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쿱] 남친이 바람폈다
남친이 바람 폈다는 소식을 듣고 설마설마 했는데 진짜 애인이 웬 새파랗고 어리고 귀여운 남자랑 바람 펴서 열 받은 슨페, 눈 돌아가서 무작정 주먹부터 질렀어. 운동은 잘하지만 주먹 지르는 건 첨이라 때린 제 손 아픈데 이런 젠장 이 사람이 아니란다. 제대로 맞아서 볼 터지고 피 섞인 침 뱉는 피해자 눈빛이 너무 사나워서 미안한 슨페 무릎부터 꿇어야 하는 거 아는데 애인님 진짜 바람남이랑 저 멀리 가는 거 보고 울음. 이름 끝 자가 훈이랬나 흥이랬나 실음과 16학번 머리가 형형색색한 놈이라고 해서 그 과에 그런 놈 한명인줄 알았더니 형형색색한 놈이 두 명이었네. 슨페가 때린 사람=따뜻한 핑크머리고 애인 바람남=쨍한 빨강과 파랑 섞인 머리. 잘못 알아서 때린 사람에겐 미안하고 그런 저는 모르고 바람남이랑 하하호호 저 좋을 때 짓는 미소 걸린 애인은 열 받고 상처라 눈물부터 터진 거. 근데 그냥 눈물 뚝뚝이 아니고 끅끅 소리 내며 닭똥 같은 눈물 후두두둑 흘림. 때려놓고 피해자 앞에 지금 저가 우는 거 진짜 웃긴 그림인 거 알아서 미안합,니,다 하는데 북받쳐서 목소리 제대로 안 나오고 마구 떨린다. 넘 꼴이 추하다.
피해자 훈이 너무 어이없어. 강의 끝나고 다음 강의까지 시간 있어서 점심 떼울 겸 낮잠 잘 겸 기숙사 가던 길에 네가 훈이냐?!! 하는 낯선 남자에 다짜고짜 얼굴 맞았지. 무방비채로 맞아 뒤로 넘어졌고 가방에서 물건도 다 빠지고 지나가는 사람들 헉, 놀라 우리만 봄. 처음에 맞고 어안이 벙벙해서 넘어진 채로 굳었다 화끈한 볼과 쪽팔림에 분노가 치밀어서 따지려 했더니 울어. 울어?!! 맞은 건 난데 왜 울어??! 어이가 없어서 하, 진짜, 이 뭣 같은, 말도 제대로 못하고 짝다리 짚음. 이봐요, 사과를 받든 따지든 일단 이 상황을 정리해야 할 것 같아서 울컥울컥 올라오는 분노 한숨으로 흐뜨리며 나즈막하게 부름. 침착하게. 효과 있길 바라며. 그런데 가해자는 터진 볼 붙잡고 삐딱하게 내려보는 훈 가로채듯 손목 잡고 씩씩 거리며 갑자기 막 걷는다. 저쪽으로. 어어어 잠만, 야, 야!! 갑자기 잡혀서 내팽겨져서 멀어지는 가방 보고 씩씩거리며 제 손목잡고 앞장서는 미친놈 한번 보며 부르고 버티려하지만 안 된다. 훈이 힘 약하다는 소리 들어본 적 없고 작은 고추가 왜 매운지 보여주는 인물인데 바람난 애인에 대한분노로 사고회로가 엉망이 된 미친놈=승페 힘엔 못 미쳐. 결국 질질 끌려서 #÷=+/*×*!!! 고함인지 외침인지 모를 깊은 동굴 같은 울림으로 멈춰 세운 두 남자 앞까지 끌려옴. 그리곤 얘야? 쟤야? 저랑 같은 과 동기인 00을 가리키는 슨페 한번 보고 머리짚. 뭔지 모르겠지만 개좆같은 상황에 빠진 건 알겠네요. 그리고 정말로 슨페의 분노에 겁먹은 애인님이 파랑빨강머리 놈을 무의식적으로 보호하는 바람에.....승페 이번엔 제대로 그놈과 애인에게 어퍼컷 날림.
