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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쿱] 영원

다몬드 2017. 3. 12. 15:22

손만 대면 죽은 지 몇년된 나무에 잎파리 달게 하는 능력 가진 철이로 우쿱.

진짜 죽은나무를 살릴 수 있는 건 아니고 아직 숨이 붙은 나무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기둥이나 줄기에 손을 대면 마른 가지에 푸른 잎사귀가 열리고 꽃은 탐스럽게 열림. 매일 가는 산책로길에 굽어 죽은 나무를 그렇게 무의식으로 살리고 아 큰일이네 뒤늦게 후회했고 역시 등산하시는 분들 기적이다 신이 곡할 노릇이다 하며 감탄함. 그 뒤에서 철만 괜한 짓을 했어 너무 눈에 띄는 곳에 나무를 만질게 뭐야 자책하지 하지만 얼마안가 시들시들해 여린 꽃잎이 바란 꽃을 쓰다듬어 살림. 그냥 지나치고 갈수 없어. 그렇게 살린 꽃들 아름답기 그지없어 누군가는 사진같다, 또 누군가는 그림같다 라 표현하지만 실물로 보면 1/10의 수준도 안 되는 인색한 표현임. 풍성하고 찬란하며 매혹적인 자태에 시선 떼지 못하고 푸릇푸릇 진한 원색이 눈을 감아도 아른거려 자꾸만 떠올리게 해. 같은 꽃무리에서도 철의 손이 탄 것만 꼭 그랬음. 단순히 피우는 능력만 아니었는지... 그럼에도 철이 꽃 피우고 잎사귀 돋는 이 능력 좋아하지 않아. 왜냐면 그렇게 피운 꽃들 얼마 안 가 져버리기 때문. 보통 꽃들이 일주일을 산다면 철이가 피운 꽃들은 3일도 안돼서 잎이 떨어짐. 나무가 3개의 계절을 푸르게 빛내면 손 탄 나무는 1개의 계절을 보내고 잠이 듦. 가인박명이라 했던가. 잡기도 전에 휙 지나가는 젊음이 찬란히 부서져 허리가 굽고 색을 잃어 마지막 숨을 토하며 덧없이 쓰러져, 불안한 마음에 감은 눈을 뜨고 달려가면 썩어 까맣게 비틀렸어. 인사 없이 떠난 ''들에 처연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내가 괜히 만져서 일찍 죽었어, 라는 자책 훈은 냅둬도 죽었을 거라고 형이 마음을 줬기 때문에 조금 더 살았던 거라 위로하지만 결국 떠난 것들은 돌아오지 않아 조금 더 옆에 있지, 나랑 있지 하는 외로움을 달래주진 못함. 그런 의미에서 제 능력을 좋아하지 않고 사용하고 후회 백만번 해, 하지만 그런 철과 달리 훈은 그런 능력을 좋아했고 봉긋한 꽃무덤에서 마른 잎을 하나하나 매만지며 철이 못한 마지막을 정리하지. 죽음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 같아, 어딘가 진심이 섞인 그 한마디 툭 뱉어. 영원이 아름다운 건 아니잖아요 덧붙은 말에 한숨으로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음. 올해가 몇 년 짼가, 손가락으로 셀 수없이-감히 도전한다면 몇 백번을 접었다 펴야해-

오랜 삶을 살았던 훈은 죽음을 동경함. 기와집에 한복입던 시절이 자기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랜 기억인 훈은 신의 저주를 받아 죽음을 뺏김. 저주받던 그 때 그 모습으로 몇 백만년을 지냈고 근현대한국사의 산증인이라 감히 말 할 수 있지. 몇 년 전 유행했던 외계인 드라마의 남주가 사실은 훈을 두고 만든 게 아닐까 의심했지만 증거는 없었고 차이라면 외계인은 죽을 수 있지만 훈은 죽을 수 없다. 네가 프로메테우스냐 뭐냐, 언젠가쯤에 골목에서 달려오는자전거에 다친 훈이 넘어져 바닥에 머리부터 부딪혀 뇌검사를 받던 중간에 철이 물었었고 훈은 아무말없이 웃었음.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너가 큰 사고로 움직일 수 없고 침대에 누워 살아야 한다해도, 진짜 만약에 식물인간이 돼도 죽지 못해?

.

