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

[우쿱] 자격지심

다몬드 2016. 8. 7. 20:16

 





[우쿱/지훈승철] 자격지심

 









키가 작은 게 서러울 때가 있다. 친구들이 어른들이 혹은 나이가 아주 어린 아이들까지 난쟁이!! 라고 놀릴 때 말고. 장롱 맨 꼭대기 위에 올려 있는 물건 꺼내고 싶어도 의자 없으면 못 꺼낼 때 말고. 작으니까 팔걸이하기 좋다며 내 어깨를 팔걸이 공공재로 쓸 때 말고

그런 거 말고,

남자로 살기엔 부적절하게 작은 키가 단점이니까 큰 이성을 만나라고 놀림을 많이 받았다. 2세에겐 줘야 하는 평균 키를 높여야 하지 않겠냐며. 그래서 그럴까? 하면 깔깔 웃어대고 재밌어한다. 그게 싫어 저보다 작고 아담한 사람을 강제로 이상형으로 삼아야했다. 그러면 모두들 그래야하겠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으니까.

자존심이 상한다.

겉모습으로 갖는 편견대로 살아야 함을 강요받는다. 그렇지 않으면 조롱하거나 안타깝게 바라보거나 문제거리를 마주한 것처럼 얼굴을 구기니까. 조금이라도 다른 티를 보이면 실망했다고 돌아서거나 말이 붙는다. 소란하고 귀찮다. 누군가 저를 두고 떠드는 게 싫다. 그래서 냅뒀다. 그랬더니 그것이 내가 됐다.

그래서 지훈은 한 번도 제 진심을 제대로 이야기 해본 적이 없다.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게 잘못이었나 보다.

 

 

 




w.agapi


















 

하얗게 발광하는 모니터가 일순 빗물 먹은 창문처럼 흐릿해진다. 무의식적으로 눈을 깜박이니 메마른 흙바닥을 빗질하듯 뻑뻑하게 눈꺼풀이 안구를 덮는다. 따갑고 시려 눈물이 찔끔 삐져나온다. 손으로 대충 흐른 눈물을 닦고 눈을 올려 모니터를 보니 아까보다 화면이 더 눈부시다. 뜨거운 태양빛을 품은 빨래한 흰 옷같이 눈이 시려 지훈은 모니터 보기를 포기하고 고개를 돌렸다.

바뀐 시야엔 승철이가 볼펜을 이빨에 물고 입을 벌린 채 졸고 있었다. 의자에 완전히 몸을 맡기고 발목에서 x자로 다리를 꼬아 의자 다리에 올리고 한 팔은 볼펜을 들고 한 팔은 공책을 꼭 쥔 채였다. 지훈은 승철의 드러난 허벅지 안쪽에 시선을 돌렸다. 햇빛을 잘 받지 못하는 그쪽이 복숭아 색처럼 발그레했다. 밀폐된 작업실은 지하라 하여도 여름엔 눅눅하게 더워서 에어컨이 없으면 살 수가 없어서 특별한 일 없으면 매일 가동되어 있었다. 저야 워낙 몸에 열이 많으니까 에어컨을 아무리 맞아도 튼튼했지만 승철은 춥지 않았을까? 더욱이 앉아있는 곳이 에어컨 바람 길목정중앙이다. 감기는 쉽게 걸리지 않는다지만 냉방병이라도 걸리면 안 되지. 더욱이 곧 있으면 컴백이다. 조금이라도 더 몸을 아껴야 했다. 지훈은 가까운 곳에 위치한 에어컨 리모컨을 들어 전원을 눌렀다.

삐빅- 에어컨 날개가 접어지고 실내가 조용해진다. 지훈은 아예 몸을 돌려 승철을 마주보았다. 발갛게 올라온 볼이 찬바람에 장시간 노출 돼 턴 것은 아닐까? 손을 올려 뺨을 만졌다. 뜨끈뜨끈했다. 그제서야 지훈은 작업 중간에 승철이 술에 취해 작업실에 들어왔다는 것을 기억했다.

후나-’

한참 작업에 집중해 누가 들어왔는지도 모를 때 누군가 뒤로 다가와 의자채로 저를 끌어안고는 숨을 머리위에 쏟았다. 좋지 않은 알코올 냄새에 짜증이 일다가 그 사이로 익숙한 향이 섞여져서 어렵지 않게 범인이 승철이라는 걸 알았다. 위에서 무겁게 누르는 무게에 머리에 짓눌리는 헤드폰을 벗고 올려다봤다. 뺨이 붉은 얼굴에 승철이가 뒷말을 길게 끌며 어린 아이처럼 웃고 있었다.

우리 후니~’

제 머리통을 끌어안고 뺨을 문댄다. 아 뭐해요, 끌어안은 팔을 풀고 머리를 밀었더니 순순히 뒤로 물러가는가 싶더니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넘어졌다. 큰 소리에 놀라 급하게 뒤를 돌았더니 아야 아파하며 엉덩이를 문지른다. 그러면서도 뭐가 즐거운지 킥킥 웃는다. 해맑아서 머리가 아프다.

얼마큼 마신 거예요.”