망할 새끼랑 그 옆 놈이랑 같이 연달아 패고 무작정 걸은 슨페. 발이 닿는 대로 세상 쪽팔린 지 모르고 으어엉어엉 울며 걸었다. 사나이로 태어나 죽기까지 딱 세 번 울어야 한댔는데 그중에 한번은 태어나 울었고 두 번짼 군대 가서 울었으니 마지막 눈물은 오늘에 다 쏟는다 약간 그런 마음. 대학 교정부터 시작해 지금은 어딘지 잘 모르는 데까지 걷는 동안 분명 제 얼굴 아는 사람 여럿 있었을 테고 지금쯤 승페가 우는 이유 2048271628가지 붙어서 과내 입에서 입으로 덩치를 키우며 커져나갈 소문 날 거 아는데 눈물을 그칠 수 없음. 속상해서 억울해서 내가 너무 찌질이라서. 승페 애인 바람났단 얘기 들었을 때 설마, 했던 거 또 나를 버리고 설마에 설마였다. 17살에 시작한 첫사랑. 작열하는 태양에 더 가까이 가고 싶어 날개 타는 줄 모르고 하늘 높이 달다가 날개 잃고 바닥에 추락하길 여러 번. 남들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첫사랑 겨우 이루어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고 모두 바쳤다. 마음 미소 몸 미래까지. 아무 말 없이 까만 눈동자에 저가 비추는 것만으로 좋아서 그저 주기만 했어. 닳도록 마르도록 퍼줘서 정신 차리니 저는 가난해 바닥을 기고 있었고 애인은 부자가 돼서 세상 떵떵거리더라. 언제 사랑을 먹었는지 모를 정도로 뱃가죽과 등가죽이 붙어서 사랑에 마른 자 돼서 애인님이 사랑에 거만하게 만들었어. 제 사랑이 당연한 거라 생각하며 함부로 대하고 바람을 피는데.... 슨페를 겨우 버티던 마른 바닥이 푹 꺼지며 추락했지. 끝이 어딘지 모르고 암흑 깊숙이 깊이 떨어져 제 뺨과 팔을 긁으며 생채기내는 모래가 아픈데 울지 못함. 그저 꾹 참았음. 아닐 거야. 그런 거 아니겠지 부정하고. 그래도 내가 첫 번째잖아 같잖은 자기 위로 하고. 변명하고. 덮고. 제 속이 썩어서 냄새가 나는데도 코 막고 모른 척. 그러면 어느새 애인은 아직 덜 씻겨나간 남의 체취를 묻힌 그 몸으로 슨페를 안았음. 사랑해, 하면서. 뱀의 혓바닥처럼 간사한 사랑고백으로 견뎠다.
그런데 그것도 한두 해지 애인 따라 온 대학에서조차 그러는 애인을 보니까 이젠 진짜 못 버티겠더라. 죽겠더라. 억울하고 슬퍼. 내가 너무 불쌍하고. 첫사랑 그게 뭐라고 이미 변색되고 찢어진 사랑을 붙잡는지. 세상 멋 허세를 메고 형이- 내가- 하며멋부리는 거 좋아하던 내가 왜 이렇게 구질구질한지. 그렇게 힘껏 때리고 욕했는데 따지는 전화한통 없는 그 새끼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 제가 너무 웃기고 불쌍해서 도저히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탈수로 길바닥 신발에 눌러 붙은 껌딱지 처럼 뭉개질 때까지 울고 울고 또 울거야 하며 온 몸의 수분을 눈물로 뽑아냈음. 그렇게 마지막 수분까지 쥐어짜고 이젠 더 이상 나올 수분이 없어 그대로 길에 선 슨페. 너무 울어 머리 아프고 멍한 시선으로 저 너머를 보며 생각없이 서 있었지.