짧고 간결한 대답. 절망이나 미련없는 무감정하고 깨끗한 얼굴로 답하는 훈이 손에 쥐면 바스라질듯 흐릿하면서도 선명해 몇 백년을 살아야 저럴 수 있을까, 더 이상 묻지 못하고 입을 닫았음. 다행히 아무 이상 없단 소견 받고 맘 놓았지만 죽을 수 없는 삶이 끝 없는 추락과 꺼지지 않는 지옥불이라는 걸 온 몸으로 느꼈음. 그래서 왜 훈이가 그랬는지 처음으로 이해했고 그래서 왜, 라는 의문도 들었음. 하지만 물어보지 않은 건 발에 밟혀 뭉개진 잔디가 미안해 손으로 문지르다 파릇파릇 피운 자신을 웃으며 바라보는 훈의 눈빛 때문에.

영원은 굉장히 매력적인 아이라서 세상 사람들은 그를 가지려고 욕심을 냈고 그 욕심에 짓눌려 미치다 결국은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지.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더더욱 매력적인 위험을, 원치 않았지만 훈은 가졌고 그래서 어쩌면 위험에 노출됐을 그가 안전하게 살았던 건 나무를 살리다 사람에게 들켜 안절부절했던 철 대신 멱살을 잡아 끌어 눈을 마주쳤기 때문.

괜찮을까?

괜찮아요. 봐봐, 우리를 그냥 지나치잖아.

불투명한 유리처럼 탁한 눈동자가 무심히 훈과 철을 지나쳐 옆으로 지나감. 지나치지 못하고가지를 늘어뜨린 채 지쳐 쓰러진 나무를 다시는 안한다는 지난번 결심을 잊고 두 팔 뻗어 가득 안아버린 탓에 나무가 살아나는 과정을 생생이 보여줬지. 경악과 호기심에 젖어 눈을 크게 뜬 채 저를 보던 시선에 꼼짝 얼어 머릿속은 엉망임. 유치원 때 친했던 친구에게 비밀이라며 보여줬던 능력을 괴물이라며 피했던 과거가 그 위에 덧씌워져 정신차리면 제 손을 깍지껴 잡는 훈이 있었고 남자는 파란 잎을 자랑하는 나무를 그냥 지나침. 다행이야. 그제야 긴장을 풀고 어깨에 다른 팔을 두르고 안겨오는 철을 훈은 등을 천천히 쓸며 안아줌. 미안해 사과하는 철에게 고마워요 하는 훈이. 끔찍이 싫은 이 저주를 조금 사랑할 수 있게 해줘서.

영원한 삶. 죽음을 빼앗겨 사랑하는 이를 모두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훈은 어느 누구에게 맘을 열지 못하고 기대지 못하고 수백년을 살았음. 아무도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니까. 가끔 운명처럼 우연히 만나 오랜만에 광대가 아프도록 웃으며 친해져도 고개 돌리면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해. 처음 보는 사람처럼 눈이 마주침에 의아하며 미련 없이 떠. 아직 당신이 앉은 바닥은 온기로 따뜻한데 시린 바람이 어깨와 머리에 앉아 쓸쓸해. 혼자 깨고 혼자 밥 먹고 혼자 자. 매일 밤 온 몸을 짓누르는 두려운 고독감은 하루라도 눈이 마르지 않게 하지. 그나마 부모가 살았던 과거엔 신의 마지막 아량인지 친척친구들은 기억못한 훈을 부모님이 기억하셔 마지막까지 옆에 함께했는데 그들이 숨을 거두면서 훈은 혼자가 됐고 천천히 망가짐. 마음을 줘도 돌아오는 것 없고 같은 걸 봐도 공허한 제 웃음만 퍼져. 어쩌면 자신은 살아있지 않은 떠도는 혼이지 않을까 궁금해서 자해를 했지. 바늘에 살을 꿰맨 통증은 생생한데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붕대 감긴 팔을 손으로 쓸며 훈은 펑펑 울었다. 감히 신의 것을 사랑해서 받은 저주는 저가 감당하지 못하게 무거워서 제발 죽여달라고. 이미 충분하지 않냐며 목이 쉬도록 소리지르며. 하지만 지쳐 잠들었다 뜬 세상은 똑같아. 아름답고 생생하며 끔찍하지. 소리없는 눈물이 또 흘러. 뺨을 타고 이불을 적시는 눈물에 기쁨을, 슬픔을, 절망을, 고통을 흘려 보내며 그렇게 제 안에 모든 걸 비웠음. 아무것도 남지 않게. 흘러가는 시간처럼 덧없이.