그 앞에 쪼그려 앉아 시선을 맞추고 물으니 글쎄 7벼엉? 8벼엉인가~? 산수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손가락을 꼬물꼬물 접는다. 왜 숙소로 안 갔어요. 가사 써야지이. 이 상태로? 그랫!!(갑자기 목소리가 커져 지훈 몸이 움찔 놀랐다) 안 될 것 같은데. !! !!! 세 번!! 세 번!!이나 빠꾸 먹은 그 가사!! 내가 꼭 잘 써서 너한테 오케이 받을거야아!!

승철이 두 주먹을 꽉 쥔다. 발음이 쓸데없이 또박 또박이다. 몸에 힘도 들어가 있다. 그 모습에 결국 지훈이 웃음이 터졌다. 오늘 오후 연습실에서 이번엔 진짜 잘 썼다고 자화자찬하며 보여줬던 노트를 그대로 되돌려줬을 때 시무룩하더라니. 그래도 지훈이가 아니다 하면 아니겠지. 하고 가길래 괜찮은 줄 알았었는데 마음에 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게 그렇게 속상해서 술 마셨어요?”

. 그것도 있꼬.”

고개를 젓는다. 뭔데요, 물었더니 눈을 끔벅이며 지훈을 가만히 바라본다. 뭐요, 한쪽눈썹을 들어 올려 무언으로 물었다.

가사 써야겠다.

다리에 힘을 주고 천천히 일어난다. 갑작스런 움직임에 휘청거리는 몸이 또 넘어질까 팔을 잡고 도와줬다. 그대로 몸을 끌어 아까까지 지훈이가 앉던 의자 오른쪽에 두었던 다른 의자에 풀썩 주저앉혔다. 큰 진동에 의자가 뒤로 밀린다.

진짜 가사 쓸 거예요?”

물논!”

풀어진 발음처럼 영 태도가 못 미더워 물어도 주섬주섬 책상 한 쪽에 치워진 노트를 들고 와 펼친다. 용케도 그 노트 중에서 본인걸 펼친 거 보니 괜찮아 보이는데 또 쓰는 꼴을 보면 지렁이가 비 왔다고 신나하며 인도(人道)에서 춤추는 모습을 그린 것 같았다.

그냥 숙소로 가요, .”

“...(중얼중얼 읊는데 들리지 않는다)”

나랑 같이 가요.”

시러.”

왜요.”

“시르니까-

뭐라는 거야. 골이 땡긴다. 얼마 남지 않은 컴백에 잘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해 예민해진 신경줄이 늘어진 고무줄마냥 너덜 너덜거린다. 매니저 형 통해서 보내고 싶은데 술주정뱅이는 귀찮고 힘들다. 분명 안 간다고 고집 부리고 난리 칠 것 같다. 분명히 그럴 거야. 술주정뱅이 고집은 쇠 힘줄 보다 질기니까. 그래서 지훈은 그냥 냅뒀다. 저러다 알아서 가겠지 하고.


그리고 지금 현재.

아주 자알 잔다.”

너 지금 형 비꼬는 거지? 들었으면 한소리 들었을 말투로 그러면서도 지훈은 목소리를 낮췄다. 승철이 깰까 봐. 그러면서도 승철의 뺨을 감싼 손바닥은 떼지 않는다. 뜨끈뜨끈한 게 기분 좋다. 부드럽기도 하고. 나쁘지 않네.

자유로운 다른 손으로 승철이 물고 있던 볼펜을 조심스레 뺐다. 살짝 이에 걸쳐 있었던 것인지 쉽게 빠진 볼펜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엄지손가락을 펼쳐 윗입술을 닦았다. 점처럼 돋아난 수염이 까끌 거리고 단단한 입술이 손가락모양대로 바래다. 동그랗게. 길게. 주름진 굴곡 따라 바뀌는 바래짐에 그것을 꽤 집중 있게 만지던 지훈은 울고 싶어졌다.

키스를 했었다.

연습을 끝마치고 자연스레 작업실로 들어가던 저를 뒤따라와 뒷목을 잡고 누르던 커다란 손과 숙이던 고개를 피하지 않았다. 능숙하게 입술을 갈라 들어오는 혀를 밀지 않았다. 오히려 지훈은 덜 닫힌 작업실 문을 꾹 닫고 잠금 버튼까지 눌렀다. 젖은 소리가 야해서 얼굴이 홧홧거렸는데도 입술을 떼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고개가 돌아가고 등이 벽에 닿고 뜨거운 하체가 맞닿았음에도 더 바랬다. .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밀어붙이는 몸을 힘껏 밀었다. 입술이 얼얼하고 손은 흥분으로 벌벌 떨었음에도 타는 갈망을 숨과 함께 뱉으며 고개를 숙였다.

내려다보는 시선이 따갑다. 왜 그러냐고 따지는 것 같았고 장난 하냐며 화를 내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지훈은 움직이지도 입을 열지도 않았다. 눅눅하고 건조한 공기가 둘 사이로 무겁게 흐른다.

...”