그때, 다 울었어요? 제 옆에서 들린 음성에 푸드덕 놀라 어이쿠 하다 다리에 힘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고. 아픈 궁뎅이 문지르지도 못하고 시선에 맞춰 쭈그려 앉아 저를 보는 핑크머리에 누구? 했다. 핑크머리 저를 보고 땅이 꺼져라 한숨 푹 쉬더니 왼뺨을 톡톡 손가락으로 가리킴. 뽀뽀하라고? 엉뚱한 생각 잠시 들다 빨갛게 터진 볼보고 아, 얼었어. 그 잘못 알고 맞은 피해자. 그렇게 때리고선 울면서 제대로 된 사과도 못하고 무작정 애인을 패고 지금 현재 이르러는 동안 완전 생각 못함. 미, 안합니다 우물쭈물 사과하다 그런데 이 사람이 왜 여깄지??그런 슨페 속마음을 읽었는지 손들어서 흔듦. 가만히 따라가 보니 제 손이랑 피해자랑 손잡고 있다. 손잡고 있어?!!! 3초 멍 때리다 뒤늦게 이해하고 파랗고 하얗게 변한 슨페의 안색. 훈이는 그거 보면서 역시나 몰랐구만 몇 번째인지 한숨 푹 쉬고. 내가, 우리 아니 그쪽이, 손을.. 승철이 말더듬다 울어 마른 기관지 쓸려서 기침 쏟음. 콜록콜록 대며 울어서 퉁퉁 부은 얼굴로 그러니 안쓰러워 훈이 머뭇거리다 슨페 등 쓸어줌. 물을 사주고 싶지만 이대로 계속 끌려와서 돈이....아 내 가방은 잘 있을까. 그렇게 슨페한테 잡혀서 내팽겨진 가방 챙기지도 못하고. 강의교재랑 펜이랑 이어폰이랑 카드만 있는 지갑 등등. 교재 빼고 팔면 얼마 안 되는 것들뿐이지만 다 훈이가 아끼는 물건들이고 무엇보다 지갑... 카드랑 민증 다시 발급하기 귀찮은데 좋은 사람이 주워서 제발 자기에게 잘 돌아오면 좋겠다는 마음뿐.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건 핸드폰은 잘 챙겼다. 너 강의 안들어? 같은 강의 듣는 친구가 묻는 톡에 대출 부탁했다. 대출 잘 안하고 꼬박꼬박 강의 듣는 성실한 훈이라 친구가 무슨 일 있어? 물었고 훈은 키패드 위를 방황하다 부탁할게 네 글자만 쓰고 주머니에 넣음. 주머니 안에서 찌르르 울리는 진동을 무시한 채 아직도 손 잡힌 채 옆에서 끌려가는 대로 같이 걷는 저를 모르는 가해자 옆을 지킨다. 지킨다기 보단 있어주는? 물렁하고 귀엽게 생긴 겉모습에 워낙 피해를 많이 받아서 단호할 때 칼로 무썰듯 싹둑 자르는 편인데 현재 맞아서 이렇게 옆에 있는 제 자신 이해할 수 없고 이 사람이 울든 말든 따질 거 따지고 책임 받을 거 받아야하는데 그러지 못한 이유를 모르겠다. 불쌍해서? 안쓰러워서? 너무 울어서 뭉개진 발음으로 혼잣말하는 이 사람 얘기 대충 꿰매니 그렇고 그런 이유 납득은 했지만 납득만 했다. 그렇다고 내가 맞은 게 덜 억울하다는 거 아니고 여전히 화가 나. 하지만 순한 강아지처럼 축 처진 눈에서 끊임없는 흐르는 강 같은 눈물로 부은 얼굴과 물먹어 처진 검은 속눈썹을 가만 보면 말이 안 나와서... 그냥 말 아꼈다. 가끔 저를 이 남자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 시선에 고개 숙이고 손으로 얼굴가리며 창피해했지만 쉼 없이 걷는 이 사람 따라 걸어줬다. 그러니까 이제 내 집을 가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훈은 젓가락 숟가락 놔주고 공깃밥 뚜껑도 열어주는 이 사람에게 집 얘기 못하고 보글보글 끓는 국만 쳐다봄. 한참 젖은 얼굴채로 미안합니다 제가 정신이 없어서 , 얼굴은 제가 책임을 질게요, 공기로 흩어지는 속이 빈사과만 빌다 뚝 멈추곤 밥 먹을래요? 그랬음. 원치 않은 화살표에 훈 거절하려 입 뗐지만 같이 먹어줘요 세상 다 포기한 얼굴로 눈 아래 깔며 부탁하니 거절할 수가 없었음. 주변 둘러보다 대충 보이는 가게 들어가서 좌식이라 신발 벗고 양반다리해서 차려진 음식보고 나서야 거절할걸 후회했지만 이미 때늦은 후회지. 국그릇에 한 국자 퍼서 제 앞에 내미는 이 사람에 매달리는 듯한 눈동자에 무릎위에 대충 올린 손 \들어서 숟가락 들고 한입 떠먹었음.
