. 눈 깜박할 새 없이 닿은 감촉에 입술이 벌어진다. 마주보던 눈이 가라앉는다.

이유가 됐어?”

울컥. 성이 났다. 손에 쥐던 물건을 지훈이 가슴에 눌렀다.

안 입고 안 쓰며 저축을 그렇게 했는데 턱도 없어.”

통장이 손안에 구겨진다. 통장을 흥미롭게 보던 눈이 지훈의 눈 위로 덧씌워진다.

차 할부는 한참 남았고 다음 승진이 언제 될지 모르는 불안한 샐러리맨이야. 그나마 다행인 건 빚이 없는 건데 그렇다고 잘 사는 것도 아니야. 무엇보다 중요한 건 뭔지 알아? 나이 앞자리 수가 4로 변할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거야.”

말할수록 창피했다. 부끄러운 게 아닌데 부끄러웠다. 이 나이에 이만큼 사는 게 대단하다 그러는데 상대가 부자라 모르겠다. 지훈과 비교하면 승철은 아무 아닌 사람이었다. 지극히 평범한 삼십 중반의 남자.

왜 나야.”

좋아하니까.”

심연이 감긴다. 파도가 침범한다. 승철은 볼썽사납게 울음이 터졌다. 지훈은 승철의 혀를 감아 울음을 삼킨다. 중간 중간 입술을 떼며 한숨처럼 다정하게 속삭인다.

좋아해. 형을 좋아해. 처음 본 날부터 하루도 형을 생각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은 적이 없었어. 최승철. 당신이 좋아. 사랑해요.”

그러니 나랑 결혼해주세요.

 

결혼 허락해주십시오. 잘 살겠습니다.”

고개를 숙였다. 이마가 테이블에 닿았다. 눈을 꾹 감았다. 숨 막히는 침묵에 옷끼리 스치는 소리가 날카롭게 공간을 찢었다. 혈관이 터질 것 같았다. 선뜻 허리를 필 수 없었다. 꽉 잡은 손이 떨렸다. 청심환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온 몸에서 땀이 났다. 긴장으로 죽을 것 같으면서도 승철은 제 선택을 되돌리지 않았다. 답은 하나였다. no. 지훈을 생각하면 그게 정답이었다. 앞으로 훨훨 날 일만 있는 지훈에게 저는 불필요한 존재였다. 그러니 아니라 해야 했다. 그런데 안했다. 못했다.

매일 형 생각이 나.’

매일 국제전화로 말 못할 그리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주고받으면서 지훈은 그런 말을 했다. 책을 펼치면 책에 형이 있고 차를 타면 차창에 형이 있고 침대에 누우면 천장에 형이 있어 꿈에서조차 형이 나타난다고 부끄러워 죽을 것 같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고백했다. 섬뜩했다. 하늘에서 떨어져 몸이 추락한 것 같았다. 날카로운 바람에 귀가 먹먹했다.

형은 안 그래?’

나는...’

...’

대답을 기다리는 지훈이 숨소리가 심장에 닿았다.

왜 지훈인가?”

대답을 못했다. 이유는 많았다. 정답을 몰랐다. 고개를 들었다. 답을 기다리는 얼굴이 지훈과 똑 닮았다. 아버지 피를 많이 받았다는 흘러들은 내용이 생각나 승철은 저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매일 생각이 나요.”

나도 늙었나 봐요. 이제 지훈이 생각을 하루라도 멈출 수 없어요.

 

 

 

 

 

 

 

 

 

 

 

 

 

 

 

 

 

 

 

 

 

 

 

 

*번외

 

새아가 자니?”

지쳐 잠든 승철의 얼굴을 쓸던 지훈이 탁자 위에서 바르르 떠는 핸드폰에 미간을 구겼다. 종료 버튼을 누르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화면에 뜬 이름에 한숨을 쉬며 받았다.

왜 겁을 줬어요. 아버지. 어차피 결혼할 거였는데.”

너와 같은 이유라고 말하면 용서해주겠니. 나도 그저 확답을 원했을 뿐이란다.”

지훈이 승철의 자는 얼굴을 살핀다. 똑 닮은 얼굴만큼 성격도 닮은 부자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 무엇을 걱정하고 두려워하는지 잘 알았다.

고마워요. 그래도 다시는 이러지 마세요.”

한 번도 제 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승철에 불안해하던 아들을 대신해 승철의 진심을 끄집어내려 한 것인데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일이 잘 해결돼서 그렇지. 잘못됐으면 소유욕 강한 아들이 어떻게 됐을지 뻔해 아버지는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아들.”

.”

결혼 축하한다.”

“...잘 살게요.”

눈물로 젖은 승처르이 얼굴을 쓰는 지훈의 손길이 다정하다. 자는 승철의 얼굴에 미소가 붙는다. 한국에 돌아오고 처음 보는 웃는 얼굴에 지훈의 심장이 데워진다. 마주잡은 두 손에 입술을 붙였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계속 내 생각만 나지?"

""

"어려서 그래"

"나도 계속 네 생각만 나"

"왜요?"

"늙어서 그런가봐"

로 우쿱 리퀘 신청해주신 ㄷㄷㄹㄱ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