그랬던 훈에게 유일하게 자신을 기억한 철은 사막의 오아시스, 죽은 땅에 핀 한 떨기 꽃, 끝없는 검은 우주 속에 빛나는 작은 별이었음. 또 뵙네요. 전날 약속에 늦어 무작정 달리다 훈하고 부딪혔던 남자의 인사에 톡하고 터진 눈물. 당황해 어쩔 줄 모르다 안아준 남자의 품에 안겨 색빠진 청남방을 손에 꽉 쥠. 다 버렸다 믿었던 감정들이 사실은 상자에 넣어 자물쇠로 잠그고 사슬로 칭칭 감아 접근 금지 종이까지 붙이며 지하창고에 묻었다는 걸 그 때 알았어. 하지만 또, 뵙네요 평범한 인사에 폭탄처럼 펑 터져 쑥대밭으로 만들고 오랫동안 흘려본 적 없는 눈물이 아프도록 뺨을 적셨음. 저를 기억하세요? 울어 맹맹한 코로 그래도 혹시나 물었던 질문은 어제 저랑 부딪혔던, 대답에 두 번째 보는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남자의 허리에 팔 둘러 꽉 안아버리게 만듦. , , 잠만. 이상한 사람? 당황해 두 팔을 위로 들고 중심을 차고 도망갈까 잠시 고민하게 만들었음. 하지만 어째선지 저보다 작고 말라서 서럽게 우는 남자, 훈이를 그냥 둘 수 없어. 왜 이렇게 우는지, 꼭 절망 끝에 처음 햇빛을 쬔 사람처럼 간절히 매달리는지 신경쓰여. 결국 다 울때까지 있어줬고 곧 서로 이름을 주고받고. 연락을 하고. 어울리고. 손을 잡고. 키스를 하고. 왜 그날 울었는지 알려주지 않아 궁금했지만 저를 보며 세상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반짝 빛내는 훈이 예뻐서 언젠가 말해줄거라 넘겼음. 봄꽃 보러 떠난 여행에 길가에 꺾여 시든 꽃을 두 손 가득 품어 활짝 피우다 들켰을 때 훈은 예쁘다며 꽃과 손바닥에 키스를 해줬거든. 부모조차 어디서도 절대 쓰지 말라며 거부당했던 능력을 유일하게 사랑해줘서 너라면 괜찮다라는 게 기저에 깔려있었고. 맑은 얼굴에 뭐가 있겠냐 싶었는데.

미안해, 정말 미안해요. . 미안해.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려 굵은 주사바늘이 꽂힌 손을 쥐며 연신 사과했음. 눈 깜짝할 새 일어난 사고. 앗 한 사이 시야가 반전돼 눈뜨면 온몸을 찢는 통증이 반겼고 그 후엔 한 번도 상상한 적 없는 끔찍한 비보를 들음. 제정신 아닌 상태로 자식으로서 마중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어느 정도 떨궜을 때 철은 제 몸의 변화를 알았음. 죽지 않는 몸. 영원한 생명. 사경을 헤매다 처음 눈 뜬 날 왜 훈이 그렇게 미안해하며 울었는지 그제야 이해가. 형 웃으며 부르다 심상치 않은 얼굴에 철을 보고 웃음기 지우며 쳐다봄. 무엇이든 받아들이겠다 단단한 얼굴로 형, 다른 목소리로 다시 부르는 훈을 철은 멍한 눈으로 내려 봄. 무슨 짓을 한 거야? 사실 잘 모르겠어. 내가 느낀 게맞아? 나 살아 있는 거야? 죽은 거야? 뻗어 잡는 손을 피해 등 뒤로 손을 가리고 뒤로 한발자국 떨어짐. 생각 없이 한 행동이었고 철도 자신이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어. 모르겠는데 상처받아 쓸쓸한 눈을 내리깔며 욱씬한 심장을 꾹 참는 훈을 예전처럼 선뜻 안아주고 싶진 않아. 그건 진심이고 철의 의지였음. 훈에게 모든 걸 들었음에도 그래, 그 때 철은 진심으로 훈을 미워하고 증오함. 누군가를 이렇게 미워할 수 있구나 이렇게까지 싫어할 수 있구나. 그림자조차 보기 싫어 무작정 떠나도 어떻게든 찾아 주변을 맴돌면 또 다른 곳으로 떠남. 전국을 돌며 피해. 꼬리잡기처럼 도망가고 잡히는 신세 됐지만 단 하루라도 너를 보지 않아야 겨우 숨통이 트여 그 행위는 멈출 수 없었음. 하지만 마지막 돈까지 탈탈 털어 더이상 돈이 없을 때, 일일 알바라도 구하려다닐 때 살아있지 않은 자신의 한계를 마주한 철은 문 밖에서 서서 저를 기다리는 훈 손을 잡고 집에 돌아감.

너를 용서한 건 아니야.

알아요.

담담한 목소리에 울컥 짜증이 나.

여전히 네가 싫어. . 평생 너를 미워할 거야.

괜찮아요.