깊은 한숨과 토해진 말은 그러나 끝을 맺지 못하고 사라졌다. 몸을 돌리고 문을 열어 계단을 올라가는 소리를 묵묵히 들으면서 지훈은 라는 사람이 얼마나 작은 사람인지를 깨달았다.

 



키스해도 돼.”

손가락에 짓눌린 입술이 상하로 움직인다.

깼어요?”

눈을 몇 번 깜박이며 떠진 큰 눈이 지훈을 올려다본다. 손을 떼려하니 붙잡아 끌어당긴다. 그대로 승철의 위로 몸이 무너지고 입술이 닿는다.

술 냄새 나. 맞부딪힌 입술로 소곤거렸다. 미안해 대답하면서도 입술은 떨어지지 않고 지훈의 허리를 끌어안아 당긴다. 저도 같은 마음이라 멈추고 싶지 않아서 혀를 섞었다. 축축한 혀가 미끌미끌하게 얽혀 끈적거리는 점액질과 타액이 입안에 찬다. 그것을 쭉 빨아 삼키니 씁쓸한 소주 맛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할래?”

입술이 떨어지고 침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닦던 지훈이 손이 멈췄다. 입을 열었던 승철의 표정이 더없이 진지해 지훈을 몸을 뒤로 뺐다.

형 그건

내가 너무 커서 싫어?”

지훈의 입이 다물어졌다. 조용한 침묵에 숨이 막힌다.

내가 너보다 덩치도 크고 키도 커서, 거기다 나이도 한 살 더 많아서 부담스러워?”

승철의 얼굴이 쓸쓸하게 무너진다.

너보다 작고 아담하지 않아서 내가 싫은 거니.”

승철은 처음 봤을 때부터 컸다. 키가 나보다 컸고 덩치도 나보다 컸다. 손도 크고 발도 크고 눈도 크고 그냥 다 컸다. 밥도 내가 더 먹고 우유도 내가 더 마셨는데 나는 다 작았다. 키도 작고 덩치도 작고 발도 작고 아 손은 좀 크고. 어쨌든 이지훈은 작았고 최승철은 컸다. 포옹을 하면 이지훈은 최승철에게 안긴 꼴이었고 최승철의 키와 같으려면 계단 1칸은 올라가야했다. 1살 많아서 형이라고 불러야 했다. 1살, 1칸, 1마디. 이지훈이 최승철을 따라잡을 수 없는 그 차이들.

그 차이가 이지훈을 더 작게 만들었다.

지훈아.”

승철의 부름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마주보는 눈동자가 서서히 휘어진다.

난 너가 작아도 상관없는데. 너가 작은 만큼 내가 더 널 사랑하면 되니까.”

젠장.

시야가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뜨거운 눈물이 지훈의 볼을 타고 흐른다. 굵은 방울들이 턱에서 뚝뚝 떨어지고 입새로 짐승 울음 같은 괴로움이 쏟아졌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

승철은 다 알고 있었다. 내가 자존심만 센 못난 놈이라는 걸. 알면서도 추궁하지 않았다. 답답한 적도 있었겠지만 이해했다. 받아들였다. 내 못난사랑을. 사랑하니까 받아들인 거다.

안아줘.”

승철이 두 팔을 벌렸다. 지훈이 그 안으로 다가가자 지훈의 허리를 끌어안고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지훈의 젖은 눈물이 승철의 머리카락을 적신다.

키스가 싫었다. 올려다 봐야했으니까. 여자애처럼 목을 끌어안고 받아들여야하는 게 싫었다.

지훈은 키스를 하고 싶었다. 승철의 두 뺨을 감싸 쥐고 끌어올려 제 애정을 쏟고 싶었다.

승철을 안고 싶었다. 제 품에 담고 싶었다.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것이 지훈을 작게 만들었다. 오랫동안 작다고 밟혀야 했던 자존심이 제 사랑도 작게 만들었다. 그것을 들키기 싫어 숨기고 상처 줬다. 그리고 상처받고. 그런데 어떻게 할 수 없는 그 차이.

하지만 결국 제 옹졸한 자존심이 문제였다. 그리고 그걸 나보다 큰 최승철이 기꺼이 안아주었다.


난 형에게 이길 수가 없어.


형이라 안 할거야. 이미 안하고 있잖아. ...알았어? 내가 너랑 알고 지낸 지 5년 넘었다. 너가 속으로 맨날 최승철최승철 하는 거 모를 줄 알고. 들켰네. 그래도 애들 있을땐 형이라 해라. . , . . . 최승철. . 승철아. 왜 이지훈. 하자.

품에 안겨 바스락거리던 승철의 행동이 뚝 멈췄다. 살짝 팔을 떼니 팔에 가려진 두 귀가 붉다. 그 귀가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승철은 웃지 말라며 지훈의 배를 툭 친다.

손을 턱 아래 두고 얼굴을 들어 올리니 귀만큼이나 얼굴이 빨갛다.

하자.”

입을 삐죽이고 눈을 굴리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인다.

하여튼 이지훈 멋있는 건 다하고 싶어 하지.”


맞아. 형한테 난 다 졌으니까 이것만은 용서해줘.


투덜거리는 입술이 사랑스러워 입을 맞추며 지훈은 제 사랑을 속삭였다.