맛있네요.
뜨끈한 국물이 이에 베인 볼을 때려 미간이 구겨졌지만 점심부터 빈 뱃속은 영양분에 흥분해서 수저질을 하게 만들었다. 결국 훈은 어색한 공기가 흐르는 음식 앞에서 슨페라고 이름 알려준 남자랑 저녁을 먹어. 간간이 너무 운 후유증으로 훌쩍 거리는 슨페의 코 마시는 소리 빼곤 정말 쥐 죽은 듯이 조용한. 낯을 가리는 성격에 낯선사람과 밥을 먹자니 아무리 배가고파 수저질을 멈출 수 없다 해도 이것도 드세요, 제 앞으로 내민 반찬그릇에 턱턱 숨이 막혀. 컵 들어 물과 함께 음식물 삼키곤 저 신경 쓰지 마세요 했어. 슨페는 미안해서 그래요, 제 밥그릇 휘적거리며 훈이 눈치 슬쩍 보고. 훈은 혀로 다친 볼 안쪽을 훑으며 가만가만 생각하다 어쩔 수 없죠 그랬다. 뱉으면서 합의금이나 보상금에 날개 생겨서 제 곁을 떠나는 것이 머릿속에 그려졌지만 이미 뱉은 거 주워 담을 수 없고 그런 제 말에 더 미안해서 가만있지 않은 남자가 더 안쓰러웠음. 그런 새끼 만나서 그렇게 맘 고생해놓고 놓지 못해 어린애처럼 엉엉 울고. 엄마손 꼭 잡듯 걷는 내내 제 손을 꽉 잡으며 걷던 그 옆얼굴이 환영처럼 겹쳐서. 훈은 식당 아주머니께 소주 한 병 주문했음. 소주에 놀라 고개 든 슨페에 뒤늦게 멋대로 술을 시켰다는 생각 들었지만 볼 맞아준 댓가론 싸지 않나 싶고 또 술 먹고 훌훌 터는 게 이 사람이나 저나 좋을 것 같아. 나는 얼굴이 착각당해서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진 아무 죄없는 사람이었지만 이 시간까지 있으니 이 사람 치정(?)문제에 제 몫도 좀 있는 것 같고 그래서 받은 소주잔에 가득 소주 담아서 둘이 나눠마셨음. 그게 한 병이 두병이 되고 세병이 되고..어느새 둘 다 고주망태 돼서 그런 새낀 다신 안 만난다고 전애인 저주하며 떠드는 슨페 얘기도 좀 들어주고. 제가 너무 미안해서 그런데 제가 어떻게 해드릴까요-말해주시면 다 해드릴게요 하며 어깨 붙잡고 매달리는 슨페에게 사람 보는 눈부터 고치라며 조언해줬다. 슨페 그 말에 내 눈이 낮다는 거야 뭐야 하면서 훈에게 징징대다 맞아 눈 낮지 ㅠㅠ하고 울다가 그래도 그쪽이 잘생긴건 알아요 진담도 뱉고. 술 취해서 둘다 무슨 말하는지 모르겠는데 그 말 하고나서 훈은 제 귀 끝 매만졌음. 무슨 소리하는 거야 이 사람- 눈으로 흘겨. 하지만 술 먹고 날개 생겨서 나는 입술꼬리는 내려올 줄 노르고 파닥파닥. 그래서 일이 이렇게 됐나 봐.