훈은 사고 후유증으로 살짝 다리를 저는 철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늦추며 쓸쓸히 웃음.

미워하고 증오하고 싫어해도 좋으니까 옆에만 있어줘요.

훈도 알아. 손잡고 같이 걷는 철이 제 욕심의 산물인걸. 저를 기억하는 유일한 사람. 형이 아직 정상이었을 때 저를 잊을까 두려워 자다가도 깨어 달려 형형! 부르는 지훈의 입을 손으로 막으며 사람 다 깨울거니! 하며 입술을 보듬었지. 훈아, 특별한 사람이 특별한 목소리로 부른 이름이 낯설어 한동안 잊었던 이름을 기억해. 사랑해, 좋아해, 행복해, 저 외엔 출입한 적 없는 제 침대에 눕혀 따듯한 몸을 핥고 깨물어 맛보며 가득 안았어. 제 밑에서 빨갛게 젖어 우는 철이 너무 예뻐, 사랑스러워 훈은 울었음. 훈이 울보네, 울보~ 입술에 키스를 하다 뺨에 떨어지는 눈물에 의아해 눈 뜬 철은 어깨에 얼굴을 가려선 숨기지 못하는 흐느낌에 소리내어 웃음. 훈을 끌어안아 아직 제 안에 있는 훈에 아래가 깊숙이 들어와 헉, 숨이 막혔지만 그것보다 고마워요, 사랑해요 연신 넘실대는 감정을 토해내는 훈이 너무 사랑스러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음. 젖은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아끌어 붉은 뺨과 코와 입술에 쪽쪽 뽀뽀를 하고 눈물샘 터진 눈을 진하게 키스해.

너여서 고마워. 너라서 고마워.

가슴가득 벅차오르는 충족감과 행복에 훈을 눕히고 올라와 스스로 움직이는 철에 훈은 처음으로 신께 감사했음. 이 사람을 만나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철을 빼면 텅 빈 공간처럼 의미도 없고 값을 매길 수 없는 공허한 삶이지만 철을 만나서 다행이라고. 당신 덕분에 구원받았다고. 그날밤 훈은 제 비밀을 털어놓았고 눈물이 마른 저를 대신해 울어준 철을 더 사랑했음.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놓치지 않을거야. 어쩌면 삐뚤어진 애정이었음. 너무 오래 혼자로 외롭게 살아서 오랜만에 받는 애정을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파서 언젠가 세월이 흘러 철이 늙고 죽는다 생각하면 장기는 꼬이고 뇌는 부글부글 녹아. 할 수 있다면, 허락한다면...갑자기 튀어나온 부정적인 감정에 스스로 놀라 고개를 저으며 감췄음. 너무 행복하면 불안하다고 하는데 그런 거라 생각하고 안위하며 다독여 넘기려했던 거 철의 사고로 와르르 무너졌고. 몇 번을 봐도 자신을 못 알아보는 의사가 각오하시라는 말에 신께 부르짖음.

제발, 제발, 죽여 달라는 말을 다신 안 할테니 이 사람을 살려달라고. 당신의 끔찍한 저주를 영원히 견딜테니 제발 내 옆에만 있게 해달라고.