옆에 승페가 자고 있는데 승페의 이불 위 드러난 어깨가 매끈해. 옷 벗고 자는 취향이라 쳐도 좁은 침대에 남정네 둘이 누우니 밀착 안할수 없고. 다리와 팔 닿는 곳 다 부드럽고 매끈한 게 승페도 벗고 나도 벗고. 어제 만나 친해졌다지만 낯선 사람과 알몸으로 자는 취향 아니라 훈은 숙취로 쾅쾅 울리는 머리통 부여잡으며 어제의 기억 끄집어낸다. 술 취한 채 걸은 것까진 기억나는데ㅡ.그 때 드라마처럼 끙끙 앓으며 슨페 깨어났고 허옇게 질려서 온 얼굴 구기며 눈뜬 슨페가 멍한 눈동자로 자길 보는 훈이를 마주쳤고.
...... → ?????→ !!!!!!!
차례로 변해서 벌떡 일어나. 그러다 내려간 이불에 드러난 제 맨몸에 소리없 는 비명질렀음. 창피해서 25프로 허리가 너무 아파서 75프로. 눈물방울 달며 다시 이불에 쓰러진 슨페가 앓는 중에도 미안해 내가 어제부터 너에게 너무 미안하다 ㅠㅠ사과함.
그러니까 어제 밥 먹으면서 술이 들어가니까 편해진 슨페가 훈한테 이것저것 본인얘기를 함. 구애인 될 놈 얘기 하다 제 험난하고 격렬했던 뒤늦은 사춘기 보낸 고딩 때로 내려갔고 그러다보니 부모님 얘기도 하고 친구 얘기 대학얘기 이것저것 떠들음. 대부분 슨페가 말하고 훈은 고개 끄덕이고 대꾸하는 정돈데 훈도 술이 들어가서 제 마음은 털었던 것 같다. 같다는 건 기억이 너무 잘려서 확신할 수 없다는 거다. 쨌든 그렇게 피 대신 알코올이 온 몸을 돌 때쯤 두 사람 휘청휘청 일어났고 너무 미안해서 계산하겠다는 슨페 말리지 않음. 왜냐면 지갑 없고 그 정돈 얻어먹어야 내 볼이 안 억울하지. 다른 데랑 조금 다른 듯한 볼 안쪽 혀로 톡톡 두들기다 술김에 혀 깨물어서 인상 찌푸리며 혀 내민 훈을 슨페는 강아지 같다며 크흥흥 웃으며 훈 턱 밑에 손 넣어서 우쭈쭈함. 멀쩡한 상태에서 오늘 처음 본 사람이 그랬다면 정색하며 시베리아 공기 내뿜었겠지만 둘은 술에 푹 절었고 기분이 엄청 좋다. 그래서 걸었다. 생각보다 대학에서 그리 멀지 않은 번화가였고 대학 근처에서 자취하는 슨페랑 기숙사에 사는 훈이 어쨌든 둘 다 대학을 가야한다는 건 같기 때문에 두 사람 걸었음. 가는 길에 취해서 파하하 웃으며 제 몸 못가누는 슨페에 몇 번 어깨 부딪히다 안되겠다 싶어 어깨 빌려줬더니 그때부터 매달리면서 훈아 내가 널 위해 뭘 해줘야하는데.. 나 때문에 뺨 맞고... 가방 잃어버리고..강의도 못 듣고 미아내..내가 너무 미안해서 주글거가따 ㅠㅠ뭘 해주까ㅠㅠ징징댐. 훈은 그래요 아라써 고개 끄더끄덕 우나츠키처럼 고개만 끄덕였음. 그런 미지근한 반응만 보이니까 슨페 더 매달려서 왜 내가 해주겠다는데 너는 이러냐. 호구냐. 멍청이냐. 말미잘이냐 불평 쏟고. 나중엔 폰 줘 봐 이 형이 번호 저장할테니까 술 먹고 시프면 불러 하고 후니 바지주머니 뒤적임. 엉덩이랑 허벅지랑 막 더듬대는 슨페 손길에 훈이 기겁해서 뭐해요 몸 꼬아서 도망가다 슨페 아이쿠 넘어졌어. 