피눈물이 나도록 기도했고 줄곧 침묵했던 신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훈의 소원을 들어줌. 때문에 철은 살았지만 두 사람 사이는 삐걱댔고 훈은 한 번 잃을 뻔한 철을 다시 놓치고 싶지 않아 그렇게 처절하게 쫓아다녔음. 먹지 않고 자지 않는 삶 나날에 점점 말라가도 어차피 죽을 수 없고 철이 없는 삶에 비하면 이건 별 거 아니니까 그렇게 견딤. 마지막엔 제 능력을 최대한 개방해 며칠 동안 까맣고 하얀 세상만 봐야했던 편법을 썼었지만 철이 제 옆에 돌아온 것으로 감사했음. 그래서 저를 미워하고 증오해도 괜찮아. 사랑하지 않아도 돼. 가슴은 아프겠지만 내 옆에 있는 것으로 안심하고 만족해. 하지만 흐르는 물에 돌맹이 맨들맨들해지듯 증오와 미움이 흐르는 시간에 깎여 흐릿해. 같이 자고 같이 먹고 같이 산책하고 같이 티비보는, 보고 싶지 않아도 볼 수밖에 없는, 어디에 있는지 숨소리가 들리는 좁은 집에 함께하니 미워할 힘도 없더라. 웃는 얼굴엔 행복만 가득해서 미워 찌푸리는 제 얼굴도 못나 보이고. 집이 작아 침대 하나밖에 없는데 새벽녘에 기척에 살짝 눈을 뜨면 가만히 얼굴을 쓰다듬는 훈이 더없이 맑아서 그냥 그냥 그렇게 무뎌졌음. 아주 얇게 밑바닥에 남아있긴 하지만 집 밖 작은 정원에 시든 꽃을 묻는 쓸쓸한 등을 안아줄 수는 있음. 벚꽃 나무 아래서 살랑살랑 떨어지는 꽃잎이 입술에 붙어 입술로 떼도 괜찮음. 가끔 참을 수 없을 때 나를 안아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그런 감정이 어느새 산처럼 쌓여 어느 순간에 왜 훈을 미워했는지조차 잊었고. 어느새 자연스레 우린 사랑하더라. 훈이 자주 말하던 운명일 수도 있고 어쩔 수 없는 사정일수도 있지. 쳇바퀴처럼 끝없이 굴러가는 지구에서 인구가 70억이나 넘는데 우린 서로밖에 없어. 운명의 신에 장난으로 일세기동안 못만나도 전쟁으로 모든 사람들이 죽고 자연재해와 질병에 살던 고향을 떠나도 결국엔 만날 수 밖에 없었을거란 생각이 자꾸 들기 때문에.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는데 그런 확신이 있어. 우린 결국엔 만날 수 밖에 없었을거라고. 꽃을 피는 능력자랑 죽지 않는 불사조. 아 뱀파이언가? 처음 훈의 존재를 알고 정말 너무너무 궁금해서 생마늘을 샀던 날 훈은 마늘로 저글링을 배웠음. 잘한다. 속셈을 들켰다는 쪽팔림보다 저글링 잘한 연인이 대단해서 순수하게 박수를 쳤음. 나중에 그 마늘은 고기랑 맛있게 쌈싸먹어 그날밤 키스하는 내내 마늘냄새가 나서 웃겨 죽을뻔한 건 마늘을 볼 때마다 훈이 입에 담는 소재임.

뱀파이어는 발기 못하는 거 알아요? 어느날 밤엔 그리 말해서 철은 그럼 한번 확인해볼까? 하며 이불 밑에 숨어 훈의 바지를 벗겨 손으로 입으로 확인도 했음. 지금도 한참 뱀파이어물이 유행했을 때 안녕하신가? 훈 바지안으로 손을 슥 집어넣어 요즘 자주 확인하지 못한 아래에 인사함. 몇 번 주물럭했더니 단단하고 곧게 서서 실망한 투로 왜 너는 뱀파이어가 아니야? 했다 온 몸에 잇자국 가득 받음.

훈이 세상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다보니 은행에 둔 돈이나 땅 같은 건 없지만 현금, , 보석은 많음. 먹고살려면 돈은 있어야겠더라. 처음엔 덧없는 삶이 싫어서 넓은 집에 비싼 장식품을 달고 화려하게 살았음. 하지만 꾸미면 꾸밀수록 마음은 텅텅 비어 허무했고 결국엔 갖고 있던 거 다 처분하고 작고 아늑한 집으로 이사감. 전 집에 비하면 답답할 정도지만 혼자 살기엔 딱 좋아서 오히려 거기서 평안을 얻었고. 세상이 바뀌면서 여러 번 이사를 해도 작은 집을 선호하는 건 변치 않음. 지금은 철도 같이 살아서 조금 넓은 투룸임. 필요한 것만 있으면 된다는 주의라-세상 오래 사니 그게 최고더라-좋게 보면 깔끔하고 나쁘게 보면 황량한 집에 철이 가끔 훈 현금다발 들고 가서 비싸고 좋은 물건, 훈이가 한참 겪던 사치를 똑같이 하는데 얼마 못감. 하나 덜컥 사놓고 화려한 장식구를 둘 데가 없어 옷이 가득한 방구석에 세움. 그렇게 쌓인 사치품 1평 차지하다 그만뒀고 기회 되면 하나씩 팜.

좋은 주인 만나는 게 쟤들한테 축복일거야. 버림받은 꽃이나 난들을 만난 날엔 저래서 하루는 훈이 형 꽃하고 대화해요? 물음. 그냥 가끔씩 입술을 달싹이는 철을 볼 때마다 들던 생각이라 농담처럼 던진건데 어?! 아니?! 어떻게 식물하고 대화를 하니? 예민하게 반응하는 철에 설마, 싶었고. 나중에 집 앞 작게 만든 정원에 유난히 작은 꽃봉오리에 응응, 무섭지 않아. 내가 있잖아 말하던 철 보고 설마가 역시로 변함.

형은 언제부터 그랬어요?

어느날에 궁금해 물었던 질문. 벚꽃이 져 우울한 철을 위해 끓인 차를 한 입 마시던 철은 한참을 말없다 입을 염. 몰라. 기억 안나. 그냥 내가 생각이라는 걸 한 순간에도 난 꽃을 피웠어. 어려서 능력을 감추지 않고 이런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게 신기해 함부로 사용하다 이상한 소문이 붙고 부모님께 혼나고 손은 장갑으로 막혀 정신 차리면 철은 제 손을 주머니에 넣으며 다녔음. 잘못해서 만지면 나쁜 사람들에게 끌려가. 엄마가 혼내며 했던 말들.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들려. 두 귀로 손을 가리고 눈을 감는 모습이 애달파 훈은 몸을 살짝 일으켜 두 눈두덩에 키스함. 깜짝 놀라 파르르 떠는 속눈썹이 입술을 간지럽혀. 예뻐요. 귀를 가린 손을 잡아 깎지끼고 그대로 내려와 입술을 맞대. 벌어진 입술새로 분홍색 꽃술을 찾아 맛보며 훈은 제가 할 수 있는 위로를 함.

예뻐요. 아름다워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훈아. 이젠 내 나이도 기억 안나.

벗은 몸을 끌어안아 어둠에 감춘 속마음을 드러내.

나보단 많아요.

너는 최소 조선시대 살았다 치면 오백살이 넘는 할아버진데 내가 너보다 많아?

장난처럼 던진 말에 목구멍이 보이도록 크게 웃음.

형 그럼 도대체 몇 살 연상이랑 사귀는거에요? 오백살? 그게 가능한거야?

야 나 오십년은 살았다. 오십은 깎아.

깎아봤자450살이잖아.

뜨끈하고 달콤했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서로 놀리며 티격태격해. 500살 이상이나 먹고 아직도 유치한 훈과 이제 50살 먹어 응애 하는 철이, 이러다 3차 세계 대전 터지는 거 아니냐? 뉴스보며 심각하지만 죽을 땐 같이 죽자 최후의 종말엔 서로 손을 잡고 죽자며 약속함. 잡은 손엔 한 떨기의 꽃을 들고 그렇게.

(번외)

꿈이다. 달콤한 꿀이 흐르는 동산에 꽃과 꽃 사이를 뛰놀며 살피는 요정을 훈은 풀숲에 몸을 숨겨 훔쳐본다. 이름은 뭘까. 무엇을 좋아할까. 숙일 때마다 보이는 속살에 얼굴을 붉히며 갈증을 느낀다. 궁금해. 당신이 궁금해. 매일 가던 산에서 길을 잃어 한참을 헤매다 우연히 발견한 동산. 발을 적시던 물은 마시면 달콤한 꿀이었고 탐스런 과일을 따 먹으면 세상에선 맛보지 않은 달콤한 과육이 입을 가득 채웠다. 이런 곳이 있었던가. 여기서 태어나 동네를 쏘돌아 다니던 제가 모르는 곳이 있었다니 신기하고 놀라워 누가 나타났는지도 모르고 한참을 구경했다. 누구야. 날카로운 칼을 목에 겨누며 낮은 목소리로 위협해. 놀라 먹던 과일을 뚝 떨어뜨렸다.

..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들어왔어?

길을 헤매서, 돌아다니다, 어쩌다 입구가 있길래.

죽고 싶지 않으면 꺼져.

목이 따끔했다. 칼에 찔린 것 같았다. 훈은 두려움에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발을 채찍질해 주춤하며 뒷걸음질을 했다. 진한 눈매를 날카롭게 빛내며 지켜보는 눈빛에 목이 잘려나갈까 침도 삼키지 못하고 겨우 떼던 때에 갑자기 눈을 크게 뜨더니 멈춰!!소리침. 놀라 그대로 멈춘 훈에 후다닥 달려옴. 그저 뒷걸음질만 했는데 죽는 건가 싶어 눈 질끈 감은 훈이 저를 밀치는 힘에 휘청이며 바닥 구름. 손바닥이랑 무릎이 아파 눈물 찡하고 짜증이 올라오는데 아까 제가 있었던 자리에 주저앉아 너네 안 다쳤어? 다행이야. 안심한 목소리에 의아함. 뭐지 싶어 고개를 빼꼼 내미니 거기에 있던 건 꽃들. 들꽃처럼 작은 꽃잎을 활짝 펴 바람에 흔들렸다. 올망졸망하게 모인 꽃들이 예뻐 우와, 살짝 흘린 감탄에 고개를 돌린다.

너 하마터면 이거 밟을 뻔 했어. 알아?

따지는 말투에 목을 움츠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거기 꽃이 있는 걸 몰라서...