엉덩방아 찧고 아이고 나 죽네 나 죽어 바닥치며 한탄하는 슨페에 훈이 어후 술 냄새 나는 숨 뱉곤 제 폰 꺼내 승페 손에 쥐었음. 슨페 폰 받으니까 언재 그랬냐는 듯 활짝 웃으며 폰 만짐. 그런데 슨페 어? 하며 화면을 검지로 막 두들김. 왜 하고 옆에 쭈구려 앉아 보니 화면이 켜지지 않아. 배터리가 나갔는지 깜깜한 화면에 슨페 눈 처져서 울상 되고. 훈은 흠 보기만 함. 그러면서 나 만나서 나한테 맞고 가방 잃고 길 헤매고 폰도 꺼지고 너 불쌍하다야 하는 슨페에게 충전좀 해조요 했음. 그게 지금 슨페랑 훈이 알몸으로 침대에 누운 계기가 됐고 여전히 밤사이 기억은 안 난다. 드문드문 자취도착해서 현관부터 네발로 기어간 슨페라던가 폰 충전기 꽂으며 야 궁뎅이를 대야 내가 이걸 꽂지 너 부끄럽다고 숨냐 폰하고 싸우는 슨페라던가 뜨끈한 몸으로 끌어안기 좋은데 하며 팔다리로 옭아매는 슨페라던가 잠만 이거 기억들이 다 왜이ㄹ!!! 하는 훈이. 물..물 어디써요 도착해서 냉장고 앞에 앉아 물달라 시위하는 훈이랑 알아서 양말 벗고 침대에 누운 후니에 야 거기 내 옷이 있거드은 하며 안으로 밀어 넣는다던가 뜨겁게 안을 헤집으며 만지던 지훈의 긴손가락...잠만 기억이 갑자기 훅 뛰어넘는데!중간 어딨어!! 하는 슨페. 둘이 같은 상황 서로 다른 기억에 쉽게 입을 열지 못하고. 겨우 정신차린 슨페가 미안하다 나때문에 너가 진짜ㅠㅠㄱㅇ인 나한테 어제부터 걸려 꼬여서 네 인생을 내가 ㅠㅠㅠㅠ훈아 그냥 잊어,기억안나면 잊어ㅠㅜ그 넌 박는거니까 조금 나을거야 ..그게... 여자랑 큰 차이는 없어 그러니까, 말 잇지 못하고얼굴 빨개진 채 주절주절 떠드는 슨페는 그 이후부터 내가 너한테 빚진 게 많다며 밥사주고 술사주고 간식사줌.
건물이 다르고 거리가 멀어서 오기 힘들텐데 달리듯 걸어서 훈 폰 때려서 부름. 훈은 그때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없다 하지만 슨페는 제 잘못을 다 갚아야한다며, 분명 내가 그날 밤 너를 유혹한 것 같다 홀로 결론 내리고 미안해하며 우는 얼굴로 훈 손에 편의점에서 사온 샌드위치랑 우유 손에 쥐어줌. 그거 받고 다음 강의를 듣기위해 바로 달려가는 슨페 손인사하며 훈은 한숨을 쉰다 .저 사람 바보야. 언제쯤 알까. 내가 먼저 유혹한 거. 핸드폰 들고 엉뚱한데만 누르는 슨페 옆에서 제대로 된 전원 키 안 알려준 거. 충전 좀 해달랬는데 배터리 32프로나 남았던 거. 알까. 글쎄. 눈치 빠른 슨페라서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고.일단 확실한 건 둘 다 술에 절어 그때 제정신은 아니었단 것만이 슨페와 훈의 길고 긴 연애의 시작점이었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