꺼지래서 도망가기 바빠 신경쓸 틈이 있었나. 억울했지만 아직 무서워 솔직히 사과했다. 몰랐으면 어쩔 수 없지만 다음부턴 조심해. 수그러진 목소리로 말한다. 또 꽃을 밟을 수 있으니까 자, 손 잡고 따라와. 내민 하얀 팔에 손을 뻗어 일어났다. 굽었다 펴진 무릎이 아파 얼굴이 찌푸려진 걸 아프냐 묻길래 고개를 저었다. 아팠지만 알리고 싶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하며 정말? 묻길래 한 걸음을 뗐다. 통증은 참을만했고 훈은 웃었다. 아프면 말해. 마주 웃는다. 처음 봤다. 광대가 볼록 솟아 처진 눈이 활처럼 휘어지고 붉은 입술은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벌어진다. 훈은 넋을 놓았다. 웃는 얼굴이 회오리처럼 어지러이 돌아가다 쾅쾅 눈을 때렸다. 다리에 힘이 빠졌다. 휘청거리는 몸을 급히 잡아 조심히 땅에 앉힌다. 허락도 없이 바지를 올려 피가 맺힌 무릎에 눈을 가늘게 뜬다.

안 아프다며.

.

아파?

.

안 아파?

.

바보같아서 질문을 멈췄다. 고여 흐르려는 피에 눈만 올려 훈을 한 번 보더니 고개를 숙인다그리곤 혀를 내밀어 피를 핥는다. 몸이 떨렸다. 다리가 덜덜 떨려 손으로 다리를 잡았다. 짧퉁한 손가락 위로 분홍색 뾰족한 혀가 상처를 쓸었다. 아랫배와 얼굴이 뜨거웠다. 훈은 다리를 모았다. ..그만.. 말렸지만 목소리는 연약하기 그지없었다. 핥으면 낫는다더라. 피가 묻은 혀로 입술을 핥으며 말한다. 훈은 눈을 꾹 감았다. 하얗고 빨간 색이 눈을 찔러 참을 수 없었다. 젖은 숨이 무릎에 닿았다. 축축한 혀가 닿을라 긴장하면서 훈은 주먹을 꾹 쥐었다.

훈아!!!

세계가 흔들렸다. 눈을 떴다. 뜀박질을 한것마냥 숨이 거칠다. 익숙한 천장에 보름달이 떴다. 옆집 원이다.

언제까지 자고 있을거야. 해가 머리 위로 떴어. 얼른 일어나. 오늘 순이랑 옆마을에 가기로 했잖아.

눈을 끔벅이며 한참을 말없이 있던 훈이 입을 열었다.

나 오늘 못가, 갈데 있어.

열에 다섯을 허탕치고 겨우 찾은 동산에서 나무 아래 잠든 당신을 봤다. 꽃이 바람에 흘리는 노래에 진심으로 웃는 당신을 봤다. 그 때 고마웠다며 인사하며 친해지고 싶었지만 다가가진 못했다. 신의 동산. 무작정 갈 데 있다며 밥도 안 먹고 가려는 훈을 잡아끌어 추궁하던 원에게 몇 번의 한숨을 삼키고 털었다. 표정없이 듣던 원은 말이 끝마쳐서야 갖고 있던 부채를 접어 훈의 머리를 때렸다. ! 맞은 머리를 감싸며 버럭 화를 냈다.

살아서 돌아온 것에 감사한 줄 알아. 뭐가. 네가 간 데 거기 신의 동산이야.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했다. 신이 아끼는 작은 동산이 산 속 어딘가에 있다고. 아름다운 꽃들과 금과 은으로 된 나무들. 꿀이 흐르는 강. 신외엔 들어올 수 없는 동산이라고. 모르고 들어가면 동산을 지키는 신령에 목이 베여 죽을거라 했다. 훈은 저고리를 풀며 목을 살폈다. 있어. 뭐가? 칼에 찔린 상처. 날카롭게 베인 붉은 상흔에 훈은 기뻐했다. 진짜 있었어. 원은 훈을 말렸다. 너 그러다 진짜 죽어.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갔다. 하지만 역시 무서워서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대신 몸을 숙이면 가릴 수 있는 풀숲에 숨어 지켜봤다. 무서웠던 첫모습과 달리 웃고 뛰노는 모습이 푸르렀다. 바람을 타고 뛸 때마다 달콤한 향이 났다. 욕심이 났다. 보는 것으론 만족이 안됐다. 직접 얼굴 보고 마주 얘기하고 싶고 달콤한 살냄새를 맡고 싶었다. 아래가 욱신거렸고 마음이 조급했다. , 뜨거운 숨을 뱉었다.

누구..! 또 너야?

들켰다. 저 멀리 있더니 어느새 눈앞에 나타나 한심한 눈빛으로 내려본다.

진짜 죽고 싶나보지?

스륵- 허리에 단 칼을 꺼낸다. 훈은 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주고싶은 게 있어서 왔습니다.

그러면서 두 손을 내밀었다. 두 손엔 오는 길에 돌사이에 핀 붉은 꽃이었다. 살폈다. 칼을 반쯤 꺼낸 채로 굳어 말이 없다. 꽃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입은 반쯤 벌렸다. 훈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검이 검통에 빨려 들어가고 뒤로 물러선다.

외부의 것을 함부로 들이면 안 돼, 그거랑 같이 나가.

목소리에 힘이 없다.

그저 꽃일뿐인데요

꽃을 내밀었다. 고개를 젓는다.

신에게 혼나.

러면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붉고 화려하게 핀 꽃은 이 동산에서 보지 못한 신비한 꽃이라. 신의 동산을 관장하던 이유가 꽃과 나무 때문이련지 모를 남자가 내민 꽃에 시선을 뺏기면서 선뜻 받지 못한다. 잘못하다 신께 걸리면 혼이 찢기는 큰 벌을 받는다. 저를 보며 인사하는 붉은 꽃이 매혹적이라 눈을 감았다. 보지 않으면 유혹에 벗어날수 있겠지. 하지만 큰 착각이었다. 훈이 손을 뻗어 귀에 꽃을 꽂았다. 놀라 넘어졌지만 꽃은 귀에 잘 매달렸다.

아름다우십니다.

훈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천천히 손을 뻗어 귀에 꽂힌 꽃을 조심히 만지곤 슬쩍 짓는 미소는 여태껏 본 계집애보다 예뻤다. 순간이었다. 입술을 부딪쳤다. 억겁 같던 짧은 순간 훈은 우주를 봤다. 끝없는 암흑 속에 찬란히 빛나던 별무리에 정신이 아찔했다. 촉 소리가 나며 입술이 떨어졌다. 얼굴과 귀가 뜨거웠다. 붉은 꽃만큼 그도 붉었다. 입술에 꽃냄새가 났다. 훈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훈은 매일 그를 보러 갔다. 처음에 화를 내고 내쫓던 그도 매일 찾아오는 훈의 집념에 두손두발을 들고 냅뒀다. 흙을 만지고 물을 주는 그의 옆에서 그를 봤다. 말을 걸면 무시했기 때문에 말은 아꼈다. 그는 안절부절했다.

차라리 실컷 떠들고 꺼져. 그런 눈으로 보지 말란 말이야. 네가 자꾸 그렇게 보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으면서 붉은 귀는 감추지 못했다. 훈은 그의 손을 잡았다.

당신을 사모합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지만 밀어내진 않았다. 그것만으로 좋아서 알아차리지 못했다. 동산이 불탔다. 그는 그가 차던 검으로 신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어리석은 불쌍한 영혼이여.

피가 흐르는 자리에서 줄기가 나오고 붉은 꽃이 피었다. 훈이 주던 그 꽃이었다. 꽃으로 덮인 몸을 끌어안으며 한참을 울었다.

잘못했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제가 나가라는 그를 유혹해 이리 됐습니다. 차라리 저를 죽이세요. 저를 죽이시고 이 이를 살려주세요. ]=

아직 이름도 못 들은 아름다운 이 사람을 살려주세요.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그의 눈두덩이에 떨어져 귓가로 흘렀다. 두 사람이 울었다.

신은 벌을 내렸다. 머리를 내리찍는 강한 충격에 정신을 잃은 훈은 꽃으로 만든 작은 무덤 곁에서 눈을 떴다. 붉은 꽃무덤이었다. 당신은 누구지. 이름 없는 무덤에 붉은 꽃이 익숙했다. 꽃잎 아래로 손을 감싸 쥐어 고개를 숙였다. 달콤한 향이 났다.무 슨 꽃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중요한데 중요했는데 뭐지. 기억을 헤집어도 찾을 수 없어 앗한 사이 눈물이 흘렀다. 여태껏 슬픈 걸 봐도 울지 않던 저가 우는 게 낯설어서 훈은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붉은 꽃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멀리멀리 도망쳤다.

신의 것을 사랑하면 안 돼. 그러면-

낯선 목소리가 어지러이 흔들었다. 달렸던 발이 엉키고 경사길에 굴러 나무뿌리에 걸린 훈이 피를 흘리며 기절했다.

훈아- 그리운 목소리가 아스라이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